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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르'에서 치매에 걸린 부인을 돌보는 남편>
휴대폰을 냉장고에 넣고 온 집안을 뒤지는 주부사례는 흔하다. 수년째 몰고다닌 차량번호도 생각 안나 쩔쩔 매는 중년 남자들도 많다. 몇 년 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천일의 약속'은 치매에 대한 우리사회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치매는 흔히 노인들이 겪는 질환이라고 생각하지만 치매에 걸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30대 여성이었다. 그 여성은 헌신적인 남편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치매가 악화되면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다. 그 과정에서 성공한 캐리어우먼이었던 그녀는 자의반타의반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치매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오히려 남편과 가족들에게 큰 상처만 남긴다.
치매는 남의 일이 아니다. 치매환자가 늘어나면서 본인은 물론 가족과 주변 사람들도 큰 고통을 겪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치매가 흔해지면서 영화로도 제작된 경우가 많다. 리처드 아디어 감독의 ‘아이리스’와 일본의 아누도 잇신 감독의 ‘금발의 초원’도 관심을 모았다. 얼마전 미카엘 마네케 감독의 ‘아무르’라는 프랑스 영화가 화제였다. 201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노부부의 지극한 사랑이 부인의 치매로 인해 허물어가는 과정이 애절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행복하고 평안한 일상에 어느 날 갑자기 마비증세를 보이며 찾아온 병마 앞에서 남편인 조르쥬는 그의 부인 안느를 지극 정성으로 간호한다. 안느는 남편에게 자신을 요양병원에 보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 아내의 청을 받아들여 외부와 차단한 채 묵묵히 혼신의 힘을 다하여 아내를 간병한다.
그러나 이미 아내의 병은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가고 힘에 붙인 남편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치자 결국 아내의 얼굴을 베게로 덮고 숨통을 막는다. 관람객들은 암울한 현실 앞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남편 조르쥬를 보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마음으로는 이해하면서도 가슴이 먹먹해졌을 것이다.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示唆)하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우리 미래와 마주한다.
누구에게도 병들고 추한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고 들키고 싶지 않았던 자존심과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동행 하는 노부부의 사랑이 절절하지만 아내를 자신의 손으로 먼저 보내야 하는 남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더구나 이들에겐 딸도 있지만 부모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기는커녕 때로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아빠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자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대다수 우리네 부모의 심정일 것이다. 이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도 많다.
이런 현실은 신문사회면을 통해서도 수시로 볼 수 있다. 대전 대덕구에 사는 한 60대 여성 A씨가 얼마 전 남편과 동반자살을 기도했으나 남편만 사망했다. 부인이 남편과 함께 숨지려 했던 것은 오랜 병수발에 지쳤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렇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남편은 신체 일부가 마비되고 치매 증상을 보였다. 부인은 그런 남편을 40대부터 병간호해왔다. A씨의 남편은 10여 년 전 뇌암으로 수술 받은이후 신체 중 왼쪽 전신이 마비돼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남편에겐 치매증상까지 겹쳤다. 경찰조사결과 A씨는 남편의 용변 처리를 하다 "힘들지 않나. 나도 힘들다"며 함께 숨질 것을 제안해 집에 번개탄을 피워 남편과 함께 숨지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극적인 사연이다. 무엇보다 병든 남편을 수발하던 부인도 건강이 안 좋았다는 점이다. 지난주 자살교사 혐의로 불구속된 A씨는 사건이후 건강이 더 악화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치매 남편과 병든 아내의 자살기도는 노년 빈곤과 건강수명으로 고통에 빠진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크게 연장되고 있지만 수명이 길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건강하게 살다가 눈을 감는 것은 아니다. 질병이나 부상으로부터 자유롭게 산다는 개념의 '건강수명'은 75세로(2015년 기준, WHO), 동일 시기의 기대수명(83세)과 약 8년의 격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망 전 약 8년 동안은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통증, 신체적 불편, 정서적 불안 및 우울감으로 고통에 시달린다는 의미이다.
건강 행태 변화로 만성 질환이 늘어나면서, 과거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질병이나 장애를 가지고 사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A씨 부부는 건강수명이 더 짧은 편에 속했다. 남편이 십수년간을 병석에 누웠고 부인이 병간호하면서 함께 건강상태가 나빠진 것이다.
치매남편을 병든 아내가 돌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사회복지시스템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이같은 비극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향후 국민의 건강보장체계에 큰 위기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사회면에 보도된 A씨 부부의 비극과 영화 아모르속 부부의 슬픈 사연은 치매문제가 단순히 한 개인 또는 가족의 문제로 국한 되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 공동체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나서는 것은 물론 이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치매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영화 '아모르'는 이런 점에서 우리사회에 '치매문제'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이제 우리 스스로 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 지자체, 정부가 치매환자를 경감시키고, 치매환자로 인해 가족의 고통을 해소하는 등 그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출처 /CWINEWS 칼럼^ 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