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면 역사의 주인공도 바뀐다.
그동안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동양 투수들은 박찬호, 노모 히데오 등 한국과 일본 출신들이었다. 노모가 95년 신인왕을 차지하며 황색 돌풍 시대를 열더니 박찬호는 97년부터 5년 연속 두자릿수 승수를 올리며 수천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슈퍼스타가 됐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결. 한국과 일본 선수들이 최근 주춤하는 사이 동양인의 '메이저리그 정복(征服)'이라는 역사의 전면에 대만인들이 나섰다. 왕치엔밍이 12일 현재 17승으로 명문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로 우뚝 섰고, LA 다저스의 궈홍치는 메이저리그 진출 6년 만에 첫 승을 거두며 잠재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대만 투수 전성시대가 열렸다. 최근 10여 년 간 빅리그를 강타한 동양 3국 투수들의 정복기를 구종에 따라 되짚어 봤다.
▶골리앗을 무너뜨린 포크볼-일본
메이저리그 최초의 동양인 정복자는 노모였다. 95년 일본 긴테쓰의 품을 떠나 LA 다저스에 입성한 노모는 몸을 비트는 특이한 투구폼('토네이도'라는 별명을 얻음)과 포크볼을 앞세워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메이저리그에는 SF볼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그보다 낙차가 큰 포크볼은 힘 좋은 빅리그 타자들에게 생소했다. 직구처럼 날아들다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포크볼에 속절없이 당했다. 노모가 입단 첫해부터 3년 연속 200탈삼진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150㎞에 이르는 빠른 공에 포크볼을 섞은 덕분이었다.
97년 양키스에 입단한 이라부 히데키(현 한신) 역시 포크볼의 명수였다. 이라부의 트레이드마크는 160㎞에 이르는 강속구. 하지만 메이저리그 진출 후 포크볼을 연마하며 98년(13승)과 99년(11승) 2년 연속 두자릿수 승수를 올렸다. 이후 불어나는 체중을 감당 못하고 2002년 퇴출됐지만, 포크볼은 정상급 수준이었다.
일본에서 '닥터 K'로 이름을 떨친 왼손 이시이 가즈히사(현 야쿠르트) 역시 150㎞대의 강속구에 포크볼을 비롯한 다양한 변화구로 빅리거들을 요리했다. 2002년 다저스 입단 첫해 14승을 올렸고, 2004년에도 13승을 거두며 빛을 발했다.
'대마신' 사사키 가즈히로(은퇴)도 마찬가지. 사사키는 지난해 은퇴식에서 "내가 프로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포크볼 덕분"이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2000년 시애틀에 진출하자마자 37세이브로 신인왕에 오른 사사키는 150㎞대 중반의 직구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포크볼로 빅리그서도 최고의 소방수로 우뚝 섰다.
▶미다스의 볼 강속구-한국
박찬호(샌디에이고)에게 연봉 수천만 달러를 안겨준 것은 직구였다. '코리안 특급'이란 별명도, 빅리그 '톱5' 구질로 뽑히기도 했던 150㎞대의 무시무시한 직구에서 비롯됐다. 94년 미국에 진출해 2년간 마이너리그서 기량을 갈고 닦은 박찬호는 96년 빅리그 풀타임 첫해부터 150㎞대 중반의 강속구로 주전 자리를 꿰찼다. 박찬호는 96년 6월 쿠어스필드에서 100마일(161㎞)짜리 직구를 던져 메이저리그를 놀라게 했다. 슬라이더 대신 커브를 던지고 체인지업을 연마해 다저스에서 롱런할 수 있었지만 그 밑바탕은 역시 빠른 직구였다.
박찬호의 직구는 떠오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 '라이징 패스트볼(rising fastball)'로 불리기도 했다. 공 끝의 움직임이 타자를 압도했다는 얘기다. 기나긴 부진을 딛고 올시즌 재기할 수 있었던 것도 직구의 위력을 되찾았기 때문.
김병현(콜로라도)이 '핵잠수함'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 역시 타자 앞에서 '떠오르는' 위력적인 직구 때문이다. 사이드암스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150㎞대의 빠른 직구와 그 끝이 변화무쌍한 싱커를 앞세워 2002년 36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한때 전성기를 누렸다.
▶빠른 변화구가 살길이다-대만
대만 야구의 위상을 높인 왕치엔밍의 주무기는 투심패스트볼이다. 단순히 홈플레이트에서 살짝 떨어지는 투심이 아니라 그 각도가 큰 싱커의 형태를 띤다. 공 끝이 지저분할 뿐만 아니라 스피드 또한 91~92마일(146~148㎞)로 정상급이다.
왕치엔밍이 땅볼 타구를 많이 유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시즌 왕치엔밍의 땅볼 아웃(GO)과 플라이 아웃(AO)의 비율은 2.96으로 아메리칸리그에서 이 부문 3위다. GO가 3배쯤 많다는 뜻이다. 박찬호와 노모가 삼진과 플라이 아웃이 많았던 반면 왕치엔밍은 전형적인 땅볼 투수다. 물론 155㎞에 이르는 강속구도 빼놓을 수 없는 무기.
좌완 궈홍치는 2000년 다저스 입단 당시 160㎞에 육박하는 강속구가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제구력 부족에 단조로운 구종으로 한계를 보였고, 결국 팔꿈치 이상으로 두 차례나 토미존 서저리를 받아야 했다. 궈홍치가 올시즌 중간계투로 시즌을 시작한 뒤 최근 선발로 보직을 바꿔 빅리그 첫승을 올린 것은 바로 이런 문제점을 극복했기 때문. 제구력이 몰라보게 좋아졌고, 컷패스트볼, 체인지업 등 다양한 변화구를 연마한 덕분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