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1:19]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때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멘 운'을 `때에'라고 번역하는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 `때'로 번역될 경우 어떤 사건의 시점을 의미하므로 18절에서 언급된 사건과 시간적 연관성이 강조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문장을 접속하거나 이야기를 전환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멘'은 반의적 의미를 연결하는 상관 접속사로서 `그러나' 또는 `한편' 등의 뜻을 갖고 있다.
그리고 `운'은 앞에서 언급된 내용의 결과로 나타나는 의미나 사건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단어로서 `그래서' 또는 `결국'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또 때에 따라서 `그러나'와 같은 반의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본절의 접속사는 앞의 사건과 시간적 연결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접속사로 이해하여야 한다. 여기서는 `한편'이라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 - 본 구절은 독자로 하여금 과거의 일을 회상하도록 촉구하면서 새로운 이야기의 배경을 설정하고 있다. 이는 스데반의 순교 후 교회에 닥친 박해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9장에서는 박해의 손길이 유대땅이 아닌 다메섹까지 미쳤음이 나타나 있다.
박해의 범위가 타 지역으로까지 확장되었음을 가리킨다. 아마 이 같은 일련의 박해로 예루살렘에만 모여 있던 성도들은 이방나라로까지 이주했을 것이며 그곳에서 전도를 하다가 박해의 손길이 그곳까지 미치게 되자 또 다시 점점 더 멀리 흩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유대주의자들의 박해가 복음을 전세계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역사한다. 베니게 - 지중해 연안 지역으로서 갈멜산과 레바논산 사이에 위치했으며 오늘날의 레바논 지역을 가리킨다. 이 지역에는 두로와 시돈이라는 도시가 속해 있는데 이미 예수는 갈릴리 선교 당시 이 두 곳을 방문한 적이 있으며 그곳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준 바 있다.
따라서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생소한 지역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구브로 - 지중해 동북부에 위치하여 안디옥과 다소, 그리고 길리기아 지역과 마주하고 있는 섬으로 구약 시대에는 `깃딤'(이라고 불리어졌으며 오늘에는 `키프러스')로 알려져 있다. 바나바는 이 섬 출신이며 그곳에는 유대인들의 회당이 있었고 바울도 바나바가 함께 그곳에서 설교한 적이 있다.
안디옥- 행정 구역상 수리아 지역의 지중해에서 약 32Km 내륙에 위치한 도시로서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480Km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안디옥이라는 지명은 여러 곳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성경에서는 비시디아 안디옥과 본절의 수리아 안디옥 두 곳이 언급되어 있다.
수리아 안디옥은 기원전 300년경에 셀류쿠스 니카토르 1세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아버지 `안티오쿠스' 이름을 따라 도시의 이름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디옥은 A.D.1세기에 로마 제국 안에서 로마와 알레산드리아에 이어 인구 약 50만에 달하는 큰 도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의 위치상 안디옥은 동 서 문화가 혼합되어 상존했으며 전체 인구 중 1/7정도가 유대인들로 구성되었다.
A.D.37-41년에는 갈리굴라 통치 아래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던 무서운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신약성경에서 안디옥은 외국 선교의 전진기지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처음으로 기독교인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졌던 곳이며 이방인 개종자의 할례 문제에 관한 논쟁이 처음있었던 곳이다.
이와 같이 이방 지역 선교를 위한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던 안디옥 교회는 초기에 바나바와 바울, 그리고 베드로에 의해 지도되었고 2세기에는 이그나타우스와 데오빌로, 3,4세기에는 루시안, 데오도르, 크리소스톰 등의 유명한 지도자들에 의해 지도되었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 로마와 함께 중요한 신학적 본산이 되었다.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한다는 본문의 의도는 1-3절에서 언급된 바처럼 유대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지금까지 이방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에게만 복음이 전해지고 있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