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봉 천자문으로 서예 공부하고 있는데
천자문으로 서예5체를 써 놓은 책이있어
예서를 중점적으로 써보고 있다.
작년에는 혼자서 천자문을 모두 써 보았고,
금년에는 그 책으로 장군면 주민자치 프로그램
서예반에서 다시 쓰고있다.
그 천자문의 저자인 한석봉에 대한 책,
한석봉 평전 ( 박종민, 다니엘 최 공저)이
세종국립도서관에 있어 7월26일 빌려와
오늘에야 다 읽었다.
그래도 그에대해 좀더 자세히 가정사부터 자라며
유명해지고 중국에까지 유명한 서예가로 이름을
날린 이야기며, 당대의 문인가들과의 교류등을
알 수 있었다. 소설이지만 어데까지 역사적 사실을
가미한 것으로 본다.
1543 계묘년에 태어나고 1605 을사년 62세에
타계했으니 당시 상황으로는 오래 생존 한 것으로
본다.
5대조 할아버지가 곡산군수를 지낸 "한대기" , 조부 "한세관"부터 송도에서 살기시작하고
부친 "한언공"과 모친 백씨 사이에서 송도에서 출생하였다.
한석봉(韓石峯)의 석봉은 호이고 이름은 호( 濩 퍼질 호) , 자는 경홍(景弘)이다.
소설 속 처음태어날 때 점쟁이가 와서 하는 말이
" 옥토끼가 동쪽에서 태어나 낙양의 종이값을 올리리니, 이 아이가 반드시글씨를 잘써 유명해질것입니다"
라고 말을듣고 부친이나 보부가 교육시키는데 열중하였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어 어머니가 떡장사를 하며 지내고, 할아버지가 서당에 보내고
서당마치고는 해월암 진성스님으로부터 공부를 하고돌아와 전라도 영암으로 가 영계선생으로부터
글공부를 하였다.
영계선생으로부터 사서삼경을 배우면서 부(賦)와 시(詩)를 창작하는 기법도 배운다.
사서 중 대학의 중심사상이 수신제가 (修身齊家) 후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인데
그 이전에 격물치지 (格物致知)와 성의정심 (誠意正心)을 하여야 한다는 구절을 술술설명 할 정도로 성장한다.
16세에 처음으로 한성부 서법경연대회에서 장원으로 뽑히고, 영암으로 돌아온 아들에게
밤에 불을끄고 어머니는 떡을썰고 석봉은 왕희지의 난정서 초입부분 33자를 해서체로 써서
누가 고르게 하나를 시합을 하였다. 어머니의 떡은 흐트러짐없이 고르지만 석봉의 글씨는 고르지 못해
어머니로부터 더 공부하여 성공한 후에 어미를 찿아 오라하며 돌려보낸다.
어미도 아들의 마음을 알지만 자식의 성공을 위해 에미의 정을 잠시 늦추게하는 모친의 모정이 묻어난다.
1566년 병인년 25세에 임금님 앞에서 보는 과거시험 알성시(謁聖試) 소과에 차석으로 합격하는 경사가 났었다.
임금님이 5등까지의 합격자들에게는 곧바로 관직을 주어 석봉의 관직이 시작되었다.
그제야 어머니가 자랑스런 아들을 맞아주게된다.
석봉은 그 후 감찰, 한성판관, 호조정랑, 형조정랑, 공조정랑가평군수와 흡곡군수를 역임했다.
중국에서 오는 관리들을 국경에서 맞이하는 사절단에 사행선사(使行善寫) 로 가서는
중국의 사신과 이태백과 두보의 시로 필력을 겨루는데 워낙 실력이 출중하니
중국사신이 한석봉의 글을 받아가기도 한다.
선조임금의 명을받아 백성들이 쉽게 천자문을 배울수있게 글자 해석이 들어가는
천자문을 만들라는 명을받고 임진왜란 기간중에도 틈틈이 썼다.
자신이 쓰고있는 한 자, 한 자가 먼 훗날 조선 백성들이 앞에 놓고 배우는 교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몽매한 백성들을 깨우쳐 주는 소중한 길잡이가 될것이라는 자부심에 가슴설레며 썼다.
선조 32년( 1583년)에 완성을 한다.
하늘 (天)과 땅(地)을 시작으로 하고 일백스물 네번째의 사언절구로서
외로울고(孤) 더러울루(陋) 적을과(寡) 들을문(聞) : 고루하고 배움이 적으면
어리석을우(愚) 어릴몽(蒙) 무리등(等) 꾸짖을초 (誚) : 어리석고 몽매한자와 똑같이 꾸짖는다라는
경구로 마무리하고 마지막은
이를위(謂) 말씀어(語) 도울조(助) 놈자 (者) : 이러한 말씀들은 백성들에게 도움을 주니
이끼언(焉) 이끼재 (㢤) 온호(乎) 이끼야(也) : 어찌 지나치리오. 조사의 구절로 끝맺었다.
선조임금이 한석봉을 가평군수로 내려보내면서 써준 족자의 글이있다.
醉裏乾坤 취리건곤 : 하늘과 땅 안 우주에 취해
筆奪造化 필탈조화 : 붓으로 그 조화를 담아내는구나.
허균이 석봉을 형님사이로 친하였는데 62세에 타계함을 듣고 지은 시 한 수가 있다.
손잡으며 이별 한지가 엊그제인데
옥류에 불려갔다는 소식이라니
높은이름 온 누리에 떨쳤고
큰 업적 천추에 기억하리
통곡하니 천지가 놀ㄹ하고
슬픈가락에 일월도 시름하노라.
송도삼절(松都三絶) 이라고 있다.
차천로의 시( 詩)
한호(석봉)의 글씨 (筆)
최립의 문장(文章)
조선의 명필가로 중국까지 이름을 떨쳤던 한석봉이다.
한석봉의 도산서원 현판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