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행 19- 서울역 DMZ전시
4월3일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역 서울역 갔습니다.
1900년 경인선의 서울 도심 구간 개통과 함께 남대문정거장으로 개업하여 1923년 경성역으로
이름이 바뀐 뒤 광복 후인 1947년에 현재의 서울역으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경성역 역사, 즉 옛 서울역 역사는 1925년 9월에 준공된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이국적인
건물로 석재와 철근 콘크리트, 철골 구조를 사용했으며 비내력벽과 장식에는 목구조와 벽돌,
인조석을 다양하게 섞어 만든 과도기적인 건물입니다. 본래 계획은 도쿄역과 비슷하게 세워
일제의 위엄을 보이려고 했으나 관동대지진으로 본국의 피해가 막심해 예산이 부족해진
관계로 당초 계획의 1/4 크기로 축소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나중에 더 확장할 것
이라는 생각이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도쿄역에 비해 왜소하게 지어졌습니다.
대한민국의 철도는 대한제국 시기인 1899년9월18일에 개통한 경인선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주요 간선 노선은 이후에 일본을 중심으로 한 열강의 침탈로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간 일본에 점령당하며 군사·정치적 목적에 의해 생겨났습니다. 이후 주권을 찾은 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세웠지만 극빈한 후진국이어서, 유엔·미국 등에서 차관을 들여와
일부 간선을 건설하고 철도 차량을 수입했다.
강우규(姜宇奎,1855년4월20일-1920년11월29일)의사는 일제강점기의 한의사이며 독립운동가
였습니다. 자(字)는 찬구(燦九) 호(號)는 왈우(曰愚)입니다. 1919년 조선총독부 총독으로
부임해 온 사이토 마코토를 저격하였으나 폭탄이 다른데 떨어져 거사가 실패하였습니다.
그는 조선 평안도 덕천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경상도 진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적
이 있고 경상도 밀양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평안도 덕천 귀향후 어려서부터
한의학을 공부하여 1884년부터는 함경도 홍원으로 이주하여 한의사로 인술을 베푸는 한편,
아이들에게 성리학, 학문을 가르쳤습니다.
1915년요동의 랴오허현(饒河縣)으로 옮겨가 거주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왕래하면서
독립운동을 꾀했으며, 요하 주변의 농토를 개간하여 한인촌인 신흥촌(新興村)을 건설
했습니다. 1917년 지린 성 동화현에 광동중학교를 세워 포 교육에 전력하며 독립정신 고취에
힘썼습니다. 현재 서울역인 남대문역에서 조선총독으로 신임된 사이토 마코토를 폭살하려고
폭탄을 던졌으나 다른데 떨어져 거사가 실패하고 그는 현장에서는 몸을 피했으며 거사 뒤
현장에서 빠져나와 오태영(吳泰泳)의 소개로 장익규(張翊奎), 임승화(林昇華) 등의 집에
숨어다니다가, 도피 중 독립운동 탄압으로 악명높은 총독부 고등계 형사 친일파 김태석
(泰錫)에게 붙잡혀 9월 17일 수감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강우규의사의 일대기를 TV에서 보고 감명받아 강우규동상을 가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강우규의사도 한의사였습니다. 마침 DMZ전시를 하여 관람하였습니다.
DMZ는 비무장지대 입니다.군사 시설이나 인원을 배치해 놓지 않은 지대입니다.
비무장 지대(非武裝地帶, demilitarized zone, DMZ, DZ)는 전쟁 분쟁 상태 혹은 정전 상태에 있는 둘 이상의 국가국경인 정전 라인(군사 분계선) 주변에 설치됩니다. 비무장 중립 지대, 중립 지대(Neutral Zone)라고도 합니다,
인공위성에서 본 DMZ와 철원의 터널입니다.
휴전선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관광객들
38선의 남북의 GP들
휴전선 감시 초소(休戰線監視哨所, guard post, GP)는 군사분계선(MDL)에서부터 남북으로
각각 2 km 범위에 군사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설정되어 있는 한반도의 비무장
지대(DMZ)에 위치한 감시 초소입니다.
한반도의 군사 분계선(韓半島軍事分界線, Military Demarcation Line, MDL)은 한반도의
남북을 분단하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계를 이루는 휴전선(休戰線)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953년7월27일 발효된 한국전쟁의 정전 협정 체결 당시 임진강에서 동해안까지 총 1,292의 말뚝을 박고, 이 말뚝을 이은 약 240km의 가상의 선을 군사분계선이라고 하며 비무장지대는 군사분계선에서부터 남북으로 각각 2 km범위에 군사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하여, 북쪽으로 2 km 떨어진 비무장지대의 경계선을 "북방
한계선"(NLL)이라 하고, 남쪽으로 2 km 떨어진 비무장지대의 경계선을 "남방한계선"(SLL)
이라고 합니다.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에는 철책이 쳐져 있으며, 남북의 군대가 대치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일반인의 활동이 엄격히 금지되어 자연 생태계가 보존되어 있으며, 아시아 최대의
자연보호지역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또한, DMZ 일대는 자연생태계의 정점인 포유류와
조류의 분포 면에서 한국 내 제일의 종 다양성을 지니고 있으며, 반달가슴곰, 여우, 사향노루,
산양, 수달 등 가장 많은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의 개체수가 서식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DMZ 주변은 하천과 습지가 잘 발달되어 있어, 다양한 어종과 풍부한 개체수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 이승만대통령의 양구 방문과 귀순자 강연회 파주 1968년 극장에 한 사진입니다.
올 4월7일에 양구를 가보았습니다.
군사분계선에 있던 것들입니다. 전에 캘리포니아 시미벨리(Simi Valley) 전 레이건 대통령
기념과에 베를린 장벽을 갔다놔 전시한것을 본 기억이 떠오릅니다.
또한 번스테인 지휘자의 지휘로 동독과 서독의 합창단이 같이 베토벤의 "9 심포니"를 연주
한 다음에 동독이 무너졌던 생각이 납니다. 동서독의 함창단이 베토벤의 9 심포니의 "환희의 송가"를 합창한 장면이 감동적이었습니다.
1984년 김포의 하성 우체국입니다.
1960년대의 수몰전의 인제입니다.
철원 민북마을 근북면 유곡리에 버스가 개통하는 날입니다. 1970년에...
1950년에 양구에서 결혼식을 하는 장면입니다.
1940년 해안 매동심상소학교 놀이터에서
625 전쟁시 춘계 2차 공세의 집중포격으로 중공군 500여명 전사자들입니다.
1970년대 철원의 백골부대 입니다. 뒤의 초전박살이라는 구호가 있습니다.
1966년 대성동 자유의 마을
1966년 포천의 샌트바바라 캠프입니다. 옛 미군부대 입니다
군인들의 체력단련
DMZ 생명과 지식 저장소
판문점
판문점(板門店)이란 명칭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피난을 돕기 위해 백성들이 임진강에 대문 널빤지로 다리를 만든 것에서 유래한 널문리를 한자로 고친것입니다.
중립국 감시단(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은 스웨덴, 스위스 폴랜드 입니다.
중립국이라함은 한국전쟁에서 병원선등을 제외하고 군대를 파평하지 않은 국가입니다.
스웨덴과 스위스는 대한민국측, 폴랜드는 조선임주주의인민공화국측 담당입니다. 현재는
스웨덴과 스위스 위원들만이 현지에서 UN사령부 소속 중립국 감독 위원회의 임무를 수행
하고 있으며, 폴랜드 대표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축출 조치로 인하여 현재 폴랜드
본국에서 중감위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DMZ을 보는 관광객들입니다.
언제 평화적 통일이 돼는지...
첫댓글 나는 중동부 전선의 최전방인 양구 21사단에서
근무했네.
군사분계선과 GP,GOP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네.
겨울에 고생 많았겠군.
매우 추웠은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