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4_3jKOMcB2M
2021.1.21.연중 제2주간 목요일
복음: 마르 3,7-12: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불길도 막을 수 없었던 맑고 순수한 사랑
“범죄의 원천이자, 죽음의 목자인 악에서 멀어지시오! 내게는 이미 나를 두 팔에 품은 분이 계십니다.” 로마 시장의 아들이 성녀 아녜스에게 온갖 금은보화로 유혹하며 구혼을 하자 그녀가 한 말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한결 같은 사랑은 그녀를 온갖 수모와 죽음의 위협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아녜스 성녀의 축일을 맞아 우리는 얼마나 예수님을 향해 한결같은 사랑을 드리고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그분의 사랑을 제대로 나누고 있는지 반성하며 이 미사를 온 정성을 다해 봉헌하도록 합시다.
(강론을 읽기 전에 성녀 아녜스의 전기를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2020년 1월 대전주보 4면,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 미술사가)님께서 작성하신 성녀의 전기를 먼저 읽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강론이 이해가 빠를 것 같아서 여기에 옮겼습니다)http://maria.catholic.or.kr/sa_ho/board/board_view.asp?menugubun=saint&ctxtOrgNum=&ctxtOtherMenu=&ctxtOtherID=&ctxtSubMenu=basic&infogubun=info&orggubun=101&bbsgubun=pds&infoid=1413&bbscount=9&maingroup=&gubun=&seq=&group_id=&sub_id=&page=1&id=57970&table=gnattboard&user_auth=&RecHostcle=&getID=&getSeq=&Mode=&keyfield=&key=&ctxtHigh=&ctxtLow=
"아녜스는 어린 나이에 순교한 성녀다. 「황금전설」은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한 편의 단편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어느 날 로마 시장의 아들이 길에서 아녜스를 보고는 한눈에 반했다. 청년은 자신과 결혼하면 부자가 될 수 있고, 금은보화도 실컷 갖게 해 주겠다며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범죄의 원천이자, 죽음의 목자인 악에서 멀어지시오! 내게는 이미 나를 두 팔에 품은 분이 계십니다.” 거절당한 청년은 몸져누웠다. 로마 시장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아녜스를 불러 회유했으나 약혼자에 대한 신뢰를 깰 수 없다며 요지부동이었다. 그녀가 말한 약혼자는 예수님이었다. 결국 시장은 이교도의 신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매춘 굴에 넘기겠다고 협박했고, 아녜스는 자신의 몸은 주님의 천사가 보호해 줄 것이니 털끝만큼도 더럽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시장이 아녜스를 벌거벗겨 매음굴로 끌고 가게 하자 하느님은 그 순간 그녀의 머리카락을 길게 자라게 하여 몸을 가려 주셨다고 한다. 한편 시장의 아들은 매음굴에 친구들을 보내어 아녜스를 농락하라고 했으나 그들은 굴속을 비춘 강렬한 빛에 볼라 줄행랑을 쳤다. 반면 아녜스를 취하려 했던 시장의 아들은 그녀의 몸에 손을 대는 순간 즉사했다고 한다. 이후 시장은 아녜스를 화형시키려 했으나 불길이 둘러 갈라지는 바람에 그녀는 무사했고 오히려 그녀를 돌로 쳐죽이려던 이교도들이 불에 타 죽는 일이 벌어졌다. 불로는 죽일 수 없자 시장은 참수를 명했고 성녀는 마침내 순교했다. 305년, 그의 나이 13세였다."
리베라, <천사가 준 망토를 덮고 있는 성녀 아녜스>, 캔버스에 유채, 1641년, 202×152cm, 드레스덴 국립미술관, 독일.
✝️강론✝️
오늘 아녜스 성녀의 축일을 맞아 성녀의 생애를 묵상하며 이 채 님의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이라는 시가 떠 올랐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지만
못 견디게 슬프고
가슴 아파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꿈의 밭에 심은 꽃씨들을 갈아 엎어야 할 때
푸른 잎들의 슬픔은 가지에 맺힌 투명한 이슬로 내리고
별들도 눈물 흘리며
밤하늘 젖은 별빛으로 흐르며
바람은 알몸으로 쓰러져
마른 낙엽 속에 묻힙니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지만
때로는 맨발로 사막을 걷는
고해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겨진 한 방울의 눈물까지
한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것은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과
한 사람을 사랑했던 기억만큼
생애 큰 축복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겪게 되는 슬픔과 아픔,
밭에 심은 꽃씨를 갈아 없어야 할 만큼 허망함,
알몸으로 자신을 송두리째 드러내야 하는 부끄러움,
맨 발로 사막을 걸어가야 하는 것처럼 막막함,
그리고 그리움의 눈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이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자체로 생애의 큰 축복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진심으로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때 모든 것을 다 바쳐, 심지어 목숨을 다 바쳐 사랑해도 모자랄 만큼 사랑 그 자체가 주는 행복과 축복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주었지만 그 사랑으로 더욱 충만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이 사라지지만 그로 인해 그가 살아나고 내가 그 안에 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녀 아녜스를 우리가 공경하고 사랑하는 이유는 남겨진 눈물 한 방울마저도 그 사람을 위해 주고 싶은 순수하고 맑은 사랑, 목숨마저도 모두 내어 준 그녀의 한결같은 사랑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3살의 소녀가 가졌던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은 동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무모하고 바보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지고한 하늘 사랑을 보여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매음굴에 던져진 그녀의 알몸을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감싸 주셨고, 불 속에 던져졌을 때에도 그녀를 지켜 주셨던 것입니다. 칼 날이 그녀의 목을 찌를 때, 그녀는 이제 예수님의 신부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녀의 목에서 흐르는 피는 예수님의 피와 하나가 되어 천상 혼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세상에서 그녀는 목숨바쳐 그녀의 정배인 예수님을 사랑하였고, 천상에서 그녀는 영원히 예수님과 하나되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모한 어린 소녀의 고집일지 모르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지고하고 맑고 깨끗한 사랑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밭에 심은 꽃씨를 갈아 없어야 하는 허망함이 아니라 아름다운 순교의 월계관이 되었으며, 알몸으로 자신을 송두리째 드러내야 하는 부끄러움은 십자가 위에 발가벗겨진 예수님과 하나되게 했으며, 맨 발로 사막을 걸어가는 막막함이 아니라 불길도 마다하지 않는 사랑의 달음질이었습니다. 그녀는 사랑을 위한 죽음 앞에 눈물 흘리지 않고 오히려 사랑하는 예수님을 만날 마음으로 설레었습니다.
성녀 아녜스의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우리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한 예수님의 사랑과 하나된 성녀 아녜스는 우리의 주님을 향한 사랑과 사람을 향한 사랑을 되돌아 보게 만듭니다.
나는 지금 사랑하는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주님을 위해 나 자신을 모두 내어 놓아도 아깝지 않을 만큼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나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진정 사랑하고 있습니까?
사랑해야 하는 이들을 한결같이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성베네딕도회 수도원
박재찬 안셀모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