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연초에 이강진 형제의 부탁으로 한달간 서울에서 체류하면서 당산동성당에서 형제님과 만나서 50 주년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당시 서울등 수도권에서 환자가 발생되었고 대구는 잠잠하였다 사람들은 왜 위험한 서울에 가느냐라는 말을 들었지요 아침에 서울 청파동에 사는 후배집에서 일어나서 근처 2호선 전차를 타고 영등포구청역에 내려서 당산동성당에 갔다 오전작업후에 형제님과 분류작업하고 같이 점심식사후 오후작업하고 저녁은 형제님이 사주시는 저녁식사를 혼자한후에 다시 청파동으로 돌아가는 일을 했다
한일주일 할무렵에 당산동본당 에서 작업을 할수없을 정도로 작업을 중단하고 서류 몇뭉치를 가지고 대구로 내려와서 그원고를 성서형제회 까페에 워드로 쳐서 올렸다(그사이는 짐을 옮기는 과정에서 원고를 잃은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러나 제가 대구로 내려온지 얼마 지나지않아 대구신**에 의해 폭발적으로 확진자가 늘었고 마스크를 구하기가 어려운 시기가 와서 대구는 거의 시내이동하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저와 이강진형제가 그시기를 잘못잡았다면 저는 오래동안 대구에 내려올수가 없었을것이고 그리고 대구시민이 외출이 거의 통제가 되었어 제가 집에서 원고입력에 집중할수 있게 한것이었지요
저는 원고를 정리하면서 그내용이 50주년행사를 위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창설자신부님이 자필로 쓰신 원고를 읽으면서 키보드로 입력했기에 그당시의 분위기이며 창설자신부님이 성서형제회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가늠할수가 있었습니다
제 개인이야기를 하면 대구에 내려와 부모님집에 살고 아들은 근처 따로 집을 얻어 살고있어서 저의책약간과 자료는 아버지집에서 보관할곳이 마땅치않아 여기저기 두고 옮겨가면서 사용하였기에 제자료를 정리하기가 어려웠고 다소 원고가 분실되기도 하였지요
창설자신부님이 한국에 계셨을때나 에쿠아도르에 가시고나서 한국에 가끔 들어올수 있을때에는 전국의 여러학생팀이 운영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십여년전 전국조정봉사자로 이강진형제님이 새로선임되고 수원의 어느형제가 부회장으로 있을동안 여전히 수원에는 여러팀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안곡원곡도팀에서는 수원과 그근처 교도소봉사와 다른성당의 견진교육에 봉사를 하였고 수원교구는 교구장승인을 받기위해서 많은 애를 써왔지만 두차례에 걸친 시도에도 실패했다 그때에는 수원교구소속 여러신부들이 참여하였고 여러팀이 안산과 수원등지에서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자체적으로 성서공부팀을 운영하였지요 그러나 수원교구가 성서사도직프로그램을 거룩한독서와 여정에 집중함으로서 교구내 여러 성서형제회팀들중 안산원곡본당팀 을 제외하고는 붕괴되었던 것이었다
자료를 정리하다보면 여러가지를 알수가 있는데 창설자신부님은 국내에서 교구차원의 단체로 여기지는 않았고 일종의 성서운동으로 여겼던것입니다 이런일은 다른단체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난 일이었으니 레지오팀이나 성령기도회도 본당에서 운영을 여러해동안 교구승인없이 어렵게 해오셨다고 합니다
수원교구는 성령기도회에서 평신도가 교육을 받아 각 지역과 본당에 파견되어서 말씀강의를 자유롭게 해왔는데 어느해부터 수원지도신부님께 미리 강의원고를 제출하고 신부님앞에서 강의를 해서 통과된 사람만이 파송되었기에 새로운말씀봉사자양성이 어려위졌지요
그런면에서 볼때 성서형제회에서 본당차원에서 일상적인 활동이 어려웠던 것이었다
청소년들을 위해서 늘새로운 프로그램이 제시되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창설자신부님이 어렵게 마련한 교본을 충실히 지켜지는 것도 차즘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여러가지 이유로 교구단위로 운영해야하는데 전주교구만이 교구승인단체이고 나머지는 임의단체로 운영되고 있기에 천안팀 수원팀이 그곳사제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임의단체라는 한계로 매번 새로오시는 신부님의 호응도에 따라 많이 좌우되기에 다른 일상단체와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임의단체는 본당에서 지도신부로 등록되어있지만 교구청에서 정식적으로 발령된 사제가 아니기에 본격적인 지원을 받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그리고 교구별로 내세우는 성서사도직프로그램이 있을 경우에는 교구내 어떤신부도 공식적으로 성서형제회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성서형제회는 간혹 소식이 주보에 실리기도 하지만 지금 여러팀이 운영되는 교구에서조차 관할 교구내 사제와 수도자들로부터 호응을 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십여년동안 수련회와 묵상회에 적지않는 사제와 수도자가 참여해왔지만 지금겨우 수녀원은 장소제공에만 도움을 줄뿐이고 신부한분과 수녀님한분만이 참여할 정도이고 코이노니아회합과 관련 꾸준히 지도를 하는 목회자가 없다고한다
매달 발행하는 소식지는 편집자가 과거의 자료를 올릴뿐이라는 것이다 새로운말씀봉사자양성 성서형제회를 알리는 일은 아주 어려운일이 되어가고 있다 단 한달에 한가지식이라도 성서형제회 정신과 헌장에 조금씩 다가선다면 단시간내에 달라질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