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어려움을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하지만
어려움을 만나자마자
근심에 휩싸여 두려워합니다.
예수님,
당신 인내의 공로에 힘입어
저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는
은총을 내려주소서.
오늘의 기도지향
자연환경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대자연이 인간의 욕심과 온갖 공해로 파괴되고 있사오니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보존하여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주소서.
오늘의 말씀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마르 6,30-34 또는 마태 28,16-20
그때에 30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오늘의 묵상
측은지심
성경을 읽어보면 하느님께서 특별한 자비를 베푸는 상황은 사람에게 ‘측은지심’ 을 가지실 때다. 카인이 아벨을 죽이고 하느님께 저주받는 순간에도 두려움에 떠는 카인이 앙갚음을 받지 않도록 표를 찍어주셨다. 이스라엘 민족이 아무리 잘못을 했다 해도, 그 잘못 때문에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통쾌해하는 것이 아니라 측은한 마음으로 그들을 구해 주셨다. 예수님께서도 측은한 마음이 드시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그들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우리가 주님께 무엇을 얻고 싶다면, 우리 삶의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측은해야 한다. 오늘 복음의 군중이 주님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것처럼 ….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나약하지만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순간순간 끊임없이 기도한다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비난을 감수한다면,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기 위해 궁핍한 중에도 내 것을 나누며 살아간다면 주님께서는 분명 측은하게 보시고 큰 선물을 주실 것이다. 잘 살지는 못해도 어떻게든 사제로 살아보겠다고 매달리는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측은해서라도 날 구원해 주시지 않을까 ?
또 우리가 주님을 닮으려고 노력해야 할 마음도 ‘측은지심’ 이다. 약자를 배려하고 내 것을 기쁜 마음으로 나누며 타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곧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측은지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같은 계명이...
[이진원 신부 (의정부교구 마두동천주교회)]
영적독서
영원한 지혜를 찾읍시다
그녀가 이승을 하직할 날 - 우리는 모르는 채 당신만이 아시던 그날 - 이 가까워 왔을 때, 정녕코 그것은 당신의 그윽한 손길로 마련된 줄 아옵니다만 우연히도 그와 나는 단 둘이서 창문에 기대고 서 있었습니다. 우리 맞은쪽에 집안의정원이 내려다 보였습니다. 그 곳은 오스티아 티베리나! 지루하고 고달프던 여행 끝에 속간을 멀리한 우리는 거기서 배를 타려고 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둘이서 주고받는 이야기는 즐겁기만 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들을 잊고, 눈앞의 일에만 열중하고 우리는 진리이신 당신의 어전에서 더듬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 성자들의 영생, "눈에 보지 못하였고 귀가 듣지 못하였고,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르지 않은" 그 미래의 생활을 우리는 차라리 마음의 입을 벌리고 당신께 있는 생명의 샘, 그 샘물의 하늘스런 흐름을 목말라 했사옵니다.
꼭 이 말 이대로는 아닐망정,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하오나 주여, 당신은 아시나이다. 이런 말을 하고 있던 그날, 말하는 동안 이 세상은 그 온 가지 쾌락과 더불어 하찮게만 보여졌던 것입니다. 그때 그녀는 말하였습니다. "아들아, 내게 있어선 세상 낙이라곤 인제 아무것도 없다. 현세의 희망이 다 채워졌는데 다시 더 할 것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세상에서 좀더 살고 싶어했던 것은 한 가지 일 때문이었다. 내가 죽기 전에 네가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것을 보겠다고 ‥‥‥ 그랬더니 천주께선 과람하게 나한테 베풀어 주셨다. 네가 세속의 행복을 끊고 그분의 종이 된 것을 보게 되니, 그럼 내 할일이 또 무엇이겠느냐."
이 말에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아뭏든 그런지 닷새가 다못가서 아니, 더래야 얼마 못되어서 그는 열병으로 눕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앓던 어느 날, 실신하여서 잠시 동안 의식을 잃고 있었습니다. 바삐 가서 보니 이내 정신을 회복하고는 나와 내 형이 곁에 있는 것을 익히 보더니 무엇을 묻는 듯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어디 있었더라?" 그는 다시 눈을 들어 슬픔에 당황하는 우리를 보고 말했습니다. "어미를 여기다 묻어 다오."
나는 말문이 막히고, 울음을 억지로 참고 있었는데 내 형은 무엇인가 중얼거리며 차라리 고향에서 돌아가셔야 마음이 편하지, 남의 땅에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고 찌푸린 얼굴로 나무란 다음, 나를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보아라,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어서 또 우리 둘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몸뚱이사 어디다 묻든지 그 일로 해서 조금도 걱정들 말거라. 한 가지만 너희한테 부탁한다. 너희가 어디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날 기억해 다오." 어미는 간신히 이런 말로 그 뜻을 전하다가 뚝 그치고, 치열해 오는 증세 때문에 진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