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의 영화 속 생태]새만금 장승과 솟대는 잊혀지고
ⓒ이철재
새만금 방조제
전북 부안군 변산면 백련리 일대 바다는 해창갯벌로 불린다. 마을 어귀에 ‘바다의 창고’, 즉 ‘해창(海倉)’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창고자리에서 타다 남은 쌀이 1970년대에 발견될 정도라 하고, 조선시대에는 인근 섬과 멀리 중국까지 밀무역이 있을 정도로 해상 교통의 요지였다고 하니 이곳의 해창 규모가 결코 작지 않았음을 가늠할 수 있다.
이곳 갯벌은 풍천장어, 참게, 바지락, 백합 등 어패류의 주산지로 유명했다. 조선시대 이 곳 해창 주변은 쌀을 가득 실은 배가 드나들고, 바다와 갯벌에서 잡은 풍성한 해산물이 넘쳐 꽤나 번잡했을 것이다. 지금은 옛 영화를 찾을 수 없지만 남은 기록들은 그 때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해창갯벌에는 유명한 것이 하나 더 있다. 2000년부터 갯벌에 세워진 50~60여개의 장승과 솟대들이 그것이다. 새만금 보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민중미술가 최병수 작가가 장승과 솟대를 세우기 시작했고, 전국의 시민들이 하나 둘 보태면서 해창갯벌에는 장승촌이 만들어졌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해안선’, 해창갯벌 장승촌 모습이 그대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 ‘해안선’에는 해창갯벌 장승촌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2002년에 제작된 ‘해안선’은 김기덕 감독과 배우 장동건의 조합만으로 촬영 전부터 유명했던 영화다. 영화는 남과 북의 대립에 의해 해안을 경비해야 하는 해병대 소대에서 발생한 사건이 어떻게 개인과 집단을 광기로 몰아가는지 보여주고 있다.
ⓒ'해안선'
영화 ‘해안선’ 포스터
강한철 상병(장동건 분)은 소대 내에서 고문관으로 통한다. 그는 오로지 간첩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번번이 튀는 행동을 한다. 그에게 간첩은 훈장과 포상금을 획득할 아이템이자 1계급 특진을 하게 해 바로 제대하고 애인을 만날 수 있게 하는 제물이었다.
어느 날 밤, 강 상병의 야간투시경 안으로 바닷가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강 상병은 이를 간첩으로 확신하고 M16 소총과 수류탄으로 수상한 이를 제압한다.
하지만 그가 잡은 이는 간첩이 아니라 아랫동네 주민 영길이었다. 영길이는 술김에 애인 미영(박지아 분)과 일몰 후 접근이 금지된 바닷가에서 사랑을 나누다 변을 당했다. 총소리에 달려온 부대원들은 산산조각 난 영길의 시체 주변에서 피를 뒤집어 쓴 채 겁에 질린 미영을 발견한다. 다음날 군은 민간인을 오인해 죽인 강 상병에게 경계 근무를 잘했다며 포상휴가를 준다.
영화는 이때부터 민간인을 죽인 죄책감에 미쳐가는 강 상병과 사고 충격으로 실성한 미영의 이야기를 다루고 그로인한 집단 광기를 보여주고 있다. 민간인을 죽인 탓에 애인에게 버림받고 부대로 복귀한 강 상병은 정신착란 증세를 보여 강제로 의가사 제대를 당한다. 그러나 강 상병은 다시 해안 초소로 돌아와 총을 훔쳐 소대원들과 총격전을 벌인다. 미쳐버린 미영은 죽은 영길이를 그리다 소대원에게 차례로 범해져 임신을 하게 되고, 소대원들에 의해 강제로 불법 낙태시술을 받게 된다.
영화에서 위장크림으로 떡칠하고, 광기어린 눈빛을 번뜩이는 장동건의 모습은 너무나 강렬했다. 감독은 ‘해안선’에서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분단국가에서 파생되는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소대원들의 족구장에는 한반도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 철조망이 쳐져 있는 모습을 카메라로 잡아줌으로써 감독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해안선’에서 실성한 미영은 해창갯벌에서 물이 차오른 장승과 솟대 사이를 오가며 꽃무늬 원피스 치마를 들썩였다. 이 때 미영의 테마 곡이 흐른다. ‘모래 숲속을 걷다가 조개껍질을 보았네. 껍질 속에는 당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네. 당신의 거친 이름은 채 다듬어지기 전에 혹독한 파도들 만나 녹아 사라진다네. 누군가 새벽녘에 와 당신은 여기 없다고 얘길 해 주고 떠났네. 그걸 왜 이제 말해주나, 이름이 없는 신발에 여기에 없는 당신, 한발을 집어넣었다가 수평선을 쳐다보았네’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던 장승촌은 퇴락하고
ⓒ'해안선'
‘새만금 갯벌을 살려 주세요’ 10여 년 전에 새만금에 울린 소리는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사진출처 : 영화 ‘해안선’ 사진 갈무리)
지난 1월19일 해창갯벌을 찾았다. 부안터미널에서 해창갯벌까지 20여 킬로미터를 걸어가면서 미영의 테마곡을 읊조리고, 영화 속 물이 차오른 장승과 솟대 장면을 떠올렸다. 하지만 다시 찾은 해창갯벌은 더 이상 갯벌이 아니었다. 영화 속 늠름했던 장승과 솟대는 퇴색해, 솟대는 오간대 없고 낡은 장승만 가득했다. 장승 중 더러는 목이 잘렸거나 밑동 째 잘려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낡은 장승 밑에 화석이 된 따개비를 보면서 이곳에 더 이상 밀물과 썰물이 없다는 깨달았다. 장승 뒤로 ‘새만금 방문을 환영합니다. 새만금 관광단지 개발사업’이라는 간판과 함께 짙은 안개 속으로 거대한 새만금 방조제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다고 죽은 영길이가 돌아와?” ‘해안선’에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미영에게 던진 미영의 오빠(유해진 분)의 대사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새만금 사업은 식량안보를 이유로 든 농지조성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농지 대신 도시 및 산업용지로 목적이 바뀌었다. 새만금 방조제 완공 전에는 1~2등급이었던 수질도 2010년 3~4등급으로 악화돼, 새만금 생태계도 급격히 변해버렸다. 새만금 갯벌의 특산품인 백합, 동죽, 맛조개가 집단 폐사하는 일이 발생했고 멸종위기종 대추귀고동과 생김새가 고았던 바다민달팽이 두 눈이 머리위에 올라온 짱둥어는 절멸했다.
방조제 완공 이후 갯벌이 감소하면서 철새들도 줄어들었다.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연구소 오창환 소장은 2006년 이후 개체수의 70%가 급감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육상식물의 빠른 침투 및 이입으로 인해 하구역 여러 곳에서 염생(鹽生)식물의 쇠퇴와 육상식물 중 천이(遷移)초기 식물과 귀화식물의 분포지역이 확장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해창갯벌 장승 밑에는 침엽수가 자라고 있었다.
새만금의 생물종 폐사는 돌고래와 흡사한 상괭이의 집단 폐사까지 이어졌다. 상괭이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ㆍ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으로 지정된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이다. 지난해 2월 한 달 여 동안 상괭이 250여 마리의 사체가 수거됐다. 사체를 분석한 전문가들은 호소화 된 새만금이 결빙되면서 상괭이가 질식사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방조제 완공 이후 해수가 제대로 통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바다는 썩을 부분은 다 썩고 조개도 다 썩어버렸다”는 어느 지역 주민의 말이 현재의 새만금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새만금을 보면서 실성한 미영이 떠오르는 이유
ⓒ'해안선'
바닷물이 들어오는 해창갯벌 장승촌에 실성한 미영이 몸을 담그고 있다. 영화가 제작된 2002년 해창갯벌에는 50~60개의 장승과 새, 꽃게, 짱둥어 등이 솟대로 세워졌었다. 어민들의 삶의 수단인 배도 솟대화 됐다.
새만금의 변화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갯벌에서 어패류를 잡던 맨손 어업이 몰락했고, 해수유통 저하로 어선 어업은 위기를 맞았다. 이는 지역의 경제적 위기로 이어졌으며, 그에 따른 주민 간 갈등으로 번지는 상황이다. 새만금 방조제 완공 이후 상황을 조사한 구도완 환경사회연구소 소장은 “맨손 어업 층은 임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지역 사회의 붕괴를 보여주는 것이다.
70대 노인도 갯벌로 나가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의미에서 ‘바다는 조폐공사’라 했던 어느 주민의 말이 떠오른다. 물때에 맞춰 일을 했고, 그에 맞게 생체 리듬이 적응됐던 사람들에게 새만금 방조제는 ‘해안선’에서 미영이가 실성한 것 같은 고통이었다. 실제로 새만금 방조제 완공 이후 어민들의 정신적 고통, 우울감 등이 크게 증가해 육체적 건강까지 악화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해안선’에서 실성한 미영을 임신시킨 소대원들은 상급부대에서 알게 될 것을 우려해 강제로 미영에게 낙태를 시킨다. 비가 내리는 저녁, 소대원들은 허름한 야간 초소로 미영을 끌고와 마취제도 없이 단 한 번의 경험도 없는 위생병에게 그 일을 시킨다. 이를 말리는 김 상병(김정학 분)에게 소대장은 머리에 권총을 겨누며 “이미 끝났다. 야 김 상병 니 기분 안다. 우리도 미치겠어”라고 해 광기 어린 모습을 보인다.
ⓒ이철재
현재의 새만금 해창갯벌 장승촌. 늠름했던 장승들은 여기저기 잘려나가고 있고, 솟대는 찾아 볼 수가 없다.
2011년 4대강 현장을 조사한 국제적 하천전문가인 독일의 베른하르트 교수는 4대강 사업을 두고 “자연에 대한 강간”이라 격하게 평한 바 있다. 벽안의 전문가 입장에서 4대강 사업은 자신의 나라 선조들이 범한 잘못을 그대로 되풀이 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새만금 사업 역시 그에 못지않을 듯하다. 갯벌의 가치는 이미 널리 알려져, 독일 등에서는 역간척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지난 대선 기간 동안 박근혜 현 당선인 등 대선 후보들이 새만금을 찾았다. 작년 11월에는 여야가 합의 해 ‘새만금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개정했다. 새만금개발청 설치, 특별회계 규정 강화 등을 골자로 사업 주체를 농림수산부에서 국토해양부로 변경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은 ‘여야 합의정치의 상징적 모델’, ‘명실상부한 국책사업으로서 위상을 갖게 됐다’는 식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전문가들은 대선을 앞두고 벌인 정치 선전이라 비판한다. 전주환경연합 이정현 처장은 “사업성이 없고 수질 관리가 불가능한 곳에 막대한 국고를 투입하고, 억지스런 환상으로 대선을 앞두고 전북도민들의 표심을 얻는 데만 급급한 정치권의 무책임한 태도”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새만금 특별법 자체가 이 사업의 실패와 정치인들의 잘못을 덮는 미봉책이라는 것이 이 처장의 지적이다.
애초 목적이 사라진 새만금 사업은 그 성공 가능성도 매우 불투명해 보인다. 농업용수는 물론, 도시 및 산업단지를 조성하기 위해서라도 수질이 중요한데 수질 목표를 달성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 목적도 상실하고 목표도 달성하기 어려운 마당에 생태계는 훼손되고 세금은 낭비되고 새만금을 떠올릴 때마다 실성한 미영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이다.
ⓒ이철재
육지가 돼 버린 갯벌. 새만금 방조제 이후 더 이상 밀물과 썰물의 변화가 사라져 갯벌은 마른 땅이 되어 버렸다.
지난 해 5월, 2001년에 환경운동연합 마당에 묻었던 새만금 타임캡슐을 10년 만에 개봉했다. 그 안에는 새만금사업 강행을 주장한 정치인, 학자, 공무원 등의 발언과 동영상 CD, 신문 자료 등이 있었다. 계속해서 지적 했듯이 실패한 국책사업의 특징은 피해는 남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새만금 타임캡슐은 다시 땅속에 묻혔다. 이번에는 10년 전 자료와 정부가 발표한 새만금 마스터플랜 그리고 관련 사진 및 언론 기사 등을 담았다. 다음 타임캡슐 개봉은 2021년 5월로 예정하고 있다. 새만금 타임캡슐이 다시 개봉되기 전에 해수유통이라도 먼저 되기를 바라본다. 그것이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새만금 문제를 풀기위한 첫 번째가 묘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