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6월14일) 한 주 걸러서 떠난 (금산)백령성 답사, 2009년 5월 19일에 20 회차 산성답사를 생각하면서 호국보훈의 달에 다시 가 본 산성, 감회가 새롭다. 가는 길에 오항리 증티 마을도 들리고, 오는 길에 금산산림문화타운에도 들려 발도 닦고,복수면에서 조헌 선생의 수심대도 찾아본다. 산지기네 텃밭 검사도 해보고 상추맛도 본다.
<충남의 오지 중의 오지라는 오항리 증티 마을도 다시 찾아가본다>
<오항리와 증티 마을 유래 읽어보기>
<범죄없는 자랑스러운 마을 표지판과 마을회관>
< (금산군 진산면) 건천리를 지나면 635번 지방도인 잣고개[栢嶺]길은 고개 밑에서는 차 두 대 겨우 비킬 정도의 좁은 1차선으로 바뀐다. 지금도 이럴진대 예전에는 어땠을까? 하면서 올라가면 고갯마루에 이른다. 고개 너머는 길이 2차선으로 넓어진다. 예전에 역이 있었던 마을인 (남이면) 역평리가 나온다.>
< 고갯마루는 널찍하고 서쪽으로는 백령정 정자도 있고, 남쪽으로 600고지 전승탑이 우뚝하게 보인다. 백령성은 바로 전승탑 뒤에 있다.>
<마침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임을 알려주듯 헌화도 보인다.
묵념을 올린 후에 비문 내용을 읽어본다. (패잔병을 패장병으로 쓴 오기도 눈에 거슬리지만, ) 한국동란 후 1955
년까지 남부군의 거점지역으로서의 슬픈 기록이다.>
< 백령성 일대를 보여주는 백암산 등산지도를 월간 산 잡지 것을 인용한다(2010년 8월호)>
<1:5만 지형도(1976년 국립지리원 발행)로 본 백령성 일대
개직 마을 근처의 지방도는 아직도 개설되지 않은 채 점선으로 남아있다.>
<탄현의 위치 찾아보기, 셋티재, 쑥고개가 보인다.>
<남이면 역평리 방면에서 온 신라군이 서쪽 진산 방면이나 서남쪽 용계산성 방면으로 가려면 넘어야 하는 고개가 잣고개이고 그 고개를 지키는 성이 곧 백령성이다. 고산자 김정호는 이곳을 탄현이라 하는데, 탄현이라는 곳이 어디 한 두 곳인가, 자모리의 숯고개, 건천리의 쑥고개 등 >
<전승탑 뒤로 심어진 잣나무(잣고개를 상징한 듯?) 사이로 성표지석과 그 뒤로 산성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성돌은 인절미 썰어논 듯하고, 성벽쌓기나 기울기는 일본성과 비교되고, 남문지의 들어올리기식 문턱도 확실하게 볼 수 있다.>
<백령성지 표석 뒤에 써놓은 기록을 읽어본다.
백령성 길이가 4km에 이른다는 구절에 가서는 고개가 갸웃거린다. 어떤 근거에서인지, >
<성벽 주위가 환하다. 사정없이 나무를 베어버려서 시계가 시원하다. 대신 오래된 나무까지 베어 버리는 어리석음을 한 것은 아닐까? 작업하는 기계소리와 작업인부들이 오가고, 담당 공무원도 지나가고, 예산 탓만 듣는다.>
<북벽의 모습: 인절미 모습의 성돌들>
<서벽의 옆모습>
<1600여 년이 더 된 진본 성돌을 쓰다듬어 보고싶다.>
<마구 베어 넘어진 나무들:성벽을 지켜온 것들인데...>
<북문지로 들어가는 길; 등산길로 이어진다>
<내외협축성의 남측 성벽을 안으로 돌아가서, 잘 남은 남문지을 살펴본다>
<남문지의 안쪽 서측 성벽>
<예전에 보았던 수구와 수구문지는 가볼 수가 없어서 생략하고 먼발치로 백암산 줄기가 건천리 쪽으로 뻗어내린 지세만 본다. 쑥고개랑 샛고개가 있는 곳, 그곳으로는 냇물이 흘러간다.
논산 탑정 저수지: 인근에는 황산벌 전투가 벌어진 곳이 있다.>
<인공저수탱크 시설물인 저수목곽, 유물 발굴지>
<남문지 동측 외벽>
<빠져나온 성돌 모습
: 전형적인 백제식 산성 성돌 모습이다.
가로 성돌과 세로 성돌의 모습 - 세로 성돌의 길이가 옥수수알갱이처럼 깊게 가늘어지는 모양새를 확인한다.>
<작업장 인부의 안전문제 제기로 남벽 돌아보기는 생략하고 기념사진 촬영만 부탁한다.>
<동측 성벽(역평리쪽) 은 허물어져서(아마도 파괴되었겠지만) 원형은 볼 수 없고, 그나마 풀섶에 가린 채 등산로로만 이용된다. 북문지로 가는 길에>
( 내려 오는 길에 금산산림문화타운에 들려 발 좀 닦고 , 주변 지형도 둘러보고 점심먹으러 고산까지 간다. 시골밥상 찾아서)
<임진왜란(1592년 여름) 때 금산전투가 치러졌던 곳 중의 하나다.
조선의 식량창고였던 전라도를 빼앗기 위해서 신라군이 백제 사비성 침입 때처럼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
<금성면의 금산 7백의총에 묻혀있는 무명용사들을 기리며.>
<복수면 소재지 서쪽 냇가 옆에 있는 조헌 선생의 유적지인 수심대를 들린다.>
<사당 문은 잠겨있어 담 너머로 찍는다.
(충북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의 사당과 묘,
자지산성의 강돌, 저곡리 산성의 전투를 포함한 금산전투까지 이어진다.
강직하고 지부상소(持斧上訴)까지 할 정도의 꼿꼿한 우국지사요 선비인 중봉선생의 유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
< 한국동란 시의 민·관·군의 조각상에서 임진왜란 시의 의병과 관군을 그려본다.>
<(금산산림문화타운의) 계곡물에 떠내려가는 십자가 모양의 흰꽃 산딸나무 꽃이파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꽃다운 젊음을 아낌없이 바쳤던 선열들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산화(散華,散花)라는 글자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