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0일부터 13일까지 지인과 함께 3박 4일 동안 일본 교토지역 답사하고 왔습니다.
4일 동안 10만보 이상을 걸으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려고 했습니다.
답사기는 너무 길게 써둔 탓에, 글을 어떻게 할 지 고민하고 있습니다만,
답사를 하면서 제가 갖고 있던 생각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을 여행하는 목적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한국에 남아있지 않은 것을 일본에 남아있는 것을 통해 상상해보기 위해 간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삼국시대에는 일본 교토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땅이었지만,
천도를 한 헤이안시대부터 19세기 말 대정봉환과 도쿄로 천황이 이어하는 사건이 벌어질 때까지 교토는 일본의 천년 고도였습니다.
오닌의 난 등 여러 차례 재난을 겪기도 했지만, 교토에는 수많은 사찰(약 3천개가 넘는다는 주장도 있음)과 신사가 존재하는
고대 종교도시의 모습을 지금까지도 갖고 있습니다.
교토 답사의 절반 이상이 사찰과 신사 답사였고, 교토어소, 니조성, 그리고 사찰에서 본 것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정원이었습니다.
교토를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의 경주에 비유하곤 합니다. 천년 고도. 문화재로 인해 도시 개발이 지연되고, 관광으로 먹고 사는 도시.
그런데 이번에 답사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답사를 갖다 온 후 확실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교토는 고려시대 개경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려 시대를 공부하려는 학생들이라면 교토에 가보아야 합니다.
교토에서 고려의 수도 개경을 보았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 교토 답사는 너무도 신나게 오래 기억나는 답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란 것 한 가지. 답사를 출발하기 전날인 2월 9일 교토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다행히 10일 교토에 도착하니
얼음이 언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기온은 5도에서 12도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지온인을 방문했다가 바라본 교토의 산은
2월 11일 임에도 우리나라 한여름의 산을 보는 것처럼 푸르렀습니다. 은각사, 천룡사(데류지)에서는 대나무 숲을 보았습니다.
후지미이나리신사를 답사하다가 이나리산에 올라가서 내려다본 교토는 생각보다 거대한 분지였습니다.
왜 교토에 수많은 한반도 도래인이 건너가서 살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일본을 알아야 한국이 보입니다. 일본사를 알아야 한국사가 보입니다. 이런 말들을 이번에 절감했습니다.
답사한 사진들을 올려봅니다.
후시민이나리신사는 이나리 산에 만 여개의 도리이와 신사, 신이 머물렀다는 신세키, 신앙의 대상이 된 비석인 오쓰카 등이 수없이 많다.
첫댓글 우선 실물 자료를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실감 나는 현장 사진이군요. 교토는 고려시대 개경과 비교해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 1표입니다. 물론 제 경우는 말씀하신 것처럼 구체적이 아니라 어슴푸레하게 '그렇지 않을까?' 정도였지만요. 정확하게는 경주와 교토를 비교할 때 고개를 갸웃거렸던 적이 여러 번 있어서 그렇습니다. 교토를 잘 모르니 섣부르게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경주와 교토가 그렇게까지 닮은 꼴인가?'라는 전제에는 개인적으로 늘 의문이 있어서요. 이나리노카미 즉 도하신은 일본의 비옥과 쌀, 농업, 여우, 공업과 세계적인 성공의 신이라 합니다. 이나리는 이자나기가 창세한 일본을 유지하는 여신으로 그녀는 원래 대장장이와 사무라이를 내조하였다고 하지요.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가 2025학년도 일본어 수능 문제에서 인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온인(知恩院, 지은원)은 일본 불교 정토종의 총본산으로, 1212년에 입적한 정토종의 창시자 호넨쇼닌의 사후에 지어졌다 합니다. 왜 교토를 개경과 비교해야 하는지 새삼 납득되는 부분이지요. 알아야 할 것은 많은데 요즈음 시간과 능력의 부족을 많이 느낍니다. 소년이로학난성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닌 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