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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474 선하신 목자 예수님(요한복음10장1-6절)
성경말씀은 요한복음 10장 1절에서 6절까지 봉독합니다.
[요한복음 10장]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제가 몇년전에 성지에 가서 이 말씀이 하도 궁금해서 양을 치는 베두인족에게 가서 잠깐 물어봤어요.
‘양들이 정말 이름이 있느냐?’ 없대요.
그리고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느냐?’ 하니까 잘 모르겠대요.
그냥 목자가 그냥 쭉 가면 따라오고 하는데, 기록에 보면 옛날에는 그런 풍습이 있었답니다.
지금은 양치는 사람이 한사람이 양을 치면 50마리 100마리 치면 그 한사람이 한 우리에 두고 하니까 그런 일은 없는데, 옛날에는 몇사람의 양이 한 우리에 한꺼번에 저녁에 재우고 그리고 양을 지키고 하다가 아침에는 각자 데려가서 풀을 뜯겨요.
다 비슷 비슷하게 생겼어요. 내가 볼 때 똑같아요.
그런데 목자는 자기 양을 안답니다.
그래서 이름도 다 붙여서, 어떻게 불러내느냐 하면 이름을 부른대요.
자기 양 한 100마리중에서 30마리가 자기 양이다. 세 목자가 한 마굿간에 섞어놨는데 어떻게 찾겠어요? 색깔을 칠해놓은 것도 아닌데..
이것은 제가 확인한 것은 아니고, 기록에서 읽은 것을 의지하면 이름을 부르면 자기 이름도 알고 양이 목자의 음성도 알아서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목자가 앞서 가면 양들이 따라가는데, 다른 집 양은 그 목자를 안 따라간다는 거야.
옛날에는 그렇게 한 모양이고 지금은 그렇게 안 하니까 확인할 수 없는데, 저는 그게 늘 궁금했어요.
성지에 가서 베두인족들에게 물어봤더니 지금은 이름도 없고 성도 없고 그냥 자기 양을 자기가 먹이니까 따로 구분할 것도 없고 그런가 봐요.
예수님 당시에는 그런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했지 않았나..
그리고 양과 목자라는 입장. 이것은 비유거든요.
6절에 보면,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제자들이 당시에는 잘 몰랐다는 거예요.
요한은 적어도 이 복음서를 쓸 때는 예수님이 그 말씀을 하신 의미가 무슨 말씀인지 알았다는 건데, 10장 전체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비유의 참뜻이 뭐냐 하면,
첫째 목자는 자기 양을 안다는 거예요.
그리고 양도 자기 목자를 참목자를 안다는 겁니다.
알아가지고 따라온다는 거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양이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거야. 음성을..
알아듣기 때문에 따르지만 자기 양이 아니면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따르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 양이 아닌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이게 핵심이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도 나를 잘 믿고 따르면 내 양이 될텐데..’ 이렇게 말하는게 아니고 ‘너희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따르지 않는다.’
굉장히 무서운 말이예요.
그래서 여기에서도 선택에 관한 교리 더 나아가서 예정에 대한 교리와 작정에 대한 교리가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거죠.
지난번에 요한복음 6장에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
기억나시죠?
그런 것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님을 믿게 해줘야만 믿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또 믿게 해줘야만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돼요.
그러면서 아무도 내 손에서 내 양을 빼앗을 수 없고,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 그리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가 하나가 되어서 자기 양을 안 빼앗긴다는데 누가 빼앗아 갈 수 있겠어요?
그래서 이런 말씀은 요한때쯤 되어서 이런 신학이 완성된 것이 아니냐..
[요한복음 10장]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그래서 이런 저런 거짓선지자가 예수님 이후에도 많이 나타났고, 예수님 이전에도 많이 나타났는데, 다 절도며 강도요 하나님의 양을 빼앗아 갈려고 하는 절도요 강도 이런 것들인데, 이것은 정상적인 문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고 언제나 다른 데로 넘어와가지고 비정상적으로 와서 양들을 빼앗아가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양을 잡아 먹을려고 오는 것이지, 양들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다’ 하셨는데,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기도 하는데, 삯군은 제 양이 아니기 때문에 도적이 오거나 이리가 오면 놓고 다 도망가버린다.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그래서 이 세상이 사실은 다 하나의 양우리죠. 세상이..
그런데 예수님 양이 있고 예수님 양이 아닌 양이 있어요. 염소도 있다니까..
그래서 이 세상이라는 큰 우리 안에서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 양 이름을 각각 불러서 불러낸다는 거예요.
불러내니까 여러분은 다 교회까지 온 거죠.
나는 저 지리산 골짜기에서 숨어 있었어.
하나님이 잘 못 찾게..
저 골짜기 신작로 끝나는 동네.. 자동차도 더 이상 못들어가는 동네..
거기에 숨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찾아낸 거예요.
내가 나중에 알았는데 나보다 훨씬 더 골짜기에 있는 사람도 하나님이 불러낸 거야.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못 믿는 사람이 있고, 지리산 골짜기에 있는 사람이 믿는 사람이 있다니까..
신비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신 양들인데, 그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사도행전에 보면 ‘영생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이런 말이 있어요.
또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이런 말씀도 있어요.
그래서 이런 저런 구절을 다 종합해보면 하나님의 백성 택한 백성 예수님의 양 창세전에 예정된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별로 억세게 전도 잘 안했는데, 그냥 이렇게 툭 건들면 떨어져요. 다 익은 것처럼..
여러분 알밤이라는게 안 익었을 때는 막대기로 패도 잘 안 떨어지는데, 다 익으면 가서 건들기만 하면 알밤이 세톨이 탁 떨어지는 거야.
알밤이 예쁜게 세개가 얼마나 비좁았는지 가운데 것은 쭈그러졌어.
그렇게 들어있다가 그래도 나중에는 껍질이 너는 다 익었다 내려가라 하고 탁 벌어지면서 건들기만 해도 떨어지는 거예요. 익었으니까..
그런 것처럼 예수님의 택한 백성 이런 사람들은 그냥 교회 갑시다. 하면 나도 가면 되나? 하고 그냥 따라와요.
택한 백성은 그냥 따라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 억지로 끌고 와서 선물을 주고 난리 굿을 피우고 겨우 끌어왔는데, 겨우 안번 왔는데 ‘아이고 나는 안 맞다’ 하면서 가버려요.
그 뒤에 찾아가도 안 되고..
그래서 그런 사람을 가만히 보면 속으로, 겉으로는 말할 수 없지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어요.
전도해보면 택한 백성은 대충 전도하는 것 같아도 나옵니다.
안 하면 모르지만 전도하면 인도해보면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한번 해보고 안 나온다고 택한 백성이 아니라고 포기할 필요 없어요.
덜 익었어.
여러분 고구마 전도법에 있잖아요.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수시로 건드려보는 거야.
익었으면 그냥 건드리면 툭 떨어져..
그래서,
4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이것을 예수님께서 실제로 그렇게 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6절에 보면,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런 저런 거짓선지자들이죠.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그 ‘양’은 그냥 양이 아니고 ‘택한 백성이다.’ 처음부터 택한 백성이 있는데,
이들에게,
..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님께서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렸잖아요.
12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여러분 아들은 너무 어려서 아버지를 잘 모를 수 있어요.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알죠.
..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께서 언젠가는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것을 말씀하시는 거죠.
왜 이렇게 미리 말씀하시느냐?
나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거나 죽음을 당할 때, 무슨 예수님께서 불의의 사고를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한 것처럼 그렇게 되면 안 되거든요.
미리 이야기 해놔야 그런 일을 당할 때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그게 바로 우리 이방인들이겠죠.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70인 제자와 이런 사람들 말고 아직도 교회라는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도 내게 있어,
..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전세계 모든 이방인 세계 만민 중에서 자기 백성을 불러내는 거죠.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양들을 위해서 스스로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사람들이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힘이 없어서 달린게 아니라,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어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미리 십자가가 오기 전에 미리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요한이 우리에게 상기 시키는 거예요.
19 이 말씀을 인하여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20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저가 귀신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귀신의 말에 뭐하러 귀를 기울이느냐?’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하고,
21 혹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너 귀신이 착한 일 하는 것 봤어?’
그러면서 예수님이 하신 것은 귀신이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옥신각신 하는 거예요.
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수전절’ 하는 말이 66권 중에 딱 한번 나오는 단어인데, ‘하누카’라는 명절인데요, BC164년 경에 유다 마카비우스라는 사람이 안티오커스 4세 에피파네스라는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을 막 더럽히고 했는데, 이것을 3년 반정도 싸움을 해가지고 그것을 물리쳐내고 그 성전을 싹 소제하고 수리하고 그리고 다시 모든 성전을 깨끗이 숙청했던 그 날을 기념하는 명절인데, 12월 25일이예요.
유대 달력으로 12월 25일이 되는데, BC164년 그 때부터 명절을 지켜와서 지금까지 지키고 있었는데, 수전절(修殿節)은 ‘전을 수리했다’ 그런 뜻이죠.
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12월이니까 추울 때죠.
유대력으로 12월 같으면 우리 같으면 2월이나 3월쯤 될텐데,
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좀 확실히 해보시오. 그리스도입니까? 아닙니까? 아니면 아니라고 하든지..’
이렇게 다그치니까..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거기 줄을 그으세요.
‘너희가 안 믿기 때문에 내 양이 아니다.’ 이렇게 하는게 아니고,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안 믿는 거야.’
그러면 이 사람들에게 전도해도 돼요? 안 돼요?
이들은 예수님이 와서 해도 안 돼요.
안 되잖아요.
그런데 전도되고 믿을 사람 택한 사람은 개떡같이 전도해도 나오는 사람 있어요.
요나 하는 것 봐요. 요나..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하는 것 봐요.
한 사흘길은 해야 되는데, 하기 싫어서 하루길만 했는데, 개떡같이 했는데, 찰떡같이 알아듣고 임금부터 짐승까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재를 무릎쓰고 회개하는 것 봤잖아요.
어떤 전설같은 얘긴데, 옛날에 최권능 목사라고 있잖아요.
그 사람이 전도하는 것 아무리 내가 봐도 마음에 안 들어.
그냥 아무나 보고 그냥 ‘예수 천당!’ 해버리는 거야.
그러면 집에 가서 잠을 못자..
‘예수천당 예수천당’ 귀에 쟁쟁해가지고 ‘아 이거 예수 귀신 들렸다.’
예수 귀신 들리면 예배당 가야 떼지 딴데는 못 뗀다고 하네요.
그래가지고 목사에게 가서 ‘나 예수 귀신 들었으니까 떼주시오.’ 이러고 온다는 거야.
그러니까 목사님이 ‘예수 귀신 더 들어가 버려라’ 하고 안수해버리니까 그냥 회개가 터진다는 거야.
아주 엉터리 같이 했는데, 그런 사람에게도 그렇게 역사하는 거예요.
예수시여 더 들어가십시오. 해가지고..
어떤 경우에는 책에 보면 재미있는 얘기가 많은데, 좀 과장된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일본 순사가 타고 가는 말의 귀를 붙잡고 말 귀구멍에다가 대고 ‘예수 천당!’ 그랬대요.
그러니까 말이 휘휘 해가지고 굴러떨어져버렸어.
집에 가서 그 일본 순사가 예수 신이 들린 거야.
그래서 못견뎌가지고 찾아오면 기도해서 예수 믿는 거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은데, 그런 얘기가 있어요.
이런 것을 보면 진짜 신나요..
어떤 분이 그것을 읽어보고 요즈음도 길거리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 하고 다니는데, 할 때가 있고 할 사람이 따로 있는 거야.
아무나 하는게 아니고..
그러니까 그렇게 해도 믿을 사람이 믿는 거야.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와도 못 믿는 사람은 못 믿는 거야.
그러니까 안 믿는게 아니고 못 믿는 거예요. 사람이..
예수님의 양이 아니니까..
그런 사람은 전도해도 안 돼요.
안 되지만 해보기는 해봐야 돼요.
열두 사도가 다 달려들어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돼요.
어떤 교회 학교에서 배운 학생이 요만한 초등학생이 어떤 할아버지가 앉아서 뭘 했다나 사주를 봤다나 앉아 있는데, 할아버지에게 가서 고함을 지르기를 ‘할아버지 이길을 똑바로 가면 지옥가요.’ 그랬대요.
‘할아버지 그 길로 똑바로 가면 지옥가요.’
그게 귀에 쟁쟁해가지고 결국은 나중에 예배당 찾아왔다는 거야.
요즈음은 그런 일이 잘 없는데, 하도 한국 사회가 무식할 때는 무식한 방법이 통했는가 봐..
그렇게 해가지고 예수 믿은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아버지가 약간 냄새가 나는 공무원이야.
이른바 박정희 시대 5공 시대 이럴 때..
어떻든 그랬는데, 그 아들이 대학교에 가서 의식화 운동에 강의를 듣더니 부정부패 공무원 나쁜놈들 이렇게 하니까 그날부터 이 아들이 자기 아버지가 아버지로 안 보이고 아주 냄새가 나는, 옛날에 냄새를 꼬롬하다고 그랬어요.
썩는 냄새가 난다.. 썩어서 냄새가 나요.
그 아버지가 꼬롬한 거야. 냄새가 나는 거야.
집에서 아버지라고 안 부르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1년 넘게 아들이 아버지라고 안 부른 거예요.
그러니까 아버지는 살 맛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아들이 담임 목사님이 끌고가서 수련회에 갔다오더니 싹 변해가지고 집에 들어오면서 ‘아버지!’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들어오더라는 거야.
또 놀랐잖아요.
이게 무슨 미쳤나 해가지고..
고함을 지르면서 ‘아버지!’ 하면서 들어와서 아버지의 무릎에 엎드려서 펑펑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울더라는 거예요.
아버지는 또 걱정이 되는 거야.
얘가 또 미쳤나 해가지고 ‘무슨 일이냐? 어떻게 된거야?’ 했더니..
‘아버지 죽을 죄로 잘못했습니다. 아버지..’
그래가지고 아버지가 모처럼 참 오랫만에 아버지라는 말을 들으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냐?
‘도대체 무슨 일이 터진거야? 어떻게 된 거야?’
그래가지고 그 아버지가 도대체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교회에 가봐야 되겠다 하고 교회 담임목사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물으니까 아들이 어떻든간에 나를 아버지라고 안 불렀다.
몇일간 어디 갔다오더니 대문간 들어오면서 아버지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들어왔는데, 이게 무슨 일이 벌어진거냐?
알고 보니까 수련회에 가서 탕자의 비유라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이라든지 이런 것을 쭉 얘기를 했는데, 아들이 거기에 완전히 그냥 요즈음 애들 말로 뿅 가버린 거야.
그래가지고 탕자 비유를 하면서 아버지라는 하나님이 아버지인데, 그 아버지가 전부 인간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아버지를 아버지라 안 부르고 평생을 하나님이 만든땅에서 살면서 하나님 주신 오곡백과 과일을 아작아작 먹으면서 아버지를 안 부르고 하나님을 안 부르고 그래 하나님 마음이 아파서 그렇다 하니까,
그 아버지라는 분이 ‘아이고 목사님 말도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 속에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그러는 거야.
자기도 자기 아들이 아버지라 안 부르니까 그렇게 못살겠다는데, 그러니 하나님 아버지도 나도 여태까지 평생을, 얘는 1년만 안 불렀는데, 나는 평생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안 불렀는데 하나님 아버지가 얼마나 속이 상했는가..
그날로 예수 믿은 거야.
택한 백성은 아들이 집을 나가서 속 썩여도 이래갖고 전도가 되는 거요.
실감이 나죠?
여러분도 아들이 집을 나가면 여러분이 신학자가 될런지 몰라요.
그래서 어떻든 간에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백성은 불러요.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 백성을 부릅니다.
절대로 빼앗기지 않아요. 절대로..
천국 문을 닫아놓고 ‘아이고 내가 마산에 놔두고 왔다.’ 그런 실수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무섭게 찾아냅니다.
반드시 찾는다는 거예요.
하늘 끝에 가 있을지라도 반드시 찾아냅니다.
27절,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믿기만 하는게 아니라 따른다.
예수님을 알며 예수님을 믿으며 그 음성을 들으며, 오늘도 아마 우리 샤론의 가족들이 예배당에 거리가 멀어서 나오지 못한 분들은 아프리카나 아메리카나 어떻게 해가지고 예수님 음성을 듣는 거예요.
세상에 어떤 음성도 아니고 성경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 예수님의 음성이 제일 달게 들리면 하나님의 백성인 거예요.
여러분 혹시 누군가가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인가 아닌가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예수님을 욕하거나 교회를 욕하거나 하나님을 욕하거나 할 때 기분 나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이 맞는거야.
그런데 예수님을 욕하거나 하나님을 욕하거나 교회를 욕하거나 목사를 욕하거나 할 때 기분 좋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야.
간단하죠?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누구에게?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며 예수님을 알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뭘 준다고?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믿어집니까?
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아무도 하나님의 양 예수님의 양을 빼앗을 자가 없다.
그리고,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예수님과 아버지가 하나가 되어서 안 빼앗긴다는데, 누가 그 양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있겠습니까?
영어로 보면 ‘아이 앤드 파더 아 원(I and my Father are one.)’ 굉장히 강하게..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그러니까 하나가 되어서 자기 양들을 찾고 지킨다는 거예요.
여러분 만약에 돈 오백만원이나 오천만원 짜리 양을 한마리 잃어버렸다 해도 찾죠? 그렇죠?
30만원 50만원짜리도 찾고 찾을 것 아녜요?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 피로 산 양들을 하나님이 잃어버리면 그것 안 찾고 그냥 가겠어요?
독생자의 피로 산 그런 양들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찾지 않고 잃어버리고 하겠냐고?
절대로 잃어버리지도 않고 빼앗기지도 않는 줄 믿습니다.
절대로..
이렇게 말했더니,
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님을 칠려고 해요. 이 미친놈들이..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라스페미아’라는 헬라어는 어려운 말인데, ‘참람하다’ 하는 말이 ‘건방지다’는 거예요.
건방지다 말이야.
어떻게 자기가 하나님과 하나라고 동격으로 치느냐? 이래가지고 건방지다..
..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이것을 보면 진리 가까이에 왔죠?
가까이에 왔는데 그 진리를 통해서 그 진리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에 튕겨서 나가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다 하면 천국으로 푱 들어갔을텐데, 그 진리로 인해서 안 믿어지니까 거기에서 튕겨 나가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진리로 말미암아 천국으로 가는데, 어떤 사람은 진리에 튕겨서 영원히 우주 미아가 되는 수가 있어요.
그 최고의 가까운 데까지 갔던 진리에 튕겨서 멀어지게 되면 영원히 문을 찾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양의 문이고, 천국문이나 마찬가지인데..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하는데, 예수님께 튕겨버린 사람들은 끝장이예요.
모든 다른 종교에 가서 튕기면 더 좋아요. 그렇죠?
그런데 정답 앞에 와서 천국 정문에서 튕겨버리면 곤란해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라는 데까지 인식이 된 거거든요.
그런데 안 믿어지고 안 통해요. 말이 안 통해요.
여러분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천국까지 인도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절대로 하나님이 무슨 포승줄이나 오라줄이나 수갑이나 무슨 쇠고랑이나 이런 것으로 묶어서 우리를 끈 것이 아니고 말로 인도합니다. 말로..
말씀으로 약속으로 사랑으로 이렇게 이끌어가야 되는데, 말이 안 통하고 마음이 안 통하고 하면 뭘 가지고 끌고 가겠어요?
강제로 끌고 가지 않거든요.
진리의 말씀을 선포해가지고 믿음으로 알아듣고 따르고 알고 이렇게 하면 천국까지 끌고 갈 수 있어요.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우리를 이끄시니까..
그런데 말이 안 통하면 아무 것도 안 통해요.
여러분 외국어로 하던 것도 결국은 통할 수 있어서 통한 것 아닙니까? 그렇죠?
여러분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했는데, 이것이 영어로 중국어로 일본어로 해가지고 또 한국어로 번역되어서 이렇게 해도 예수를 믿는데, 히브리어로 본국어로 아람어로 예수님이 말해도 다 자기들이 아는 말로 해도 마음이 안 통하면 말이 안 통해요.
제가 실제로 경험한 일인데, 우리 집에 미국 대학생이 40일 정도 와서 살다 갔어요.
그런데 자기들은 한국말 모르고 나는 영어를 몰라.
기가 막히죠?
여러분 말이 안 통하면 얼마나 재미있는 줄 몰라요.
말이 언어가 전혀 다르면 진짜 재미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자기가 어디가서 인사하면서 연세대학교에 가서 한달 동안 한국어를 배웠다는 거야.
그런데 ‘계세요’ 와 ‘가세오.’ 두 단어가 분간이 안 되는 거야.
자기가 가면서 ‘안녕히 가세요.’ 그러고..
‘가세요’ 와 ‘계세요’ 가 비슷하더래. 자기 볼 때..
그런데 자기들 인사법과 우리 인사법이 다르니까 그런데 나중에 안통해가지고 자기는 영한사전 한영사전을 서로 바꿔가지고 한참 씨름해가지고 단어를 찾아가지고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면서 알아들으면 양쪽 다 배꼽을 잡고 주저앉는 거야. 우스워서..
여러분 그 사람들이 이른바 평화 봉사단 소속으로 한국에 와서 두명이 우리 집에 와서 제가 혼자 시골 전도사가 되어가지고 혼자 예배당을 지으니까 남자 집사가 하나밖에 없는데 맨날 담배 농사 짓느라고 예배당 짓는데 와보지도 못해.
그래서 전도사 혼자가 예배당을 짓거든..
그래서 제 집사람이 그 무거운 블럭을 올려주고 나는 받고 이렇게 하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딱했던가봐..
그래서 아주 건축 보조요원을 미제로 둘을 보냈는데, 그것도 수준급이라.
하나는 다니엘이고 하나는 데이비드야.
세상에 다니엘과 다윗을 보냈으니까 얼마나 세겠어요?
인디에나 고센대학 대학생들인데, 메노나이트 교단이라고 미국에서 극보수에 속한.. 우리 한국 같으면 고신보다 훨씬 더 센 보수예요.
옷을 남자나 여자나 흰색과 검은색 외에는 잘 안 입어요.
아주 진보적인 사람이 곤색을 입을 정도로..
그 정도로 세상과는 거의 담을 쌓은 그렇게 경건주의에 속한 근본주의에 속하는 사람인데,
얘들은 조금 다르더라고 보니까..
전혀 교단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고 풍속도 다르고 다 달라요.
그런데 그래도 어떻게 해가지고 저와 마음이 통하니까 같이 일도 할 수 있어요.
말도 안 통하고 동네 사람들은 내가 영어를 잘 하는 줄 알았어요.
하나도 못하는데 어떻게든 떠드니까..
그래서 같이 일을 40일간 하는데, 그 사람들 미국에서 새벽기도 없거든요.
제가 새벽기도하고 와서 아침부터 일해가지고 저녁에는 손가락이 안 보일 때까지 일을 하거든..
그렇게 일을 제가 시킬 때 이왕 보조요원 하나님이 보낸 건데, 세게 시키고 가야지 하면서 얼마나 호되게 시켜먹었는지..
내가 나타나면 ‘하이 히틀러!’ 이 자식들이 나보고 히틀러래..
그러면서도 열심히 일 하니까 자기 나라 미제 목사보다 한국 전도사가 훨씬 열심히 일한다고..
자기들도 게으름 피우지 못하고 열심히 일 했어요.
어떤 때에는 정을 가지고 뭘 쪼개는데, 정 한번 때리고 손가락 한번 때리고 해가지고 손에 피가 나가지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할만하냐? 하니까 매우 재미 있대요.
그래서 맨 마지막에 마치고 갈 때에는 그 어려운 개척교회에서 두 청년에게 한복을 덧저고리까지 다 해가지고 고무신까지 다 아주 한복 아셈블 두벌 그렇게 해 입혀줬더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춤을 추는 거야.
그렇게 해서 갔는데, 이 싸가지 없는 놈들이 다시 연락도 안 해..
다 미국에서 부잣집 아들인데..
데이비드라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 한사람이 짓는 농사가 우리 사천군 정동면 한 면민이 짓는 것만큼 짓는 거야.
농약치는 비행기가 두 대야. 농가에..
그러면서 그런 농사지으면서도 건축업자야.
그리고 보니까 곡식 창고에 콩과 옥수수 밀 세가지를 짓는데, 요즈음 같으면 대형 미곡처리장 그런게 자기 집에 있는 거야. 한 가정 단위로..
부자집안들이야.
그런 학생들이 와서 그렇게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 안 통해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내가 또 아들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같이 있으면서 많이 배웠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못하겠다는 말을 안 해요.
‘베리 인트레스팅(very interesting)’ 하면서 매우 재미있다고 하면서 하는 거예요.
힘들고 어렵다는 말을 매우 재미있다.
뭐든지 힘들면 도전해 볼만하다 이렇게 생각해요.
야 저게 미국정신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나이는 제 아들 뻘이지만 제가 나름대로 아주 배울만한 거야.
그래서 말이 통해야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하면 일할 수 있는데, 마음이 안 통하고 말이 안 통하고 하면 일이 안 돼요.
제가 가능하면 성경에 있는 진리를 훼손하지 않는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전할려고 해요.
어떤 분은 우리 교회에 왔다가 ‘다르다.’ 뭐가 다른지 모르지만 다르다고 하면서 얼마 견디다가 못 견디고 가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자주는 아닌데, 한두 사람이 있는 거야.
안타깝죠. 사실은..
그래서 예수님께서 워낙 순전한 말씀 순수한 말씀을 하는데, 여태까지 듣던 말씀과 너무 다르니까 사람들이 수용을 못한 것처럼, 우리 교회도 성경 얘기만 하고 전혀 예화도 별로 없고 하니까 처음에는 잘 못 들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귀가 열려서 ‘샤론교회는 성경 이야기만 하는 구나.’
그 때는 진짜 인식이 되면 들리죠.
깜짝 놀랄 말씀을 34절에서 하시는데,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성경에 두 군데가 있어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고 ‘내가 너로 바로 앞에서 신이 되게 했다.’ 그런 말씀이 있어요.
적어도 너는 바로 앞에서 신과 같은 존재다. 그런 적이 있고,
시편 82편 6절에 ‘너희는 다 신들이요 지존자의 아들들이다.’ 했는데, 그냥 보통 사람 같으면 죽어버린다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정말 하나님이 신이시죠. 맞아요?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면 신의 아들이니까 신이죠?
소의 아들은 송아지 그렇죠?
개의 아들은 강아지..
신의 아들은 신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이나 마찬가지야. 신적 존재라는 거야. 신령한 존재예요.
그런데 여기 보세요.
..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이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인데, 그 말까지 했다면 졸도하지 않았겠나..
그러니까 들을 수준이 안 되는 거라.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이렇게 말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죠.
39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그러니까 예수님께 어떤 권위와 어떤 힘이 보이니까 잡고자 하면서도 잡지 못한 일이 여러 번이었어요. 한두 번이 아니죠.
몇번이나 예수님을 어찌해볼려고 했는데, 잘 안 됐죠.
두가지입니다.
예수님께 그런 위기를 뚫고 나갈 힘도 있었지만, 요한은 가끔 ‘때가 안 되었다.’ 그런 말을 해요.
40 다시 요단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주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베다니죠. 요단강 동편에 베다니라는 곳이 있습니다.
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이것을 잊지 말아야 돼요.
여러분 세례요한에 대해서 예수님의 평가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요한 보다 더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
그런데 그 요한이 무슨 표적을 행한게 있느냐? 아무 것도 없어요.
아무 이적을 행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본거야.
그리고 소개 했어.
그 외에 사람들을 회개하게 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준 그 정도 했는데,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더 큰 이가 없다. 이렇게 했는데,
이 사람들이 세례요한 처음 세례준 곳에 와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거야.
‘그래 세례요한은 이적이나 표적을 행한 것이 없지. 그러나 그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대해서 한 말은 다 진실하다. 다 참이다.’
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세례받는 곳에 왔는데 왜 세례받는 곳에 왔겠어요? 또 세례받을려고 왔겠죠.
그래서 대체로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다는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이 조금은 낮은 신분들 또 가난한 사람들 병자들 소외계층 이런 사람들이 믿었어요.
그리고 나름대로 내노라 하는 당시 고관대작들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학자 제사장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믿지 않은 거죠.
그리고 부자도 하나님의 나라에 가기 어렵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나름대로 성공했다 하는 사람들은 예수 믿기 어려워요.
그래서 실패하면 다 믿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택한 백성이 믿기는 믿는데, 그 택한 백성을 볼 때 다는 아니지만, 대체로 볼 때 약한 자 가난한 자 병든 자 애통하는 자 이런 분들이 믿었어요.
실제로 산상보훈에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그리고 핍박하는 사람보다 핍박 당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 의를 위해서 핍박 받는 사람..
그런 사람은 대개 불행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복이 있다는 거예요.
잘 나가고 잘 나가고 잘 나가는 사람은 예수 믿을 가능성이 희박해요. 너무 잘 나가니까..
요즈음 미국 가수 비욘세.. 뭐하는 거요?
자기는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교회 갈 수 없대..
예수님도 유명한데..
자기는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교회 갈 수 없다고..
어릴 때는 교회에 나갔던 모양인데..
여러분 그래서 너무 유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못 나갈 정도로 너무 유명하면 그것은 복이 아니고 저주일 수 있어요.
또 여러분 사업이 너무 잘돼가지고 예배할 시간도 없다.
잘 되어가는게 올무요 함정입니다.
적당하게 바쁘고 그래야지 너무 잘나서 너무 유명해서 교회도 못 나갈 정도로 유명하다면 그것은 곤란한 거야.
여러분 바로 누가복음 볼 때 너무 잘나가지고 하나님도 믿지 않고 욕심만 부리고 돈만 따라갔던 부자는 음부에 들어가고, 거지 보세요. 거지 나사로..
‘거지 나사로는 신앙생활 잘 했다.’ 그런 말도 없어요.
가난한 사람이었는데, 죽어서 천사의 손에 붙들려서 아브라함 품에 들어갔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억지로 못살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선한 일 좋은 일도 사실은 가진게 있어야 좋은 일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돼요.
그것은 하나의 선한 일 하기 위해서 수단이 되어야지..
그게 목적이 되어가지고 하나님을 이용해가지고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유명세 날리고 그런 것이 목적이 되어서안 안 돼요.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목적이야지..
그래서 여기 예수님의 말씀 진리가 달게 들리는 사람, 교회에 와서 예배 중에 혹은 강의 중에 어떻든 하나님 말씀이 예수님 말씀이 아주 달게 들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항상 100% 아멘 되어지고, 세상에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와서 진리가 아닐 때에는 딱 혀가 음식의 맛을 분별하는 것처럼 우리 귀가 우리 심령이 영적으로 아닌 것은 딱 아닌 것으로 감이 잡혀야 돼요.
영적으로 예수님께 속한 사람은 예수님의 진리와 어긋나면 바로 귀에 거슬립니다.
그리고 진리는 항상 우리 마음에 달게 들려요.
다른 것으로는 아무 것도 표가 안 나고 분별이 안 되는데,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 나는 내 양을 알며 내 양도 나를 안다.’
그래서 우리가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을 쫓아서 예수님을 따라가게 될 때에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며 예수님을 알며, 예수님을 따라갈 때 그런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또 아무도 예수님 손에서 그런 사람들을 빼앗아 갈 수 없고, 또 그런 사람을 예수님께 주셨던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기 때문에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예수님의 양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거예요.
예수님과 아버지는 하나이면서 절대로 택한 백성을 빼앗기지 않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 주 예수님 선한 목자되신 분께서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서 양들의 생명을 건지시고 속량하시고, 또 부활하셔서 자기 양을 자기에게로 이끌 뿐 아니라, 우리에 들지 않는 다른 양까지 불러서 한 우리에 한 목자에게 있게 하시고, 그리고 예수님의 양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며 예수님을 알며 예수님을 따르게 된다고 하시고,
이렇게 된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고 또한 보증으로 성령을 주시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함께 우리를 세상 끝날까지 지켜주셔서 영생문에 이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허탄한 것을 쫓아가지 아니하고, 목자의 음성이 아닌 다른 목소리에 따라가지 않도록, 양식 아닌 것을 위해서 은을 달아주거나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해서 헛수고 하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을 쫓아 영원한 생명길로 동행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