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각으로 29일 밤 11시에 있었던 한국과 중국의 3, 4위전은 이동국이 결승골을 터뜨린 한국의 싱거운 승리로 끝이 났다.
변화
한국이 박진섭을 비롯해서 설기현, 노정윤, 이민성, 박재홍등 사우디戰에서 스타팅으로 내보내지 않았던 선수들을 선발 출장시키며 사뭇 변화된 모습을
보인 것과 맞물려 중국 역시도 장 윤화, 마 밍유, 리 샤오펭, 슈 윤롱, 샤오 쟈이등 일본戰에 선발 출장하지 않았던 선수들을 대거 스타팅으로
내보내며 상당히 변화된 모습을 보여줬지만, 뚜껑을 열고 난 뒤에 보여진 양팀의 경기 내용은 실망 그 자체였다.
일본戰에서 보여준 패기 넘치는 플레이를 전반 초반에 잠시 보여주는 듯 했던 중국은 후반들어 이렇다할 활발한 플레이를 펼치지 못하며 시종 한국에
밀리는 졸전을 펼쳐줬고, 그에 뒤질세라 한국 역시도 볼을 가지고 있을 뿐 문전앞에서 세밀함을 바탕으로한 창조적인 플레이,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터지는 허무한 슈팅들로 인해 골을 얻지 못하면서 경기는 매우 지리한 양상으로 흘러 들었다.
골운이 없는 중국
치열한 미드필더 싸움으로 흐르던 경기에서 먼저 가슴을 쓸어 내린쪽은 한국이었다. 전반 21분, 코너킥 상황에서 장 윤화가 터뜨린 헤딩슛을 오른쪽
골포스트를 지키고 있던 박진섭이 얼떨결에 헤딩으로 막아낸 것이었는데, 중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김 두세장 정도의 간격으로만 중앙쪽으로 치우쳐
줬어도 충분히 골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었다. 박진섭의 활약으로 90분 경기를 통틀어 중국이 잡은 가장 결정적이었던 찬스를 막아낸 한국은 이후,
이동국의 지능적인 슈팅과 설기현의 헤딩 슛등으로 차츰 공세를 늘려가며 주도권을 틀어쥐게 되지만, 수차례 찾아온 골 찬스가 번번히 골문을 외면하면서
양팀 모두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채 후반을 맞이하게 된다.
유상철, 또다시 스트라이커로...
전반을 무승부로 마친 양팀의 경기는 하프 타임때 교채 투입된 유상철이 골키퍼와 맞서는 결정적인 찬스를 맞게 되면서 한국이 먼저 선취골을 터뜨리는
듯 했다. 상대 진영 우측에서 반대편으로 찔러준 이동국의 공간 패스를 받은 유상철이 장 진 골키퍼와 맞서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었는데, 그러나
달려 나오는 골키퍼의 옆으로 살짝 찔러 넣으려던 유상철의 슈팅은 어이없게도 상대의 왼쪽 골포스트를 간발의 차이로 빗겨나가면서 팬들로 하여금
다시한번 그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들고 만다.
한국의 대들보, 이동국
이후 더운 날씨와 3, 4위전이라는 무기력감으로 인해 자신들의 플레이를 제대로 펼치지 못한 중국에 맞서 한국은 거의 일방적이다시피한 경기를
펼쳐 보인다. 하지만, 특유의 골 결정력 부족이 빛을 발하면서 수차례 골문은 외면하는 슈팅들을 연발하던 한국은 골을 넣을 줄 아는 스트라이커,
이동국 활약으로 결승골의 환희를 맞보게 된다. 후반 32분, 박진섭을 대신해 교체 투입된 강철이 오프사이드 트랩을 쓰던 상대 수비수가 미쳐
빠져나오지 못한 사이, 페널티 박스 우측 모서리 부근에서 땅볼로 크로싱한 공을 달려 들던 이동국이 오른발 인사이드로 가볍게 밀어 넣은 것이었다.
이후 기가꺽인 중국을 계속해서 몰아 부친 한국은 김상식이 노마크에 가까운 발리슛 찬스를 왼발 아웃사이드로 날려버린데 이어, 경기
막판엔 이동국이 상대 진영 우측을 돌파한 뒤 왼쪽으로 접고 나온 것을 달려 들던 강철이 크로스바 위로 걷어 올리는 바람에 추가 득점없이 1:0으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 경기 승리로 한국은 레바논에서 펼쳐진 제 12회 아시안컵 축구대회를 3위로 마무리 지었으며, 한골을 추가한 이동국은 4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는
동시에 도합 6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다가섰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인가?
이 경기에서도 보여진 것이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비춰진 한국 대표팀의 문제점은, 전통적인 공격 루트였던 기동력을 바탕으로한 측면 돌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데다 돌파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이후에 올라오는 밋밋한 크로스들, 그리고 문전 앞에서의 단순하고 유기적이지 못한 플레이들로 인해
높은 점유율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공격을 펼쳤다는 것이다. 아울러 근래들어 보이고 있는 세트 플레이시의 무기력한 공격력이
이번 대회에서도 다시금 빛을 발했다는 점등은, 자칫 한국 축구에 장기간의 침체기가 다가오는게 아니냐는 섣부른 조바심마저 들게할 정도로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매 경기 3골 이상의 높은 득점력을 보이며 脫아시아 경향을 보이고 있는 일본을 보면서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가는 그네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잘한다"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일본의 플레이를 보면서 이제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봐야 될 때가 온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