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친구 'I'에게 박수를
최 화 웅
올해로 퇴직한지 20년을 넘겼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세상은 두루 변하고 바뀌었다. 그러나 변화가 가장 더딘 곳이 선출직 공직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특히 고질적인 입법부의 병폐가 대표적이다. 그만큼 유권자의 수준과 함께 ‘국가사회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명제보다 재선을 노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투표과정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미래로 가는 시대정신을 역행하는 사리사욕의 불법탈법행위가 다반사다. 그래서 나는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예비후보자들을 선발시험을 통해 자질과 품성을 먼저 가렸으면 하는 생각이다. 헌법을 수호하고 법률을 제정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 헌법기관인인 국회의원이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법을 어겨 부정을 저지르고 특혜를 누리는 짓거리를 예사롭게 일삼아 여기저기서 빈축을 사고 유죄 판결을 받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의회민주주의로 가는 길이 아직도 까마득히 멀고 험하기만 하다는 것을 느끼며 산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동네의 주민센터로 눈길을 돌리면 작은 위안과 함께 희망을 만나게 된다.
부산에는 205개소의 주민센터가 340만 시민을 위해 최일선에서 일한다. 주민센터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선 민원창구에 앉은 젊은 직원들의 모습이 젊고 활기차다. 말을 건네면 상냥하고 재빠르게 민원을 안내한다. 직원들 사이에 부드럽고 친절한 대화가 오간다. 순간 잘못 찾아든 것이 아닌가 하고 어리둥절해진다. 주민센터는 어느새 권위주의와 편의주의의 탈을 벗고 세상이 변하는 만큼 새롭게 바뀌었다. 지방자치시대가 부활한 지 사반세기 만에 공무원 사회는 피부로 느낄 만큼 변하고 바뀌었다. ‘아들 친구 I’는 서울의 H대학 건축미술학과를 나온 올해 마흔네 살 된 청년이다. 뉴욕의 유명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몇 년 전 귀국했으나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몇 년째 학생을 상대로 영어를 가르치며 잠정실업자로 지냈다. 그러던 중 지난해 지방공무원 임용시험에 응시해 합격하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한동안 뜸했던 소식이 이어지고 이번주에는 설 선물로 영광굴비까지 한 세트 보냈다.
소식이 없던 아들 친구와의 해우가 반가웠다. 국회의원 당선이나 고시합격, 대기업의 입사 보다 더 고맙고 감사했다. ‘아들 친구 I’에게 아낌없는 마음의 축하를 전했다.1982년부터 공채시험으로 9급 공무원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6월에 지방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7월 합격자 발표, 면접을 거쳐 9월에 최종합격자를 발표했다. 부산의 지방공무원 공채는 889명 모집에 15,349명이 응시하여 17.3대 1의 경쟁률을 나타낸 가운데 행정직군의 경쟁율은 20.5대 1에 달했다. 시험과목은 국어(한문 포함), 국사, 영어, 수학, 사회, 국민윤리 6과목에 전자계산 일반과목이 추가되어 7과목을 치렀다. 행정안전부가 오는 2022년부터는 9급 지방공무원 공채 필기시험을 입법예고했다. 지방공무원 임용령 개정안에 따르면 필기시험 과목이 또 바뀌어 고교과목 사회, 과학, 수학이 빠지는 대신 직렬별 2개의 전문 과목이 필수과목으로 포함되었다. 지금 공무원 사회는 한창 밑으로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올해부터 9급 지방공무원의 초봉(1등급)은 153만 7천원이다. 아직도 대기업의 대졸취업자 초봉에 못미치고 낮은 급료지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근무 연수에 따라 월급이 착실히 오른다. 복지가 보장되는 공무원은 어느 직장보다 안정적이고 여유롭다. 더구나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을 맞추려는 청년들의 요구 ‘일과 삶의 균형’을 생각하는 이른바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 즉 ‘워라밸’과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5세 미만의 자녀를 둔 젊은 엄빠들에게는 임금 삭감 없이 2시간 단축 근무에 매일 오후 4시에 퇴근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반응들 이다. 이러한 현상 속에 욕심 없는 청년들에게 공무원은 인기직업이 되어 이제는 고시만 바라보던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들마저도 9급 공무원 시험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청년(15~29세) 가운데 취업준비생은 71만 4천명으로 이 가운데 공무원시험 준비생인 ’공시족(公試族)‘이 21만 9천명으로 30.7%에 달한다고 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한걸음 더 빨리 변하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1020 세대‘(13~29세)의 22.8%가 국가기관을 가장 선호하는 직장으로 꼽았고 공기업을 지망자 21.7%를 합하면 전체의 절반 가까운 44.5%가 공직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공직의 선호도는 17.4%에 그친 대기업 희망자의 무려 2.5배에 달한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꿈 많은 청년들이 한갓 월급쟁이 소시민으로 전락하는 현상을 두고 안타까워 하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청년들이 바라보는 미래의 청사진이 불안한 미래에 대한 현실적 대안으로 안정과 여유를 택한 건전한 생활의식을 엿볼 수 있다는 현상으로 나누어진다. ’아들 친구 I‘가 아무쪼록 공무원 사회에서 그동안 갈고닦은 유창한 영어실력과 건축미학을 현장에 활용하는 훌륭한 공무원 생활을 해나가기를 바란다. ’아들 친구 I‘를 통해 허망한 욕망보다는 분에 맞는 현실인식에 충실한 젊은이, 명분보다는 실리로 내일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초상‘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