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화요일 맑음. 서울의 퇴계시 개강
서울대병원의 호흡기 내과와 내분비 내과의 정기 진단 날이 되어 아침도 먹지 않고 8시 반까지 갔다. 호흡기 내과에 가서 아직도 가래가 좀 나온다고 하였더니, 전부터 주던 약 이외에 또 딴 약 한 가지를 더 처방하여 주었다. 내분비 내과에서는 당료가 잘 조절되고 있다고 하였다.
오후에는 퇴계학연구원에 가서 거기서 하는 퇴계 시 강의를 개강하였다. 첫날인데도 전 학기부터 듣던 사람들은 거의 다 나왔다. 집에 돌아오니 아침부터 서둘러서 그런지 자못 피로하여 저녁 산책을 다녀온 뒤에 곧 잤다.
1월 21일 수요일 흐림. 지천태괘, 천지비괘, 천화동인, 화천대유괘.
오전에 마루에 앉아서 4괘를 읽었다.
지천태䷊ 궤는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 있으니 매우 잘못된 것 같으나 도리어 “길하여 형[吉亨]”하다고 하고, 반대로 천지비䷋궤는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 있으니 지극히 당연하여 좋을 것 같으나 도리어 “막힌다[불통不通]”고 하니, 주역의 원리는 참으로 묘하다. 천화 동인䷌괘는 다른 사람과의 “대동大同”을 상징한다고 하고, 화천 대유䷍괘는 부유를 상징한다고 한다.
서괘전에 “실천하고 태평하게 된 뒤에 편안하여 지기 때문에 태괘로 받는다履而泰然後安, 故受之以泰”고 하였다. 경복궁 안에 왕비가 거처하는 궁전이름을 “교태전交泰殿”이라고 하였는데, 지금 보니 이 괘의 단전에
“태는 작은 것[陰]이 가고 큰 것[大]이오니 길하여 형통하다고 말하는 것은 천지가 서로 사귀어(교류하여) 만물이 통하며 상하가 사귀어 그 뜻이 같아진다는 것이다泰小往大來吉亨은 則是天地交而萬物通也며 上下交而其志同也라.”
에서 따온 말임을 알겠다. 그 다음 상전에도 “천지교태天地交泰”라는 말이 나온다.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 있는데, 왜 좋다고 하는가? “태”는 “통”한다는 뜻인데, 천지의 기운[氣]이 활발하게 움직여서 서로 잘 교류되기 때문에 최적의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否”자는 부라는 발음과 비라는 발음이 다 있는데, “아니不”라는 뜻으로는 부로 읽고, “막혔다閉塞, 통하지 않는다不通”는 뜻으로는 비라고 읽고, 또 “나쁘다惡”는 뜻으로나,
“비루鄙陋하다”는 뜻으로 쓸 때도 역시 비로 발음한다고 한다. 서괘전에는 “태는 통하는 것이니 사물이 끝까지 통할 수만은 없기 때문에 비개로서 받았다泰者는 通也니 物不可終通이라 故로 受之以否라.”고 하였다. 하늘과 땅이 다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나 서로 교류를 하지 않고 막혀있기 때문에 나쁘다는 것이다.
“사물이 끝까지 막힌 채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동인으로 받는다物不可以終否라, 故로 受之以同人이라”-서괘전. 불(화)은 타 올라가는 성질(炎上)이 있고, 하늘(천)은 기본적으로 위에 자리한다. 그래서 두 괘는 전체적인 방향과 뜻에 있어서 서로 같다고 할 수 있다.…그러므로 이 괘의 이상적 경계는 바로 대동(大同) 세계에 있다.-정병석 교수의 번역 252-3쪽. “大同”이라고 하니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관심이 간다.
이 대동이라는 말은 《예기》의 〈예운〉 편에 나오는데, 소강상태를 넘어 유토피아같은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을 “대동”이라고 한다. 청나라 말기에 중국의 변혁을 꿈꾸던 강유위康有爲라는 사상가는 《대동서大同書》(이성애 역, 을유문화사)라는 저서를 지어 이 대동 정신을 선양하였는데, 중화민국 국가에도 “[삼민주의로서] 민주 국가를 건설하고, 대동세계를 건설한다以建民國以進大同”고 하였고, 지금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사회주의의 우수한 점을 살리고, 화해사회를 만들어” 우선은 소강한 세상을 유지하다가 2020년까지 “대동 세계”로 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하지 않는가? 강건剛健, 문명文明, 중정中正한 덕을 갖춘 군자(지도자)라야 온 천하의 사람들과 막힘없이 소통하여 이러한 대동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요순과 같은 통치자가 다시 나와서 천하가 좀 조용하여 지겠는지?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사람에게는 물건이 반드시 따르기 때문에 대유괘로 받았다.與人同者는 物必歸焉이라 故로 受之以大有”-서괘전 풍년을 “대유년大有年”이라고 부르는 전고가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불이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대유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악을 막고, 선을 높여서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따른다火在天上이 大有니 君子以하여 遏惡揚善하여 順天休命하나니라”-상전. 이 괘는 가득차지만 넘치지 않도록 하는 군자가 닦아야할 수양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오후에는 한의원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이말산(높이 133미터) 능성이를 한바퀴 돌아서 왔다. 2시간 쯤 걸렸는데, 내려오는 비탈에는 경사가 심한데다 눈이 녹지 않아서 좀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