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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김포와 강화도를 잇는 초지대교를 건너면 만날 수 있는 초지진은 해안가에 돌출된 형태의 방어시설이다. 해상으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조선 시대에 구축한 요새 중 하나로, 당시 무기인 화포(대포처럼 화약의 힘으로 탄환을 쏘는 대형 무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신미양요 때 미군에 맞섰던 격전지이자 운요호 사건 때 상륙을 시도하는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역사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신미양요 혹은 운요호 사건 때의 상흔인 포탄 자국이 성벽과 성벽 앞 소나무에 남아 있다. 초지진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면 강화도라는 섬 자체가 하나의 견고한 요새였음을 느낄 수 있다.
대한성공회강화성당
1900년에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 성당이다. 성당은 한옥 기와지붕과 서양 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성당 내부 공간은 서양의 바실리카 양식(고대 로마의 공공건물 양식)을 따랐고, 외관 및 외부 공간은 기와지붕에서 알 수 있듯 불교 사찰의 형태로 지었다. 목재는 압록강에서 운반해왔고, 경복궁 공사에 참여했던 대궐 목수가 건축을 맡았다. 외관을 한국 전통 양식으로 지음으로써 서양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한식 목조 건축이면서도 교회 기능에 충실한 내부 공간이 어우러져 한국기독교 역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고려궁지
봄이면 진달래가 만개하는 고려궁지는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고종 19년(1232)에 도읍을 강화로 옮긴 후 38년간 사용하던 고려 궁궐터이다. 비록 규모는 작으나 고려의 수도, 개경(송도)의 궁궐과 비슷하게 만들고 뒷산 이름도 송악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현재는 조선 시대에 지어진 행궁, 유수부 동헌, 강화동종, 외규장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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