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좀생이'가 달과 한 발이 되면 새벽닭이 운다” F(x)3-2
최길하
1
ⵌ1
“정산이가 여름방학 때 영안실에서 시체 닦아주는 아르바이트 한데요.
앞으로 가장 경건하고 진실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하면서요...”
(정산이는 둘째다. 고2 때다. 정산이 친구가 내게 꼬박는다.
정산이 친구가 아무리 생각해도 큰(?)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좋은 친구다)
순간 충격이었지만 걱정은 곧 사라졌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영향임을 직감했다.
그러나 아이가 너무 엉뚱한 것에는 충격이었다.
그 아르바이트는 현실화 되지 못했다.
고2를 누가 그 일에 써주겠나? 법으로도 안 될 것이고.
ⵌ2
“사각사각‘ 연필 깎는 소리가 났다.
솔은 눈을 밟으면 속은 얼지 않아 폭폭 꺼진다.
그 소리들이 여러겹 울리면 연필 깎는 소리가 된다.
환한 달밤의 눈길을 세 사람이 걷는다. 연필을 깎으며.
달과 별도 추워서 불빛이 “오돌오돌” 떨며 흔들렸다.
그때(1960년대)의 겨울은 추웠다.
한번 눈이 오면 좀체 녹지 않았다.
음지는 겨울 내내 눈이 덮여있었다.
“아버지 나 오줌”
아버지 형 나 3부자는 잠시 멈췄다.
나는 바지를 내리고 달밤에 오줌을 눈다.
솔아있는 눈에 구멍이 난다.
좀 더 깊게 구멍을 뚫으려고 힘을 준다.
선택과 집중,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一心'이란 이런 것이었다.
(자문위원장님은 공부에 '一心'을 해서 판사님이 됐는데...)
그때 아버지가 흰두루마기 팔을 들어
달 옆 별무리를 가리키며
“저 오종종하게 모여 있는 별들이 ‘좀생이’다”
“저 별이 달과 한 발(팔을 편 길이) 정도 가까워지면 첫닭이 운다“
“곧 첫닭이 울겠다” 하셨다.
내가 국민학교 1.2학년 때일 것 같다.
나는 그때 그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린 내가 그 말을 알아듣겠나?
그런데 아버지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아버지는 1909년생이고 나는 '쉰둥이'다.
그때는 관내 학교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무학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말을 내게 할 수 있었을까?
"삼포가는 길" 한 컷 같은 장면이 오래오래 내 인생에 화두가 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내 오랜 지병이 됐다.
아버지는 그것을 아셨던 것이다.
세상살이는 이해보다 느낌이다.
의식(儀式)이 의식(意識)을 지배한다.
ⵌ3
오늘 소백산 연화봉에서 <좀생이별>을 본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이 이런 것인가?
좀생이별은 몇 천 개의 별무리로 이루어진 성단이다.
맨눈에 보이는 것은 겨우 5-6개 정도다.
444광년 떨어져 있다고 한다.
즉 오늘 밤 보는 별은 444년 전에 <좀생이별>에서 출발한 별빛이다.
444년 전 좀생이별에서 쓴 편지를 지금 받아보고 있는 것이다.
444년 전 저 먼 우주에서 온 편지!
이 세상의 모든 시공간은 우리의 의식이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가?
평소 무의미하던 것이 잠깐 의식의 차원을 비틀으니
엄청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무정이 유정이 되면 무심이 사랑이 된다.
무정이 사랑이 되면 내가 변하고 세상이 변한다.
무의미를 의미로 바꾼 사람들이 과학자가 되고 예술가가 된다.
이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 왔고 이끌어 간다.
무학인 아버지가 눈길에
내가 오줌 누는 그 짧은 동안 기다리며
“저 좀생이가 달과 한 발이 되면 새벽닭이 운다”
이 울림은 내 인생에 화두가 됐고 나침반이 됐다.
그때부터 빛으로 가도 444년을 가야하는 아득한 좀생이와 나는
같은 마당을 쓰게 된 것이다.
자기장이 하나의 필드가 된 것이다. 이것은 관념이 아니다.
양자장의 첨단 과학이다. '관찰자효과'라는 것이다.
의미는 몇 십 년 세월이 흐른 다음에 깨친 화두고
처음엔 그저 울림이었다.
울림으로 기억한 것이다. 울림은 감정이다. 서정시다. 무학의ㅓㅕㅋ
아버지는 아무것도(?) 아닌 별을 이렇게 의미를 심어준 것이다.
<어린왕자>가 왜 수 십년 동안 세계를 흔들고 있을까?
동화가 왜 어른 아이 구분 없이 열광할까?
“관계와 의미”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좀생이별을 보고 농사의 점도 치고 밤의 시간을 계산했다.
어머니는 북두칠성에 매달려 있었다.
북두칠성은 종교이자 종합병원이었다.
북두칠성엔 식구들의 명줄이 달려있었다.
헐벗고 가난했던 시절 기댈 데가 칠성님과 달 밖에 없었다.
북두칠성과 달이 병원보다 훨씬 가까웠다.
장독대가 첨성대고 천제단(天祭壇)이었고
칠성님과 달이 관세음보살이었다.
(그러고 보면 첨성대도 단지를 모방한 이미테션이 아닐까?)
이게 엄청난 진리다.
천문학과를 나오야 별을 볼 수 있고
가정학과를 나와야 밥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진리.
2
이틀 동안 <한국단색화(Hangug Dansaekhwa)> 진공묘유 박서보의 <묘법> 이라는
미술평론을 한 편 썼다.
<한국단색화(Hangug Dansaekhwa)>는 세계 미술사조에 족보가 올라간
고유명사 <Hangug Dansaekhwa>다.
프랑스의 유명한 미술사조 <인상파>처럼 한국 그림이 처음 세계 미술사조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단양 유네스코 지질공원>이 된 것과 같은 것이다.
박서보 화백은 그림으로 구도의 길을 찾은 사람이었다.
화엄경에 선재동자가 53명의 각양각색 사람들을 만나며 깨달음을 얻듯이
박서보 화백은 그 길을 걸어왔다.
반항 번뇌 버림 새로움 ... 모두 지나온 구도승 같았다.
2000년 초, 마침내 그는 일본에서 불바다를 이룬 계곡의 단풍을 보고 깨달았다.
"色으로 사람의 번뇌를 치료할 수 있다"고
그 작품시리즈가 <색채 묘법>이다.
그는 화가로 사람들의 번뇌를 치료하는 "관음"에 이른 것이다.
이게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인 동시에
모든 것이 다 녹아 가득한 것의 우주다.
우주의 <묘법>이며, 화엄(華嚴)이다.
파동치는 화엄은 미시세계의 떨림 진동의 공명이고,
미시세계의 떨림이 관음이다.
화가는 그림으로 최고의 불법인 관음에 이르러
세상 사람들의 고통과 번뇌를 삭혀주는 작품을 남기고 간 것이다.
박서보 화백과 배경 그림이 <색채 묘법> 중 한 점이다.
우주와 인간관계가 참으로 "묘법"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6-7년 후 둘째(정산이)가 태어났고,
나는 별 이야기를 한 번도 아들과 나눈 적이 없었다.
둘째는 공부엔 관심이 없고(학교를 일찍 들어가 따라가지 못했던 것 같다)
훗날 느낀 것인데 혼자 많은 생각을 하는 아이였다.
아들의 관심에 나도 관심을 같이 가졌어야 했는데 그게 자유인줄 알고 무심했다.
자유가 아니라 방관이었다. 큰 후회다.
어떤 동기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5-6학년 때부터 밤하늘과 놀았고,
뉴스에 유성이 떨어진다, 월식을 한다하면 잠도 안 자고
새벽 2시고 3시고 들락날락 하며 그 시간을 기다리기도 하고
옥상에 텐트도 쳤다.
중학교에 들어가더니 월간지 <뉴턴과학> <과학동아>를 사보면서
별과 천체망원경 공부를 늘 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별 이야기> <코스모스> 같은 책을 사서 보기도 했다.
<코스모스>를 쓴 사람은 칼 세이건이다.
보이져1호 책임을 맡았던 천문학자이며 철학자가 쓴 천문 우주 책이다.
F(x)-2에서 칼 세이건 이야기를 했다.
태양계 끝에서 한번만 돌아보게 하자던 그 사람이 칼 세이건이다.
‘코스모스’는 세상을 통찰하는 우주론이다.
오케스트라를 감상하는 기분이다.
보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묘한 책이다.
생각의 크기대로 들려주며 생각의 크기를 키워주는 책이다.
사실 나도 정산이가 사보고 있는 “코스모스” “우리별 이야기”
”뉴턴과학“으로 천문우주를 공부했다. 내 DNA와 접속이 매우 빨랐다.
어쩌면 둘째 아이가
아버지가 내가 오줌 누며 바라본 <좀생이>가
'아라야식'으로 잠재된 것을 다시 일깨워 준 것이다.
박서보 화백의 1960년대는
"어떻게 하면 비운다는 것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까?"을 찾아 방황하던 시기다.
어느날 3살짜리 둘째아이가 형 국어노트 네모칸에 "한국"을 쓰려다 칸 밖으로 자꾸 나오자
화가나서 박박 연필로 문지르는것을 본다.
그는 무릎을 친다. 저거다. "비운다"는 것을 깨달았다.
3살 짜리가 번뇌(화)를 삭히는 방법을 본 것이다.
3살짜리가 박서보 화백에겐 문수보살이었던 것이다.
1967년 그때부터 박서보의 <묘법>초기 <연필 묘법>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는 것이 아니라 3살짜리 아이처럼 몸이 붓(연필)이 되어 그짓(?)을 반복 한 것이다.
그게 이 그림인데 실망하실 거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그러면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은?
현대미술은 참 이상한 놈들(?) 판이구나 하실거다.
뭐 물이 맛이 있고 냄새가 있던가? 그래도 물은 최고의 약이다.
이후 <연필 묘법>은 <흑백 묘법>으로 진화하고
마침내 화엄세계 <색체 묘법>에 차례대로 이른다.
지금 우리나라 최고 인기작가 그룹이다. 외국에서 더 열광한다.
정산이는 천체망원경을 사달라고 해봤자 안 사줄 것 같으니 말도 꺼내지 않았다.
천체망원경을 안 사준 것이 가장 애비노릇을 못했다고 시간이 지나 많이 후회했다.
쌍안경은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땐 시나리오를 써서
비디오카메라 있는 아이와 반 아이들을 꼬셔 영화를 찍기도 했다.
춤을 추다가 지금은 “판터마임”도 하고, 좀생이성단(?)을 만들어
이곳저곳 떠도는 이름 없는 “떠돌이 별(?)”이다.
내가 그 시절 관심을 같이 가져주지 못한 것이 늘 후회다.
3
이 세상 만물은 빛나거나 반짝인다.
빛나는 것은 등불, 반딪불, 태양 같은 빛이며 선(線)이다.
반짝이는 것은 불빛을 받아 반사하는 돌 쇠 유리 달 같은 물질들이다.
동물 사람 식물도 반사체다.
반사하는 것은 색이며 장(Fild)을 이룬다.
의식이란 거리 장소 시간을 초월한다.
그게 미시세계 전자 양성자 중성미자의 관계 양자역학이다.
미신도 관념도 아닌 요즘 사이언스다.
만물은 에너지라 하더니 요즘은 우주가 하나의 의식 신경망이라고 한다.
속속 실험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대부분 보이지 않는 <좀생이별>처럼 나로 이어진 조상의 계보(系譜)도 보이지 않는다.
아들과 나 겨우 2代만 외롭게 반짝인다.
이 세상을 이룬 물질계도 겨우 5%도 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 암흑에너지가 95% 이상이라 한다.
그런데그런데 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구성한다.
이것이 현대과학이며 미시세게다.
소백산의 영험도 밤하늘도 그렇다.
세상은 모두 빛나거나 반짝인다.
“저 ‘좀생이’가 달과 한 발이 되면 새벽닭이 운다”
첫댓글 저 좀생이가 달과 한 발이 되면 새벽닭이 운다, 아버님의 말씀이 손자에게로 이어진 듯 합니다.
이해하려 해도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으니, 그냥 마음으로 읽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왠지 짠한 마음이 듭니다.둘째 아드님에 대한 선생님의 회한을 본것 같아요. 저도 오늘은 밤하늘을 보아야겠습니다. 좀생이 별을 볼 수 있을지,,,,
"이해하려 해도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으니, 그냥 마음으로 읽습니다."
"왠지 짠한 마음이 듭니다"
사실 이 글에는 두 분 댓글을 비롯하여 많은 기법을 의도적으로 숨겨놓았습니다.
장르적으로는 시의 기법, 시나리오 기법, 소설기법이 들어있습니다.
또 소소한 기법도 있습니다.
일단 어수선합니다. 그래서 머리가 복잡해 지기도 합니다.
느낌은 읽는 분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