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철학사] 제9장 정리학파의 철학
길희성: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졸업. 하바드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 전공.
저서- Chinul, the Founder of the Korean Son Tradition
현재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 목 차 ▒
제9장 정리학파의 철학
1. 정리철학의 전통 ▲ 위로
정리 Nyaya학파의 철학체계는 전통적으로 가우타마 Gautama 혹은 안족 Aksapada이라는 사람에 의해 성립되었다고 한다. 그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서력기원전 1-2세기의 사람으로 추정되며, 현재의 '정리경 Nyaya-sutra'은 기원후 2세기경에 편찬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정리경'에 대한 현존하는 중역서 가운데서 가장 오래되며 권위있는 것은 밧샤야나 Vatsyayana(450-500년경)에 의한 '정리소 Nyaya-bhasya'이며, 이 소는 그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다른 주석서들을 낳았다. 비록 '정리경'은 2세기 전후에 씌어졌다고 하나, 올바른 사고의 형태와 논증의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이 학파의 연원은 훨씬 더 멀리 소급된다고 볼 수 있다.
정리 nyaya란 말은 아마도 원래는 베다시대 이후에 점차로 잃어버리게 되었던 제식의 올바른 규범을 추리해내고 논증하는 것을 의미했다.
천문, 문법, 법률 등과 같은 인도의 많은 학문들이 베다의 연구를 기초로 하여 발전된 것과 같이 정리학도 원래는 베다의 연구와 관련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미맘사 Mimamsa학파가 제식의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룸에 따라 정리는 학문의 일반적인 논증방법만을 추상적으로 다루는 형식논리학 쪽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정리는 다른 이름으로 사택 tarka 혹은 심구 anviksiki라고도 불리었다. 우리는 '가우타마법전 Gautamadharma-sutra', '마누법전 Manavadharma-sastra', 카우틸리야 Kautilya의 '실리론 Artha-sastra'과 같은 고대문헌들에서 그러한 학문의 공부가 정치나 법의 수행을 위해서 권장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밧샤야나의 '정리소'에 대한 주석서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6세기 경의 웃됴다카라 Uddyotakara에 의해서 씌어진 '정리평역 Nyaya-varttika'으로서 웃됴다카라는 불교의 세친 Vasubandhu과 진나 Dignaga의 설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그들을 반박하고 있다. 이후 약 300여년간에는 정리학파의 저술로서 이렇다 할 만한 것이 별로 전해지는 것이 없으나 샨타락시타 Santaraksita나 카말라쉴라 Kamaasila와 같은 8세기의 불교철학자들의 저서를 통하여 이 동안의 정리학파 사람들의 견해를 엿볼 수도 있다.
다음으로 정리철학의 중요한 인물로는 인도서북부의 카쉬미르지방 출신인 브하사르바즈나 Bhasarvajna(850-920 A.D.)가 있다. 그의 저서 '정리정요 Nyayasara'는 정리철학을 간략히 요약해 주는 대표적인 저서이고 그의 '정리장사 Nyayabhusana'은 '정리정요'에 대한 주석으로서 정리학파 내에서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던 대저이다. 최근에야 비로소 발견되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1)
정리철학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학파들의 철학에도 대표적인 저술들을 남긴 바차스파티미슈라 Vacaspatimisra(9세기)2)는 웃됴다카라의 '정리평역'에 대한 주석서인 '정리평역진의주 Nyayavarttika-tatparyatika'를 썼고, 우다야나 Udayana(1050-1100)는 이 주에 대한 복주로서 '정리평역진의주해명'을 썼다. 우다야나는 많은 현대의 학자들에 의하여 정리와 승론철학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서 간주되고 있다. 그의 다른 저서 '자아진리분별 Atmatattvaviveka'은 불교의 무아설에 대한 비판으로서 자아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으며, 그의 '정리 화속 Nyayakusumanjali'은 냐야-바이쉐시카 철학에 있어서 신의 존재의 증명에 대한 결정적인 저술로 여겨지고 있다.
우다야나의 철학은 그후 냐야-바이쉐시카 학파를 풍미하다가 14세기에 와서 간게샤 Gangesa가 출현하여 '진리여의주 Tattvacintamani'라는 논리학서를 써서 소위 신정리학 Navya-nyaya의 기초를 수립했다. 신정리학은 주로 까다롭고 기술적인 논리의 문제들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형식논리학파로서 여기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1)Karl H.Potter, ed. Indian Metaphysics and Epistemology.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7), pp.6, 410-24 참조.
2) Vacaspatimisra의 년대에 관해서, 동상, pp.453-4 참조.
2. 지식의 의미와 방법 ▲ 위로
'정리경'은 정리철학이 다루어야 할 문제들을 16가지로 분류하여 언급하고 있다.
참된 지식의 수단인 량 pramana, 지식의 대상인 소량 prameya, 불확실한 의심의 상태인 의혹 samsaya, 토의가 지향하거나 피하려는 목적 prayojana, 추리에 도움이 되는 적절한 예 drstanta, 옳다고 받아들이는 정설 siddhanta, 추리의 5가지 단계를 구성하는 명제들인 지분 avayava, 가설적 논법을 통한 논파 tarka, 정당한 논의를 통하여 도달한 확실한 지식으로서의 결정 Nirnaya,
인식의 수단과 논리의 전개를 통하여 진리에 도달하려는 논의 vada, 승리만을 일삼는 부정한 논쟁 jalpa, 상대방의 논파만을 목적으로 하는 논결 vitanda, 추리에 있어서 타당한 이유같이 보이나 사실은 틀린 이인 hetvabhasa, 상대방의 주장이나 논리를 왜곡시켜 비난하는 기변 chala, 상대방을 혼란시키는 부단한 논란인 오란 jati, 논쟁에 있어서 상대방을 패하게 만드는 약점 혹은 부처 nigraha-sthana등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정리철학의 주요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인식과 논리전개의 문제들임을 알 수 있다. 승론철학에서 말하는 7가지 범주는 모두 2번째의 것, 즉 수량 prameya에 포섭되며, 정리철학은 이 소량보다는 량 pramana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철학이다.
정리철학은 지식 jnana을 인지 upalabdhi,(혹은 anubhava; apprehen-sion)로 정의하며, 모든 지식은 대상의 계시나 나타남 arthaprakaso-buddhi이라고 한다. 지식은 자아가 자아가 아닌것, 즉 대상들과 접촉할 때 생기는 것으로서, 자아의 본질적인 성품은 아니다. 타당한 지식 prama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것 yathartha-anubhava이며, 진리란 대상과의 일치를 말한다. 올바른 인식은 성공적인 행위 pravrtti-samarthya로 이끌며, 그릇된 인식은 실패와 실망으로 이끈다고 한다.
정리철학에 의하면 인식의 옳고 그름은 자명한 것이거나 혹은 지식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성품이 아니라, 일단 지식이 생기고 난 후에 대상과의 일치와 불일치에 따라 별도로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여 진리의 내용은 대상과의 일치이고, 진리의 시험기준은 성공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정리의 인식론은 따라서 실재론적이고 실용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리철학은 타당한 지식 prama의 수단 pramana으로서 현량 혹은 지각 pratyaksa; perception, 비량 혹은 추론 anumana; inference, 경유량 혹은 비교 upamana; comparison, 그리고 성교량 혹은 증언 sabda; testimony을 인정한다. 이들을 통하여 얻은 지식은 대상에 관한 확실하고 충실한 오류가 없는 지식이며, 의심 samsaya, 오류 viparyaya, 가설적 논파 tarka나 혹은 기억 smrti에 의하여 얻은 타당치 못한 지식 aprama과 구별해야 한다.
의심이란 확실치 못한 지식으로서 타당한 지식이 못 되며, 오류란 확실한 지식이 될지언정 대상에 충실치 못한 지식이다. 가설적 논파란 예를 들면 '만약에 불이 없으면 연기가 안 났을 것이다'라는 형식의 가설적 논증으로서 자기가 이미 추론, 즉 '연기가 있으니까 불이 있다'라는 추리를 통하여 얻은 지식을 옹호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지식을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다. '불이 있다'라는 사실은 추론을 통하여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설적 논파는 타당한 지식이 못된다고 한다.
기억이란 대상에 관한 직접적인 지식을 주지않고 단지 과거에 가졌던 지식을 재현시켜 주기 때문에 타당한 지식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과거의 타당한 지식을 재현시켜 주느냐 혹은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서 그 자체가 타당한 기억일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정리철학에서 말하는 타당한 지식이란 이미 언급한 대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지 anubhava하는 것으로서, 기억에 의한 재현적 지식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타당한 지식 prama이란 지각과 추론과 비교와 증언의 4방법 pramana을 통한 대상의 인지인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 4가지 방법을 하나하나 고찰해 보자.
3. 지각의 이론 ▲ 위로
정리철학은 지각 pratyaksa을 두 종류로 구분한다. 하나는 보통 laukika 지각이요, 다른 하나는 특수 alaukika지각이다. 보통 지각은 우리의 감각기관과 대상과의 접촉에서 생기는 참다운 지각을 말한다. 우리의 감각기관에 여섯이 있으므로 보통 지각도 여섯 종류가 있다.
즉 안, 이, 비, 설, 신의 다섯가지 외적 감각기관 bahyaindriya과 각각의 대상들과의 접촉에서부터 생기는 시각 caksusa, 청각 srauta, 후각ghranaja, 미각 rasana, 촉각 sparsana이 있고, 여섯번째의 감각기관으로서 마나스 manas, 즉 의근이라는 내적 기관 antarindriya을 통하여 자아의 여러 상태들, 즉 욕망, 혐오, 쾌락, 고통, 지식 등을 지각하는 내적 manasa 지각이 있다.
외적 감각기관들은 각각 그들에 의하여 지각되는 대상들의 물질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의근 manas은 물질적 요소 bhuta들에 의하여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그 기능에 있어서 외적 기관들처럼 어떤 한 종류의 사물의 인식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모든 종류의 지식에 공통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정리철학에 의할 것 같으면 우리의 외적 감각기관이 대상과 접촉할 때면 반드시 의근이 먼저 그 감각기관들과 접촉하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의근이 인식주체인 자아 atman와 접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여 의근은 자아와 감각기관들 사이의 중개자와 같은 것으로서, 의근과 감각기관을 통하여 외적 대상은 자아에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지각적 지식은 자아의 상태 혹은 속성인 것이다.
정리철학은 보통지각의 두 단계 혹은 두 양태를 구별한다. 즉 무분별적지각과 분별적지각이다. 무분별적 지각이란 어떤 대상을 그 대상의 성격에 대한 아무런 의식이나 판단 없이 감지하는 지각인데 반하여, 분별적 지각은 대상을 그 성격에 대한 의식과 판단을 가지고 지각하는 것을 말한다. 분별적 지각은 무분별적 지각의 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라 한다. 정리철학은 재인식 re-cognition, 즉 어떤 대상을 전에 지각했던 무엇으로 인지하는 것도 또 한 종류의 지각으로 간주한다.
특수 alaukika 지각이란 그 대상이 특별한 것이어서 보통의 지각과는 달리 특별한 수단을 통하여만 감각기관에 주어지는 것이다. 정리철학은 이러한 특수지각에 3종을 들고 있다. 첫째는 보편상의 지각이다. 보편상이란 한 류에 공통된 성질 혹은 보편적상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보편상의 지각을 통하여 우리는 한류에 속한 특수한 사물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성격을 지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정리철학에 의하면 보편은 특수 안에 내재하고 있는 실재이다.3) 따라서 사물의 지각에서 우리는 특수만을 지각할 뿐만 아니라 이와 더불어 특수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 성질인 보편상도 지각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을 지각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특수한 모습이나 성품만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내재하여 있는 인간성 일반도 특수지각을 통하여 지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종류의 특수지각은 지상을 통한 지각이다. 우리가 흔히 '독이 무거워 보인다' 혹은 '얼음이 차가와 보인다'라고 말할 때 '무겁다', '차다'는 눈으로 지각되는 것이 아니나 그렇게 말한다. 이러한 지각은 과거에 가졌던 찬 얼음의 지식을 매개로 하여 현재의 얼음이 차다고 보는 것으로서 일종의 특수지각이라 한다.
세번째로 정리철학은 요가의 수련 yogabhyasa에 의하여 얻어진 신통력에 근거하여 과거와 미래의 사물들, 혹은 특징하거나 숨겨진 것들을 직관적으로 지각하는 지각을 특수지각으로 들고 있다. 요가에 의한 yogaja 지각인 것이다.
3)정리철학은 보편적 속성 가운데 객관적으로 사물에 내재하여 실재하는 것 (jati)과 우리의 마음에 의하여 부가된 것 (upadhi), 즉 실재하지 않는 것과를 구별한다.
4. 추론의 논리 ▲ 위로
정리철학은 두번째의 인식의 방법으로서 추론 anumana을 들고 있다. 추론에 관한 이론은 정리철학의 인식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서 정리철학은 추론의 타당성을 옹호하기 위하여 비상한 노력을 기울였다.
추론이란 우리가 직접 지각하지는 못했지만 어떤 표징 linga을 보고서 그 표징과 보편적 주연관계 vyapti를 갖고 있는 다른 어떤 것을 간접적으로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산에 불이 나고 있다. 왜냐하면 연기가 나고 있기 때문이며; 연기가 있는 곳에는 불이 있기 때문이다'와 같은 것이다. 즉 연기라는 표징을 보고 불의 존재를 추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추리에 있어서 산을 소명사 불을 대명사, 표징되는 연기는 중명사 linga, middle term라 하며, 이 중명사는 소명사와 대명사를 연결시켜 주는 것으로서 이유 hetu라고도 부른다.
위에 든 예는 우리가 혼자서 추리할 때 생각하는 위자비량 svartha-anumana의 과정을 그대로 나타낸 것으로서, 타인을 위하여 정식으로 추론을 전개하는 위타비량 parartha-anumana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명제들을 갖추어야 한다(오지작법)
1 종, 즉 주장 -산에 불이 있다.
2 인, 즉 이유 -연기가 나기 때문이다.
3 유, 즉 예 -연기가 나는 곳에는 모두 불이 있다; 예를들면 아궁이에서처럼.
4 합, 즉 적용 -이 산에도 연기가 난다.
5 결, 즉 결론 -그런고로 이 산에는 불이 있다.4)
4) Aristoteles의 3단론법에서는 3, 즉 대전제를 먼저 드나, Nyaya 철학에서는 결론부터 먼저 든다.
혹은 Aristoteles의 3단 논법은 1과 2를 생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추리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연기가 나는 곳에는 불이 있다'라는 보편적 진리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성립 안되면, '이 산에 불이 있다'라는 결론적인 추리는 타당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챠르바카 Carvaka의 회의론적 철학이 바로 이 점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추리를 인식의 방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다. 정리철학은 이 점을 감안하여 추리의 근거와 추리가 증명하고자 하는 바와의 틀림없는 주연관계를 입증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우선 정리철학에서 말하는 이 보편적 주연관계의 개념을 좀더 세밀하게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5)
5) 여기서 주연관계란 논리학에서 보통 사용하는 대로 개념과 개념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사이의 관계를 자칭하는 개념으로서, 편충관계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주연관계란 두 사물간에 한 사물이 다른 사물에 의하여 포섭될 때 성립되는 상호관계를 말한다. 포섭된다는 말은 한 사물이 다른 사물에 의하여 언제나 동반된다는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불은 연기에 항시 동반하므로 불은 연기를 포섭하는 것 vyapaka이며 연기는 불에 의하여 포섭되는 것 vyapya이다. 그런데 연기는 반드시 불에 의하여 포섭되지만 불은 연기에 의하여 반드시 포섭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불덩어리의 철구는 연기가 없으며 마른 연료가 탈 때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 이 경우의 양자의 상호관계는 어떤 조건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주연관계라 부르지 않는다. 오직 한 사물이 다른 사물을 항시 무조건적으로 포섭하는 경우만을 보편적 관계라 한다.
이와 같이 A는 B를 반드시 포섭하나 B는 A를 반드시 포섭하지는 않는 경우의 A와 B의 상관관계를 부등주연관계라 부른다. 이에 반하여 양자가 반드시 서로 포섭하고 포섭되는 경우의 상관관계를 등가주연관계라고 한다. 예를 들면, '모든 이름을 댈 수 있는 사물은 알 수 있는 사물이다'라고 할 때 '이름을 댈 수 있는 것'과 '알 수 있는 것'과는 등가주연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다음의 문제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보편적 주연관계를 알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연기와 불과의 보편관계는 물론 과거로부터 누적되어 온 경험들에 의거한 귀납추리에 근거하고 있다고 정리철학은 인정한다. 정리철학에 의할 것 같으면 귀납추리는 4가지 조건 혹은 절차를 만족시켜야만 한다. 첫째는 존재연관 anvaya이다. 존재연관이란 A(예:연기)가 있으면 반드시 B(예:불)가 있다는 동반관계를 확인 경험함으로써 세워지는 관계이다.
둘째는 부존연관 vyatireka이다. 즉 B가 없으면 반드시 A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경험에 의한 관계이다. 세째는 부반례 vyabhicaragraha이다. 즉 A는 있는데 B가 없는 반증의 경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귀납추리의 네째 절차는 주연관계의 무조건성 upadhinirasa을 확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과 연기와의 관계를 다각적인 상황하에서 여러 번 관찰하여 연기가 발생하는 데 어떤 조건이 있지 않는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4가지 절차를 다 걸쳐서 얻은 귀납적 결론이라 할지라도 의심의 여지는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을 정리철학은 인정한다. 챠르바카 Carvaka와 같은 회의주의는 바로 이 점을 의심하는 것이다. 즉 과거의 경험적 관찰에 따르면 A와 B 사이에 주연관계가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이나 미래에도 그러한 관계가 성립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리철학은 두 가지 방법에 의하여 귀납추리와 주연관계 vyapti의 타당성, 따라서 추론 anumana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려고 한다. 첫째는 가설적 논파 tarka의 방법이다.
이 방법은 주연관계를 부인할 때 생기는 결론의 불합리성을 지적하여 주연관계를 간접적으로 증명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만약에 '연기가 있으면 언제나 불이 있다'는 주연관계를 부인한다면 불이 없어도 연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며 이것은 원인이 없어도 결과가 있을 수 있다는 불합리성에 빠지게 되므로 연기와 불사이의 주연관계는 인정되야만 한다는 논법이다. 주연관계를 뒷받침하는 다른 하나의 이론은 정리학파에서 얘기하는 특수한 지각중의 하나인 보편상의 지각 samanyalaksana-pratyaksa에 근거하고 있다.
이 이론에 의할 것 같으면 귀납적 결론은 단순히 개별적 사례들을 관찰하여 이를 일반화한 것이 아니라, 한 사물의 보편상 saman-yalaksana의 지각을 통하여 그 사물이 속한 유전체의 지각이 주어진다는 사실에 입각한 것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기와 불과의 주연관계는 여러 개의 구체적인 경우들을 보고서도 알지만 연기성이라는 보편상을 지각함으로도 모든 연기와 불과의 관계가 지각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연기의 본질을 지각하므로 연기가 언제나 불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수지각에 의하여 귀납적 결론은 보증된다고 한다. 따라서 귀납적 결론이란 단지 몇몇이 그러하니까 모두가 그러하다고 생각하는 비약이 아니라, 개별적 사물에 내재하고 있는 보편상의 지각을 매개로 하여 구체적인 예로부터 일반적인 결론을 얻는 추리인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정리철학의 추리에 관한 이론을 고찰했다. 끝으로 추론의 삼종류를 언급한다. 우리가 이미 본대로 정리학파의 오단계추론은 귀납과 연역을 둘다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정리철학은 추론을 귀납법과 연역법으로 나누지 않고 대신 주연관계 vyapti의 성격에 따라서 삼종류로 나눈다.
첫째는 보이는 원인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결과를 추리하는 원인적 purvavat 추리이고, 둘째는 보이는 결과로부터 보이지 않는 원인을 추리하는 결과적 sesavat추리이며, 세째는 보편관계가 인과적 연관성을 지니지 않을 때의 추리이다. 예를 들어 뿔이 달린 동물을 보고 갈라진 발굽을 추리하는 것과 같이 단지 여러 경우를 관찰한 결과로 얻어지는 일반적 유이성에 입각한 유추적 analogical 추리를 말한다.
5. 비교와 증언 ▲ 위로
온당한 지식의 세번째 방법으로 정리철학은 비유량 upamana, comparison이라는 것을 들고 있다. 비유량이란 한 이름과 그 이름을 가진 어떤 사물과의 관계를 알게 하는 지식의 방법으로서, 근본적으로 비교나 유추에 의거하고 있다. 과거에 본 일이 없지만 이름만 알고 있는 한 사물을 그 사물에 대한 묘사에 의거하여 알게 되는것을 비유량이라고 한다. 불교철학은 이 비유량을 지각과 증언에 환원시키고, 수론과 승론철학은 추론에 환원시킴으로써 하나의 독립된 인식의 방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정리철학은 성교량, 혹은 증언 sabda, testimony을 인식의 방법으로 들고 있다. 'Sabda'란 소리라는 뜻이며 정리철학의 인식론에서는 주로 믿을 만한 사람의 말이나 증거의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생기는 지식을 의미한다. 증언은 그 내용 혹은 대상에 따라서 가시적 대상 drstartha과 불가시적 대상 adrstartha에 대한 증언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혹은 주구의 증언이냐에 따라서 성전적 vaidika인것, 즉 완전무결한 신의 말씀으로서의 베다와,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 인간에 의한 세속적 laukika인 것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승론철학은 이 증언 역시 하나의 독립된 인식의 방법으로 인정하지 않고 추론의 한 형식으로 간주한다.
증언이란 다른 사람의 어떤 진술이나 문장의 의미를 이해함에서 오는 지식을 말하므로, 정리철학은 자연히 의미론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즉 말과 의미와의 관계, 문장의 성격 등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정리철학에 의하면 문장이란 낱말들 pada이 모여 어떤 일정한 양식으로 배열됨에서 성립한다고 하며, 낱말이란 글자들이 어떤 고정된 순서로 배열된 것이라 한다. 낱말의 본질은 그 의미, 즉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에 있으며 말과 대상과의 관계는 항시 고정되어 있어서 하나의 말은 반드시 일정한 대상을 의미하게끔 되어 있다고 한다.
정리철학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말들이 각각 그 고유의 대상들을 의미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어떤 힘 sakti, potency 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힘은 세계의 질서의 궁극적 원인이며 최고의 존재인 신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들을 통하여 정리철학은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 단순한 사회관습론적인 설명을 배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어의 의미가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에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말이란 개물을 지칭하는가, 아니면 보편적 속성 jati 자체를 가리키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정리철학은 대체로 이 문제에 관하여 말이란 개물들을 지칭하되 그 개물들이 보편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동일한 개념으로서 여러 개의 개물들을 지칭할 수 있다고 한다.6)
6) 이 미묘한 문제에 관하여 B.K.Matilal의 Epistemology, Logic, and Grammar (The Hague: Mouton, 1971), pp. 62~77 참조.
정리철학에 의하면 문장이란 낱말들이 어떤 의미를 갖도록 조합된 것이다. 문장이 의미를 가지려면 낱말들을 조합함에 있어서 4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된다고 한다. 첫째 조건은 낱말들이 서로 서로를 함축하거나 필요로 하는 기특성 akanksa을 지녀야 한다. 예를들면, '가져오다'라는 동사는 목적어로서 '무엇을'이라는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둘째는 정합성 yogyata이다. 정합성이란 한 문장 안에 있는 낱말들 사이에 모순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예를들어, '불로 적시어라'라는 말은 의미를 지닐 수 없다는 것이다.
세째는 인접성 samnidhi이다. 즉 한 문장 안에 들어 있는 낱말들은 시간적으로 혹은 공간적으로 어느 정도 서로 인접해 있어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말로 하는 문장은 낱말들이 시간적으로 인접해 있어야 의미를 가질 수 있고 그로 씌어진 문장에서는 공간적으로 인접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네번째로, 동일한 낱말이라 할지라도 경우에 따라 다른 뜻을 지니므로 문장이 이해되려면 말한사람의 취지 tatparya가 알려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인간들에 의한 보통의 문장인 경우에는 그 논제 prakarana로 보아서 의도를 알 수 있으며, 베다의 경우는 미맘사 Mimamsa학파에서 규정하는 해?의 규칙들에 의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의미론을 통하여 정리철학은 증언 sabda에 의한 지식의 타당성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증언에 의한 지식이란 증언의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얻어지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네 가지 타당한 지식의 방법들에 의하여 정리철학은 세계나 인간이나 신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된다고 한다. 물리적 세계의 구조에 관해서는 정리철학은 승론철학과 대동소이한 견해를 따르므로 인간과 신에 대한 정리철학의 형이상학적 견해를 잠시 검토해 보기로 한다.
6. 자아, 신, 해탈 ▲ 위로
정리철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자아 atman는 개인아 jivatman로서 인식, 의식, 감정, 마음의 상태 등과 같은 정신적 현상들이 속하는바 영원한 실체이며, 몸이나 의근 manas이나 감각기관들과는 다르다. 자아는 불교철학에서처럼 항시 생멸하는 정신적 현상들의 연속적 흐름으로 간주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기억이라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부이론적 베단타철학에서 애기하는 것처럼 자아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svayamprakasaka 순수의식 cit도 아니라고 한다. 정리철학은 어떤 주체에도 속하지 않고, 어떤 대상에도 관계하지 않는 순수의식의 존재를 부인한다. 자아란 의식 자체가 아니라, 의식이라는 정신현상을 속성으로 가지고 있는 실체이다. 자아는 모든 인식의 주체, 행위의 주체, 경험의 ?애자 bhoktr이며 윤회의 세계에서 업보를 받게 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자아 그 자체는 아무런 인식활동도 하지 않는다. 오직 의근 manas과 관계를 맺고 있는 한에서 인식이 가능한 것이다.
자아의 존재는 타인의 증언에 의하여 알든지 혹은 간접적인 추론에 의하여 알 수 있다고 한다. 즉 욕망, ??, 인식등과 같은 정신적 현상들은 모두 기억에 의존하고 있으며 기억이란 몸이나 의근이나 외적 감각기관에 속할 수 없기 때문에 항구적인 영혼의 존재를 말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후기 정리철학자들은 또한 자아가 내적 감각기관인 의근에 의하여 직적 지각될 수 있다고 한다. 즉, 의근은 자아를 대상으로 하여 순수한 자아의식을 가직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정리학자들은 이러한 자아 그 자체의 직접적인 지각가능성을 부인하고 자아는 항시 어떤 정신적 상태의 지각과 더불어 그러한 상태를 가진 주체로서만 인식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안다', '나는 행복하다'등의 지각적 판단에서 '나'에 해당하는 존재로서 인식된다는 것이다. 한편 타인의 자아는 그의 지성적 혹은 의도적인 육체적 행위로부터 추리하여 알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의도적인 행위는 비지성적인 육체에 의하여서는 행하여질 수 없고 의식적인 자아가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정리철학에 있어서 해탈의 개념은 이상과 같은 자아의 이해에 직결된다. 정리철학에서 말하는 해탈이란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apavarga을 의미하며, 이것은 자아가 아닌 것들, 즉 몸과 감각기관들과의 관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때 가능하다고 한다. 몸과 감각기관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자아의 상태는 정리철학에 의하면 고통뿐만 아니라 어떤 즐거움이나 행복도 느끼지 않는 상태이다.
아무런 감정이나 의식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자아는 그 자체에 차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기의 정리철학 사상가들은 해탈을 단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의 성취로 이해했다. 아마도 베단타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해탈을 얻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자아가 몸이나 감각기관이나 의근과는 다른 어떤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러기 위하여는 우선 자아에 대한 성전, 즉 베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sravana, 항상 그것에 대하여 생각해야 하며 manana, 요가 원리에 따라 명상해야 한다 nididhyasana. 그리고 자아에 대한 그릇된 지식 mithya-jnana이 사라지면 자아는 욕망과 충동의 지배를 받지않게 되고 행위 karma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결국 윤회의 세계에 다시 태어남이 없다는 것이다.
정리철학은 인간의 영원한 자아외에 세계의 창조와 유지와 파괴의 주가 되는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7) 신은 세계를 무에서 창조하거나 자기자신으로부터 방출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영원한 원자들과, 공, 시간, 공간, 의근들을 도덕적인 원리에 따라서 질서있고 의미있는 세계로 형성하고 유지하는 자이다. 즉 신은 세계의 질료인 upadana-karana이 아니라 능동인 nimitta-karana인 것이다. 그는 또한 세계를 도덕적인 필요가 있을 때에는 파괴하기도 하는 자이다.
신은 영원하고 무한하며 전지전능한 존재이다. 그는 영원한 의식을 갖고 있으나 의식은 그의 본질이 아니라 속성이라고 본다. 베단타철학의 견해와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신은 세계의 능동인으로서 또한 모든 생명체들의 행위를 조정한다. 따라서 인간의 행위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며 신의 인도하에 행하여지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행위의 능동적 수단인 instrumental cause이나 신은 인간행위의 능동적 지도인 prayojaka-kartr이다.
7) 정리.승론철학의 초기사상에서는 신의 개념이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고 있으나 후기에 와서는 분명히 유신론적 경향을 띤다.
정리철학자들은 이러한 신의 존재에 대해서 여러 가지 증명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논증들은 신의 존재에 대한 전형적인 증명들이다. 즉 세계는 결과 karya로서 원인이 되는 창조자가 있다. 제현상간에 발견되는 질서와 목적과 조화 등은 지성적인 능동인으로서의 신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원자들은 근본적으로 맹목적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들이나, 신이 원자들에게 운동을 제공하며 조정한다.
또한 최초로 말들이 각각 그 대상을 의미하도록 하는 용법을 가르쳐 준 자는 신이다. 신은 오류가 없는 완전무결한 베다의 지식의 원인이 되는 저자로서 베다는 신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다. 우리의 행위로부터 불가견력이라고 불리는 도덕적 공거가 생기게 된다. 그러나 이 불가견력 자체는 지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최고의 지성을 가진 신의 인도가 있어야만 우리가 행한 행위는 그것에 합당한 결과를 거두게 된다는 등의 논증들이다. ▲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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