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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되려면 먼저 둘레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일이지요. 여러분의 곁에 계신 선생님들을 눈여겨 보시면 되겠지요?
초등교사가 되려면 교육대학을 가고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려면 사범대학을 가고
대학 교수가 되려면 박사과정, 유학 등을 거쳐가며 공부를 많이 해야겠지요.
나는 초등학교 선생을 할 때는 아이들이 순수해서 좋았고요,
요즈음은 대구교욱대학교 대학원에서 초등학교 선생님들께 강의하고 있는데요. 교수님이라고 불러주기는 하지만 실은 강사에요.
그래도 현직 선생님들이라 대화가 통하고 마음이 통해서 좋아요.
어느 자리에서라도 교사는 보람있는 자리이지만 고단함도 많아요. 제 수필 몇 편 옮겨 놓을게요. 참고로 한 번 읽어보세요.
< 우리는 끝까지 선생님이다>
"선생님!"
40년간 들어오다 보니 이제 이름보다 더 익숙하다. 길가다 누가 부르면 고개가 저절로 돌아간다. 선생이란 이름, 단순히 직업을 일컫는 호칭이 아님을 자부하는 마음도 크다.
독립 운동가인 백범 김구를 사람들이 김구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는가? 존경의 호칭으로.
출판계나 연예계도 대선배들을 보고 선생님이라 부른다. 존경의 호칭으로. 김대중 대통령 생전에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대통령님보다 선생님이라 불렀다. 대통령이라는 호칭보다 극존칭으로. 오늘날만의 현상이 아니다. 1541년 스위스 제네바 시의회를 장악한 기독교 개혁가 장 칼뱅은 ‘칼뱅 선생님’이라 하지 않고 ‘칼뱅씨“라고 부른 사람을 감옥에 가두었다. 그 당시에도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극존칭이었나 보다. 돌아보면, 우리 선생님들은 매일 이런 극존칭을 들으며 호사하고 산다.
“현직 교장선생님이 노름판에서 화투판을 벌려 물의를 일으켰다 합니다.”
하는 뉴스를 듣는 세인들의 반응은
“소위 선생이란 작자가 행실이 그 모양이야? 더구나 아이들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장이라는 사람이?”
하는 마음으로 일반인한테 느끼는 실망보다 더 큰 실망으로 비방하게 된다. 왜? 그만큼 사회에서 선생이라는 인격에 거는 기대치가 높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은 오락을 즐기고 투기를 해도 선생님은 오락을 즐겨서도 안 되고 투기를 해서도 안 되는 고결한 인격체로 인식하기 때문이리라. 사실 우리가 선생의 자리에서 가장 힘써해야 할 일이 사람을 바로 세우는 일일 것이다. 내 입에서 나오는 칭찬, 격려로 사기가 높아지고 꿈을 키워가며 눈을 빛내는 얼굴들을 위해. 알베르 카뮈가 1957년 노벨문학상 수락 연설을 하면서 초등학교 때 선생님, 루이 제르맹에게 그 연설을 헌정했다. 빈민가에서 자란 카뮈에게 장학금 주선으로 상급 학교에 진학시켜 오늘의 카뮈가 있게 한 공로로. 이 한 예를 빌려 나는 감히 말한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제자한테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원대하며 선생님은 선생님으로 살아야 한다고. 대학원에서 아동문학과 강의를 할 때도 선생님의 구실은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며 바르게 살아가도록 돕는 것, 그 다음은 재능과 꿈을 보듬어 주고 이끌어주는 일이라고 부탁하였다.
자긍심 잃고 명퇴만 늘어가는 교단
요즘 선생님은 학생, 학부모가 선호하는 직업 10위 안에 든다. ‘좋은 업무 환경과 시간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여건’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교단이 ‘과연 좋은 업무 환경일까’씁쓸한 생각이 든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정책과 제도들, ‘결과 보고’운운하며 날아드는 국회, 교육당국의 공문 따위 잡다한 업무 처리에 밀려 교재 연구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학생들의 과제 결과물이나 교재연구를 할 책과 연구물은 가정일 보따리로 가져가게 된다. 가정에서는 누군가의 엄마(아빠), 아내(남편), 자식, 며느리로 살아내야 하지만 아이들 학교 행사에는 한 번도 못 가는 이름뿐인 엄마로 살면서, 집안 대소사 일에도 자식 노릇 제대로 못하며 사는 게 선생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도 학생 사고가 터지면 그날로 자격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 선생의 자리다. 내 자식 편의만 생각하는 학부모들한테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명퇴하는 교사가 더 많아지는 세태다.
힘들어도 ‘사람 세우는 길’함께 걷자
학습 태도가 나쁜 제자한테 꿀밤 한 대 먹였다가 학생들 보는 앞에서 머리채가 쥐어뜯기는 모멸감도 감내해야 하는 게 요즘의 선생이다. 피로가 쌓여 쓰러져도 한조각 정신만 있다면 다시 일어나 교과서를 들어야 하는 것이 선생이다. 가정에서 부모조차도 믿을 수 없는 세상, 아무리 업무가 많아도 내 학생이 결석하면 찾아가야 하고 한 명 한 명 살뜰히 보살펴야 하는 것이 선생이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선생으로 살아야 한다. 선생은 반 아이들 숫자만큼, 학교장은 전교생 숫자만큼 끌어안고 보듬어줘야 하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다.
사표를 던지고 싶다면, 테레사 수녀와 이태석 신부를 생각하자. 그 분들은 선생님이라는 극존칭으로 불리지 않아도 항상 아픈 사람들 곁을 지켜줬다. 카뮈가 노벨문학상 수락 연설을 초등학교 때 선생님에게 헌정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제자들과 함께 이 길을 가야하는 선생님이다. (2016.4.4. 한국교육신문)
한국교육신문에서 ‘우리는 끝까지 선생님이다 ’를 읽은
- 현장 선생님들이 주신 한 마디 -
교장선생님, 한 번도 본적 없는 분이지만 학적업무를 보다가 자주 내선 전화로 연락
하게 된 도림초 임연주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 연락할 때 항상 따뜻한 분이라고 느꼈는데, 오늘 아침에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첨부파일과 함께 보내주셨습니다. 저만 읽고 넘기기가 아쉬워서 교장선생님께도 보내 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유수인 · 대진초 -
-------- 원본 메시지 --------
보낸사람 : 임연주 51652
받는사람 : 유수인
보낸시간 : 2016년 04월 11일 18:40:43
선생님 안녕하세요? 학교생활기록부 자료 첨부해서 공문 보내드렸는데 받으셨죠? 너무 늦게 드려서 죄송합니다 ㅠㅠ. 제가 교총 신문을 읽는데 대진초 교장선생님께서 신문에 투고하셨던데, 모르는 분이지만 정말 감동을 받고 힘을 얻어서 감사한 마음에 사진 찍어서 보냅니다. 이번 주, 내일 쉬는데 조금만 더 힘내셔요! - 도림초에서
글을 보니 다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육아로 지치고 1학년 아이들과 하루를 시작하다
보니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몸이 피곤하기도 한데 다시금 선생님이라는 저의 이름을 되새기고 힘을 얻어 봅니다. -한다은
외부에서 보내는 '선생만큼 편한 직업이 없지.'라는 눈총 아닌 눈총. 내부에서는 단체 생활에서 자신의 편의만 찾는 몇몇 학생과 학부모님에 대한 고민, 때로는 과중한 행정 업무의 부담 등으로 교단이 멍들고 신음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님을 느낍니다. 교사들이 폭행당했다는 뉴스를 심상치 않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요즘 우리 교육의 현주소라는 것이 씁쓸하기만 하네요. 이런 칼날같은 현실에서 존경받는 교사, 평생 스승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버겁기도 하지만요. 두터운 자긍심을 가슴에 품고 앞으로도 열심히 해보려 합니다. 언젠가는 카뮈같은 제자가 저를 찾아올 거란 믿음으로 말입니다.. ^^ 지친 마음 쓰다듬어 주는 좋은 글, 많은 격려가 되었습니다.- 대 백지현
구구절절 마음에 와닿습니다. 저 또한 교직생활 30년이라 학생들의 눈을 바라보며 순간순간 이렇게 되묻곤 합니다. '내가 지금 이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가?' 늘 눈망울 속에 깃든 아이들의 영혼을 만나기 위해 애를 씁니다. 하지만 저도 명퇴를 생각합니다. 학부모들의 따가운 시선이나 사회의 빗나간 시선들의 불감당도 있지만요. 신선한 눈빛의 후배들에게 언제쯤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좋은지, 그 시기를 조절하겠다는 생각도 한몫합니다. 교장선생님의 글을 읽고 나니, 교사로서 내가 잘 살아왔는지 나를 한 번 더 돌아보게 됩니다. - 김영옥
제가 만난 많은 학생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저로 말미암아 꿈을 키우고 바른 길을 가게 된다면 그것을 기쁨과 보람으로 여기겠습니다.
사실 교사에게 3월은 없었으면 싶은 한 달입니다. 새로운 학생과의 만남과 적응, 학부모 상담, 공개수업, 새로운 업무 파악 및 추진 등 3월 말이 되면 그동안 못 만난 동료 교사를 병원에 가면 만날 정도이니까요. 저 또한 지난 주말 온 몸이 아파 끙끙 대며 월요일에 출근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요. 웬걸, 월요일 아침에는 몸이 제풀에 출근을 하더라구요. 가끔 '나는 생계형 교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이 글을 읽으며 선생님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힘내어 살려 합니다. - 이옥순
아이들을 보면서 교사는 정말 인성이 좋은 사람이어야 하는 것을 느끼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글을 보니 마음에 아주 깊게 와 닿습니다. 아이들은 제 거울이라 생각하고 이 마음 간직하며 교직생활을 이어가겠습니다. 아이들이 공부 시간을 즐겁게 생각할 수 있도록 교재연구를 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또한 2016년이 끝날 때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인성이 발전했다는 생각을 할수 있도록 힘쓰는 것이 올해의 목표입니다. - 문은진
이 글을 읽다가, 순간 제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가정에서는 누군가의 엄마(아빠), 아내(남편), 자식, 며느리로 살아내야 하지만 아이들 학교 행사에는 한 번도 못 가는 이름뿐인 엄마로 살면서, 집안 대소사 일에도 자식 노릇 제대로 못하며 사는 게 선생이다." 이 부분이 특히 저같이 아이를 기르면서 학교에서 또 누군가의 아이들을 키우는 선생님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진희
저는 올해 교직경력 28년입니다. 늘 초심으로 살아라는 말이 있지만 제겐 처음의 그 마음이 없었던 것 같아요 차라리 갈수록 아이들이 소중하고 제 하는 일이 귀하게 여겨진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도 교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범을 보이지 못할 때도 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동안 순수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싶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열정은 나이와 상관없이 늘 청춘이십니다.- 김영혜
학생, 학부모보다 우리 교사를 먼저 생각해주심이 느껴지는 따뜻한 글입니다. 반에 문제아(?)가 있어서 힘든 학기 초를 보내고 있는 중에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신지예
제목을 보면서 벌써 눈물이 고였습니다. 저도 언젠가 명퇴를 생각하고 있고 또 저희처럼 경력 많고 나이 많은 교사들한테는 교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서럽고 남들 앞에서 기 죽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선택한 길이고 사명감 하나로 지켜온 교사직이기에 마칠 때까진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공감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성금제
글의 시작을 읽고. 아~~~ 라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네요. 그리고 다시 되짚어 읽었습니다. '선생님' 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지는 만큼 사람을 세우는 일이라 한 번 더 옷매무새나 말 한마디를 생각해서 해야 하는 조심성을 무장한 시간도 되는 것 같네요. ‘사람이 재산이다’ 라는 말처럼 내 호주머니가 두둑해 지는 것은 아니지만 ,잊을 만하면 전화 오는 제자들의 '선생님'이라는 소리에 마음의 재산만은 차고 넘칩니다.- 이현아
피로가 누적돼 쓰러져도 한조각 정신만 있다면 다시 일어나 교과서를 들어야 하는 선생이지만 아이들을 보듬고 끌어안으며 끝까지 선생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선생님" 소리가 부끄럽지 않고 따뜻하게 들릴 수 있도록 살아가고 싶습니다. - 하선임
가슴이 먹먹해 오네요. 무엇 때문에 힘들었고, 그럼에도 무엇 때문에 다시 이 자리에 서게 되는지 교장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나니 막연했던 생각이 명쾌해집니다.
이리 좋은 봄날, 아이들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참된 스승의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유 백지현
친구야, 오늘도 글 잘 읽었네. 이 시대의 선생으로서 겪어야 하는 고뇌와, 언제나 시대를 가리지 않는 사명감이 우리를 잡아주고 있네. - 신숙자 -
교단에서 주고받은 편지
<교단에서 받은 편지>
내가 교단에서 받은 편지철들은 재산 목록 제 1호이다. 만약 우리 집에 불이 난다면 가장 먼저 대피시켜야 할 보물이다.
내가 받은 편지들 가운데 서로 따스하게 주고받았던 편지 몇 장을 들추어본다.
「선생님, 진아 엄마 되는 사람입니다. 제 딸 진아는 어릴 때부터 경기를 많이 하여 발육도 늦고 모든 게 모자랍니다. 아이 아빠도 어릴 때부터 그랬고 저 또한 다리 불구자라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오늘 진아 일기장을 훑어보니 기대보다 너무나 나아져 희망이 반짝 보입니다. 저는 어미로서 완전히 포기하고 함께 죽자고 많이도 울었답니다. 그런데 진아 글을 학급문집에 올려주시고 방학 때는 편지도 보내주신 걸 보고 감동에 못 이겨 진아 대신 답장을 써봤지만 용기가 없어 부치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아 워낙 글이 짧지요. 이제 진아는 줄넘기도 잘하고 제 짝꿍 집에도 놀러 갔다나요. 대견스러워 오늘 밤엔 꼭 안아주었습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주위의 이해와 인정이 한 아이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신념을 갖고 쓴 답장 흔적도 남아있다. 「진아 어머님! 진아에 대해 절망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그동안 주위에서 인정을 해주지 않았을 뿐입니다. 늘 희망을 갖고 진아를 잘 보살펴 주시길 빕니다. 학교의 진아 엄마 박경선 드림」
「선생님, 저 3학년 때 덕순인데요. 가운데학생이 되었어요. 저는 3학년 때 제 짝꿍 재훈이를 좋아해요. 언니는 ‘쪼그마한 게 하마부터’하고 놀리지만 선생님은 제 마음을 아시겠죠? 그래서 전근 간 선생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1987년 5월 27일 덕순 올림」
이 편지를 받고는 재훈이랑 친할 수 있도록 재훈이한테 우편으로 동화책을 보내어 덕순이랑 꼭 함께 읽어보라고 한 기억이 난다. 그런데 재훈이는 선생의 잔꾀를 눈치 채지 못하고 이런 답장을 보내왔다.
「선생님, 보내주신 동화책 잘 읽었습니다. 덕순이와 함께 읽지는 못했지만 제가 다 읽고 덕순이한테 전해주었습니다.」멍청한 선생을 믿은 덕에 덕순이는 재훈이의 관심을 받기 위해 선생과 수차례 편지를 더 주고받으며 가슴 아린 마음들을 보듬어갔다.
「선생님이 편지에 ‘이젠 선생님을 잊고 현실에 만족해라’하셨지요? 하지만 전 선생님을 잊을 수 없어요. 지금도 수업시간이 되면 칠판 앞에 지금 저희 선생님보다 작년 담임인 선생님 얼굴이 아른거려요. 전 커서도, 아니 죽을 때까지 선생님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왜 선생님을 잊으라고 하셨지요? 1995년 3월 27일. 혜진 올림」
그렇게 절절한 마음을 보내왔던 혜진이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식도 없다.
「저희 기억에 선생님은 또 하나의 어머니세요. 영환이가 선생님을 어머니라 여기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 모두의 어머니세요. 교실에서 소외된 친구들을 위해서도 선생님은 밤의 별처럼 빛나셨어요. <우리가 살다 힘들 때면> 시집을 읽어주셨을 때 우리 모두 또 하나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고마움입니다. 저 훌륭한 사람 못되더라도 나중에 찾아뵈면 반겨주세요. 1996년 12월 29일 제자 혜현 올림」
혜현이도 지금쯤 40대쯤 되었겠다.
일류 대학에 수석 합격했다거나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찾아오거나 편지 보내오는 제자들보다 살다가 힘들 때 찾아오라는 말을 기억해 군대 갈 때면 떼거지로 몰려오던 제자들이 더 정겨웠던 교단이다. 내년 8월이면 정년퇴임을 맞기에 요즈음 들어 부쩍 제자들 이름을 불러본다. 허공에 대고 ......
“사랑하는 제자들아, 호박 선생이다. 어디서 어떻게들 살고 있니? 보고 싶다. 고령 <베나의 집>으로 모여 봐. ”(15. 8. 11)
교단에서 주고받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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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 교육철학을 밥으로 삼아, 아이들 글 한 편 한 편 챙겨서 문집을 만들고, 편지 한 장 안 버리고 소중히 간직해온 선생님! 어머니 사랑으로 아이들과 평생을 함께한 선생님 삶을 오롯이 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
- 이주영 · 문학박사,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회장 -
<스승의 날 쓰는 반성문>
스승의 날을 맞으면 나도 모르게 내가 지은 죄들에 대해 늘 용서를 빌고 싶어진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반성문을 쓰고 싶은 일은 초임 시절, 글쓰기 대회나 웅변대회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대회의 상을 휩쓸어오기 위해 솔직하고 정직하게 글 쓰는 법 대신, 기교만 가르쳐 온 것이 사실이다. 나한테 그런 기교를 배웠던 모든 제자들한테 상에만 눈이 멀었던 철부지 교사를 용서해주기를 빌며 사죄한다.
그 뿐이랴? 아이들은 교사가 원하는 책읽기를 팽개치고 종이비행기 접기나 낙서로 자습시간을 보내고 싶어할 때면, 그들을 데리고 운동장에 나가 종이비행기를 날리면 좀 좋으랴? 하지만 그들의 마음보다 내 욕심의 틀 안에 아이들을 가두어 둔 날이 더 많았다.
교장으로 나이 들어가는 요즈음은 조금 나아진 것일까? 그저께 글쓰기 동아리 아이들을 데리고 ‘이주홍 어린이 문학관’으로 문학 기행을 갔다. 나는 이주홍 문학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었고, 합천 박물관이나 영상테마 파크장에서는 해설사의 말에 귀 기울여 들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죽어 있는 것들보다 살아있는 것들에 열광했다. 조랑말에 몰려들었고, 나비나 벌들한테 정신이 홀딱 빠져 따라다녔다. 그런 아이들을 보자 고등학생들을 데리고 수학여행을 간 교사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교사가 산의 높이와 계곡의 깊이를 열심히 설명하는 바람에 아이들이 자연 경관의 신비에 젖어들 기회를 놓쳤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그래, 살아있는 생명들을 쫓아가는 너희들이 현자다’ 싶어 참았다. 교단에 서서 지은 죄 가운데 아마 열정이라는 이름 아래 이렇게 지은 죄가 가장 많을 듯 하다.
하지만, 내 제자들은 너그럽다. 일학년을 담임할 때는 자기 엄마보다 선생님이 더 좋다는 녀석이 32명 중 29명이었다. 내 귀에 속삭여 주고 갔으니 거짓말이라도 믿고 싶었다. 다른 것은 다 용서해도 선생님 허락 없이 아프면 안 된다’는 억지도 법으로 여기며 따라주었다. 자기 어머니랑 길 가다가 넘어져도 벌떡 일어나서 “엄마, 우리 선생님 걱정하겠다.”한단다. 식사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도 ‘우리 선생님은 우리가 다치지 않도록 밥 먹을 때마다 기도 한다’며 아름답게 오해해주는 녀석들이었다. 한 학년을 마치고 헤어질 때마다 ‘너희들이 성공해서 찾아오려는 생각은 하지 마라. 살다가 힘들 때 찾아오너라.’하며 떠나보낸 말을 기억해 군대 갈 때면 떼거지로 찾아온다. 돼지고기 삼겹살을 사 먹이려 하면 소고기 먹자고 스스럼없이 조르는 것 또한 정겹다. 군대 에 간 제자들을 위해 면회는 아예 못 가고 『좋은 생각』이나 『가이드 포스터』 같은 월간잡지를 일 년간 구독 신청해주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 장래 진로 문제나 이성 문제 따위로 찾아와 의논해주고 주례를 부탁하니 너무 고맙다. 나를 아직 영향력 있는 스승으로 생각해주는 것 같아 좋다. 어떤 녀석은 대 기업에 어렵게 취직해서 받은 첫 월급으로 스승의 날 밥을 대접하겠다고 일부러 서울에서 내려오기도 했다. 혼자 자취하며 번 돈으로 사주니 목이 메여 밥이 넘어가지 않아도, 자기가 밥을 사고 싶다고 폼을 잡는 바람에 속울음 울며 꾸역꾸역 얻어먹었다. 식탁보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사는 신혼에도 스승의 날 선물을 마련해 보내는 녀석도 나를 울렸다.
이렇듯 나를 거쳐 간 제자들은 스승의 허물은 덮어주고 조그마한 일도 아름답게 기억해 스승의 날 찾아주니 오히려 벌 받는 기분이다. 하지만, 제자들이 주는 이런 벌이 나에게는 교단에 머물게 하는 마력이 되어 스승의 날 기도 한 편 남기게 된다.
「스승의 날 기도
세상 하 많은 직종 가운데/ 내가 택한 선생님은/ 내가 꿈꿔온 사랑이요
38년 외길 걸어 돌아보니/ 첫사랑이면서 마지막 사랑이 될 듯//
선생은 그저 무명교사일 뿐이지만/ 제자는 유엔 사무총장도 되고
대통령도 될 수 있으니/ 내 가르침이 미칠 범위는 끝없이 퍼져 나갈 듯//
거대한 인물은 못 될지라도/선량한 시민의 지아비, 어미가 되어/ 어릴 때 선생께 배운 사랑 베풀며/ 착하게 착하게 살아간다면/ 그 또한 감사한 일!//
스승의 날은/ 우리 모두 누군가의 가슴에 한 송이 꽃으로 피워 남기를」(1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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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쓰는 반성문’과 ‘밥 퍼주는 여교장의 행복론’을 읽으면서 리더십의 정도(精道)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사로서, 교장으로서 40여 년 동안 걸어온 삶의 길을 이야기해주는 글들이라 학교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모든 이의 마음에 많은 것들을 남길 것 같습니다.
- 신종호 ·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
<제자 가슴 속 선생님>
“저능아로 낙인찍힌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넌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는 담임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예일대학 연구실을 차지한 교수가
아니라, 그 방을 청소하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심리치료의 대가 레이머드 코르시니가 그의 저서 『현대 심리 치료』첫머리에 적은 내용이다. 교사의 작은 친절, 애정 어린 말 한마디가 자존감 약한 학생을 인재로 키운 사례다.
38년간 교단에 서고 있는 나도 스승의 날을 맞으면 제자들이 보내주는 문자, 편지, 찾아와서 전해주는 추억들이 나를 되돌아보는 거울이 된다. 나의 어떤 말, 친절이 그들 가슴에 한 방울 감동으로 담겼는지는 모른다. 제각기 가슴속에 선생을 담아 두었다가 되비쳐주는 이야기는 각각의 악기들이 모여 들려주는 아름다운 스승 상 합주가 된다.
평소의 내 모습부터 되돌아본다. 위대한 세종대왕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 교사들은 스승의 날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얼마 전 스승의 날에도 선생님들의 청렴을 지켜주고 싶어 교장 이름으로 가정통신문을 발송하였다. “‘스승의 날, 꽃 한 송이라도 학교에 보내지 말아주십시오. 우리 선생님들 가슴속에는 꽃보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이 있습니다.’‘라는 당부를 내보내고 스승의 날 아침, 7시에 출근하여 학교 담장의 장미꽃을 꺾어 본교 선생님과 1일 명예교사 학부모님께 달아줄 가슴꽃 60개를 만들었다. 각 반 회장을 불러 꽃을 가져가 담임선생님께 달아드리고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러드리라고 시켰다. 1교시에 학부모 명예교사들이 각 교실에서 선생님께 편지쓰기를 지도하고 있을 동안 교장은 선생님들께 ‘최고의 교사가 되는 법’에 대한 강의로 선생님들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교장의 마음이 읽혀진 것일까? 몇 선생님이 쿨 메시지로 인사를 날려주었다.
‘다과를 준비해 저희들을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생 열정을 불태워 교단을 지키며 지금의 자리까지 오셨기에 진정한 교육자라고 늘 생각해왔습니다.’(임선희)
‘좋은 연수, 직접 만든 축하 장미꽃, 감사합니다. 따뜻하게 챙겨주시는 분은 우리 교장선생님 밖에 없는 것 같아요.’(김혜원)
‘여러모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교단에서 만난 스승입니다.’(안유리)
외부 초빙 명예교사들을 맞아 안내하고 오전 행사를 숨 가쁘게 마치자 교장으로 있는 3년 동안 중학교에 보낸 아이들이 찾아왔다.
“교장선생님, 아직도 가족독서 사진전 때 뽑힌 사진 넣어서 독서 다짐장 만들어요?”
“이번에 중학교 졸업 여행 갔어요.” 묻고 싶은 것도 많고 자랑하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들이지만 떼거리로 몰려오는 바람에 교장실 앞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는데
“너희들 모두 훌륭한 사람 될 상을 주었으니 꿈을 정해 열심히 살면서 친구를 많이 사귀어라.”는 이야기를 해주며 등 떠밀어 보냈다. 성인이 되어 찾아온 제자들한테는 시간을 좀 더 내어 마주 앉았다.
“선생님, 그것 아세요? 15년 전에 그때 벌써 선생님은 생각을 쉽게 정리하는 ‘마인드 맵’을 가르쳐주셨어요.” “제가 방황할 때마다 선생님 생각 하면서 이성을 되찾았어요. 이건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에요.”
이렇게 애교 떨다 가는 녀석들도 있고 문자로 애교를 보내오는 녀석들도 있다.
‘선생님, 요즘 제가 하고 싶은 영화 일을 하고 있어요. 선생님께 하나 약속 할게요. 떳떳한 영화감독이 되면 선생님 동화를 꼭 영화로 만들겠습니다.’(권순형)
‘10년도 더 넘었지만 늘 선생님 생각이 나요. 하루 빨리 회계사 시험 합격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선생님 찾아뵐게요.’(임아리)
군 복무 중인 제자들한테서도 전화가 왔다. 군대에서 공중전화를 했단다. 휴가 나가면 찾아오겠다는 녀석, 대구가면 찾아오겠다는 녀석, 그들 마음은 진심이겠지만 살다보면 그게 그리 쉽지 않기에 그 말만으로도 고맙다. 글쓴이 이야기만 예로 들었지만, 교직이라는 외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든 교원의 평범한 모습이다. 지금껏 한 이야기의 숨은 뜻은 이거다. 학교 이야기, 교사 이야기를 부정적인 뉴스로 끌어가 말초신경을 자극하려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미담과 고충에도 눈을 돌려 보도해주는 너그러움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어본다.(13. 5. 24)
밥 퍼주는 여교장의 행복론
대구시 교육청 교육목표가 행복교육이요. 우리학교 교육 목표 역시 행복한 학교 만들기이다. 교장의 학교 경영관 역시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가 행복한 사람으로 사는 것에 모든 교육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 나는 행복교육을 밥주걱으로 퍼 올리고 있다. 우리 학교에는 아침 등굣길에 노인 스마일 봉사단 열여섯 분이 등굣길 교통을 돌아가며 서 주신다. 토요일이나 공휴일에 이 어르신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여 식사 대접 한 번 하려고 통지해두었고 책 읽어주는 학부모 명예교사들도 초대하여 내 손으로 밥한 끼 해드리려고 통지해 두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기쁜 소식을 보내준 전 임지 학교 유치원 선생님을 초대했다.
「교장선생님, 잘 지내셨지요? 유치원 교사 이은미입니다. 기쁜 소식! 내년 2월이면 저도 드디어 아기 엄마가 된답니다. 예전에 “다른 애들만 키우지 말고 어서 선생님 아기도 키워야지.” 하고 말씀하셨지요? 그때 교장선생님 말 속에 따뜻함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정말 제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어 말할 수 없이 좋아요. 건강하게 더도 덜도 말고 2월에 꼭 만나자고 유치하지만 태명도 이월이라 지었어요. 많이 기다리고 소중하게 생긴 아기라서 태교도 하고 아기 낳기 전에 여유도 가지고 싶어서 10월 1일부터 휴직했습니다. 조금 여유가 생기니 그동안 교장선생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은혜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저도 교장선생님만큼 연륜이 쌓였을 때 주변에 행운이라 생각될 만큼의 은혜를 베풀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정말, 항상 감사합니다. 여전히 바쁘시겠지만 건강 더 잘 챙기시고 즐거운 가을 계절 보내세요. 사랑합니다. 2014년 10월 교장선생님을 본받고 싶은 유치원 교사 이은미 올림」
유산 후, 마음고생이 심했던 이선생이 기쁜 향기를 전해왔다. ‘넉 달 뒤에 아기를 만날 수 있겠구나.’ 이선생을 닮은 눈망울 초롱초롱한 아기를 들여다볼 생각에 가슴이 뛴다. 이 선생은 나에게 교직의 보람을 안겨준 또 한 사람이라 소중하다.
어느 날, 『학교에 간 사자』그림책을 들고 가서 그 반 아이들에게 한 번 읽어봐 주라하고 뒤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동화 속에 쏘옥 빨려들게 구연동화 하듯이 잘 읽어주었다. 글씨도 모르고 말로 느낌을 발표하기도 어려운 3,4,5세 반이라서 그림으로 느낌을 표현하게 해보라 하고 돌아왔다. 나중에 아이들이 그린 느낌 그림을 가져왔는데 그림이 살아있었다. 기교라고는 전혀 없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피카소 그림 같은 선들이 정겨웠다. “이 그림들을 연결하여 동화 한 편 지어보면 어때요?” 한 번도 동화를 써본 일이 없는 선생님께 뚱딴지같은 주문을 하는 원장 앞에서 이선생은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방학 동안 시간 여유를 두고 천천히 한 번 지어보세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요.”하며 등 떠밀어 보냈는데 몇 달 뒤에 정말 재미있고 깜짝 놀랄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 황칠을 해놓은 아이의 그림까지 버리지 않고 다 주워 담아 이야기로 연결한 마음이 고마웠다. 아이들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마음이 너무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유명 출판사 두 곳에 그 그림책을 추천해주었는데 두 출판사 모두에서 자기네가 출간하고 싶다고 탐을 내었다. 하는 수 없어 먼저 응답이 온 지식산업사에 원고를 넘겨 올해 5월에 『나와 사자 이야기』책이 시중에 나왔다. 내 책이 나왔을 때도 한 번도 출판 기념회를 한 적 없었지만 『나와 사자 이야기』책 출판 기념회를 한다고 현수막까지 만들어가서 밥을 사주며 ‘이런 게 작가로서 사는 보람이구나.’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 선생님이라 소중한 인연이다. 집에 초대해서 밥 한 끼 해먹이고 싶어서 얼른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고령에 우리 전원주택을 마련했어요. 사진보고 맘에 들면 부군 선생님과 놀러와 하룻밤 묵고 가세요. 뱃속 아기한테도 힐링이 될 거예요.”
요즈음 나는 이렇게 산다. 집에 손님들을 초대하여 내 손으로 밥 한 끼 해 주는 재미로 산다. 갓 시집가서 삼층밥을 짓던 내가 육십에 접어들어서야 “이 김치하고만 밥 한 그릇 다 먹어도 맛있겠다.”는 등의 음식 칭찬을 듣는데 그 재미도 솔솔 하고 손님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기는 맛도 솔솔 하다. 우리 집 이름도 베나(베풀고 나눔)의 집으로 지어 두었고 방명록도 만들어 두었다. 석 달 동안 176명의 손님들이 밥 한 끼 먹고 가기도 하고 하룻밤 묵고 가기도 했다. 그동안 남편은 이 집에서 그림 한 장 못 그렸고 나도 글 한 편 못 썼지만 밥 해주고 손님 맞는 행복이 그림보다 글보다 더 소중하다. 내 몸 성해서 남들에게 밥 한 끼 대접해줄 수 있는 이 건강과 여건에 감사하는 나날이기도 하다. 행복하려면 돈으로 물질이 아닌 경험을 사는 게 좋고,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일들을 경험하는 게 좋다고 하지 않는가? 오랜 여운으로 내 마음이 행복감과 만족감에 젖어들 수 있는 이런 일을 나는 요즈음 밥주걱으로 퍼 올리고 있다.
<누구나 살고 싶은 마을의 조건>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버리는 마을/ 놋양푼에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노천명의 시<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우리는 가끔 벅찬 도시생활에 지쳐 산골로 들어가 앉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흙과 순박한 마을 사람들과 온갖 생명 있는 것들과 교감하며 마음에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노천명의 시처럼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살 수 있는 마을이라면 온전히 살고 싶은 마을이겠다.
일 년 동안 돌아다닌 덕에 이런 주말농원 하나 찾아냈다. 남편 퇴직 뒤, 흙 만지고 그림 그리며 살기에 좋은 일터로 마련한 전원주택에 <베나(베풀고 나눔)의 집>이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세상 걱정 멀리하고 자연 깊이 파묻히고 싶어 TV 안테나도 세우지 않았다. 지금은 4월, 정원에 심어 놓은 단풍나무랑 철쭉, 박태기나무가 볼긋볼긋 봄눈을 뜨고 매화꽃, 앵두꽃, 벚꽃,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다. <고향의 봄>동요 속 가사처럼 꽃동네를 차린 것 같다. 동네 이장님을 따라가 캐온 청미래 덩굴의 망개 뿌리를 달인 토복영 차에 매화 꽃잎 동동 띄워 동네 분들과 얼굴 마주 보며 꽃차를 마신다. 목련꽃 봉오리는 피부 미용에도 좋고 알레르기 비염과 천식에도 좋다기에 꽃봉오리를 따 말려서 이 또한 꽃차로 마시고 있다. 소나무로 둘러쳐진 정원에서 새솔순을 따 소주랑 설탕에 담궈 숙성시켜두었다가 불꽃처럼 그리움이 번지는 날, 벗들을 부르고 싶다. 작년 가을에는 정자 뒤에 심어둔 구지뽕, 뽕나무, 엄나무 가지를 꺾어서 가마솥에 닭이랑 황기, 수삼, 대추랑 삶아 한방 삼계탕을 끓여내도 참살이 음식 먹는다며 좋아들 했는데… 텃밭에는 부추, 당파, 상추가 벌써부터 반찬거리를 대어주고 있다. 한 줄씩 씨로 뿌린 자소엽, 어성초, 삼채, 콜라비, 쑥갓, 피망, 삼백초들도 흙을 비집고 나와 ‘날 좀 봐요. 나도 나왔다구요 ’초록모자를 꼬물거리고 있다. 동네 어르신들이 나누어주신 감자싹과 양파싹도 촉 올리고 배시시 웃어준다. 텃밭 둘레에는 머위를 심었는데 아기 손바닥만 한 게 나물로 보이지 않고 꽃잎으로 보인다. 잔디 속 잡초처럼 크는 민들레, 패랭이, 제비꽃, 이름 모를 풀꽃들도 예쁘다. 집 밖을 나가도 온통 초록 물결 속에 들나물 숨겨둔 밭이요 산이다. 하천 부지 목초밭 사이에 돋아난 냉이를 엄청 많이 캐서 직장에 가져와 부장교사들한테 봄을 한 봉지씩 선물했다. 뒷산자락 오르다 만난 쑥도 뜯어 와서 구수하게 봄 향기 국을 마신다. 다음 주 쯤에는 마당의 잔디도 더 파릇하게 돋아나고 햇빛도 더 따사롭게 비쳐줄 것 같다. 이날은 예쁜 대진 교사회인 예진회 새내기 교사들을 초대하여 잔디밭에 앉아 따스한 햇볕 함뿍 쬐며 학급 경영의 고충과 학교장한테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에듀힐링’ 마음연수를 할 것이다. 그 다음 주엔 30대로 구성된 귀진회(귀한 대진교사회), 다음 다음 주엔 4~50대로 구성된 우진회(우아한 대진 교사회) 교사들을 초대하여 텃밭에서 난 나물에 숯불 바비큐를 쌈싸 먹으며 이야기 나누고 싶다. 건강 문제나 나름대로 힘들게 살고 있는 가정 일도 터놓다 보면 터놓는 것만으로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서로한테 위로가 되어줄 수 있으니 말이다. 학교장으로서는 학교 성과에 얽매이지 말고 학생과 교사가 스트레스 없이 살 수 있도록 힘쓸 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솔가지 짚여 달군 황토방 구들장에 누워 나른한 봄날의 행복에 젖고 싶은 사람은 하룻밤 자고 가도 좋다. 마하트마 간디는 마을다운 마을을 이루기 위해서는 누구나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마을,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한테 평등이 주어지는 마을, 이웃에 대한 봉사와 섬김이 있는 마을, 자급자족하며 협동하는 마을, 그리고 소통하는 마을을 기본 조건으로 들었다. 한 마디로 누구나 온전히 살고 싶은 마을의 조건이 되겠다. 이 조건에 비추어 보더라도 내가 둥지 튼 마을은 이 모든 조건을 갖춘 무릉도원이요. 날마다 감사하며 사는 축복 받은 마을이다. 백년 묵은 동수나무 앞에 <1987년 범죄 없는 마을>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고 어르신들 가운데 잘 다투거나 목소리 큰 사람도 없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열다섯 가구가 사는 홍씨 씨족 마을에서 70대 이장님이 그나마 청년이다. 모두 연세가 많지만 겨울철 들면서부터 비닐하우스 속에 수박 심을 준비를 하고 1월이면 모종을 심으며 협동으로 맛난 우곡 수박을 수확할 꿈으로 행복하게 일하신다. 그리고, 타지에서 이사 온 우리 집을 지나칠 때면 가마솥 건 부엌에 불 때는 방법도 가르쳐 주고 생강 식혜나 묵을 만들어 울타리 너머로 푸짐하게 넘겨주신다. 이러다 보니 나눌 것 없는 우리 집은 가끔 어른들 모셔 밥 한끼 나누고 저도에서 사온 석화 상자며 가구 수만큼 사온 딸기 상자를 마을회관에 들여놓는다. 주말에나 들리다보니 어느 집에 어떤 어르신이 살고, 어느 집이 빈 집인지 몰라 마을회관에 부려놓는 게 손쉽다. 이렇듯, 타지에서 들어온 우리 부부도 어르신들이 이끌어주는 대로 나물 촉 내는 법도 배워가며 소통하고 섬기며 산다. 마하트마 간디, 당신이여! 그 먼 인도에서 언제 우리가 사는 이 마을을 보고 가서 누구나 온전히 살고 싶은 마을, 마을다운 마을의 조건으로 내거셨는지요? (15.4.28)
♠ 카톡 한 마디♥
• 그대의 글을 교육청 보도 자료에서 읽을 때마다, 나눔과 배려를 몸으로 실천하는 훈훈함이 진솔하게 느껴져요. 솜이 물을 빨이듯 공감하며 누구나 베풀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네요. 늘 다음 글이 기다려진다오.
- 이태자 · 대구월암초등학교 교장
• 베나의 집(베풀고 나눔)에서 여유 부리는 삶 이야기는 앞으로의 내 인생에 이정표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다른 글들도 의미 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대구월배초등학교 교장 강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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