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
이 용 주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쓰면서도 막상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수 없다.
어느 신부님이 여자대학교에 가서 이 세상에 살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 여대생이 “그건 사랑입니다.”고 했다. 그럼 사랑이 무엇인가요?“ 했더니 한참을 생각 하더니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네요.“라고 대답했다.
아마 이 여대생은 에로스나 아가페 같은 사랑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대답하기 까다로우니까 눈물의 씨앗이라는 유행가 가사로 대신 하려다 끝내는 모르겠다고 했을 것이다.
옛날 내 직장 동료 중에 공맹선생이라는 별명을 가진 서예가가 있었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이라 우리 직장의 임명장. 표창장 감사장 등은 모두 이 친구가 붓으로 썼다. 내 아들 장가보낼 때 사주단자도 이 친구가 썼다. 그 때마다 나는 이 친구에게 술대접을 했다. 이 친구는 술을 좋아 했고 술에 취하면 공자 왈 맹자 왈 하다가 종국에는 그의 유별난 효심이 표출된다.
효는 백행지원(百行之源)이라며 모든 행동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효는 사랑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 때 나는 그의 말을 건성으로 넘겨 버렸으나 이제 생각하니 일리가 있는 듯싶다.
우리는 절에 가면 자비(慈悲)를 베풀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나는 어릴 적 아무것도 모르고 할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다. 할머니가 나를 절에 팔았다는 말도 들은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사주를 절에 맡기고 상시 나를 위해 부처님께 불공을 드려달라고 부탁한 것 같다. 팔았으면 돈을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적지 않는 시주 돈을 내고 있었던 것 같다.
해방 직후 양식이 귀한 시절에도 할머니는 시주를 잘 하셨고 몸소 이집 저집 공양미를 동냥하러 다니셨다. 동냥한 공양미가 두 세 말 정도 모이면 할머니는 머리에 이고 나는 짐바로 지고 지정된 절간을 찾아 바친 기억이 있다. 이것은 내가 어린 시절 가장 하기 싫은 일중의 하나였다.
나는 결혼 후 아내의 권유로 성당에 나가게 되었다.
성당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에게는 원수가 없으니 해당사항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 말을 발설하면 아내가 기절초풍할 것이다.
아내는 어릴 적부터 성당에 다녀 나보다 신심이 깊다.
늘 나보고 교만하지 말고 성서 공부를 하라고 충고한다. 그래서 요즘은 소위 삼사일언(三思一言)하고 성서도 읽지만 별 느낌이 오지 않는다. 아직 신심이 부족한 탓이리라.
나는 세속 사람과 같이 가족을 사랑하고 부하를 총애하며 어린이를 귀여워하며 물건을 아끼며 이성을 연모했다. 이 모두가 사랑과 상통하는 말이다.
따라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 하나를 선별하기가 어렵다.
가족사랑에는 차등이 없다. 모두 똑 같이 사랑한다. 지금으로부터 53년 전 나는 공무원 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애타게 연모 했다.
부하의 총애는 일 잘하고 심덕이 좋은 순위다. 어린이는 다 귀엽지만 내 손자가 더 귀엽다.
아끼는 물건이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아끼는 것이 캘러웨이 골프채다.
지금은 외제 골프 클럽이 자유로이 유통되지만 그 때는 수입 금지품이었다. 아들의 특별한 신분과 각별한 정성으로 미국에서 어렵게 보내온 생일 선물이다.
이외에도 내가 사랑하는 것은 많다.
그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이런 신변잡사일수가 없다.
나는 내 삶을 조용히 관조해 본다. 그동안 살아가기 위해 돈과 의식주는 물론 명예와 직위를 위해 아옹다옹한 것 같다. 이제 이런 생계형 집착을 버리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퇴직 공무원에게는 상록자원봉사단이 있다. 공직 경험과 재능을 이웃과 공동체에 나눔으로서 은퇴 후의 삶의 보람을 실현하고 지역사회 발전과 국민행복 증진에 이바지 한다. 공무원 연금 지 12월호에는 상록자원봉사단의 사랑 방정식이 나와 있다. <공직 경험 + 재능 + 나눔 = 사랑하다.>이다. 결국 봉사는 사랑의 발로라는 말이다. 그럼 그 사랑의 원천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 없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소중함과 가치. 자신감이 필요하다.
2014. 12. 5.
첫댓글 인생을 오래 사신분이라 생각이 깊고 논리가 정연합니다. 깊이 공감이되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촬영을 잘 하신 좋은 작품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