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를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부당하게 짓밟혔을 때, 배신당했을 때,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을 때 —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불균형을 되돌리고 싶어한다.
드라마 〈더 글로리〉가 그토록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든 것도 그 때문이다. 문동은의 복수극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우리 안의 어떤 원초적인 감각을 건드렸다. 그렇다면 복수는 실제로 우리를 치유할까? 이글의 시작은 이 의문에서 시작했다.
세상이 공정해야 한다는 믿음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 깊이 이런 믿음을 갖고 살아간다. '나쁜 짓을 하면 결국 벌을 받고, 착하게 살면 언젠가 보상이 온다'는 감각. 어린 시절부터 동화와 교육을 통해 체화된 이 세계관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게 우리 심리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부당한 일을 겪으면, 이 믿음이 통째로 흔들린다. 나쁜 사람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심지어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의 그 불쾌함. 그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내가 믿어온 세계의 질서가 무너지는 감각이다. 복수에 대한 충동은 그 붕괴된 질서를 내 손으로 복원하려는 심리적 반응일 것이다. 가해자를 응징해야만, 세상이 다시 공정하다는 느낌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박연진." 이 선언은 단순한 증오가 아니다. 오랫동안 타인의 손에 쥐여 있던 자기 삶의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강렬한 의지일 것이다. |
수치심은 어디서 오는가
드라마 속 가해자들은 끝까지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모습은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들은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땐 다 그랬어", "네가 워낙 튀었잖아". 이렇게 자신의 행동을 맥락으로 희석시키고, 피해자에게 원인을 돌린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하는 심리 기제다. 문제는, 이 방어막이 굉장히 잘 작동한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느껴야 할 수치심을, 피해자가 대신 떠안게 만든다. 일종의 가스라이팅이 벌어지는 것이다. "내가 뭔가 잘못했나", "내가 부족해서 이런 일을 당한 건가" 라는 자기 의심은 가해자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전가된 결과다.
복수는 이 뒤틀린 구도를 바로잡으려고 일으키는 행위일 것이다. 내가 짊어지고 있던 수치심을 다시 가해자에게 되돌려주는 것.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 가해자들의 일상에 조용히, 집요하게 침투하는 방식이 그토록 섬뜩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 그것이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어긋난 구조의 정교한 복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복수를 준비하는 동안 일어나는 일
복수를 결심한 사람의 내면에서는 조용하고 잔인한 과정이 시작된다. 상처를 받은 그 순간을 수백 번, 수천 번 되풀이해서 떠올리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반추(Rumination)'라고 부른다. 상처를 곱씹고 또 곱씹는 행위다.
반추는 복수를 향한 동력처럼 보이지만, 실은 상처가 아무는 것도 막는다. 과거의 고통을 현재 진행형으로 유지시키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복수를 완성하겠다는 목표가 생기면 기쁨, 설렘, 사랑 같은 긍정적 감정들이 자동으로 차단된다는 점이다. 감정의 회로를 스스로 꺼버리는 것이다. 지금 행복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유보하는 삶을 산다. 문동은이 10대부터 30대까지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살아온 것은 극적 과장이 아니다. 복수가 삶의 중심이 될 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의 냉정한 묘사일 수 있다.
복수는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복수가 완성된 순간, 많은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감정과 마주한다. 쾌감이나 해방감이 아니라 공허함이다. 이유가 있다. 뇌는 상상 속의 복수에서는 강렬한 쾌감을 느끼지만, 실제 복수가 이루어진 뒤에는 곧 그 자극에 적응해버린다. 기대했던 카타르시스가 생각만큼 오래가지 않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복수가 상처 자체를 없애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해도, 내가 그 시간 동안 겪은 일은 지워지지 않는다. 복수는 치유가 아니라, 외부의 균형을 맞추는 행위다. 내면의 균형은 다른 방식으로 회복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더 글로리>속 복수극이 우리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이유는 현실에서 공적 시스템 — 학교, 회사, 법 — 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불의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더 글로리〉는 그 결핍된 정의를 개인이 집행하는 판타지다.
복수를 원하는가?
복수를 원한다고 말할 때,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해자의 고통인가, 아니면 내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것인가. 이 두 가지는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한다.
진정한 의미의 회복은 가해자의 파멸에서 오지 않는다. 가해자가 만들어놓은 지옥에서 내가 먼저 걸어나오는 것,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것이 심리학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방향일 것이다.
동서고금에 복수를 다룬 이야기들은 많다. 복수를 꿈꾸는 것은 인간적인 것것이다. 그러니 그 감정을 부정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 충동의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은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상대의 추락인지, 아니면 나의 회복인지를 구분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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