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회 대회는 1950년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치러졌다.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두 번의 대회(1942, 1946년 대회가 열리지 못했다.)를 뛰어넘고 1938년 프랑스 대회 이후 다시 열리는 역사적인 대회였다.
1950년 6월 24일 오후 4시,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냐 경기장에서 개막전이 시작되었다. 이 경기에는 13개국이 본선에 진출했는데, 축구 종주국이면서도 처음 월드컵에 참가한 잉글랜드는 칠레를 2:0으로 가볍게 이겼다. 그러나 미국과의 2차전에서는 이변이 일어났다. 잉글랜드가 미국을 좀 얕잡아 봤기 때문이다. 전반 37분, 바르기아(미국) 선수의 센터링이 골로 연결되어 경기는 1:0. 후반 잉글랜드는 무차별 공격으로 총공세를 퍼부었지만 좀처럼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잉글랜드 신문들은 잉글랜드 팀이 미키마우스와 도널드덕에게 KO패 당했다고 혹평을 했고, 이어 잉글랜드는 스페인과의 3차전에서도 1:0으로 패해 예선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 대회의 또 하나의 이변은 전 대회 챔피언인 이탈리아가 스웨덴에 패해 예선에서 탈락한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월드컵이 열리기 바로 전인 1949년 비행기 추락 사고로 대표 선수 8명을 잃는,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4강 준결승전에는 브라질, 스페인, 스웨덴, 우루과이가 진출했고 많은 사람들이 브라질의 우승을 생각하고 있었다. 브라질은 결승 리그 첫 경기에서 스웨덴을 7:1로 꺾었고, 두 번째 경기에서는 스페인을 6:1로 눌러 1승 1무를 기록한 우루과이와는 비기기만 해도 우승할 수 있었다.
브라질과 우루과이의 대망의 결승전. 전반전은 치열한 공방전 끝에 양측 무득점. 후반전에선 브라질의 프리아카 선수가 기습 공격을 시도해 선제 골을 넣었다. 하지만 침착하게 반격에 나선 우루과이는 후반 22분 스키아피노 선수의 골로 동점을 이뤄냈다. 우루과이 응원단은 열광적인 응원과 환호를 보내 경기장을 뜨겁게 달구었고, 브라질 선수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경기 종료 10분 전, 기지아(우루과이)의 역전 골! 경기장은 무거운 침묵 속에 잠겼고 69명의 관중들이 기절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브라질 삼바 축구는 이웃나라인 우루과이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고, 선수들은 우루과이를 영원한 적으로 기억하며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