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그는 경북대학교 문리대 국문과의 주임으로 재직하면서 교재용 이론서 『시론』을 펴낸다. ‘민음사’가 기획한 ‘오늘의 시인 총서’ 가운데 하나로 시집 『처용』을 출간한 것은 1974년의 일이다. 1976년에는 수상집 『빛 속의 그늘』과 시론집 『의미와 무의미』, 시선집 『김춘수 시선』, 1977년에는 시선집 『꽃의 소묘』와 시집 『남천(南天)』, 1979년에는 월평과 시평을 담은 시론집 『시의 표정』과 수상집 『오지 않는 저녁』을 내놓는다. 이 무렵 영남대학교 문리대 국문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그는 이 학교의 문리대 및 문과대 학장을 지내면서 1980년 시사 칼럼을 주로 담은 산문집 『시인이 되어 나귀를 타고』와 시집 『비에 젖는 달』을 펴낸다.
1981년 4월, 김춘수는 교수에서 정치가로 변신해 국회 의원이 된 뒤 문공 위원으로 활동한다. 이즈음 예술원 회원으로 피선되기도 한 그는 1982년에 들어 경북대학교에서 명예 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시집 『처용 이후』와 전 3권의 『김춘수 전집』을 ‘문장사’에서 펴낸다. 1983년에는 『김춘수, 현대시 문학 대계』, 1985년에는 수상집 『하느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을 내놓으며, 1986년에는 ‘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과 ‘한국시인협회’ 회장에 동시에 임명된다. ‘서문당’에서 『김춘수 전집』이 나온 것도 같은 해의 일이다. 1988년 해외 여행을 하고 돌아온 그는 시집 『라틴 점묘(點描) · 기타』를 펴낸다. 1989년에는 『시론』을 증보한 이론서 『시의 이해와 작법』을 내놓고, 1990년에는 시선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펴낸다.
1991년 시론집 『시의 위상』을 내놓은 김춘수는 박의상 · 이승훈 · 오세영 같은 후배 시인들의 도움을 받아 고희 기념으로 연작 장시집 『처용 단장』을 펴낸다. 같은 해 10월에 그는 ‘한국방송공사(KBS)’의 이사로 취임한다. 시선집 『돌의 볼에 볼을 대고』를 내놓고, 원로 시인으로서 ‘은관 문화 훈장’을 받은 것은 1992년의 일이다. 1993년에 산문시집 『서서 잠자는 숲』을 펴낸 뒤 시인은 그 동안의 창작 생활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각오를 밝힌다.
연작시 「처용 단장」을 끝내고 나자 나에게는 휴식기가 왔다. 숨을 좀 돌리자는 생각이다. ‘무의미의 시’를 고집하는 동안 나는 너무 팽팽한 긴장 속에서 시작(詩作)을 해 왔다. 용케도 지탱해 왔다고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긴장을 풀고 새로 시도해 본 것이 산문시다. 이것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 93년에 낸 산문시집 『서서 잠자는 숲』이다. 나는 또 새 길을 개척해야 할 듯하다. 시를 쓴다는 것은 부단한 설레임 속에서 산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된다고 나는 늘 생각하고 있다. 나는 이제 딴데에 한눈을 팔 그런 나이도 아니다.
김춘수, 「통영 바다, 내 마음의 바다」, 『김춘수의 문학 앨범』(웅진출판, 1995)
김춘수는 이후에도 시집 『호(壺)』 등에서 “새 길을 개척”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 1997년에 들어 그는 자전 소설 『꽃과 여우』와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를 펴낸다. 『꽃과 여우』는 일흔다섯 나이에 이르러 문득 유년 시절부터 1950년대의 삶까지를 돌아보는 회상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인을 평생 사로잡고 있는 화두는 ‘나는 왜 여기 이러고 있는가.’다. 이 화두는 실존의 본질과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다. 그러니까 『꽃과 여우』는 그 화두를 풀어나가는 도정에서 자연스럽게 얻은 책이다. 시인이 어릴 적에 처음으로 타자와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었을 즈음 타자와 세계 앞에서 겪은 것은 자아의 분열이다. 벌써 이 무렵부터 시인은 제 눈앞에 있는 타자와 세계를 응시하며, 문득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 이러고 있는가.’하는 실존의 현기증을 일으키는 형이상학적 물음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시인은 사석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면 우리가 얼마나 왜소한 삶을 살았는지를 절감하게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할 만큼 일찍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깊이 빠져 거기서 많은 것을 건져 올린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작품을 낱낱이 다 읽었다. 그 중에서도 『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은 몇 번이고 되풀이 읽고 또 읽었다. 너무도 벅찬 감동이었다. 그 감동은 되풀이 읽고 또 읽어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것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나에게는 하나의 계시였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면 우리가 얼마나 왜소한 삶을 살았는가를 절감하게 된다.
김춘수, 『꽃과 여우』(민음사, 1997)
김춘수는 처음 시를 쓸 때부터 시에서 의미를 지워내려고 애쓴다. 그리고 끊임없이 사회 현실 또는 역사로부터 자신의 내면 세계, 무의식으로 도망친다.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나쁜 현실로부터의 도피”인데, 그것은 소극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실 부정인 셈이다. 시인은 스스로 내면 세계에 침잠해 자신에게 하나의 ‘계시’로 다가온 바 있는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랬듯이 삶의 덧없음과 싸우며 실존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붙들고 고투한다.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고투의 흔적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한마디로 사물(事物)의 사물성(事物性)을 집요하게 탐구하였다. 시에서의 언어의 특성을 다른 어떤 시인보다 날카롭게 응시하며 존재론적 세계를 이미지로 노래하였다. 시집으로 <구름과 장미> <늪> <기(旗)>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처용(處容)> <남천> <비에 젖은 달> 등이 있으며 시론집도 다수 있다. 1958년 한국시인협회상, 1959년 아시아자유문학상을 수상했다.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제1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이 시기를 두고 훗날 김춘수는 “한마디로 100%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면서 “처량한 몰골로 외톨이가 되어,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어쩔 줄 모르고 보낸 세월”이었다고 회고했다.
2004년 11월 29일, 향년 83세로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