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봄날의 기억…순천은 애니메이션 피버, 순천만은 골드러시◆
순천만 봄날의 기억…순천은 애니메이션 피버, 순천만은 골드러시
파르라니 봄이 왔지만 순천만은 느긋하다. 무채색의 람사르 습지는 춘래불사춘~이 아니다. 갈대의 꿈은 계절의 변화무쌍함에 촐싹대지 않고 생명을 끌어안고 골드러시를 이룬다. 갈대 새순이 이제야 늦잠에서 깨어나,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다. 그들이 만난 것은 우주다. 유니버스를 타고 온 캐릭터가 그림 같은 세상에 화룡점정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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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생태관광지에서 문화산업 도시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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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일군의 흑두루미가 이주를 위해 마지막 비상을 준비하고, 짱뚱어는 개구리 코스프레 하듯 뻘밭을 뛰어다닌다. 갈대 사이를 산책하던 칠게는 탐방객 발소리에 놀라 꼬리를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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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몸단장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봄을 지고 나르는 바람이 갈대밭을 빗질하고, 온기 품은 햇살은 순천만이 맨살을 드러낸 쇄골에서 이어진 어깨선을 따라 펄가루를 뿌려 화사하게 분단장을 한다. 순천만에 어깨끈을 걸친 낭창낭창 하늘거리는 이사천에도 해거름의 급한 발걸음이 흘린 빛가루가 사금파리처럼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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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에 이르는 길은 산화공덕이다. 꽃길만 걸으라는 덕담처럼 벚꽃이 탐방객의 동선에 꽃비를 흩날려 응원한다. 지난 겨울 16만 마리의 철새가 거쳐 간 이곳의 터줏대감들에게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왔다. 굴러온 돌에도 눈치껏 살아남았으니 이제 그들의 시간이다. 순천만의 방문객도 선수교체다. 색색으로 폼을 낸 사람들의 발길 역시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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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00만 명이 방문한 순천만국가정원은 생태관광지에서 젊은 세대가 머무르는 문화산업도시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생태를 보존하면서 콘텐츠를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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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문을 연 순천만국가정원이 개장 7일 만에 탐방객 21만 명을 돌파했다. 2023국제정원박람회의 흥행을 이은 아이템은 우주시대를 맞아 ‘우주인도 놀러 오는 순천’이다. 순천만국가정원이 아날로그 정원과 AI·문화콘텐츠 등이 어우러져 새롭게 태어났다. 이곳을 찾으면 우주선이 막 착륙한 듯한 ‘스페이스 브릿지’다. 175m의 다리 내부에는 관람객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미디어연출로 곳곳이 포토스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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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브릿지를 건너면 시원한 개방감으로 눈을 즐겁게 해주는 5000평의 화훼 공간 ‘스페이스 허브’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범 운영 중인 국가정원 야간 프리미엄 ‘나이트 가든 투어’도 관심을 끈다. 어린이 관람객을 사로잡은 귀여운 스탬프 투어 ‘작은 정원사의 모험’, 춤추는 세포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듯한 ‘유미의 세포들 더무비’, 4D 입체영상관과 인터렉티브 전시, 프로젝션 맵핑이 있는 시크릿 어드벤처도 인기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다.
흑두루미 떠난 자리, 도요새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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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은 염습지(갈대와 칠면초 등 염생식물 서식 갯벌)가 남아있는 한반도 유일의 갯벌이다. 시가지를 관통하는 동천, 상사 조절지댐에서 이어지는 이사천, 신도심을 통과하는 해룡천이 순천 앞바다로 꿈틀거리며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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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행 비행 편을 놓쳤는 지 노랑부리저어새와 흑두루미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에 빠졌다. 김경선 순천만습지생태해설사는 지난 1일 “지난 겨울 흑두루미 7238마리가 순천만을 찾았다”며 “대다수 지난달 러시아로 떠났지만 지금 21마리가 남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7일 모두 떠났다.
자연이 빈자리를 그냥 둘 리 없다. 알락꼬리마도요, 민물도요, 검은머리물떼새 등 도요물떼새들이 도착하고 있다. 순천시는 계절별 탐조 신동선을 개발해 체류형 고품격 탐조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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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들이 비행으로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한다면 갈대 사이에서 숨바꼭질하는 생명들로 번잡스럽다. 어류 230종, 게류 193종, 새우류 74종, 조개류 58종 등이 이 갯벌에 터전을 잡았다. 김 해설사는 “순천만에서는 다양한 생물을 만날 수 있다”면서 “1급 멸종위기종 수달이 새끼들을 훈련시키는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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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생물이 서식한다는 것은 그만큼 영양염류가 풍부하고 생산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갯벌의 생산성은 육지에 비해 9배 정도나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는 “갯벌의 생태적 가치는 1㏊(0.01㎢)당 9990달러로, 같은 면적 농경지 가치(92달러)보다 100배 이상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순천만 습지 거주 동물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사람의 동선은 최소화됐다. 10년 전 정원박람회를 위해 순천의 전봇대는 뽑혀 나갔다. 멸종위기종 흑두루미를 위해서다. 왕복 4차선 아스팔트 도로는 잔디로 옷을 갈아 입었다. 순천만의 탐방객은 갈대밭 위에 조성된 덱으로 습지를 만끽할 수 있다. 용산전망대에 서면 22.6㎢(690만 평) 너른 갯벌과 5.4㎢(160만 평)의 빽빽한 갈대밭이 눈 앞에 펼쳐진다.
아날로그 정원, 디지털 웹툰 꽃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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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습지가 동물을 위한 삶의 터전이라면, 순천만국가정원은 사람을 위한 쉼터다. 사실 순천만국가정원은 습지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서 탄생했다. 순천만 습지가 명성을 얻으면서 2002년 연간 10만 명이었던 관광객이 3년도 안 돼 300만 명까지 늘었다. 늘어나는 차량과 탐방객으로 순천만의 생명이 위협받았다. 순천시는 전문가들과 연구를 진행해 순천만의 입구를 도심 방향으로 옮기고 순천만으로 진입하는 차량을 통제하기도 했다. 순천만과 5.5㎞ 떨어진 도심 지역에는 거대한 정원이 들어섰다. 순천만국가정원은 습지의 파괴를 최소화하고 도심 공간이 팽창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만든 에코벽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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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는 이곳에 꽃과 나무를 심어 정원을 조성했고, 2013년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했다. 당시 440만 명이 방문객이 순천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2015년 순천만정원은 국가정원 1호로 지정됐다. 첫 박람회가 열린 지 10년 만인 지난해 2023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렸다. 하지만 순천의 고민은 계속됐다. 지방에 일자리가 없어 젊은이들이 수도권으로 향하는 현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이에 순천시는 관람객이 잠시 머무는 정원도시를 넘어 젊은이가 살만한 문화산업도시로의 변화를 선포했다.
순천만 봄날의 기억…순천은 애니메이션 피버, 순천만은 골드러시
‘K-디즈니’ 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정원에 녹아들었다. 애니메이션, 웹툰 등 문화콘텐츠 산업을 순천에서 키우겠다는 것이다. 어린이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노을정원과 키즈가든에는 자연주의 환경예술가 박봉기 작가의 작품이 설치됐다. 정원에서의 특별한 하룻밤을 선사했던 가든스테이 쉴랑게는 워케이션을 위한 공간이 됐다.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인 찰스 젱스가 설계한 순천호수정원과 이탈리아, 네덜란드, 튀르키예 등 다양한 국가의 정원도 만나볼 수 있다.
순천만 봄날의 기억…순천은 애니메이션 피버, 순천만은 골드러시
순천의 꿈은 단지 정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 클러스터가 세워진다. ‘레드슈즈’·‘유미의 세포들’·‘퇴마록’ 등 인기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기업 로커스(LOCUS)가 본사를 순천으로 옮기는 등 기업들의 호응도 이어지고 있다. 순천의 꿈은 정원을 채웠고, 국가정원은 캐릭터 뛰노는 만화경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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