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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를 찾아서] “빈부가 건강 격차를 만드는 시대, 비만형 당뇨 대비해야”
윤건호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제2형 당뇨병 가운데 비만형 당뇨 늘어
소득수준 낮은 지역일 수록 당뇨 환자 많아
체중 줄이고 신장 부담 없는 SGLT-2 억제제 관심
필수의료 기능 유지하려면 중환자 만들지 말아야
만성질환 관리하는 동네병원 기능 중요
김명지 기자
입력 2023.07.16 06:00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가톨릭대의대 내분비내과 윤건호 교수가 당뇨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명지 기자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가톨릭대의대 내분비내과 윤건호 교수가 당뇨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명지 기자
지난 2021년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한 ‘오징어게임’에서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은 실직 후 도박에 빠져 무기력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 어머니의 단칸방에 얹혀살면서, 어머니 체크 카드를 훔쳐 경마장에 갈 정도의 밑바닥 인생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목숨을 건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당뇨 합병증인 당뇨발(당뇨병성 족부병증)로 발이 썩어들어가는 어머니를 살리려면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뇨병(糖尿病)은 ‘소변에 당이 있는 병’이라는 뜻이다. 몸속에 포도당(혈당)이 소변으로 흘러넘친다는 증상에서 유래했다. 포도당이 소변으로 빠져나가는 게 무슨 큰 문제인가 싶지만, ‘오징어 게임’의 당뇨발처럼 내 발이 곪아서 썩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매우 무서운 병이다. 우리 몸의 기본 에너지원인 포도당이 소변으로 흘러넘친다는 건, 우리 몸이 기본 대사를 못 할 정도로 망가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일수록 당뇨 환자가 많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형 당뇨를 연구해 온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윤건호 교수는 지난 2017년 서울 자치구별 비만형 당뇨 유병 인구를 표시한 지도를 노트북 모니터에 띄웠다. 유병 인구가 많을수록 빨간색이라고 설명했는데, 강남 3구만 주황색이고 나머지는 모두 위험 수준인 ‘빨간색’을 가리켰다. 도봉⋅강북⋅중랑구의 색깔은 유난히 새빨갛다.
윤 교수는 “당장 서울만 놓고 봤을 때 소득 수준이 높은 강남 3구를 제외한 지역에서 비만형 당뇨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이에 대비하는 보건 의료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가톨릭대의대 내분비내과 윤건호 교수가 당뇨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명지 기자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가톨릭대의대 내분비내과 윤건호 교수가 당뇨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명지 기자
단순히 발병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21년 공중위생학 분야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당뇨환자의 소득이 낮을수록 당뇨발이 나타났을 때 5년 내 사망할 위험이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약 2.6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윤 교수는 “당뇨병만큼은 빈부 격차가 건강 격차로 나타나고 있다”며 “서양형 당뇨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한국인 당뇨를 20년 이상 진료하고 연구한 당뇨병 명의로 통한다.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를 받았다. 이후 대한당뇨병학회 부회장을 거쳐 대한당뇨병학회 이사장까지 지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뇨는 무엇인가. 어떻게 진단하고 정의 내리나.
“당뇨병은 내 몸이 혈당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병이다. 8시간 이상 금식을 한 상태에서 공복혈당 126㎎/dL 이상, 식후 2시간 혈당 200㎎/dL 이상일 때 당뇨로 진단한다. 또 당화혈색소 검사 결과가 6.5% 이상인 경우를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당화혈색소는 지난 2~3개월간의 평균적인 혈당을 반영한 수치인데, 공복혈당뿐 아니라 밥 먹고 난 후의 평상시 혈당 조절도 판단기준이 된다는 뜻이다.”
-너무 전문적이다. 좀 더 쉽게 설명 부탁드린다.
“우리가 밥⋅빵을 먹으면 포도당으로 분해된다.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은 우리 몸속 세포가 포도당을 쓰도록 만든다. 인슐린이 선천적으로 분비를 못하는 것인 제1형 당뇨병이고, 인슐린 분비는 되는데, 비만이나 사회적 유전적 여러 가지 문제로 내 몸 세포가 인슐린 분비를 알아차리지 못하게(저항성) 기능이 떨어진 것을 제2형 당뇨로 분류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관리하는 당뇨’는 제2형 당뇨에 해당한다. 35세 이후에 서서히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당뇨병 치료의 핵심은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혈당을 적정한 수준으로 관리해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당뇨병이 그렇게 위험한가. 혈당 관리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혈당 관리가 안 되니까 그게 문제다. 혈당이 너무 올라서 머리로 가는 혈관이 문제가 생기면 뇌졸중, 그다음에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막히면 심근경색, 심부전으로 사망한다. 혈당이 올라서 신장이 망가지면 신부전, 망막으로 가면 망막증으로 눈이 망가진다. 몸속에 넘치는 당은 감각⋅운동⋅자율 신경도 훼손시킨다. 이게 당뇨발이다. 몸에 상처가 나도 알아채지 못하고, 상처 회복이 안 돼 썩어 들어간다. ”
-당뇨병의 초기 증상이 궁금하다.
“당뇨병은 크게 3다(多) 증상을 경험하게 된다. 다뇨(多尿)⋅다음(多飮)⋅다식(多食)이다. 소변을 많이 보게 되고, 갈증이 심해 물을 많이 마시게 되며, 허기가 져서 점점 더 먹으려 하는 증상이다. 전조 증상으로는 체중이 갑자기 늘고, 만성 피로감을 느끼고 눈이 침침한 등 증상이 있으면 당뇨를 의심해야 한다. 이 모두 혈당이 높아지면서 생기는 증상들이다.”
서울성모병원 유튜브 캡처
서울성모병원 유튜브 캡처
-한국형 당뇨병의 특징이 있는지 궁금하다. 서구와 비교해서 특이한 점이 있나?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당뇨 합병증인 심혈관 질환으로 많이 사망한다면, 한국은 신장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서양에서는 65세 이상 뚱뚱한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비만형 당뇨가 많지만, 한국은 혈관이 깨끗한데, 혈당 관리가 잘되지 않는 이른바 ‘마른 당뇨’가 많이 보인다. 마른 당뇨의 합병증으로는 망막증(망막 손상), 신증(콩팥 손상) 등이 있다. "
-한국은 비만형 당뇨가 많지 않으니 큰 문제가 아니란 건가.
“한국에서 비만형 당뇨가 아예 없다는 뜻이 아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제2형 당뇨의 55% 정도가 비만형 당뇨로 절반을 차지한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은 훨씬 많다. 그리고 한국도 그 비중이 점점 증가 추세다. 특히 소득이 낮은 지역일수록 비만형 당뇨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요즘에는 효과 좋은 신약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어서 다행이다.”
-효과 좋은 약이라면 어떤 약들이 있나. 당뇨 치료제에서 파생된 약들이 많다고는 들었다.
“요즘에는 SGLT-2 억제제나 GLP-1 유사체처럼 살 빠지는 당뇨약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계열의 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요즘 비만치료제로 더 유명한 삭센다가 GLP-1억제제다.”
-그렇다면 SGLT-2 억제제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나.
“SGLT-2 억제제는 10년 전 쯤 개발된 당뇨병 치료제인데, 요즘 혈당 관리뿐만 아니라 심부전 치료, 만성 신부전 예방, 고혈압 저하, 체중 감소 효과 등으로 쓰임새가 확대되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SGLT-2 억제제를 21세기 스타틴에 견준다. 스타틴은 1980년대 말에 등장해 심혈관질환 주범 고(高)콜레스테롤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약물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SGLT에서 S는 나트륨(Sodium), GL은 포도당(글루코스) T2는 운반체(Transporter)를 뜻한다. 우리 몸의 염분(나트륨)과 당(포도당) 흡수를 억제해 혈당과 혈압을 낮추는 약이다. 우리 몸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 소변으로 빠지는 당이 없도록 대사 과정에서 모두 재흡수해서 에너지로 쓴다. 이 시스템이 망가져서 혈중 포도당 수치가 올라서 건강을 망치는 것이 당뇨다. SGLT-2 억제제는 몸속 과도한 염분과 당을 소변으로 배출해 혈당, 혈압을 낮춘다. 이 약을 먹으면 하루 평균 약 70g의 포도당이 소변으로 빠진다. 포도당 70g이면 280㎉인데, 이건 자전거 빠르게 1시간 달려야 가능한 수치다.”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가톨릭대의대 내분비내과 윤건호 교수가 당뇨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명지 기자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가톨릭대의대 내분비내과 윤건호 교수가 당뇨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명지 기자
-기존 치료제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기존의 치료제들은 혈당을 낮추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몸 속 다른 문제는 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당뇨병 1차 치료제로 쓰이는 메트포르민은 백합 추출물에서 나온 약이다. 약을 쓴 역사가 길기 때문에 안전성이 입증돼 있으니, 처방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옛날 약이라 약값이 저렴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러나 혈당을 낮춘다는 것 말고는 다른 효능 효과가 거의 없다. 여러 부작용 문제도 나오고 있다. 메트포르민을 고령자에게 처방하면 식욕 저하로 체중 감소가 심하고, 혈당만 낮추다 보니 약을 잘못 쓰면 환자가 저혈당 쇼크에 빠질 위험도 있다.”
-그렇다면 SGLT-2와 GLP-1은 저혈당의 위험이 없나.
“두 약은 과도한 포도당을 배출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저혈당의 위험은 없다고 봐야 한다. 두 약 모두 ‘살 빠지는 당뇨약’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성격이 조금 다르다. SGLT-2가 심부전과 신부전 예방 효과가 있다면, GLP-1은 심혈관 관리와 체중 감량에서 훨씬 효과가 있는 약이다. 한국형 당뇨가 겪는 신장 합병증의 관리와 약값 측면에서 SGLT-2의 효용성이 좋아서, 재조명받고 있다.”
대한당뇨병학회는 올해 5월 진료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그때 학회 내부에서 SGLT-2 억제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고 한다. 그 결과 지금까지 신부전(만성 콩팥병)을 동반한 당뇨 환자에게 SGLT-2 억제제를 포함한 치료를 우선 권고하는 수준이었다면, 앞으로는 혈액 중 포도당 수치(당화혈색소)와 무관하게 신부전 환자라면 SGLT-2 억제제를 1차 치료제로 쓸 수 있게 됐다.
-대웅제약이 개발한 엔블로(성분명 이나보글리플로진)가 SGLT-2 억제제인 것으로 안다. 국산 신약이라고 들었는데, 이건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 10년 전에 나온 약이 신약이라니.
“그만큼 신약을 개발하기 어렵단 뜻이다. 한국에서 SGLT-2 억제제가 쓰이기 시작한 지 10년 만에 국산 약이 개발됐다니 의사로서는 감개무량하다. 엔블로는 기존의 SGLT-2 억제제 계열 치료제와 비교하면 훨씬 적은 용량(0.3㎎)으로 같은 효과를 낸다. 임상시험에서 혈중 포도당 수치도 낮추고, 목표 혈당 달성률도 70% 정도로 높았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기대하고 있다.”
-효능이나 효과가 글로벌 제약사가 개발한 SGLT-2 큰 차이는 없나.
“효능과 부작용은 허가받은 임상 시험으로 입증된 거 아닌가. 국제 과학인용색인 확장판(SCIE)급 논문인 ‘당뇨, 비만, 대사(DOM)’ 저널에 엔블로 임상시험이 온라인 게재됐다. 이 저널은 내분비 대사 분야 학술지로 2021년 인용지수(IF) 6.408인 권위 있는 학술지다. 유효성 평가 지표인 ‘엔블로 복용 후 24주 시점의 당화혈색소(HbA1c) 변화량’에서 엔블로 투약군 -0.88%P, 위약대조군 0.11%P이었으며, 두 군간 차이는 -0.99%P로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 이상반응, 약물이상반응 및 중대한 이상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서울성모병원 유튜브 캡처
서울성모병원 유튜브 캡처
-한국 정부가 여러 제약 바이오산업 육성책을 내놓고 있다. 어떻게 보시나.
“긍정적인 신호이긴 한데,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 한국 제약 산업 육성을 위해서 국산 신약을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본은 국산 신약을 개발하면 외국계 제약사 진입을 막은 사례도 있다.”
-엔블로 전도사처럼 보인다.
“그건 SGLT-2 억제제의 장점이 너무 많아서다. 체중을 줄여서 만병의 근원인 비만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신부전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권고하는 것을 망설일 필요가 없지 않나. 엔블로는 약값도 저렴해서 저소득층에게 발병하는 당뇨병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엔블로의 약값은 한 알에 611원 정도로, 기존 SGLT-2 치료제 자디앙(660원) 슈글렛(685원) 스테글라트로정(666원)보다 저렴하다.
-신약 개발도 중요하지만, 환자 관리를 위한 의료 시스템도 중요하지 않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은 동네병원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대학병원에서는 제1형 당뇨병 환자나 당뇨로 심한 합병증을 앓는 중환자들을 본다. 요즘 필수의료가 붕괴한다고 걱정한다. 이 문제들이 결국은 의료비 때문이다. 그런데 의료비 지출의 90% 이상은 중환자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중환자를 줄이는 게, 국가의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길이다. 증상이 경미한 환자가 동네 병원을 다니며 관리를 받으면 그 환자는 중환자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동네병원만 잘 다녀도 환자 자신의 건강은 물론 국가 재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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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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