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4세는 절대 왕정을 상징하는 초호화 궁전인 베르사유 궁전을 지었다. 태양왕으로 불리던 그는 프랑스를 유럽 최강의 나라로 만든 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게도 고민이 있었으니, 바로 날마다 벌이는 똥과의 전쟁이었다.
‘에티켓’과 ‘여기서 싸지 마시오.’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매일 무도회가 열렸다. 하지만 이 화려한 궁전에는 왕의 개인용 변기 외에는 화장실이 따로 없었다. 귀족들이 아무 데서나 볼일을 보는 바람에 정원은 망가지고 궁전은 항상 악취를 풍겼다. 이에 궁전의 관리인은 정원을 보호하려고 용변을 보러 가는 길을 안내하는 ‘에티켓’이라는 팻말을 세웠다. 훗날 이 에티켓은 예의범절을 뜻하는 말이 되었는데, 이는 에티켓이라는 단어와 관련된 여러 가설 중 하나다.
오렌지 꽃 향기로 궁전을 뒤덮자!
베르사유 궁전에는 ‘오렌지 정원’이라는 뜻의 오랑제리 정원이 있다. 이곳에는 천 그루가 넘는 오렌지 나무가 있다. 루이 14세는 태양을 연상시키는 오렌지를 좋아해 정원에 오렌지 나무를 많이 기르게 했는데, 똥 냄새가 진동하는 궁전을 상큼한 오렌지 향기로 덮으려는 것이기도 했다.
한편, 축제 때면 분수대에서 오렌지 주스를 뿜어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사치가 얼마나 심했는지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루이 14세, 하루 종일 똥을 쌌다고?
루이 14세의 담당의사 다칸은 치아가 만병의 원인이라고 생각해 왕의 이를 다 뽑게 했다. 루이 14세는 이가 없어 음식을 씹지 못했다. 소화가 안 돼 늘 설사약을 먹어야 했는데, 그러면서도 먹기는 굉장히 잘 먹었다고 한다. 하루 종일 설사를 해야 했던 루이 14세는 변기에 앉아 회의를 하기도 했고, 덕분에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다녀야 했다. 그래서 냄새를 감추려고 향수를 계속 뿌려댔고, 신하들도 손수건에 향수를 적셔 코를 막고 있었다고 한다.
참고도서: 《이야기역사교과서 빅히스토리》 24권 〈절대 왕정 시대의 유럽〉 중




■ 절대 왕정 시대에 우리나라는?
○ 1543년 최초의 서원이 만들어지다
16세기, 사림이 정치에 활발하게 진출하면서 성리학적 통치 이념과 사회 윤리가 널리 퍼졌다. 사림은 향촌 사회에서 서원과 향약을 통해 성리학의 실천 윤리를 확산시켰다. 경상북도 영주에 있는 소수서원은 백운동 서원의 바뀐 이름이다. 백운동 서원은 풍기 군수 주세붕이 고려의 안향을 기리기 위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서원에서는 사림들과 사림의 자제들을 교육하고, 향촌의 풍속을 교화하려는 목적으로 유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이후 1550년에 이황이 풍기 군수로 부임했을 때 명종이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책과 노비, 토지 등도 내려 주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631년 명나라에서 천리경과 자명종이 들어오다
조선 시대에는 중국을 통해 서양 문물이 유입되곤 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정두원(1581~?)은 1630년에 사신으로 명나라에 갔다가 그곳에서 화포, 천리경, 자명종 등 서양의 새로운 물건들을 가지고 이듬해 돌아왔다. 이때 마테오 리치의 《천문서》, 《직방외기》, 《서양국풍속기》 등의 책도 함께 가지고 돌아왔다.
○ 1659년 예송 논쟁이 일어나다
1659년 효종이 죽고 1674년 효종의 비가 죽자,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 조씨의 복상 기간(상복을 입는 기간)을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은 두 차례에 걸쳐 대립하게 된다. 이 대립을 기해예송, 또는 기해복제라고 부른다. 당시 예송을 주도한 인물은 서인의 영수 송시열과 남인의 영수 허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