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다 방문에 걸어야 할 자물통을 주머니에 넣고 와버렸다.
그 날은 '서울역 쪽방상담소'에서 식권 타는 날인데,
김명성시인이 해 바뀌기 전에 술 한잔 하자는 시간과 한 시간 차이라 마음이 조급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서울시에서 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실시한
‘아름다운 동행’ 식권 사업이 주민들의 호응으로 내년에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2023년 1월분 식권을 27일 오후 2시부터 준다는 벽보가 나 붙었는데,
세시까지 약속장소인 응암동 가려면 늦을 것 같아 30분 일찍 나섰다.
한 시간이 넘어서야 차례가 돌아왔는데,
지켜 보던 상담소 전실장이 소장이 찾는다며 날더러 소장실에 가자는 것이다.
식권부터 받아 가겠다는데, 잠시를 못기다려 먼저 가자고 재촉했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소장부터 만나주었으나,
대개 주민들과의 마찰도 이런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
상담소 소장이 나를 찾는 이유는 대충 짐작되었다.
블로그에 올린 ‘쪽방상담소는 갑질 그만하고 자세를 낮추라‘는 글에
상담소 소장이 쓴 장문의 해명 댓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유소장과는 첫 대면으로, 소장이 바뀐 것도 댓글을 보고서야 알았다.
줄을 세울 수밖에 없는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하며, 그 해결 방법을 물어왔다.
다소 불공평한 점은 있으나 번호순으로 돌아가며 받도록 해야 한다.
소량 물품은 푸드마켓과 연계하여 나누어주는 등 자정의 노력이 요구된다.
특정인을 거명하는 것은 자제해 달라는 말은 수용했다.
그리고 식권사업은 사용한 식권을 매일 회수하는 일도 힘들지만,
싼 가격으로 뒷거래 된다는 이야기가 들린단다.
그 문제는 매달 식권을 나누어 줄 것이 아니라 전 주민을 대상으로 전산화 해야 된다.
지금 쪽방상담소에서 주민등록증에 붙여 확인하는 바코드처럼
주민등록증 한쪽에 별도의 식권 바코드를 붙여 관리하면 될 것 아닌가?
해당 식당에 별도의 단말기를 비치하는 불편이야 따르지만..
식권은 모두에게 줄 수 있는 량인데, 왜 시간을 정하여 줄 세우냐고 물었더니,
안 그러면 하루 종일 지키고 있어야 한단다.
이 말은 주민들 입장보다 업무의 편의성이 먼저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동사무소처럼 업무시간에 언제나 받을 수 있도록 담당자만 있으면 된다.
뒤늦게 식권을 받아 나왔으나, 이미 세시가 가까웠다.
쪽방에 올라 가 혼자 바쁜 걸음 쳤는데,
주머니에 자물통이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을 때는 응암역에 내릴 무렵이었다.
요즘들어 잊어버리는 일이 잦기는 하지만, 자물통을 가지고 나온 적은 처음이었다.
나이들어 잦아지는 치매증상이야 어쩔 수 없어나, 습관이란 게 무서웠다.
아무것도 가져갈 것 없는 쪽방 문 열어두고 온 것에 왜 그리 신경 쓰였는지 모르겠다.
누구처럼 이불 밑에 감추어 둔 돈이 있나, 가져 갈 것이라고는 고물 컴퓨터 뿐인데 말이다.
혹시 배고픈 사람이 책상에 놓인 식권이라도 가져간다면, 그건 적선이 아니겠는가?
여태 신발 도둑 맞았다는 소리는 들어도 방에 도둑들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약속장소인 응암동 '풍천장어'집에 갔더니, 김명성, 조해인시인과 정동지도 왔더라.
과분한 술 상 앞에 모여앉아 한 해 못다한 아쉬움을 달랬다.
꾸물대는 장어처럼 등달아 꾸물댈까 걱정되었다.
그런데, 김명성씨가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김신용 시인이 아파트를 샀다는 것이다.
한 달 전만해도 인사동 ‘유목민’에 나와 디카 시를 쓴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사이 홍제동 셋집에서 충주 아파트로 이사 간 것이다.
가난한 시인이 집을 샀다는 자체만도 뉴스가 아니겠는가?
시만 쓰는 시인이 아파트를 샀다는 거짓말같은 사실 말이다.
강남처럼 칠억이 아니라 칠천만원이라지만...
내년에는 몸이 아픈 친구들도 찾아보기로 했다.
김명성씨가 며칠 후 이청운화백 문병 가자는 이야기를 꺼냈는데,
'뮤아트' 김상현씨도 몸쓸 병으로 여러차례 수술받아,
그 통증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
새해에는 이청운화백도 만나고, ‘뮤아트’ 가서 김상현씨의 쉰 듯 절절한 노래도 들어보자.
모두의 건강한 한 해를 위해...
사진, 글 / 조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