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조력사망(자살)법의 제정이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고통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 저희들의 토론 주제가 된 의사조력사망(자살)법을 포함하여 현존하는 모든 법령은 제정당시의 입법목적과 달리, 시행단계에서 여러 예상치 못한 부작용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의 제정과 시행에 있어서는 사전의 철저한 평가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을 그 대상으로 하는 의사조력사망(자살)법에 대해서는 더욱 철저한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쳐야 함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찬반의 의견 교환 과정을 통해 의사조력사망(자살)법에 대해 찬성하는 분들도 해당 법에 대해 심도 있는 이해와 더불어 해당 법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대처방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의사조력사망(자살)법의 시행이 유발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다시 한 번 말해보고자 합니다.
1. 의사조력사망(자살)법의 기준설정 ‘자체’에 대한 문제
앞서 저는 의사조력사망(자살)법의 대상을 확정하는 기준의 설정이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여러 학우분들께서 기준설정의 어려움은 인정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통해 기준설정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자기선택권을 최대로 존중하려는 의사조력사망(자살)법의 기준이 설정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조력사망(자살)법 또한 죽음을 원하는 개인의 뚜렷한 자유의지를 확인으로부터 시작하여 의사조력사망의 실제적인 시행에 있어서 다차원적인 심사 등 엄격한 심사과정을 필요로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를 다시 생각해본다면, 의사조력사망(자살) 또한 (물론 대다수의 심각한 수준의 불치병 환자의 경우 승인이 되겠지만) 엄격한 심사과정 속에서 시행대상에서 박탈되는 대상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됩니다. 또한 이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의사조력사망(자살)법에도 선별의 기준은 존재한다는 뜻일 것이고, 결론적으로 최종목적인 인간의 죽음에 대한 선택의 자유가 어쩔 수 없이 ‘제한적’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됩니다. 사람들은 획일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는 생물이 아니라 제각기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생물이라는 것은 모두 동의하는 바일 것입니다. 따라서 특정 질병 또는 현재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 모두가 다르게 생각함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자신이 정말로 죽어야 한다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생각하지만, 앞서 언급한 객관적이고 엄격한 검증과정 속에서 의사조력사망(자살)이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고 평가되어 대상으로서 배제된다면 그 사람은 의사조력사망(자살)법이 추구하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자유권이 제한적으로 인정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조력사망(자살)법의 기준을 완전히 제거함에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이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의사조력사망(자살)법이 어쩔 수 없이 딜레마적인 문제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2. 자유의사가 없는 환자 또는 의사의 표현이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법적용 문제
의사조력사망(자살)은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최대한 존중하는 법으로서 일차적으로 죽음을 원한다는 ‘대상의 강한 의지’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법의 적용을 받는 불치병 환자 중에서 병의 정도가 심하여 의식이 없는 환자 또는 의사의 표현이 불가능한 환자(식물인간)가 법 집행의 대상으로 놓여 있을 때에는 시행의 첫 단계부터 심각한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환자 본인의 의사가 아닌 가족들의 동의에 의한 비자발적 사망처분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 본인의 의사가 없는 법의 시행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의문에 빠지게 됩니다. 의사조력사망(자살)법이 당사자의 ‘죽음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본인의 완전한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환자의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하는 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3. 의사조력사망(자살)의 적극적 안락사로의 이행 가능성 및 의사들의 죄책감 발생 가능성
의사조력사망(자살)은 의사가 처방하고 지급하는 약물 혹은 주사제의 도움을 받아 실제 죽음의 실행은 안락사를 원하는 본인이 직접 시행하는 방식의 안락사 제도입니다. 말 그대로 의사조력사망(자살)에서 의사는 죽음의 도움을 줄 뿐, 사망에 이르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제공은 죽음을 원하는 본인이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은 어쩔 수 없이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따라서 죽음을 원하는 사람들도 막상 자신의 몸에 죽음을 부르는 약물을 집어넣는 행위는 보통 이상의 용기를 내지 않는 한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을 고통 없이 ‘죽여줄 것’을 선호하는 것이지 ‘자신이 직접 자신을 죽이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교수님께서 강의하셨던 것처럼 자신은 단지 우리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투명한 의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겼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생각과 육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두려움 없이 말 그대로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법령이 제정되고 시행되었을 시에 법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해당 수업을 듣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도를 통달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죽음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의사조력사망(자살)은 결국 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인 안락사로 이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는 인간에 대한 안락사를 주도하는 의사의 죄책감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물론 안락사 집행의 목적이 환자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서의 해방이기 때문에 죄책감은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겠지만(경우에 따라서는 숭고한 사명감도 느낄 수 있겠지만), 결국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행위가 결국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는 행위라는 찝찝함은 어쩔 수 없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해당 법령의 시행은 몇몇 의사들에게 정신적인 부담감을 지우는 행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