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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으나 큰 영향력
마가복음 8:14~21
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저는 어려서 농협에 근무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에서 여러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는 양양에서 졸업하였고,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려고 재수를 하면서까지 입학시험을 치렀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철원에 있는 신철원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제 삶에 처음으로 심히 낙담하여 앞이 깜깜할 때였습니다.
그 무렵 저의 어머니는 새벽 기도를 열심히 다니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에 대한 환상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교회의 강단 앞에서 제가 빨간 옷을 입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덧붙여 말씀하시길 제가 목회자가 될 것 같다는 예언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심코 던진 어머니의 말씀은 제 마음에 깊게 떨어져 목회자에 대해 소원을 하게 되었고, 성취되어 목사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작은 한 마디가 저의 방향을 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에도 작은 것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여 결과를 맺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것을 누룩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누룩은 작으나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보통 누룩은 전통적으로 술을 빚는 데 쓰는 데 사용되는 발효제로, 밀가루에 들어가면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반죽을 발효시켜 부풀어 오르게 합니다. 누룩에 대한 교훈으로 우리 마음에 떨어진 누룩과 같은 현상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이 포함된 마가복음 8장에서 오병이어의 기적과 거의 비슷한 사건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를 신학자들은 이것을 칠병이어의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겉으로 볼 때는 두 사건이 비슷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두 가지 사건은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많은 사람이 들판에서 때를 거르며 허기진 상태로 저녁을 맞이한 것은 공통점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먹을 것을 줘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은 오병이어의 기적의 경우에는 제자들이 먼저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8장 2절에서는 예수님이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라고 하시면서 예수님 자신이 문제를 제기하신 것이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또한, 장소에 따른 반응도 다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갈릴리 지역의 벳새다였다면, 칠병이어의 사건은 갈릴리의 동북편이라 할 수 있는 이방인들이 주로 많이 사는 데가볼리 지역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후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이런 기적을 행하시는 분을 왕으로 삼으면 적어도 식량 문제는 해결되리라는 기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칠병이어의 사건 이후에는 그런 반응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 두 사건을 모두 경험한 제자들로서는 비슷하지만 다른 반응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막 8:13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즉각적으로 떠올린 상징물은 떡입니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이룬 주님의 놀라운 기적에 대하여 아직 흥분을 감추지 못한 상태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살펴보니 떡이 없습니다. 당황하는 제자들과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시고 있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막 8: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여기서 ‘경고하여’는 헬라어 ‘디에스텔레토, διεστέλλετο’로 ‘명령하다’라는 의미도 있고 미완료 중간태를 취하고 있어, 예수님이 몇 번이고 계속해서 지시하시고 당부하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만큼 제자들의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커다란 영향력이 있음을 아셨기에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시길 원하신 핵심은 제자들에게 누룩처럼 퍼져있는 생각의 방향이 그들의 일생을 좌우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룩의 의미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측면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의 말씀이 들어가 천국을 이루는 ‘가루 서 말에 들어간 누룩’은 긍정적으로 말씀하셨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밀가루를 변하게 만드는 누룩의 특성을 사회를 오염시키는 ‘죄와 부패’ 의 상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말씀에서 신앙생활에 틈타오는 외식과 높아지고 싶어 하는 자기 자랑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여기서 벗어나 순결한 신앙은 무엇인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첫 번째 바리새인들의 누룩으로 표현한 외식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사람들의 죄에 대하여 심판을 미루시고 쉽사리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인자하심과 거리가 먼 듯한 무서운 저주를 쏟아내시는 대상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놀랍게도 일반 대중들이 의인이라고 추앙하였고, 자신들 역시 의로운 행위를 돋보이려고 애를 썼던 종교지도자인 바리새인과 서기관이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단적으로 지적하자면 외식(外飾)입니다. 심리학에 페르소나(Persona)란 용어가 있습니다. 이 용어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사용하던 가면에서 유래한 말로, 어떤 한 사람이 사회적인 역할에 따라 달리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페르소나에 능한 부류가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기관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대하여 잘 안다고 자부하였고, 이를 지키므로 일반 사람보다 훨씬 우위(優位)에 있는 의로운 자라고 자처하였습니다.
주님의 눈에는 저들의 안에 담겨 있는 무섭고 추악한 죄가 보이는데 저들은 외양을 꾸미는 데 주력하다 보니 자기 자신을 전혀 바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 대한 논평은 ‘회칠한 무덤’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나타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외식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눅 11: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바리새인들이 행하는 종교 생활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 율법에 따라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철저하게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므로 그들의 종교 생활이 얼마나 경건하고 훌륭한 것인지를 보이고 싶어 했습니다.
마 23: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사람의 시선이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보는 시선에 초점을 맞추고 행동하는 페르소나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의 시선에 끌려가다 보면 자칫 내 신앙의 경건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높아지고자 하는 자기 자랑을 하는 헤롯의 누룩을 조심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헤롯 가문의 왕들은 로마로부터 임명을 받아 팔레스타인 지역을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다스렸습니다. 그러므로 붙여진 호칭이 분봉 왕입니다.
그들은 왕족으로 태어났습니다. 차별과 계급사회였던 당시에 왕의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대단한 권리를 지니고 태어난 것으로 오늘날의 말을 빌자면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입니다. 사람의 심리는 자기가 잘났고 유능하게 여기는 순간 사람에게 인정받고 높임을 받으려 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 헤롯의 누룩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한 경험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었습니다. 그런 분을 주님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어깨를 으쓱거릴 만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다른 사람에 비하여 우월함을 느낄 때 사람들은 이것을 더욱 돋보이려 하고 이를 사랑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2장에서 헤롯이 높아지고자 하는 결정적인 모습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헤롯의 노여움을 샀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자세한 언급이 없습니다만 두로와 시돈의 항구를 이용해서 무역을 통하여 저들의 생필품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헤롯이 이를 막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헤롯과 화친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행 12:21,22에서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보면 저들이 헤롯을 향하여 “당신을 이제부터 신으로 섬기겠나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사람이 아닙니다. 신입니다. 신으로 섬기겠습니다.” 헤롯왕은 너무 기분이 좋았겠지요. 그 안에 하나님처럼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행 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랑 때문에 다가오는 높아지고자 하는 작은 누룩은 우리 안에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되면 현재의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를 돋보이게 만들려고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독소가 될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외식하는 신앙과 교만을 버리고 순결한 신앙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3대 절기 중에 유월절이 있습니다. 유월절이 정월 14일 저녁으로 끝이 나게 되면 그 뒤를 이어 15일부터 무교절이 7일 동안 이뤄집니다. 이때 누룩이 자기 집에 없게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유월절이 오기 며칠 혹은 몇 주 전부터 대청소합니다. 카펫도 청소하고 옷이나 침구, 커튼 등도 세탁하고, 집 안에 있는 먼지를 샅샅이 제거합니다. 주머니까지도 일일이 뒤집어서 털어 냅니다. 너무 낡고 더러운 것들은 새것으로 교체합니다. 가정은 물론이고 건물마다 곰팡이와 먼지를 완전히 닦아 내는 대청소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마을마다 불을 피워 남아 있는 누룩들을 태우고, 식기들과 조리 도구들도 끊는 물로 소독하여 누룩의 흔적조차 모두 없앱니다. 특히 유월절 전날 저녁에는 누룩을 제거하는 일이 그 절정에 이릅니다. 이처럼 무교절을 철저하게 지키려 하였습니다. 이 절기에 주된 것은 누룩 없는 떡, 즉 무교 병입니다. 그러므로 무교 병을 먹고 하나님께 나가서 성회에 참여하고 힘써 이를 지키므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고전 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 하였습니다. 비록 눈에 띄지 않고 사소하기 그지없는 누룩과 같은 교훈에 오염되면 급속도로 신앙이 병들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막 8: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오판한 것이 있다면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의 산물인 떡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누룩과 같이 작은 것이나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에서 아내가 신랑을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고 오직 신랑의 능력을 소중하게 여기고 신랑이 가지고 있는 눈에 보이는 재산에 매여 있다면 그런 관계는 오래가지 않고 파국을 맞게 될 것입니다. 신부는 신랑을 있는 그대로 그 존재 자체를 사랑해야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생명의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율법에 매여 종교 생활을 한다면 이것은 누룩의 악영향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나타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이 옳다라고 여기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렇게 행하므로 스스로 의롭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를 더 사랑하는 헤롯의 누룩을 지닌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를 먼저 사랑하게 되면 자기 것이 소중하고 높아지고 자랑하고 싶어져 주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히 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내 안에 성령을 인정하고 모셔 들일 때 누룩에 오염되지 않고 주님을 먼저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거룩에 이를 수 있고 온전한 거룩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