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은 자신이 대상을 편견 없이 대하는 태도에 작은 만족을 느꼈다. 타고난 성정이라기보다 수양의 결과였다. ‘어렸을 땐 정말 타인을 시시콜콜 판정했는데……’ 지난 세월, 시간의 물살에 깎이고 깨지며 둥글어진 마음이 있었다. 실제로 이십여 년간 이연이 여러 인물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주며 깨달은 사실은 단순했다. 그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해와 갈등이, 드라마가 생겼다.(「홈 파티」, 23~24쪽)
살면서 어떤 긴장은 이겨내야만 하고, 어떤 연기는 꼭 끝까지 무사히 마친 뒤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걸, 그건 세상의 인정이나 사랑과 상관없는, 가식이나 예의와도 무관한, 말 그대로 실존의 영역임을 알았다.(「홈 파티」, 39~40쪽)
어디 얼마나 머물든 주변을 잘 정돈하는 건 내 오랜 습관이자 자부였다. 어릴 땐 안 그랬는데 독립 후 자취하며 생긴 버릇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 나는 좀더 잘 살고 있단 느낌을 받았다. 아직 무언가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았단 실감이었다.(「숲속 작은 집」, 57쪽)
소설가들이 뽐은 올해의 책 1위,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 매년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책ㄱ을 세 권 정도 읽는데 1위이니 당ㅇ녀히 읽을 수밖에, 그리고 김애란 은 친근한 작가니까.
아무리 실용적인 내용이라도 편지에는 얼마간 시간과 정성이 들기 마련이고 그게 발신인과 수신인 사이에 늘 실용 이상의 무언가를 남겼다.(「숲속 작은 집」, 72~73쪽)
실제론 내게 별 관심 없는 이들에게 내 인생을 매번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에게는 그저 삶의 활력소처럼 가볍게 비난하고 싶은 대상이 필요한 것뿐이라고, 삶의 권태를 어느 정도 그렇게 견디는 것뿐이라고 여기려 애썼다. 자기 방의 벽지를 바꿀 수 없을 땐 남의 집 현관이 더럽다고 생각하면 많은 위안이 되니까. 그게 남 뒷얘기 하는 이들 못지않게 속물적인 태도란 걸 알면서도 그랬다.(「숲속 작은 집」, 78쪽)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닌데, 나조차 그런 식으로 누군가의 공간을 침범한 적이 있는데, 그걸 보자 지난 시간 우리가 겪은 과정이, 그 모든 노출과 공개가 부당하고 지리멸렬하게 느껴졌다. 대여 혹은 매매 의사만 있으면 누구든 실거주자 집에 들어와 모든 걸 살펴볼 수 있다는 게.(「좋은 이웃」, 108쪽)
근 일 년간 부동산 기사에는 집값이 안정되길 바라는 무주택자를 조롱하고 무시하는 댓글이 난무했다. 시기니 질투니 하는 말도 모욕적이었지만, 무지니 게으름이니 하는 말도 부당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힘들게 한 건 ‘어쩌면 잘못은 정말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매일 아침 한강을 건너 출근하는 남편은 ‘요즘은 풍경이 다 돈으로 보인다’며 뉴스를 보다 말고 헛웃음을 지었다.(「좋은 이웃」, 120쪽)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좋은 이웃」, 141쪽)
두 사람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 아래서 고전적으로 입맞췄다. 오랫동안 유지해온 ‘적절함’의 거리를 둘이 힘을 합쳐 구겨버렸다. 스무 살의 다급함이나 허둥거림 없이, 과도한 기대나 실망도 없이 서로의 느낌에 집중하면서.(「이물감」, 152쪽)
물론 나이들어 좋은 점도 있었다. 젊은 시절 여기저기 빵가루처럼 지저분하게 흘리고 다닌 말과 마음들, 담백하지 못한 처신들, 쉽게 흥분하거나 화를 낸 뒤 엄습한 부끄러움 같은 건 이제 많이 줄었으니까. 경험이 많다는 건 ‘경험을 해석했던 경험’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냄새는, 헛구역질이나 트림은 ‘해석’이나 ‘의지’로 잘 막아지지가 않았다. 문제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거였다. 기태는 자신이 늙음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안다 믿었던 것조차 실은 아는 게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했다.(「이물감」, 175~176쪽)
고통이 나를 압도할 때 나는 일부러 집밖으로 나가 수백 년 된 나무들 사이를 걷는다. 갓 걸음마를 뗀 아기가 엄마 아빠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하듯 키 큰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공원을 지나간다. 마치 거길 다 통과하면 내가 더 자라나기라도 할 것처럼. 그런 뒤 집으로 돌아와 세상에 고통을 해결해주는 자연 따위는 없음을 깨닫는다. 그러곤 이미 아는 걸 한번 더 깨달으려 다음날 다시 같은 장소로 나간다. 내 고통에 무심한 자연 앞에서 이상하게 안도한다.(「레몬케이크」, 204쪽)
다들 대체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어쩌면 다들 날마다 아무 내색 않고 일터에 나와 있는 걸까?’ 맨정신에, 취기 없이.(「레몬케이크」, 214쪽)
‘삶은 대체로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의 어쩔 수 없음, 그 빤함, 그 통속, 그 속수무책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생각나는 건 결국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인 듯하다’고 했다. ‘쉽고 오래된 말, 다 안다 여긴 말, 그래서 자주 무시하고 싫증냈던 말들이 몸에 붙는 것 같다’고.(「안녕이라 그랬어」, 249쪽)
그런 일은 ‘그냥’ 일어난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저 내 차례가 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 앞에서 매번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을까? 마치 살면서 이별이라고는 전혀 겪어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안녕이라 그랬어」, 250쪽)
연말부터 새해 아침까지 이 소설은 내 손에 있었다.
이제 나는 헌수도 없고, 엄마도 없고, ‘다음 단계’를 꿈꾸던 젊은 나도 없는 이 방에서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정말 많이 배웠어’란 가사의 노래를 듣는다. 보다 정확히는 네가 아니라 너의 부재로부터 무언가 배웠다고.(「안녕이라 그랬어」, 253쪽)
어느 날 직장 동료가 “그럼 더 상급지로 간 거야?”라 물었을 때 쉽게 대답 못한 건, 요즘 부동산 채널에서 유행하는 상급지니 하급지니 하는 말도 그때 처음 들은데다 순간 자신이 개천의 물고기가 된 기분이 들어서였다. 거주지에 따라 ‘급’이 아니라 ‘종’ 자체가 나뉘는.(「빗방울처럼」, 260쪽)
둘은 이 상황을 어떻게든 돌파해보려 애썼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가장 많이 한 일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거였다. 더불어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무언가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빗방울처럼」, 2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