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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2010년. 시민모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크게 보자면 일본정부와 전범기업 미쓰비시를 상대로 겁 모르고 싸우고 있는 단체이지만, 작게 보자면 그 흔한 비영리단체에 아직 명함도 올리지 못한 하나의 모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비록 작은 살림에도 되돌아보면 애환이 없지 않았고, 어쩌면 그 누구보다 정신없이 달려온 한 해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아래 기록들은 모두 전국에 계신 시민모임 회원들이 땀으로 만든 열매입니다. 순서에 상관없이 우선 기억나는 데로 임의로 추려 보았습니다. 미처 놓친 것이 있다면 함께 덧붙여 주십시오. 한해를 마감하는 이때, 가장 아름답고 값진 기억을 되살려 보시고, 여세를 이어 힘찬 2011년을 기약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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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발로 일군 감동...10만 서명운동 |
1.2일 새해 벽두부터 회원들은 거리로 나섰다.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내 첫 거리서명을 시작으로 이후 휴일은 물론, 심지어 5월 5일 어린이날 아이들 손을 이끌고 담양 대나무축제 현장에까지 찾아가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6월 최종 마감 때까지 거의 주말을 반납하다시피 하며 헌신적 활동.
한편으로 강원, 서울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학교, 교회 등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단체 서명운동이 이어졌고, 회원들 또한 주변 지인들을 중심으로 서명운동에 힘을 보태 애초 목표였던 10만명을 훨씬 뛰어넘어 최종 마감 때까지 13만4,162명분이 수합돼, 스스로 만든 결과에 깜짝 놀라기도.
♥애피소드 몇 가지...
▲100여 통에 이르는 우편 서명
: 교회, 학교 등에서 조직적 서명운동에 큰 힘을 보태옴. 그 외 개인들 또한 주변 지인들을 중심으로 우편으로 통해 서명용지를 보내 왔는데, 작게는 3~4명에서 많게는 1천여명이 넘는 숫자까지 이렇게 도착한 우편물만 100여통에 이르렀고, 지역을 뛰어넘어 모아지는 정성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줌. 그 중 눈에 띈 것으로는 싱가포르 교민 류혜씨 등 4명의 서명, 그 외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들의 줄 이은 참여. 그 밖에 따뜻한 격려 문구를 새긴 함께 동봉한 편지까지.
▲프로야구 경기장까지 찾아 서명운동
: 10만명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에 전례 없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프로야구경기장을 찾는 관중을 노리는 것이 그것. KIA타이거즈 구단의 협조를 얻어 입장권 10장씩을 얻어 5.29~30일 양일간 기아-한화 경기가 무등경기장을 찾았으나, 막상 혼탁한 분위기와 경험부족으로 애초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2,210명 정도에 그침.
▲제주, 1만3520명 서명
: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제주모임’ 허중웅 회장님이 불과 한달여만에 13,520명분의 서명을 모아 보내 옴. 이 서명을 통해 목표했던 10만명을 돌파하게 됨.
▲자녀 초등학교 문턱도 넘었다.
: 서명운동에 불을 켠 회원들의 열정은 그 어떤 무모한 짓이라도 가능하게 함. 박 모 회원의 경우 자신의 자녀가 재학 중인 초등학교를 방문, 교장선생님을 만나 서명운동에 협조 해 줄 것을 요청해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서명에 동참하도록 함. 허 모 회원 역시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을 통해 학생들을 서명운동에 참여시킴.
▲미용실, 안경점, 아파트 엘리베이터…
: 이재오의 90° 인사법의 원조는 사실상 거리 서명운동 과정에서 태생했다는 평가임. 90° 인사법으로 잘 알려진 민 모 회원의 경우, 서명운동을 조직하기 위해 자신이 사는 양산동 현대아파트 각 동 엘리베이트에 서명운동 협조를 요청하는 전단지를 부착하는가 하면, 심지어 동네 앞 미용실, 안경가게 사장님을 찾아, 자초지정을 설명하고 손님들을 상대로 서명을 받아줄 것을 요청하는 열의를 발휘하기도.
▲거리로 나선 미래 세대의 주역 청소년들
변변한 전단지 한 장 없는 가운데, (사)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 광주지부 소속 청소년들이 3.7일 자발적으로 거리 서명에 나서 300여명의 서명을 시민들로부터 받음. 이어 3.28일, 4.4일 등 충장로 삼복서점, 지하상가 등에서 손수 자신들이 작성한 선전물을 가지고 서명운동을 진행함.
특히 4.10일에는 미쓰비시와 무능한 정부를 비판하는 노래를 직접 개사해 율동과 노래로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열정을 발휘하기도. 때론 중간고사 시험으로 잠시 중단하는 상황에도 불구 6.12일 마지막 서명운동까지 애초 목표였던 3,000명을 초과해 3,600명의 서명을 조직해 또 다른 감동을 안겼다. 이 중 일부 청소년들은 8월 나고야 소송 지원회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 역사 안목을 폭을 넓히는 소중한 경험을 쌓기도.
▲교통사고로 입원 중 서명운동
‘신념 앞에 가로 막을 자 없다’.
이의순님(넘치는교회 권사)의 경우,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던 첨단병원에서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딸과 합세하여 퇴원할 때까지 주로 점심시간을 통해 직원과 환자들을 상대로 서명운동에 나섰는데, 무려 500명에 이르렀음.
■1~2월 6회에 걸친 기자회견 |
▲1. 4 후생연금 99엔 재심사 청구 및 신년 투쟁선포 기자회견(오전 11시. 광주)
▲1.20 미쓰비시측의 악의적 집회장소 선점 규탄 기자회견(오전 11시. 광주)
▲1.22 미쓰비시중공업과 대일청구권 자금 수혜기업 포스코(posco)의 사회적 책임이행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
(오전 11시. 서울 한국미쓰비시중공업. 금요시위 1주년)
▲1.25 외교부 ‘99엔’ 포기 규탄 및 99엔 향후 대응계획 기자회견(광주)
▲1.26 외교통상부, ‘99엔’ 포기 발언 규탄 기자회견(12시. 외교통상부 앞)
▲2. 8 오카다 외상 방한(2.10~11일)에 따른 한일협정 문서 전면공개 촉구 기자회견(2시. 일본대사관 앞)에 이르기까지, 서울 원정 기자회견 3회를 포함해 숨 돌릴 틈도 없이 서울과 광주에서 한일 양국정부의 태도를 강하게 꾸짖음.
특히 서울 원정에는 적지 않은 교통비와 인원동원 문제로 어려움이 따르는데, 서울 회원들과 일제피해자 단체, 시민단체에서 기꺼이 수고를 덜어 줌.
♥애피소드 한 가지
▲외교부, 언론에 기자회견 내용 해명자료 배포
: YTN 보도에서 유명환 장관이 “99엔은 물가로 따지더라도 20만원 정도 밖에 안 된다”며 실효성을 이유로 직접 협상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한데 대해 1.26일 규탄 기자회견을 갖기로 하자, 외교통상부 일본 과장이 전화를 걸어 해명을 해 옴. 이어, 기자회견 직후에는 각 언론에 기자회견에 대한 해명 자료를 신속히 배포하는 등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을 두고 외교통상부가 나서 파장 확산에 전례 없이 민감한 반응. 시민모임은 이에 대해 다시 반박 보도자료로 응수.
■(사)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와 자매결연 |
(사)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와의 2차례 간담회(광주, 정읍)를 통해 서로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확인한 후 ▲3.13일 시민모임 결성 1주년 행사(무등산)에서 양 단체간 정식 자매결연식을 갖고, 이어 ▲4.5일 양금덕할머니 초청 강연(정읍문화원 2층) ▲5.8~9일 제43회 황토현 동학 축제 행사에 ‘나고야 소송 지원회’ 고이데 사무국장 초청(시민모임, 5월 황토현 동학 축제 현장에서 원정 서명활동 진행) 등 일련의 연대 행사를 진행함.
(사)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와의 자매결연 및 교류는 광주를 넘어 시민모임의 외연을 넓히는 한편, 역사 인식의 폭을 확장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음.
■국경과 세대를 뛰어넘어...한일 청소년 평화교류 |
‘나고야 소송 지원회’의 초청으로 8.12일~15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중고대학생 등 청소년을 포함한 16명의 방문단 일본 나고야 방문. ‘마주보고 서다’라는 뜻의 ‘맞선’이란 이름을 붙인 이들 방문단(단장 김지영)은 배주영 사무차장의 인솔로 ▲나고야 미쓰비시 공장 답사 ▲평화 콘서트 참가 ▲평화전시회 관람 ▲일본 청소년들과의 집담회 참가 등의 가슴 벅찬 일정을 가짐.
미래 세대의 주역인 한일 청소년들이 자국 중심의 역사인식의 틀을 넘어 국경을 뛰어 넘어 반전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교감했다는 데 적지 않은 의미가 있으며, 시민모임-나고야 소송 지원회의 연대활동이 청소년 교류로 까지 확장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로 평가됨.
한편, 근로정신대 문제를 통해 일본 방문을 소재로 촬영한 다큐멘터리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마주보고선 우리’(임용철 작)는 국가인권위 광주사무소가 주최한 인권영상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고, 11.4일 KBS 열린채널 방영에 이어, 11.27일 광주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함.
♥청소년 교류에 이르기까지...
한일간 청소년 교류까지 이어 올수 있었던 발단은 지난해 6월경 광주신광중학교 학생들이 ‘나고야 소송 지원회’ 회원들에게 쓴 66통의 감사 편지. 이 편지는 그해 8월 나고야 평화전시전에 소개되면서 주목을 받았고, 한일청소년 교류의 가능성을 확인시키게 됨.
이어 올해 6월 10만 서명운동 전달 차 일본 방문시, 광주예술고 학생들이 수업과정에서 그린 그림 30여점을 ‘나고야 소송 지원회’에 전달하면서 한일 청소년들의 교류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음.
■나고야-광주의 희망 메시지...‘화이팅! 용기를 내고’ 작곡 |
나고야-광주에서 양국 시민들의 국경을 뛰어넘는 연대투쟁이 마침내 아름다운 노래로 활짝 꽃을 피웠다. 일본의 반전평화 노래운동 단체인 ‘우타고에 합창단’의 일원이자 1979년 결성된 연주그룹 ‘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중가수 하라다요시오(58)씨가 작곡한 ‘화이팅! 용기를 내고’가 그것.
하라다씨는 “신광중 학생들이 보낸 67통의 편지에 어떻게 보답할까 고민하다 이를 한글노래로 만들자는 구상을 하게 됐고” 가사를 붙인 이시구로(57)씨는 “노랫말에는 한 방울의 물이 모여 바위를 뚫는 것처럼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내자는 뜻과 나고야 지원회와 광주시민모임이 미래를 향해 손을 잡고 전진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특히 이 노래는 5.18 30주년 행사에 초청돼 광주를 방문한 하라다 요시오씨가 5.19일 광주신광중학교 학생들과 특별 수업을 갖고, 학생들과 함께 감동의 하모니를 연출하기도 했다. 하라다 요시오는 이어 ‘나는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라는 주제로 5월 21일 무등산 증심사에서 열린 ‘무등산 풍경소리’ 콘서트에서 또 한번 감동의 목소리를 선사했다.
한편, 애초 가사를 전달하는 데는 한국식 표현 전달이 자연스럽지 않아, 배주영 사무차장(신광중 교사)이 학교 음악교사의 도움을 구해 현재의 가사로 전면 개조하는 등 몇 몇 보이지 않은 사람의 수고가 깃들여지기도.
▲[보충] ‘자랑을 가슴에’, ‘플라이 데이 리포트’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투쟁 과정에서 탄생한 노래는 이번이 세 번째 곡. 첫 곡은 1999년 3월 1일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정식 제소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역사적인 재판을 시작하는 마당에 할머니들이 마땅히 부를 노래가 없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 하라다요시오씨가 이시구로씨와 함께 ‘자랑을 가슴에’라는 노래를 만든 것. 이 노래의 주제는 좌절하지 말고 당당하게 역사와 마주하자 뜻.
두 번째 노래는 지난해 만들어 진 ‘플라이 데이 리포트’. 2007년 7월 20일부터 시작돼 장장 3년에 걸친 도쿄 ‘금요행동’(원정시위)을 주제로 역시 하라다요시오씨와 이시구로씨가 만든 노래. 이 노래는 20여년 넘게 한 길을 걷고 있는 ‘나고야 소송 지원회’의 상징과도 같은 노래가 되고 있다. 근로정신대 투쟁은 노래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서도 오늘의 역사를 기록해가고 있다.
■미쓰비시 ‘협의체 구성에 동의한다’ |
2010년 7.14일. 마침내 역사의 새로운 문이 뚫렸다. 미쓰비시중공업이 일본 방문단에 촉구한 ‘협의체’ 구성에 동의한다는 뜻을 ‘나고야 소송 지원회’ 다카하시 회장 앞으로 밝혀 온 것. 방문단이 시한으로 통보한 7월 15일을 하루 앞둔 때였다.
초조한 심경에 하루 종일 마음을 붙잡을 수 없었던 다카하시는 이날의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후에 팩스 소리가 들려오는데, 반사적으로 ‘이것은 미쓰비시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채 프린트 돼 나오기도 전에 종이에 손을 댔는데 순간 손이 떨렸어요. 첫 문장을 보고 ‘됐다. 됐어!’라고 나도 모르게 소리쳤죠. 순간 안고 있던 손주를 하마터면 바닥에 떨어뜨릴 뻔 했어요”.
해방 65년, 장장 10년에 이른 재판마저 모두 끝난 상태에서 근로정신대 문제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전후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수십 건의 재판이 있었지만 ‘화해’에 이른 것은 불과 3건에 불과하고, 특히 재판이 모두 종결된 상태에서 협의 테이블이 마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한일 양국 시민들의 지난한 투쟁을 통해 오늘의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승리이자, 그 결과와 관계없이 각별한 역사적 의미로 평가된다. 한편, 사전 협의를 거쳐 현재 협상이 시작됐다.
♥애피소드
▲모 동경 특파원 “미쓰비시가 그럴 리가 없다”
7.15일 모 방송사 기자의 전화. “미안한 말씀인데, 동경 특파원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미쓰비시가 어떤 기업인데, 절대 그럴 기업이 아니다'며 다시 한번 확인해 달라고 합니다. 혹시 문서를 진짜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이에 앞서 가장 먼저 문의가 온 것은 외교통상부 담당 직원. “미쓰비시 측이 보낸 공문 가지고 계시면 혹시 보내 주셨으면 해서요? 장관님에 브리핑 자료를 준비해야 해서…”
■ “99엔, 매우 실례” 호소카와 부대신 사의 |
“개인적으로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로 생각한다”
후생연금 탈퇴수당금 99엔에 대해 2.24일 호소카와 후생노동성 부대신(차관)이 정식 사의를 표했다. 후소카와 부대신은 일본을 항의 방문한 양금덕 할머니와의 면담에서 “일본인 역시 탈퇴수당금을 지급할 때는 액면가대로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은 고통을 당한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해 99엔이라는 후생연금 탈퇴수당금을 지급한 것은 정말 실례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일본정부로서는 죄송하다”고 사의를 표함.
한편, 양금덕 할머니는 호소카와 부대신 앞에 동전 99엔을 쏟아놓으며 “도대체 99엔 결정을 내 놓은 사람이 누구인지 그 뻔뻔한 얼굴을 한번 보고 싶다. 그 사람을 불러와라”고 강력하게 항의해, 호소카와 부대신을 적잖이 당황케 만듦.
소위 99엔 문제와 관련해 외교통상부의 무력한 대응에 대한 비난이 비등한 가운데, 일본정부 관료로부터 사의를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음. 한편, 호소카와 부대신은 간 나오토 총리 체제에서 내각(후생노동성 대신)으로 발탁돼, 또 한번 99엔 문제와 운명의 만남을 기약하게 됐다.
■6월 대규모 방문단 방일 활동(6.22~25일) |
예상을 뛰어 넘는 규모. 이용섭 국회의원,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당선자, 김선호 광주시교육의원 당선자, 서정성 광주시의원 당선자, 이상갑 변호사, 김재학 신부를 포함해 모두 22명 규모의 대규모 방문단이 꾸려져 13만4,162명분의 서명운동, 여야 국회의원 100명의 서명을 들고 일본 방문 길에 나섬.
이외 오마이뉴스, 전남일보, 시민의소리, 한겨레 취재 기자 등 시민모임 회원과 정치인, 종교계, 시민사회, 언론취재 팀까지, 그동안 원고 위주의 방문단 규모를 훌쩍 뛰어넘어 어느 모로 봐도 위상과 면모를 갖춘 22명 규모로 방문단이 대거 꾸려져 중요한 역사적 국면에 톡톡히 그 역할을 해 냄.(기획 동행취재에 나선 KBS순천방송국, 아리랑TV, YTN 제외)
방문단은 6.23일 시나가와역에서 미쓰비시중공업까지 삼보일배를 통해 99엔 문제에 대한 사죄와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했는데, 삼보일배 과정에서는 지켜보는 시민들이나 삼보일배에 나선 방문단 모두 가슴 속 뜨거운 눈물을 흘림. 이어 미쓰비시중공업 본사에서 가진 면담에서 이용섭 국회의원을 포함한 방문단은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체 구성을 압박하고, 7.15일까지 회답을 달라고 통지함.
한편, 서명운동 용지의 원본은 일본 내각부에 전달하고, 각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만나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등 정치권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함.
♥애피소드
▲유종천, “만기 앞둔 주택부금을 깼다”
결코 쉽지 않는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일본 방문 길에 뒤늦게 합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유종천 회원. 항공비와 3박4일간의 체류비에 150만원에 가까운 돈을 써야 했는데, 이는 그의 2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것. 하루 벌이가 걱정인 영업용 택시 기사 입장에서 웬만한 각오가 아니면 결코 쉽지 않는 일이었다.
뒤늦게 알고 보니 이를 위해 그동안 한번도 써 오지 않던 연차를 죄다 일본 가는 일에 할애했는가 하면, 심지어 그 돈은 결국 몇 년 동안 착실하게 부어 오고 만기를 얼마 남겨두고 있지 않았던 주택부금을 도중 해지해 마련한 것이었다고. 이런 보이지 않는 결의가 오늘 시민모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온 것은 아닐까. 그는 여전히 새벽 운전대를 잡고 있다.
■폭설에도 폭염에도...208회에 걸친 1인 시위 |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그해 겨울은 따뜻했다’.
이 보다 더한 감동은 없었다. 폭설도, 폭염도, 세찬 비바람도 시민들의 발길을 막을 수 없었다. 해를 넘겨 다시 시작된 1인 시위. 유난히 폭설이 많았던 지난 겨울, 때론 제 자리에 서 있기도 힘든 강풍과 폭설에 맞서 피켓 하나에 몸을 의지해야 할 때도 없지 않았다.
애초 요일별 사람배치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발적 시위를 원칙으로 한데다 워낙 장기간 계속되다 보니 당장 오늘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일. 그러나 제 시간이면 여지없이 찾아 드는 발길들. 미쓰비시의 협상 수용에 따라 1인 시위를 잠정중단 한 7.30일까지 208일간의 1인 시위는 감동의 드라마였다.
역설적으로 어쩌면 호사 아닌 호사를 누린 주인공들인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김 마담’의 커피가 그것.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민변광주전남지부, 천주교광주정평, 광주시민센터, 광주여성센터,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대안교육 오름, 어린이도서연구회광주지부, 넘치는 교회, 광주전남평통사 등 일일이 거명할 수 없는 수많은 단체들이 든든히 1인 시위를 뒷받침 해 왔고, 인근 세탁소 사장님을 비롯해 시민모임 회원들 한명 한명이 빈자리를 대신해 왔다. 1인 시위라고 붙이기가 어색할만큼 평균 8~9명 참여, 208일간 참여한 연인원만 거의 2천여명에 달했다.
겨울, 봄을 지나 바야흐로 찌는 듯한 더위에 막판 밀짚모자까지 등장했을 무렵, 마침내 미쓰비시로부터의 낭보가 울려 전해졌다.
■참교육의 승리...6.2 지방선거의 낭보 |
‘이런 날도 오는 구나’.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있던 지난 6.2일 밤, 개표장 소식이 휴대폰을 통해 전해질 때마다 장내는 흥분과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 시민모임 고문 김선호 전 광주효광중학교 교장이 압도적인 표차로 상대 후보를 누르고 광주시교육의원(서구)에 당선된데 이어, 자문위원 장휘국 전 광주시교육위원 역시 예상을 뒤집는 역전 드라마 속에 광주시교육감에 당선된 것.
전교조 출신인 두 분은 시민모임 태동 때부터 같이 해 온 시민모임 주역 중의 한 사람들. 지난해 3.12일 시민모임이 결성되기에 앞서 2009년 2.9일 광주YMCA 뒤편 ‘신성식당’에서 5천원짜리 추어탕을 놓고 시민모임을 결의하던 19명 멤버 중의 한 사람이 바로 김 교육의원과 장 교육감이었다.
서명운동의 테이프를 끊은 것도 바로 이분들이었다. 장 교육감은 일찍이 동부교육청 관내를, 김 교육의원은 서부교육청 관내 학교를 맡기로 하고, 각 학교를 찾아가 서명운동 취지를 홍보하고 나선 것. 13만 서명운동 중 약 7만여명이 학생들로 파악된 가운데, 그 중 상당수는 이들 두 분이 조직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었다.
선거결과는 예상을 뒤집는 승리.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는 유력 경쟁자들에 비춰 애초 고전이 예상됐으나, 막판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6.2지방선거에서 또 한번 최대의 파란을 일으키고 말았다.
▲[선거공보물] “99엔의 치욕, ‘김 마담’으로 불러도 좋습니다”
“교육자적 양심에 비춰서도 민족문제를 생각해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보다 먼저 일본을 꾸짖은 사람, 여의도 299명의 국회의원들보다 먼저 하토야마 총리관저로 서릿발 같은 격문을 보낸 사람,
그러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밖에 없다’며 1인 시위에 나온 피해 할머니와 시민들을 위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매일 같이 배달해 ‘김 마담’으로 불리운 사람, 김선호입니다.”
광주시교육의원 선거에 나선 김선호 후보(서구)의 선거공보물 5면. 한 페이지가 아까운 마당에 김 후보는 5면 전체를 근로정신대 문제에 할애 했다. 눈발 속에서 커피 보온병을 들고 티없이 맑은 어린 아이들처럼 호탕하게 웃고 있는 사진은 영락 ‘김 마담’ 그대로였다.
공보물 구성을 두고 주변에 이견이 없을 리 없었다. ‘선거를 하자는 것이냐 말자는 것이냐’. 거듭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은 바로 김 마담이었다.
“99엔 문제를 얘기해서 떨어진다면, 그 선거는 떨어져야 한다. 떨어지더라도 나는 이 문제를 얘기 해야겠다”. 시민들 역시 위대했다. 결과는 ‘김 마담’의 압승이었다.
공교롭게 현재 그의 집무실은 자신이 커피 보온병을 들고 그렇게도 찾던 미쓰비시 1인 시위 현장을 정면에서 마주보고 있는 광주시의회.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완전 철수 |
11.16일 오전 10시경. 미쓰비시자동차를 실은 대형차가 소리 없이 광주전시장 앞을 지나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이어 크레인 기사들에 의해 마지막 남은 광주전시장 간판마저 뜯겨져 바닥에 내려지고 말았다. 마침내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이 최종 문을 닫고 철수 한 것이다.
2009년 9월 25일 서울에 이어 지방에서는 2번째로 인천과 동시에 문을 연 광주전시장은 불과 1년 2개월여 만에 광주와 이별을 고하고 말았다. 자동차 업계나 미쓰비시, 국내 독점판매에 나선 (주)MMSK의 사정까지 알기 어렵지만, 감히 줄 이어 전개 된 1인 시위를 두고 설명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1인 시위도 중단돼 좀 나아질까 기대했지만, 워낙 부정적으로 비춰져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차를 가진 사람마저 혹시 차에 흠집이나 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정도다”. 마지막까지 전시장을 지킨 한 직원의 말이었다.
혹자는 광주미국문화원 철수, 패트리어트 미사일 부대 철수에 이어, 외국 관련 시설이나 기업들을 상대로 한 모처럼만에 듣는 통쾌한 승리라고 평가하기도. 광주, 시민모임, 미쓰비시... 서로는 애초 피할수 없는 운명이었고, 광주전시장 철수는 그 결과물이었다.
■‘역사 다시 읽기’ 등 공부모임 운영 |
‘저항의 역사 다시 읽기’라는 주제로 한 공부모임 운영 계획이 5.18 기념재단 후원 공모사업에 선정돼, 난데없이 공부열풍이 불기도.
3.28일 ▲‘동학농민혁명과 광주전남’ ▲‘한말 광주, 전남의 의병운동’을 주제로 첫 모임을 시작함. 이날 8명의 회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시작된 공부모임은 매달 1회씩 시민모임 회의 시간을 빌어 모임을 운영해 왔는데, 발제를 맡은 사람들의 높은 열기에 모두 또 한번 감동하기도.
이어 ‘한말 일제하 전남의 사회 경제’, ‘3.1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해방 직후 전남지역 노동운동’ 등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 지난 11.5일에는 소설가 문순태 선생이 기거하면서 창작공간으로 쓰는 담양 남면 오지마을을 찾아가 소설을 통해 본 광주전남 근현대민중운동사에 대해 귀중한 얘기를 듣는 값진 시간을 갖기도.
비록 초보적 운영이긴 했지만, 시민모임을 통해 근현대 역사를 살펴보는 학습기회를 마련해 운영한 것은 시민모임과 회원들에게 있어 각별한 의미로 생각됨.
한 회원은 “시민모임 오면 공부도 하고, 책도 주고, 밥도 주고 이렇게 좋네”라며 더 없는 만족감을 표시. 윤영덕 5.18연구소 연구교수가 담당을 맡아 수고 함.
한편, 잇따른 일본 방문과 나고야 소송 지원회와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7.22일 일본어를 새로 배우는 모임이 탄생되기도. 정경희 선생님의 지도로 모임의 총무는 유종천 회원이 맡고 있으며, 다소 편차가 있으나 회원들이 열기는 어느 모임보다 높다는 게 정경희 선생님의 귀뜸.
■탐사기획물 등 언론의 높은 관심 |
‘광주에 시민단체라고는 시민모임 밖에 없나. 시샘 안 할래야 안 할수가 없네’.
어느 시민단체 간부의 말. 그럴 법 했다. 과도하리만큼 언론의 각별하고 따뜻한 격려와 관심을 받았다.
특히 경술국치 100년이라는 시점 때문인지 비중 있는 기획물이 많았다.
연초부터 ▲1.2 광주MBC ‘시사르포 여기는 지금’ ‘경술국치100년, 99엔의 치욕’ ▲1.19 MBC ‘후 플러스’ ‘99엔의 내막’ ▲1.26 KBC광주방송 ‘따따부따’에 이어, 2월 들어서도 ▲2.28일 광주MBC 토론플러스 ‘한일병합 100년, 과거청산과 미래’로 집중 조명을 받았다.
6월 일본 방문단 활동 소식은 동행 취재에 나선 시민의소리, 오마이뉴스, 한겨레, 전남일보 등을 통해 자세히 소개되었다.
일본 언론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6.20일 일본 NHK 다큐 5부작 중 3편 ‘황민화와 동원’에서 근로정신대 문제가 비중있게 포함 된데 이어, ▲7.30일 아사히신문은 8면 3꼭지에 걸쳐 양금덕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문제를 비중있게 보도했다.
7월 들어 미쓰비시의 협상 수용에 따른 기사들이 쏟아졌다. 각 언론이 기자회견과 인터뷰는 물론 사설과 칼럼을 통해 협상 의사 소식을 높이 반겼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8월에 기획인터뷰와 탐사기획물이 연이어 쏟아졌다. 물론 근로정신대 문제만을 다룬 것은 아니었지만, 나고야 소송 지원회와 근로정신대 문제가 대표적인 소재로 배치된 경우가 많았다.
▲8.6 KBC광주방송 시사인터뷰 WHO ▲8.8 KBS광주방송총국 집중인터뷰 이사람을 통해 집중 인터뷰가 이어졌고, 특히 대형 탐사 기획물로 ▲8.7 KBS 1TV 역사스페셜 ‘지옥섬 군함도를 가다’ ▲8.11(수)~13(금)일 KBS 순천방송국, 국권침탈 100년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3부작『1945년, 가네미스 아끼꼬의 열네살』(8.11일,12일,13일. KBS1R. 8.27 전국 재방송) ▲8.19 YTN, 한일강제병합 100년 특집 2부작-일본의 양심을 만나다 ▲8.22 아리랑TV 특집 다큐멘터리 ‘고백’(8.24 EBS 교육방송 재방송) 등이 있었다.
그 밖에 ▲8.15(일) 광주MBC 토론플러스 ‘한일병합 100년, 과거사 청산과 미래’(오전 7:20~8:25)라는 좌담회가 있었으며 ▲8.16(월) KBC 광주방송 ‘미디어 세상, 시청자와 통하는 TV’ (오후 5:30~6:00)을 통해서는 다큐멘터리 ‘14살, 나고야로 끌려간 소녀들’ 이 공중파를 통해서 방영되기도 했다.
■양금덕할머니, 3.8 여성상 수상...초청강연 쇄도 |
3.22일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3.8 여성의 날 행사가 광주YWCA 회관에서 열린 가운데, 양금덕 할머니가 여성인권을 위해 힘쓴 인사에게 주는 ‘3.8 여성상’의 영예로운 수상자로 결정, 많은 이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양금덕 할머니는 매일 같이 1인 시위에 몸소 나와 수많은 젊은이들을 1인 시위 현장으로 불러들이는 원동력이 됐는가 하면, 거리 서명운동에도 불편한 몸을 아끼지 않고 함께 참여해, 역사의 굴곡을 뚫고 일어 선 살아있는 투사의 이미지로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어 왔다. 이를 두고 한겨레 정대하 기자는 ‘유관순’열사에 빗대 ‘양관순’이라고 표현하기도.
외롭고 한 많은 피해자라는 처지를 뛰어넘어, 역사의 전면에 당당히 나서 또 다른 역사를 개척해 온 노 투사로 변모한 것은 한 개인의 생애에 있어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한편, 양금덕 할머니는 곳곳에서 초청이 쇄도해 어느 때보다 바쁜 한해를 보내야 했다. ▲2.9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특강’ (주최: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연구회.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4.5 양금덕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강좌(정읍문화원 2층 회의실. (사)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7.3일 무등중학교, 역사 특별수업 초청강의에 초대돼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일제강점기 굴곡 많은 한 생을 들려주기도 했다.
국회에도 당당히 발을 디뎠다. ▲8.11(수) 여야 국회의원과 일제 피해자 등 1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한일강제병합100년, 일제피해자문제의 해법은?’ 이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국회소회의실. 주최: 이용섭의원, 시민모임, 일제피해자공제조합)에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김정주 할머니와 함께 참석 많은 이들로부터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또한 ▲8.15(일) 광주MBC 토론플러스 ‘한일병합 100년, 과거사 청산과 미래’(오전 7:20~8:25)라는 좌담회에도 초청된데 이어, ▲10.18일 제주도 지원모임(허중웅 회장)의 초청으로 제주에서 강연을 하는 등, 광주를 넘어 전국에서까지 유명세 아닌 유명세를 누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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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 생애 가장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요, 즐거운 고민거리입니다. 이 작업 하시느라 또 긴 겨울 밤 지샌 우리 사무국장님이 10대 뉴스감이 아닐런지...
우리 시민모임 사무국장님! 한 해 기사 정리하시느라 넘 애쓰셨어요*^^* 기립박수 짝짝짝!!!!!
파노라마처럼 1년이 스쳐 지나가네요. 멋진 국장님! 가슴을 전율케 하는 목소리에 반했다고 말씀드렸죠?ㅋㅋㅋㅋㅋㅋㅋㅋ 진심입니데이...
건강챙기시구요 자주뵈요.. 1년동안 시민모임 회원여려분의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역사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새해 토끼해에는 짝없는 분들은 좋은 인연 만나셔서 토끼같은 2세도 낳으시길 !
이 글을 많은 분들께 알리기 위하여 투웨터에서 홍보하였습니다.
xnbdnpxj1414 약 1분 전 시민모임 10대 뉴스를 추천해 주세요
아래 기록들은 모두 전국에 계신 시민모임 회원들이 땀으로 만든 열매입니다.
순서에 상관없이 우선 기억나는 데로 임의로 추려 보았습니다.
미처 놓친 것이 있다면 함께 덧붙여 주십시오.
http://j.mp/dOqX17
이 글을 많은 분들께 알리기 위하여 이 곳으로도 모셔 갔습니다.
http://blog.daum.net/hblee9362/11309077
감사합니다. 하시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질 못했는데 늘 변함없이 쏟아주신 애정에 그래서 더욱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새해엔 더 밝고 따뜻한 세상을 향해 살아가십시다.
와~~ 걸어온 길이 대단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시민들과 함께 일궈낸 서명운동과 1인시위를 꼽고 싶네요.
그 여세를 몰아 미쓰비시와의 협상이 시작된 쾌거는 올해 가장 기쁜 일이 아닐까요!!
10대들의 평화교류가 진정한 10대 뉴스 ^^;;
올한해를 가슴에 담고 새해를 향해 힘차게 나가갑시다 ^^!!
10대 뉴스를 일본에 계시는 이양수(일한협정 문서 전면 공개를 구하는 회 사무차장)선생님이 일본어로 번역해, 나고야 소송 지원회 회원들에게 메일로 모두 보냈나 봅니다. 잘 받았다는 답장이 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