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임종횡(三界任縱橫)타가
욕계 색계 ‧ 무색계 삼계
지금 우리가 윤회를 허고 있는, 살고 있는 이곳이 바로
삼계거든- 삼계에 임종... 종횡에 맽기고, 삼계에 왔다
갔다 하는, 삼계속에 왔다 갔다 하고 생사거래하는
일체에, 그 가운데 조끔도 걸림이 없이 완전히 맽겨버리라 그 말이여. 그래가지고,
사생(四生)에 불가박(不可泊)이여.
그러헌 가운데에 사생, 태란습화 사생에 주박
주박이 없어. 얽매임이, 집착이 없다 그 말이여.
그래가지고,
무위무사인(無爲無事人)
함도 없고 일도 없는 사람이 되어서,
소요명쾌락(逍遙明快樂)이다.
‘소요’라 하는 것은
아무 집착이 없이, 얽매임이 없이, 구애가 없이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자유자재허게 거니는
거여. 그래가지고 그 가운데에 쾌락한 거.
어떻게 허면 이러헌 경계에 들어갈 수가 있느냐?
삼계 육도법계에 윤회허면서,
그 생사윤회허는 그 속에서 생사가 없어야 한다.
생사를 피하고 생사를 버리고서 쾌락을 찾는 것이
아니고, 극락을 찾는 것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생사에 얽매임이 없어야
이것이 바로 대승법이요
최상승법이요
이것이 불법이다.
중생의 번뇌망상 희로애락. 희로애락과 번뇌망상을
버리고서 진여불성을 찾는 것이 아니다.
바로 썽냈다 울었다 슬펐다 기뻤다 웃었다 하는 중생심
중생의 생사윤회 번뇌망상 그놈을 버릴랴고 허지도 말고 여읠랴고 허지도 말고 피할려고 허지도 말고
그 놈을 억누를랴고 허지도 말고 바로 그 속에서 참나를 찾아야해. 중생의 번뇌 일어나는 그놈을 버릴랴고 허지 말고 일어나는 번뇌 그놈에서 ‘이 뭣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바르게 닦아가는,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여래지에 들어가는 공부다
이거거든
공부가 누구를 위한 공분가?
첫째는 나 자신을 위허고,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윤회, 생사윤회를 하면서 오늘날까지 왔는데,
어째서 과거에 모든 성현들은 진즉이 문제를 해결을
해가지고 스스로도 생사해탈을 하고 나아가서는
일체중생을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그동안에 무엇을 허느라고 생사를 해탈을 허지를
못하고 육도윤회를 하다가 금생에 여기에까지 왔는가?’
받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기는 했지마는
금생에
그럭저럭 도업을 성취를 못한 채 죽게 된다면
다시 어느 생에 사람 몸을 받아가지고 다시 또 불법을
만나서 이런 참선을 헐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러헌 다행할 도리가 없지마는,
까딱 잘못해가지고 도업을 성취하지 못한 채 이 몸을
버리게 되면 소가 될는지 말이 될는지 지옥으로 갈는지 아무도 이것을 보증을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단 일분일초도 그렁저렁 헛되이 시간을 보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