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갑자년 十一월 태인 도장에 가셔서 “庚은 변경지이시(變更之伊始)하고 申은 신명지의당(神明之宜當)이라 천어사어경신(天於斯於庚申)하고, 지어사어경신(地於斯於庚申)이라. 만물종어경신(萬物終於庚申)하고, 아역여시경신(我亦如是庚申)이라”고 밀양의 이우형. 김용국. 박 민곤 안동의 권태로. 청송의 조호규. 의성의 김장회. 봉화의 박붕래. 김천의 김규석등에 말씀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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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에는 ' 아역여시경신(我亦如是庚申)' 이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我 는 도주님이다.
그런데, 비슷한 표현이 하나 더 있다.
(1) 비슷한 표현: 我亦如是未
'我亦如是未' 가 그런 표현이다. 같은 것은 我亦如是 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같은 것을 제외하면 <庚申> 과 < 未> 만 남는다. 이 다른 2개는 <庚申> 과 < 未> 이다.
<庚申> 은 60갑자 중 1개의 간지이고, < 未>는 12지지 중 1개의 지지이다.
이제 '我亦如是未' 가 어디에 들어가 있는 구절인지만 알면 될 듯 싶다.
소개해 드리겠다.
(2) 我亦如是未
○臘享致誠祝文(납향치성축문) (乙未<1955>年 12月 初 5日 於寶水道庭)
歲首月終(세수월종) 太極建成之月也(태극건성지월야) 故(고) 建建謂月也(건건위월야) 上天行道(상천행도) 以戊申之臘(이무신지랍) 大開神門(대개신문) 行三界公事(행삼계공사) 又翌年(우익년) 化天(화천) 道子以歲(도자이세) 奉度西向(봉도서향) 又九年(우구년) 始入道門(시입도문) 拳拳服膺(권권복응) 以焉四十(이언사십) 帶病苦行(대병고행) 已過十年(이과십년) 年則乙未(연즉을미) 月則臘月(월즉납월) 日則臘日(일즉납일) 天於斯於未(천오사어미) 道於斯於未(도오사어미) 我亦如是未(아역여시미) 天此(천차) 地此(지차) 道此(도차) 伏願聖靈(복원성령) 下鑑垂察(하감수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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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은 아래와 같다.
(아래)
의해 : 해로는 첫머리이고 달의 마침이니 태극이 세워지고 이루어지는 달이므로 세우고 세움을 이르는 달입니다. 상제님이신 천존께서 도를 행하심에 무신년(1908)의 섣달로써 신문을 크게 여셔서 삼계공사를 행하시고 또 이듬해에 화천하셨으며 도자는 그 해로써 도수를 받들어 서쪽(만주)으로 향하였고 또 9년만에 비로소 도문에 들어와서 언제나 정성껏 간직하고 지킴이 어느덧 40년이며 병을 띠고 괴롭게 수행함도 이미 10년이 지났습니다. 해로는 곧 을미년이고 달은 곧 섣달이며 날은 곧 납향일입니다. 하늘은 이 미에서 아름답고 도도 이 미에서 아름다우며 나도 역시 이와 같은 미이니 하늘도 이렇고 땅도 이러하며 도도 이러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령께서는 굽어보시고 드리워 살피시옵소서.
(3) 臘享致誠
도주님은 섬세하신 분이시다. 또한 우당께서는 도주님의 뜻을 그대로 이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臘享 을 대순진리회에서는 어떻게 생각했는지만 알면 된다.
소개해 드린다.
아름다운 세시풍속 - 납향 - 대순회보 66호 아름다운 세시풍속 (idaesoon.or.kr)
납향(臘享)
글 교무부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속인 납향은 납제(臘祭)ㆍ납평(臘平)ㆍ납일(臘日)ㆍ가평절(嘉平節) 등으로도 불렸다. 중국에서 유래한 납향의 명칭도 나라와 시대마다 달랐는데, 하(夏)나라 때는 가평(嘉平), 은(殷)나라 때는 청사(淸祀), 주(周)나라 때는 대사(大)라고 불리다가, 한(漢)나라 때에 비로소 오늘날의 납향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날짜를 정하는 것도 시대와 나라마다 달라 한(漢)ㆍ송(宋)대에서는 매년 동지(冬至) 후 셋째 술일(戌日), 위(魏)에서는 진일(辰日), 진(晉)에서는 축일(丑日)로 하였다. 그 후 대개 술일을 납일로 잡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문종 때 술일을 납일로 정했으나 대체로 대한(大寒) 전후 진일(辰日)을 납일로 삼았다. 그러다가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실려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가 동방[木]에 속한다는 이유로, 조선시대부터는 동지로부터 세 번째의 미일(未日)로 정하였는데 대체로 음력 12월 중순쯤 된다.
이날 국가에서는 새나 짐승을 잡아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에 공물(供物)로 바치고 제사를 지냈는데, 사맹삭(四孟朔: 춘하추동의 각 첫 달인 1, 4, 7, 10월의 삭일 제사)과 함께 5대제향(五大祭享)으로 중시하였다. 민가에서도 제사를 지냈는데 명절에 사당에 올리는 제사와 같게 하였다.
궁중의 내의원(內醫院)에서는 각종 환약을 만들어 진상하였는데, 이를 납약(臘藥)이라 하여 임금이 가까운 신하와 지밀나인(至密內人)들에게 나누어 주어 병을 고치게 했다. 민간에서는 납일에 참새를 잡아 어린이에게 먹이면 두창(痘瘡 : 마마)이 낫는다 하여 참새를 잡았다. 그리고 호남지방에서는 길일인 납일에 엿을 고면 맛이 있고 약으로도 쓰여 엿을 고는 풍속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납일에 내린 눈은 매우 특별하고 귀하다고 여겼는데 이날 눈이 내리면 돈이 내린다 하여 빈 그릇을 모조리 동원하고 심지어는 이불보까지 마당에 깔아 눈을 받았다고 한다. 이 눈을 받아 녹인 물을 납설수(臘雪水)라 하고, 그 물을 단지에 담아 응달에 묻어두고 썼다. 이 물로 약을 달이면 약효가 좋고, 장을 담그면 구더기가 생기지 않는다 하여 환약을 만들 때나 장을 담글 때 사용하였다. 또한 김장독에 넣으면 김장의 맛이 변하지 않고, 눈을 씻으면 안질(眼疾)에도 걸리지 않으며 눈이 밝아진다고 믿었다.
납향은 한 해를 결산하며 하늘에 보고하고 감사하는 풍속이었지만, 우리 종단에서는 89년부터 도전님의 분부에 따라 매년 납일에 회관(會館)에서 치성을 모셔오고 있다. 당시에는 도장치성에 참례(參禮)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었던 관계로, 하늘에 제사지내던 납일을 기해 각 방면 회관에서 많은 수도인들이 양위 상제님과 천지신명께 치성을 모실 수 있게 하였다. 다가오는 납향일(1월 25일)을 맞아 수도인들은 상제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새해의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겠다.
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TMN43-wb5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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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에서 수도를 했다는 사람들이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 그들이 다닌 학교에서는 <미술>을 가르치지 않았는가 보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진사성인출이 뭔지 모르고, 강강술래가 뭔지 모른다. 어찌 하겠는가?......그러려니 할 밖에~~~~~쩝
@far-reaching spirit https://www.youtube.com/watch?v=UrvKiavED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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