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한 삶4-1. 역사의 변곡점에서 행복을 생각하다

[한병곤(네이버 블로그)]

적정한 삶4-1. 역사의 변곡점에서 행복을 생각하다

변화, 호재이자 악재가 되다

한 세대가 동시에 경험한 크고 충격적인 사건은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그 변화의 양식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럴 때 가장 쉬운 방법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1918년 스페인 독감과 400년 전의 흑사병 정도를 거울삼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도시화와 근대화가 진행된 20세기 스페인 독감은 여러 양상에서 지금의 코로나 팬데믹과 닮아 있다. 1차 세계대전 종식 시점에 시작하여 1920년까지 퍼졌으며 16억 인구 중 5억 명이 감염되고 5천만 명의 목숨을 빼앗은 최악의 감염병으로 기록된다. 이후 경기 약화와 공산주의 사상의 대두,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등 잇따른 역사적 사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이처럼 팬데믹의 사례는 충분하지 않지만 변화의 맥락은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팬데믹은 분명히 변화를 촉진한다. 그러나 인류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보내지는 않는다. 단, 그전까지 억눌려왔던 욕구를 제대로 분출시키는 확실한 도화선이 된다. 나는 여러 차례 이런 상황을 두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기 좋은 시기’라고 말해 왔다. 기존의 욕구는 지니고 있으나 분출구를 못 찾고 있을 때, 전과 다른 규칙이 만들어진다.

회식이 싫어도 끊지 못하던 직장인들은 이번 기회에 회식을 없애는 규칙을 만들었다. 원격수업이나 원격근무도 마찬가지. 기술 기반이 갖춰졌음에도 못하고 미뤄 둔 것들이 이번 기회에 이루어졌다. 회사 가기 싫었고 학교 가기 싫었는데 덜 가는 규칙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아마도 우리 일상생활에서 벼르고 있었던 일들이 속도감 있게 펼쳐질 것이다. 이런 현상은 호재이기도 하고 동시에 악재이기도 하다.

무엇이 호재인고 하니, 선하고 보편적인 다수가 벼르던 것을 실천하는 것이 호재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악재일까. 나쁜 사람들, 이상한 사람들이 벼르고 있던 것들 또한 실천하게 되니 말도 못하게 엄청난 위기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각종 매체에서 가짜 뉴스가 활개를 치는 현상이 우려스러울 정도이다.

개소리에 대하여

대규모 감염병과 같은 혼란한 사회는 소위 ‘개소리’를 하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다. 너무 센 표현이라 흠칫 놀라는 독자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중을 현혹시키는 허튼 소리에 대해 이보다 더 정확하게 학술적으로 표현하기도 어렵다. 저명한 도덕철학자 해리 G. 프랭크퍼트 교수의 저서《On Bullshit》또한《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찰떡같은 제목으로 번역되지 않았는가. 말 그대로 ‘개소리’는 요즘 심리학의 가장 뜨거운 관심사다.

프랭크퍼트는 분명하게 말한다. 거짓말보다 더 위험한 것이 개소리라고. 거짓말쟁이는 자기가 거짓을 말하고 있음을 인지한다. 의도를 가지고 사실과 반대로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진심이다. 늘 온 마음으로 진정성 있게 당당하게 개소리를 생산해 왔다. 트럼프가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는가? 일베가 거짓말을 한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성향과 상관없이 우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많은 정치 유튜버들 역시 마찬가지다. 개중에는 저렴한 개소리냐 심오한 개소리냐 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트럼프 덕에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심리학자들이 개소리를 연구하느라 바쁘다. 그 덕에 어떤 사람이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가. 어떤 사람이 개소리를 주로 만들어 내는가에 대한 결론은 나왔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믿기 싫은 이’다. 정부가 코로나 검사 결과를 조작하여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한다고 믿고 싶은 이가, 코로나는 간첩의 바이러스 테러라고 믿고 싶은 이가, 그 말을 만들어 퍼뜨리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이들이 가짜 뉴스에 영향을 잘 받는지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2016년 캐나다 워털루대학의 고든 페니쿡은 개소리 연구로 이그노벨상을 수상했으니 축하할 일이다. 독자분들도 심심하면 구글을 켜고 bullshitgenerator.com 사이트를 방문해 보시길. ‘이성은 하늘의 분출구다’ ‘의식은 양자의 초지각입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면에 숨겨진 의미는 비할 데 없는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변형시킨다’ 등 클릭 한 번으로 그럴싸한 개소리들을 생성할 수 있다.

페니쿡의 연구팀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개소리에 현혹되는지 실험을 했고 몇 가지 공통점을 뽑아냈다.

• 종교적 신념이 비뚤어지게 강한 자.

• 이상향에 대한 강박 관념이 강한 자.

• 부적절한 신념이 강한 자.

• 지적 수준이 낮은 자.

•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열심히 살면 다 된다’고 믿는 자….

우리에게 행복이 필요한 이유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온 한국인들의 어느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그리고 이런 특성을 지닌 집단은 1920년대 유럽에서도 있어 왔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악재를 걱정하는 것은 스페인 독감 이후 벌어진 역사의 비극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히틀러나 무솔리니, 일본 군부 지도자들 역시 거짓말쟁이는 아니었다. 그들은 전형적인 개소리 생성자였다. 그리고 전쟁과 학살의 역사 또한 생성해 내고 말았다. 1차 대전 이후 민족적 이익에 집착하여 전 세계적으로 배타성을 띠고 있는 당시의 상황이 현재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과 유사하지 않은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선하고 보편적인 다수의 욕구가 분출되어 실현될지, 소수의 부적절하고 비뚤어진 이상을 지닌 개소리가 가속화될지, 그래서 누가 역사의 승리자가 될지에 따라 인류의 미래는 전혀 다르게 펼쳐질 것이다. 또 다른 양상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지 더 선하고 나은 세상이 될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현재를 ‘역사의 변곡점’이라고 감히 명명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개소리하는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을지,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 말이다. 여기에는 굉장히 명확한 답이 있다. 행복이다. 정확히 말하면 행복한 사람은 절대 개소리에 당하지 않는다. 행복한 이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파괴보다는 공존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행복해 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좋은지 안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이어 나가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있다. 이들은 절대 파괴를 선택하지 않는다.

작고 소박해도 확실한 행복을 경험하는 것이 개소리에 대항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세계 1차 대전 이후 척박하고 암울한 세대에는 그 행복을 누릴 만한 여건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코로나로 인한 극도의 불안과 상실, 분노와 혐오 등 부정적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작고 반짝이는 일상을 찾고자 애쓰는 이들이 있다. 이런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야 하는 행복의 가치와 중요성, 나아가기 위한 지혜의 방법들까지. 혼돈에 빠진 세상 속에서 많은 이들이 절실하게 궁금해한 심리학의 과제들이 있었다. 무수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연구하고 고민하다 보니 어느덧 작은 길이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지금부터 독자 여러분과 함께 그 길을 조심스럽게 찾아보고자 한다.

*위 글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에 심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문제해결 그리고 창의성에 관해 연구하였고, 현재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면서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장을 지냈고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면서 대학교 각종 교육기관, 기업에서 왕성하게 강연하고 있고, ‘어쩌다 어른’, ‘세바시’, ‘책 읽어 드립니다’, ‘나의 첫 사회생활’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게 있는 “김경일”교수의 저서 ‘적정한 삶’ 제4장 ‘불안의 시대에서 행복을 말하다’ 중 일부를 옮겨본 것입니다. 그 외 저자의 저서로는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십 대를 위한 공부사전” 등이 있고, 역서로는 “혁신의 도구”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