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천강 둑을 거슬러
하지를 일 주 앞둔 유월 셋째 금요일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 이른 시간 자연학교 등교를 위해 길을 나섰다. 창원역 기점으로 유등으로 가는 2번 마을버스를 탈 생각인데 평소와 다르게 원이대로로 진출했다. 며칠 전 반송 소하천에서 봤던 흰뺨검둥오리 불어난 가족이 궁금해서였다. 나흘 전 거기에는 흰뺨검둥오리가 올여름 두 번째와 세 번째 부화가 있어 새끼를 까 키웠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따라가니 소하천에는 쇠백로가 먼저 눈에 띄었다. 어딘가 베이스캠프를 차려 아침 일찍 먹이 탐사에 동참했다. 그보다 조금 바깥으로 나간 냇바닥에는 새끼를 데려 나온 어미 흰뺨검둥오리가 헤엄을 시험해 쳐 보이며 먹이를 찾아 나섰다. 엊그제는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이 꼼지락거렸는데 자유롭게 헤엄쳐 다녔다. 체격을 더 불린 오리들도 보였다.
어미 흰뺨검둥오리가 새끼를 데려 나와 먹이를 찾아 먹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원이대로로 나가 창원역으로 가는 5000번 버스를 탔다. 버스는 전용차선을 미끄러지듯 달려 6시 반 출발하는 유등행 2번 마을버스를 탔다. 미니버스라 좁은 차내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는데 도계동 만남의 광장부터 탄 승객은 서서 가야 했다. 생업 전선에 지칠 손님이 출근길에 서서 감이 조금 미안했다.
동읍 행정복지센터와 주남저수지를 비켜 장등에 이르니 승객이 줄더니 대산 산업단지에서 거의 내렸다. 가술부터는 한 아주머니와 둘만 남았는데 나는 종점을 앞둔 유청에서 내렸다. 한식뷔페 식당이 있는 삼거리에서 뭔가를 포장해 트럭이 짐을 싣고 드나드는 공장을 지나 저산서원으로 향했다. 죽동천이 흘러와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류에는 김해 김씨 삼현파 저산서원이 있었다.
가락 문중에서 중시조로 모시는 ‘단’을 향사하는 서원으로 그는 고려시대 인물로 성리학을 전래시킨 안향 계보를 잇는 학자요 관리였다. 조선 초기 무오사화의 단초가 된 ‘조의제문’을 쓴 김일손 후예들이 번성해 지금도 정계는 물론 재계에 쟁쟁한 현역 인사들이 다수였다. 저산서원 문간에서 서성이니 현지 농민이 덩치 큰 싸움소를 일광욕시키려 트럭에 태워 싣고 강가로 나갔다.
서원을 나오자 외딴 농가 텃밭 어귀에서 그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산야초가 있어 궁금했는데 꼬부라진 꽃을 피웠다. 잎사귀에 희끗희끗한 무늬가 들고 꽃은 하얀색이었다. 사진을 찍어 다음 검색창에서 확인하니 ‘삼백초’일 확률이 99%로 나와 의문이 풀렸다. 언젠가 약초라고 들어본 이름인데 실물로 보기는 처음으로 뿌리까지 희다고 했다. 야생초인지 가꾼 건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죽동천에서 들판을 지나니 주남저수지에서 시작해 진영읍을 둘러오는 주천강이 낙동강의 샛강이 되어 흘렀다. 강둑과 나란한 수로 언저리에 올해 여든네 살 할머니가 고추를 가꾸었다. 고추는 열매를 맺어 익으려는 즈음인데 아침 일찍 바가지로 수로의 물을 퍼다 주어 생기를 띠었다. 할머니는 고령에도 유모차를 이용해 두엄을 나르고 수확 고추를 집까지 가져오는 농사를 잘 지었다.
할머니가 농사짓는 고추가 풍작이고 건강하길 바란 인사를 나누고 주천강 둑을 따라 걸으니 노랑어리연이 수면을 덮다시피 자라 꽃을 피웠다. 저지대 논에는 뿌리를 캐려 키운 연도 꽃봉오리가 솟아올랐다. 주천강 하류는 김해 한림면과 진영읍이 경계이면서 창원 대산과 맞닿았다. 용등에서 들녘을 더 걷다 더위를 느껴 상비약처럼 준비한 죽염 가루를 꺼내 얼음 생수와 곁들여 마셨다.
들녘을 지난 중포마을에서 25호 국도변을 걸어 가술에 이르니 10시가 지날 무렵이라 아침부터 걸은 지 3시간이 되었다. 마을도서관으로 가도 냉방이 잘 되겠으나 카페도 시원하고 조용할 듯해 찾아들었다. 냉커피를 시켜 배낭에 넣어간 하기주 ‘목숨’ 1권을 한 번 더 읽어 나갔다. 강씨 집안 내력에 이어 거제 연안 멸치잡이 어장 신태산이 여승 정원과 인연을 맺는 부분까지 봤다. 24.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