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으로 갔다.
나는 몇 번 와 봤는데 꽃님들은 처음이란다. 편백숲으로 가려다 이리로 오길 잘 했다.^^
대숲이 바람에 일렁이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
삼국유사에 보면 경문왕이 왕이 되고 난 뒤 갑자기 귀가 길어져서 나귀 귀처럼 되었는 이야기가 있다.
이 비밀은 왕의 두건을 만드는 복두장(幞頭匠) 한 사람만 알았다.
그는 비밀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다가 죽을 때가 되어 도림사(道林寺) 대나무숲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나귀 귀와 같다." 하고 외쳤다.
그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가 서로 부딪치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경문왕은 대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게 했다.
그 뒤에는 "임금님 귀는 길다!" 하는 소리만 났다 한다.
잘 가꾸어 놓은 대숲을 보고 감탄을 자아낸다.
만져도 보고
두드려도 보고.
이런 곳이 있는 걸 보고 무얼 하던 곳일까 상상한 걸 말하기도 하고.
더러 대나무 마디에 날카로운 가시 같은 게 있다.
죽순을 싸고 있던 껍질이 떨어지면서 생긴 흔적 같다.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 만져보려는데 날카로워 보여 베일까 조심스러웠다.
대나무 소쿠리 씻다가 일어난 대나무 가시에 찔린 일이 떠올랐다.
그때 꽃님 하나가 이런다.
"샘예, 그 가시 엄청 날카로워요. 조심하세요!"
"언제 만져 봤어요?"
"그럼요. 손 베이지 않게 조심 하이소!"
"알서요."
언제 요런 걸 다 만져 봤다냐...존경하며 손을 갖다 대는데 뜻밖에도 아주아주 부드러웠다. 솜털처럼!
"아잉 뭐야! 선무당이 또 뻥을 쳐 아는 척 한 거야?" ^^
ㅎㅎ 덕분에 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심심풀이 땅콩 같은 추억 하나 더 생겼다.^^
대숲 사이에 난 길로 가는데 잘라진 대나무가 많이 보였다.
버려진 건 필요한 사람이 쓰면 좋겠다 하면서 아까워하는데 깔쟁이님이 잘라진 대통 하나를 봤다.
"샘예! 우리 그냥 갈 수 없지예? 이거 가지고 '투호 놀이'라도 하입시더?"
"그라까요? 근데 얘는 너무 짧아 투호 던지면 쓰러지겠는데 '던져서 넣기 놀이' 하면 되겠네요?"
그러자 깔쟁이 님이 눈 반짝반짝하며 이런다.
"샘예! 우리 동전 따먹기 놀이 하입시더?"
"예? 난 동전 없는데요."
맑음 님이 엄청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해서 또 웃었다.
우린 동전도 던져 넣고, 돌멩이도 던지며 놀았다.
다들 제대로 넣지 못하자 차례를 기다리던 달과별이 님이 이런다.
"던지기 전에 5초정도 꼬나보고 하이소. 그러면 잘 돼예."
그럴싸한 말에 시범을 보이라니 몇 번을 던지는데 다 헛방이다.^^
ㅋㅋ 그래서 또 한바탕 웃었다.^^
요거이 들어가야 하는디...
봤제, 이번엔 들어갔제? ^^
놀이 끝내고 대숲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분이 뽀얀 대나무 줄기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난 요 그림이 동화속 주인공 같아 이뻐 죽겠는데^^
누가누가 얼굴은 토낀데 몸은 오리라나 뭐라나.^^
자연에 데려다 놓으면 요렇게 잘 논다.^^
상처가 나지 않게 분만 살살 긁어내며 그렸다.
그런데 맑음 님은 꾹꾹 눌러 그렸다.
대숲에 사는 지네랑 글씨는 멋진데 대나무는 좀 아프겠다.
대숲 일급비밀은 뭘까? ㅋㅋ 난 안다.^^
잘라낸 대나무. 마디 부분이 깨끗하고 이쁘다.
가운데 쏙 들어간 부분 하얀 막이 얼마나 두꺼운가 궁금하다.
꼬챙이로 쑤신다. 으샤 으샤.
생각보다 딱딱하고 두꺼워 어림도 없다. 잘못하다간 손 다치게 생겼다.
이번엔 돌멩이를 주워서 콩콩 찍어 본다.
와, 구멍이 났다.^^
부서진 조각이 틈 안으로 들어갔다.
꺼내보니 구운 국수꽁당가리 같기도 하고,
누룽이 같기도 하고,
고구마 빼뜨기 해놓은 것 같기도 하다.
요걸 보고 그냥 둘 사람들이 아니지. ^^
한 조각씩 물고 맛을 본다.
혀를 살살 굴리니 고로쇠 물맛처럼 살짝 달큼하고 대나무 향이 난다.
깨물어보니 딱딱해서 이 다치게 생겼다. 몇 번 빨다가 대숲에 훅 뱉었다.^^
토끼처럼 입에 물고 있다.ㅎㅎ
뿌리줄기 마디에 뾰죽 솟은 눈.
요것이 땅속에서 자라면 죽순이 되고, 커다란 대나무가 된다.
달과별이 님은 믿어지지 않는 듯 몇 번이나 "와, 그래요?" 한다.
넘어진 대나무.
마대 자루에 갖혀 뿌리째 뽑힌 나무를 보며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다.
숲 아래에 있던 비파나무. 비파나무는 겨울에 꽃이 핀다.
추워서 꽃봉오리가 솜털 뒤집어 쓰고 있다.
한 나무에서도 먼저 핀 꽃. 그래서 더 반갑다.
대숲을 내려오니 산수유가 있다.
경문왕이 대숲을 베어내고 심었다는 나무다.
공교롭게도 대숲 아래에 있으니 그 이야기가 더 생각났다.
산수유 심은 뒤에는 "임금님 귀는 길다!' 이런 소리가 났다지.^^
ㅎㅎ 산수유 열매는 길쭉하다.
점심 먹기 전에 입맛 돋우려고 산수유 하나 따 먹었다.
나는 네 개나 따먹었다.^^
새콤 달콤, 아이 셔!
내려 오는데 숲 가장자리에 익은 꽈리가 보인다.
잘 익은 거 하나씩 따먹고, 남은 건 꽈리를 만들기로 했다.
예쁘게도 익었다.
꽃받침이 자란 껍질을 벗기면 이쁜 열매가 나온다.
아고, 맛나 보인다.
입에 톡 던져 넣고 터뜨리니 새콤하면서 방울토마토와 까마중 중간 맛이 난다.
꽈리 익은 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독이 있으니 많이 먹으면 안 된다.^^
꽈리를 만드려면 속에 씨를 빼야 한다.
꽁무니에 가는 꼬챙이 넣었다 뺐다 하면서 껍질이 터지지 않게 조심조심.
내려 오면서도 꽈리 삼매경에 빠졌다.
씨가 많아 점심 먹으면서도 뺐다.^^
드디어 꽈리 완성.
달과별이님 거랑, 내 거다!
빼낸 씨와 과육이 엄청 많다.
씨는 빼도 빼도 끝이 없더니...그래도 끝이 있었다.
꽈리 터뜨리지 않고 그 많은 씨 다 빼냈다고 나한테 칭찬했다.
중간에 포기하고 꽈리를 터뜨린 깔쟁이님은 그참에 씨앗 수를 센다. 대충 세더니 200개쯤 되겠단다.
애지녁에 포기한 맑음 님이 꽈리 씨 빼는 거 보며 머리 흔든다.
"그기 재밌어예?"
"아직도 씨 빼고 있어예?"
"와, 인내심 대단하네여."
깔쟁이님은 내 꽈리가 터지지도 않았는데 자꾸 터졌다고 한다.^^
ㅎㅎ 나중에 한번 불어 보자고 하기만 해 봐라.^^
아고 아고 이쁜 꽈리.
터지지 않게 불어야지.
조심조심 불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이 위로 떠졌다.
이거 보고 깔쟁이 님이 눈 뒤집어졌다고 놀렸다.
ㅋㅋ 그래서 또 웃고.^^
달과별이님이 꽈리 부는 것도 찍었는데
경기하듯 눈이 완전 뒤집어져서^^ 차마 사진을 올릴 수가 없다.
보는 사람들 놀랄까 봐.^^
이렇게 안 하던 눈 뒤집기까지 하며 몇 번 부는데 지켜보는 사람이 난리도 아니다.
표정이 너무 너무 웃긴다고.
몇 번이나 불어도 뭔일인지 '꽈륵꽈륵' 소리는 나지 않고 '푸시시시~'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났다.
깔쟁이 님이 그것도 못 부냐고 구박을 했다.^^ 그래서 그럼 어디 얼마나 잘 부나 불어보라고 했다.
그런데 꽈리가 없다.
할 수 없이 내가 불던 꽈리를 사이다에 씻어 주니 깔쟁이님이 처음엔 망설이더니 아주 열심히 불었다.
어떤 일이든 당당, 자신만만! 이건 그녀의 매력이다.
아까 대나무 마디 털을 가시라고 뻥~치고 나서 금세 들통 나 배꼽 빠질 때도 있지만, 그건 꽃모임 활력소다.^^
맑음 님은 깔쟁이 님 더러 남이 불던 거 분다고 더러워 죽겠다고 오만상 찌푸리고 난리부르스를 춘다.^^
불기 전에 꽈리에 바람 넣는 깔쟁이 님.
늘 당당한 매력 덩어리 그녀도 뭔일인지 이건 얼굴 다 나오게 찍지 말란다.
ㅋㅋ 입술 모델이 자신 있나?
"알서요. 그럼 주문대로 얼굴은 안 나오게 찍지 뭐."
ㅎㅎ
당겨 찍으니 여드름 자국까지 보인다. 이거보면 깔쟁이 님 까무르칠 거다.^^
바람 채운 꽈리를 구멍이 혀에 닿게 하여 물듯이 넣는다.
자 그럼 소리를 내어 볼까.
조심조심 무는데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난다.
ㅋㅋ 내가 불 때 못 분다고 답답해 하더니 자기도 몇 번이나 해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왜 소리가 안 나지?"
갑자기 문방구에서 사서 불던 소리 잘 나던 고무꽈리가 그립다.
그거 파는 문방구 어디 없나? ^^
바람 빠지고 쪼그라든 꽈리.
점심 먹으며 꽈리 불며 깔깔거리고 나오니 버섯 달려 있는 커다란 뽕나무가 보인다.
어잉, 느타리버섯 같은데!
어디까지나 '같은데'이지 확신은 절대 안 한다.^^
느타리버섯은 사먹어 봤지 자연산을 따 본 일은 없다.
냄새도 맡아보고, 갓도 들여다 보고, 여럿의 의견이 느타리버섯 같다로 모아진다.
하지만 확신은 금물. 조심조심 맛을 본다. 음~~~
그런데 생각보다 맛있다.
느타리가 맞다면 이건 보약이다. 자연산이라 좋기도 하지만,
김재원 선생님이 몸에 좋다고 입만 여시면 뽕, 뽕~ 하는 뽕나무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느타리버섯이라 여기고 꽃님들이 땄는데 아무도 안 가져 간단다.
어잉, 이건 또 뭔 시츄에이션?
ㅋㅋ 반찬하기 귀찮은갑다. 또 독버섯이면 어쩌나 싶어서겠지.^^
우짜겄노. 실험정신 둘째가라면 서러운 내가 살신성인해야지.
자기들은 나보다 어리니 기중 오래 산 나혼자 다~ 먹으란다.
아이쿠 머리야! 몇 살이나 어리다고. 우띠! ^^;;
ㅋㅋ 좋은 수가 있지.^^
버섯 박사 산그림 샘한테 여쭤 보고 먹어야지. 메롱! ^^
책 찾아보니 자연산 느타리 버섯은 죽은 나무에 산단다. 가을에서 봄에 걸쳐 핀다는데 시기는 딱 맞는데
우리가 본 건 살아있는 뽕나무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말라 죽은 가운데 목질 부분에 붙어 있으니 죽은 나무에 붙은 거라 해도 되겠다.
손이 시린데도 한참이나 버섯에 코박고 논다.
어린 버섯도 있다.
잘라진 부분을 보니 맛나게 생겼다.
같은 나무 죽은 가지에 먹는 목이버섯도 달려 있다.
이곳에 왔다가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거 보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잎 떨군 뽕나무야, 겨울 견디면서도 많은 거 보여 줘서 고맙다.
와, 굵다!
두 손으로 잡아도 이만큼 남는다.
대숲에서 보낸 하루, 생각만해도 기분 좋고 감사하다.
[2010. 12. 8. 풀꽃지기 자연일기]
첫댓글 부럽습니다!
선생님은 바쁘신 중에도 여유를 잘 내시잖아요.^^
버섯, 디게 이쁘네여. ^^* 꽈리도.
잠깐 선생님께서 꽈리 부는 모습...상상해 봅니다.
어쩜~~ 자연 속에서 이리 잘 노실까요 ㅎㅎㅎ 푸르른 대나무를 보니 눈까지 시원해지네요 ^^ 빠알간 꽈리도 참 곱구요~
ㅎㅎ 애들처럼 참말로 잘 놀죠? ^^
공부는 안 하고 말이에요.^^
함께 자연속에서 신나게 놀다 갑니다. 감사해요
윤자명씨한테서 종종 문선생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함께 신나셨다니 고맙습니다.
진짜 잘 노시네요. ㅎㅎ부럽당
가까이 살면 선생님도 함께 숲에 가시면 좋아하실 것 같은데...아쉽습니다.^^
그르게 말입니다. 저도 노는거라면 잘 쫓아다니는데
대숲에 서면/
저녁바람이 피리를 분다
쏴아쏴아 번지는 댓닢 불꽃/
몸 데인 굴뚝새가 날고
렌트켄 선을 쏘인 듯
대숲은 환히/
뼈를 보여준다.
멋진 시네~
우와, 시인이 보는 세상은 확실히 다르네요.
댓닢 불꽃,
대숲 뼈~~~
꽈리 불어 본 지 하도 오래 되어 지금 불면 소리가 날랑가 모르겠네요
ㅎㅎ 이제는 꽈리 씨 빼는 것도 눈이 가물가물(^^)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