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나에게 차갑게 말하던 그 사람이 지금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어떻게 해야하는지....
일어나라고 하는데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자세로 앉아서 흔들리지 않는 동공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볼뿐이다.
"일어나 수원아. 제발"
"미안해. 너 힘들었다는거 예상은 했는데..."
"수현이지?"
"하...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잘 하지 않던 수원이였다.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혼나도 한번도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던 수원이였는데
그런 수원이가 지금 내 앞에 무릎꿇고 앉아서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있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일단 앉자 응?"
"...."
"형이 이러면 누나 더 힘들잖아. 일어나"
수현이가 들어와서 수원이를 일으켜 내 앞에 앉혀주었고
자기는 그 옆에 앉았다.
나에게 미안해 해야하는데 전혀 미안하다는 표정이 아닌 수현이는 계속 나를 보고 웃고만 있다.
"미안...."
"아니야 괜찮아."
"진짜 미안해. 니 전화왔을때 그렇게 말하는게 아니였는데... 내가 미쳤었나봐."
"...."
"신호수새끼 병신됐던거 생각하니까 갑자기 확 뭐가 끓어 올랐어."
"괜찮아."
연신 미안하다고만 하던 수원이는 내가 술잔을 드는걸 보고 깜짝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옆에서 수현이가 '누나 술 엄청 잘마셔!' 하고 거들어주는 것까지 포함한다.
수원이가 손을 뻗어 내 술잔을 내려놓고 이번엔 아까보다 더 표정없는 얼굴로 말한다.
"왜 말안했어. 왜"
"말해봐야... 난 나쁜년인걸"
"하지만 적어도 우리한테는 말할수 있었잖아. 수혀이 이자식한테 말할수있는거면"
"기댈사람이 필요했어. 그런데 그때 수현이가 나타나 준거고, 그래서 수현이는 믿을수 있겠다 싶어서
그래서 수현이한테 말한건데. 잘못말했네. 나 온거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
"병신이냐. 너 복학한거 학교에 소문 다 났어."
수원이는 한번도 보여준적 없는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저렇게... 웃기도 하는구나.
"누나! 우리형이 안게 나쁜일은 아냐, 우리형이 다 해결해줄꺼야!그래서 말헀어.
나중엔 나한테 고마워 할껄?"
"수현아. 넌 내 부탁이... 말같이 안들렸니..."
"내가 졸랐어. 너랑 같은반 이라는거 알고 내가 이새끼한테 시켰어"
"...나 오늘 쉬고싶어. 나 먼저 갈게."
비틀비틀 거리는 내 몸을 살짝 받쳐서 내 옆에 서서 걸어주는 수원이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듯하다.
친구들...에게 인가?
"애들한테 하는거면 그만둬. 호수라면 더더욱 더"
"그래도..."
"너도 그랬잖아. 듣기전엔 나 손가락질 하고 욕했잖아. 그 아이들도 그래. 지금 그럴꺼야"
"넌 왜그렇게 니 생각만하냐! 우리! 너 그렇게 가고나서 뭔일있는거 아닌가 걱정했다고! 근데 뭐? 우리가 널 욕해?"
"그래도 하지마. 나 다시 미국갈꺼야. 곧 다시 가. 그러니까 차라리 알리지 말아줘"
미국에 다시 가겠다는 계획따위는 애초에 없다.
아이들을 보면 흔들릴까봐. 미국에서 있었던일 모두 다 말해버리고 엉엉 울어버릴까봐
그게 두려운거다. 나는 지금
수현이가 편의점에 들어가서 술깨는 약을 사오고
내일 아침에 먹으라며 속쓰린데 먹는약까지 사들고 나왔다.
수원이에게 얼른 들어오라는 말을 남기고 수현이는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다.
"일단 먹어."
"됐어. 나 집에 가고싶어"
"먹고가라구. 데려다 줄테니까"
"하... 알겠어. 대신 데려다 주지마"
수현이가 사온 술깨는 약을 단숨에 들이키고 수원이를 쳐다봤다.
아직도 안심이 되지 않는 수원이는 계속 내 손만 강하게 잡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손을 빼려고 하면 그 손에 힘을 더 가하는것이 내 손으로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렇게 아픈데 왜 참냐."
"안아파. 이제 익숙해."
"얼굴에 '나 아파요' 써있는데 그걸 그냥 버려?"
"신경쓰지마. 그냥 오늘 들은거 몰랐던걸로 생각하고 지워버려. 그리고 나한테 차갑게 굴어
이러는거... 이상해. 내가 나쁘다는 거 나는 알고있어."
"걱정도 내맘대로 못하게 하냐?"
"하지마. 나같은거 걱정하지마"
수원이 표정이 그렇게 좋지만은 안을거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수원이의 표정이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그럴것이다.
잔뜩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겠지....
수원이가 주머니를 뒤적뒤적.
또 핸드폰을 찾는가 싶어 그 손을 계속 바라봤을때
그녀석 손에 들린건 담배 대신에 핸드폰이었다.
핸드폰으로 뭔가를 찾는다 싶더니 나에게 '잠깐 기다려!'라고 말을 하고 어느 가게로 들어가버린다.
아직 늦은 밤은 아니라서 그런가... 열려있는 가게가 참많다.
"이거 받아"
"뭐야 이거"
"나 일하는 까페. 이제 수현이말고 나한테 하소연해. 나는 절대 비밀로 해줄테니까."
"생각...나면"
내 고집에 수원이는 결국 나를 데려다주지 못했다.
하지만 뒤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가 수원이라는 거 알고 있다.
니 그림자 눈에 다보인다구. 바보야
"이제 어쩌면 좋으니..."
입에서 술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 싶어 조금 걷자는 생각으로 시내를 삐잉 돌고있다.
시내를 지나치려는데 문득 보이는 쥬얼리샵. 호수와 커플링을 산곳이다.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수원이가 다 보고 있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말이야.
".... 이쁘네"
그 샵에 있는 보석들은 모두 반짝이며 빛이나면서
'이쁘다' 하는 감탄사를 절로 나오게 할만큼 예쁘게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지금 내 목걸이에 걸렸있는 반지만큼 이쁜건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수가 없다.
신상품이 나와도 별써 수십개는 나왔을텐데 일년전보다 이쁜게 수십개는 많은텐데
내 눈에 가장 예뻐보이는건 호수와의 커플링뿐이다.
호수의 추억이 담겨서일까…
"이제 가야지."
문득 뒤 돌아선곳에서 또 보게 되었다.
호수와의 추억을…
이벤트. 이벤트였다.
가장 멋진 고백을 하는 남자에게 티켓을 준다던 그 쇼핑몰 앞이었다.
이렇게... 가까웠었나...
호수가 눈물날만큼 감동적인 멘크를 날려주었는데....
나 엄청 많이 울었었는데 말이야.
'니가 날 놔버려도 니가 언제든 돌아올수있게 난 너 잡고있을게
싸우지말자, 헤어지지 말자, 좋은일만 만들자, 아프지말자, 우리...영원히 예쁘게 사랑하자. 사랑해.윤희린'
라고 말하던 호수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한데...
그냥 했던말에 불과했었니.... 그래서 혜인이와 사귀는거니...
억울해. 내가 왜 호수를 멀리서 지켜만 봐야하는지 억울하다.
원망도 해봤다.
나만 남겨두고 간 가족을.
그리고 나에게 큰 기업을 물려 주고려고 하시는 할아버지를...
하지만 그 집 핏줄인 이상 어쩔수 없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단념하게 된거였다.
"죽고싶냐?"
이리저리 호수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누군가의 가슴쪽에 이마를 쾅- 하고 부딫혔다.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 나는 그 사람의 얼굴도 한번 확인하지 않고
'죄송합니다' 하고 계속 사과만 하고 있는데
뭔가 말을 하거나. 나를 지나쳐 간다던가 해야 하는 사람의 반응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뭐하는 거야 이사람...
"윤희린. 죽고싶냐고 물었다."
다시한번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어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 시간까지 안들어가면 그냥 잠이나 잘것이지..
이 큰 시내에서 나를 찾아다닌 듯한 이든이의 모습이었다.
"들어가려고 했어..."
"근데 왜 여깄는데"
"술에 취해서... 그냥... 바람이라도 쐴까 하고"
"혼자 마셨냐? 친구는?"
"아... 먼저 보냈지."
"지랄. 니 뒤에서 서있는건 누구냐?"
아. 맞다.
수원이를 잊고 있었다.
이든이는 수원이를 본듯한데....
수원이도 이든이를 봤을까?
"나 피곤해. 집에가자 얼른"
이든이의 손을 끌고 무작정 택시에 몸을 실었다.
백미러로 수원이의 모습이 보였지만
지금이라도 다가가서 수원이에게 안겨 엉엉 울면서
호수를 돌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에게 그럴자격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는걸 알고있기에
그렇게 할수 없었다.
.
.
.
"이럴꺼면 한국 왜와,."
"미국보단 여기가 좋아"
"아프기만 하잖냐."
"아파도.... 가끔지나가다가 호수를 볼수도 있고. 가끔 지나가다가 친구들을 볼수도 있는걸."
"너때문에 못산다 진짜. 수명이 반으로 줄어든거 같아"
이든이한테도 매일 못할짓을 시켜왔다.
매일 내 투정을 다 받아주고 언젠가는 좋아한다고 겨우 고백을 했었는데
나는 힘들게 한 고백을 '장난치지마~' 하고 장난으로 넘기기도 했다.
왜 난 내 옆에 있어주는 사람에게 나는 짐만 되는걸까?
"이든아. 수원이가 이제 다 알아"
"뭘"
"내가 왜 윤희련이 됐는지."
"어떻게"
"내가 학교가서 사귄 친구가 수원이 동생이야"
"잘 됐네. 이제 그새끼한테 가서 울어. 너때문에 버린옷이 한두개냐?!"
내가 이든이에게 안겨 울어서 눈물 콧물 다 짜는 바람에
이든이가 옷을 참 많이 버렸다.
그때마다 새 옷을 사긴 했지만 그래도 이든이는 언제나 '작작 울어라. 씨- 너 이제 물먹지마' 하고 말했다.
물을 안먹으면 눈물이 안나는줄 아니...
나를 웃기려고 한말이라는거 잘 알고있다. 하지마 웃을수가 없는걸.....
"잠이나 자. 술냄새 쩌네"
"아...응"
나를 방 문 앞까지 데려다 주는 이든이는 금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오늘도 방에 들어갈수 없었던 나는 조용히 발소리를 죽이고 소파로 다가가 리모콘을 찾았다
그리고 어둠지 않게. 어둠이 날 감싸지 않게 TV를 틀고 보고 있다/
케이블 방송에서는 개그 프로그램이 재방송을 하고 있었지만. 그걸 보고도 웃기지 않는다.
다 억지 웃음일 뿐이다.
내가 미국에서 찍어온 사진들 처럼...
카페 게시글
하이틴 로맨스소설
[ 장편 ]
※이것이 우리들의 해피엔딩※48화
췰성사이돠
추천 0
조회 80
08.07.22 01:2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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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원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2222222222
꺄앇............너무재밌다눈?으흐흐흐흐흐흐....다음편짱짱궁금해요..정말호수눈치를못채고있는건가염?다음편 에서뵈용용!기대할게용
재미있어용>_<~~~
재미있어용>_<~~~
수원이,힘들겠네..답답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