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더 중요한 주제로 넘어가기 위해서 ‘끝으로’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리고는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1). 우리의 참된 기쁨은 주님과 연합 안에서, 그분의 공로와 인격 안에 있습니다. “개, 행악하는 자, 손 할례당’은 모두 구원을 위해서는 이방인들도 할례와 같은 외적인 율법의 준수사항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을 가리킵니다. 참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복음을 받는 자들입니다. 반대로 육체적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영적 이방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성령으로 봉사하고 예수님을 자랑하는 자들이 진정으로 율법을 지키는 자들입니다(2-3). 만약 육체를 신뢰한다고 해도 바울만큼 참 이스라엘은 없습니다. 말하지만 바울은 유대인 중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진정한 유대인입니다. 율법도 가장 엄격한 집단인 바리새파에서 교육 받고 지켰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모든 것은 구원에 해를 끼치는 배설물과 같이 취급 합니다(4-8). 여기서 배설물은 짐승의 배설물입니다. 이런 배설물은 가지고 있을만한 것이 아닙니다. 갖다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생각하자면 학벌, 소득, 가문, 외모, 성취와 자랑 등을 예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긴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길 원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유일한 ‘의’임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바울은 주님의 죽으심도 본받기 원합니다. 이것은 육체적인 죽음 뿐만 아니라 완전한 거룩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죄에 대해서 완전히 죽는 것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구원을 얻었다고 그것에 안주하지 않고 더 거룩한 삶을 위해 나아가려고 합니다. 이전에 잘한 것들은 과거로 묻어두고 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기대하며 앞에 있는 푯대를 하여 나아갑니다(12-14). 따라서 성숙한 성도는 바울의 이런 견해를 견지해야 합니다. 만일 빌립보 교인이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 사소한 잘못된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성령께서 분명히 밝혀 줄 것입니다. 바울은 어디에 이르렀든지 같은 길을 그대로 행하자(쫓아가자)고 합니다. ‘쫓아간다’는 표현은 운동경기에서 목표점을 향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승점까지 그 길을 쫓아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는 다른 사람들을(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같은 사람들) 눈 여겨 보라고 합니다. 바울이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더 거룩하고 성숙한 삶을 위해 달려가는 길을 모방하여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탐식과 방종에 자기 몸을 맡기기에 결국 부끄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와 같이 행하지 않았습니다(17-19). 그런 사람들과는 반대로 바울과 빌립보 교회는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이 땅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빌립보가 로마의 식민지이지만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많듯이, 교회는 이 땅에서 살지만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의 소속이 아닙니다. 이 땅의 소속이 아니라는 것은 천국의 법과 원리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만물을 다스리는 분으로 오셔서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시키실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20-21).
우리는 천국의 백성으로 주님을 본 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어떠함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또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고 날마다 거룩해지는 믿음의 경주를 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예수님만 의지하며 푯대를 향해서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