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역사(3월22일) 3월 22일은 그레고리력으로 81번째(윤년일 경우 82번째) 날에 해당한다. 유엔(UN)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
1900년대 | |
🌱14년 호남선 개통 일제강점기 엽서에 있는 목포역 사진(1914년 3월22일 오늘 호남선 개통) | |
🌱28년 조선소년총동맹 창립 1928년 3월22일 오늘 조선소년총동맹 창립 | |
🌱32년 조선혁명당소속군인, 신보현 영능가 일본군격파 🌱47년 남로당 지도 아래남한 전역에서 24시간 총파업, 좌익 요인 검거 선풍 🌱53년 헌병총사령부 설치, 초대 사령관 원용덕 소장 🌱61년 2대 악법(반공법, 데모규제법) 반대 서울시민궐기대회, 대규모시위 | |
🌱62년 윤보선 대통령 정치활동정화법에 항의하여 대통령 사임 (24일 최고회의, 수리) ▶1962년 3월22일 제4대 윤보선 대통령 사임/1962년 3월 22일 하야를 결의한 윤보선(왼쪽) 대통령의 표정은 너무나도 담담했다. 그는 이날 가족과 함께 안국동 8번지 자택으로 돌아갔다. | |
🌱63년 군 비상지휘관회의, 군정연장지지-재야정치인 구국선언대회 군정연장반대 데모 🌱65년 단일변동환율제 실시 | |
🌱67년 이수근 북괴중앙통신 부사장, 판문점에서 귀순 1967년 3월 22일, 북한 이수근 판문점서 귀순 “자유가 그리웠소. 김일성은 오늘밤 분해서 편히 못 잘 것이오.” 1967년 3월 22일, 북한의 고위 언론인이었던 이수근 중앙통신 부사장이 극적으로 북측 지역을 탈출하며 내뱉은 첫마디였다. 오후 5시,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군사정전위원회가 끝나자 이수근은 재빨리 UN군 대표였던 밴 크러프트의 세단 승용차에 올라탔고 40여 발에 이르는 북한 경비병의 사격을 피해 귀순에 성공했다. 한국정부는 그가 북한의 국영통신사의 거물급 직책에 있던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그를 대대적으로 환영하였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었다. 남한에서 대학교수와 결혼하였고, 중앙정보부에도 특채되었고 반공강연을 하면 남한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처조카인 배경옥(당시 29세)과 함께 1969년 1월 27일 행선지를 태국으로 하여 김포발 홍콩행 CPA기에 탑승하여 홍콩으로 출국했다. 이씨 등은 도쿄, 타이페이를 경유하여 홍콩에 도착, 험프리 호텔에서 2일간 머물다가 캄보디아로 행선지를 변경하고, 프놈펜행 CPA기를 타려고 다음날 홍콩 공항에 나타났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한국영사관 직원들이 공항에서 이들을 체포하려 했으며 서로 격투가 벌어지자 홍콩 경찰이 이들을 연행하였고, 영사관 직원들은 외교관 특권에 의해 즉시 석방되고 이씨와 배씨는 억류되었다. 이씨는 홍콩 당국에 정치적 망명과 캄보디아행을 주장하였고, 홍콩경찰은 1월31일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가는 CPA기 편으로 이씨 일행을 출국시켰다. 이씨 일행이 경유지인 베트남 탄손누트 공항에 도착하여 기내에서 출발을 위해 대기하던 중 중정 월남(베트남) 책임자인 주월 한국대사관 이대용 공사가 대사관 직원과 함께 기내에 들어가 이들을 체포, 대사관에서 보호조치 하다가 이날 밤늦게 C-54 한국공군기 편으로 한국으로 압송했다. 그리고 그 해 5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으로 사형 판결을 받고 7월 3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중앙정보부 발표에 따르면 북한 중앙통신사 부사장으로 있던 이수근이 조선노동당 대남사업총책 이효순으로부터 위장 월남 귀순하라는 지령을 받고 1967년 3월 22일 판문점을 통해 월남 귀순하게 됐다. 그러나 그는 전국순회강연 및 TV-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북한실정을 폭로하는 척하면서 한국의 각종 기밀을 수집하여 북한으로 보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의 여러 가지 행동이 점차 수상해지자 한국정부의 정보 및 수사당국에서는 그를 주시하고 경계하기 시작했고 이수근은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수 없음을 눈치채고 위조여권을 만들어 비행기로 탈출, 호치민에서 북한으로 귀환하려다 한국정부의 정보요원에 의해 체포, 군용기 편으로 압송되었다. 하지만 2007년 1월 15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아래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달 전원위원회를 열어 인권침해사건인 이수근 간첩 조작의혹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며 "중앙정보부(중정)는 이수근을 위장간첩으로 조작해 처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과거 중정 자료와 직원들을 면담 조사한 결과 "중정 직원들이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라고 증언하고 있다"며 "중정에서는 위장귀순 여부를 신문하고 판단관 회의를 거쳐 자진귀순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한 당시 이수근한테는 간첩에게 필수적인 암호명이나 난수표 등도 없었고, 북한으로 보내고자 모스크바 교회로 발송했다는 비밀편지 또한 난수표에 의해 암호화된 것도 아니었으며, 국가기밀을 담고 있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1967년 당시 이수근이 운전기사나 감찰실 직원들의 동향감시가 심했기 때문에 외부활동이 어려웠고, 따라서 국가기밀 탐지행위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봤다. 특히 출국 당시 제3국 생활에 필요한 도구(영한사전, 한영사전)를 소지했고, 홍콩 도착 후 직접 마카오와 구룡반도를 경유해 주중북한대사관으로 탈출할 수 있었는데도 제3국인 캄보디아 행을 고집했던 것은 이수근이 중립국에서 살려고 했다는 점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사형 39년만인 2008년 12월 19일 이수근이 간첩으로 몰린 사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즉 위장간첩이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이 상소를 포기함으로써 판결이 확정되었다. 또한 이수근의 탈출을 도운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1989년 12월 석방된 이수근의 처조카 배경옥도 무죄를 선고 받았다. 1989년 처음으로 문제 제기된 이수근의 간첩 논란은 이로써 완전히 종지부를 찍게 됐다. 2008년 12월 19일 당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배경옥 선생 앞서 이 사건은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월간조선 1989년 3월호에 보도한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는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문제 제기됐었다. 재판부는 1980년대 후반 조 대표가 3년에 걸쳐 취재하던 도중 만난 홍필용 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이대용 전 사이공 공사, 김기완 전 중앙정보부 정보부국장 등의 인터뷰 내용을 판결의 근거로 인용하기도 했다. 조 대표 역시 월간조선 기사가 보도된 후 중앙정보부 감찰실장이었던 A씨(육사 8기)에 의해 명예훼손죄로 고소돼 검찰 조사를 받고 무혐의 처리되기도 했다. | |
🌱67년 금강대교 기공식 🌱68년 나프타 등 12개 공장을 포함하는 석유화학 계열 공업단지 기공식 | |
🌱69년 서울 3.1고가도로 개통 ▶1969년 삼일고가도로(청계고가도로) 완공 | |
🌱71년 내무부, 신원조사에서 연좌제 전폐한다고 언명 | |
🌱73년 남해대교 개통 1973년 3월22일 오늘 남해대교 개통 | |
🌱73년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부근 고분 발굴 착수 🌱74년 북한, 미국에 4개항 평화협정 제의(미국, 거부) 🌱75년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벽골제 발견 🌱75년 한승헌 변호사,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80년 한국 여자핸드볼, 예선전에서 우승, 첫 올림픽 참가권 획득 🌱85년 어선 제6 어성호, 소흑산도 근해서 표류중인 중공 해군 어뢰정 1척의 구조요청 받고 예인 🌱86년 국회, 제9대 대법원장 김용철 임명동의안 가결 🌱87년 부랑인 수용시설 부산 형제복지원 원생 1명, 집단구타로 사망 23일 원생 35명 집단탈출 🌱87년 5인조람보살인강도단-폭행 수장 방화 광란 3시간 🌱88년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 방미 🌱89년 88년말 현재 5만6615개 법인이 보유한 토지는 4486㎢이며 이중 공업용지는 4.1%에 불과 🌱89년 포항제철이 88년에 1308t의 조강을 생산, 세계 6위 기록 🌱89년 한국피코 노조원 200여명, 美 상공회의소 점거. 임금체불 도주 미국인 사장 규탄, 경찰 강제 해산 🌱90년 한국·체코 대사급 수교 서명 🌱90년 한-소 항공협정 발효 🌱90년 GATT 발표, 한국 수출입 세계 13위 🌱91년 한국은행,90년중 기업자금 부족 규모는 사상 최대인 28조7510억원. 🌱92년 육군 제9사단 이지문중위(24), '총선부재자 투표서 상급자 들이 여당후보 지지 공개투표 강요' 폭로. 🌱92년 제63회 동아마라톤 겸 바르셀로나올림픽 대표 선발전(춘천) 한국전력의 김재용선수(26) 1위를 차지 🌱93년 공직자 재산등록 공개-이만섭 국회의장 선출-박준규 사퇴 🌱93년 민자당, 당무위원 및 소속의원 161명의 재산을 일괄 공개. 최고액은 김진재 의원의 277억원. 🌱93년 정부는 물가보다 경기부양에 역점을 둔 '신경제 100일계획'확정 발표. 🌱93년 제64회 동아마라톤에서 김완기가 2시간9분 25초로 국내 최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 🌱95년 외무부, 팔라우와 외교관계를 수립 발표 🌱95년 홍천 내촌면 5개 초등학교, 화상수업 시작 🌱96년 공노명 외무장관, 장쩌민 중국국가주석을 예방, 남북대화재개를 위해 중국이중재역할을 해달라' 요청 🌱96년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협의회 발족 | |
2000년대 | |
✿2004년 한국, 쇼트트랙 세계선수권서 11개 금메달 획득, ‘금 신기록’ 달성 | |
✿2004년 3월 22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창설자 야신 피살 팔레스타인 최대의 저항운동 단체인 ‘하마스(Hamas)’의 창설자이자 정신적 지도자인 셰이크 아메드 야신(Sheikh Ahmed Ismail Hassan Yassin, 1937 – 2004. 3. 22.)이 2004년 3월 22일 새벽 가자시티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졌다. | |
✿2006년 3월 22일 정진석 서울대교구장이 새 추기경에 임명 |
3월 22일은 그레고리력으로 81번째(윤년일 경우 82번째) 날에 해당한다. 유엔(UN)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구 분 | 내 용 |
사건 | 1916년 - 위안스카이가 '중화 제국' 황제를 퇴위. 1933년 - 나치 독일, 하인리히 히믈러, 다하우 강제 수용소 설립. 1995년 - 러시아의 우주비행사 발레리 폴랴코프가 미르 우주 정거장에서 437일의 우주 체류 기록을 세우고 귀환. 1945년 - 아랍의 7개 나라가 모여 아랍 연맹을 창설하다. 2016년 - 벨기에 브뤼셀 국제공항에서 두 차례 자살 폭탄 테러 발생 |
문화 | 1895년 -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상영하다. 1938년 - 삼성그룹의 시초인 삼성 상회가 설립되다. 1965년 - 천주교 원주교구가 설립되다. 2010년 -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소녀시대, 정규 2집 리패키지 "Run Devil Run" 발매되었다. 2014년 - 울산문수야구장,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개장되었다. 2023년 - 쌍용자동차가 사명을 KG모빌리티로 변경하였다. |
탄생 | 1459년 - 신성 로마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 (~1519년) 1797년 - 독일 제국의 초대 황제 빌헬름 1세. (~1888년) 1886년 - 에스토니아의 정치인 아우구스트 레이. (~1963년) 1911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황호현. (~1992년) 1913년 - 대한민국의 음악인 김동진. (~2009년) 1923년 - 프랑스의 마임 배우 마르셀 마르소. (~2007년) 1928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황낙주. (~2002년) 미국의 정치인 바바라 스넬링. (~2015년) 1929년 말레이시아 풀라우피낭의 가수, 작곡가, 영화배우 겸 영화감독 P. 람리. (~1973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조순승. (~2022년) 일본의 예술가 구사마 야요이. 1930년 이탈리아의 로마 가톨릭 교회 사제 스테파노 곱비. (~2011년) 미국의 전도사 팻 로버트슨. (~2023년) 미국의 작곡가, 음악가 스티븐 손드하임. (~2021년) 1932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염보현. (~2021년) 1933년 - 이란의 정치인 아볼하산 바니사드르. (~2021년) 1941년 - 스위스의 배우 브루노 간츠. (~2019년) 1943년 - 미국의 음악가,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 1945년 - 미국의 정치인 쉴라 프람. 1947년 - 대한민국의 만화가 김영하. (~2014년) 1948년 - 영국의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 1949년 프랑스의 기업인 장미셸 올라스. 프랑스의 배우 파니 아르당. 영국의 바이러스 학자 마이클 호턴. 1953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장종태. 미국의 배우 M. 에멧 월시. (~2024년) 1954년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지도자 한문배. 대한민국의 정치인 신경림. 1955년 라트비아의 대통령 발디스 자틀레르스. 대한민국의 교육인, 정치인 조명래. 1959년 - 미국의 배우 매슈 모딘. 1960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현 야구 감독 황병일. 1961년 - 대한민국의 공무원 권덕철. 1962년 - 대한민국의 언론인, 정치인 박무성. (~2023년) 1966년 대한민국의 배우 박중훈. 미국의 정치인 마사 맥샐리. 1968년 - 아제르바이잔의 기업인 무바리즈 만시모프. 1970년 - 대한민국의 육상 선수 황영조. 1971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한태균. 197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정여진. 1975년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이상훈. 대한민국의 소설가 정아은. (~2024년) 미국의 배우 앤 듀덱. 1976년 - 미국의 배우이자 영화 제작자 리스 위더스푼. 1980년 - 캐나다의 배우 캔디스 매클루어. 1981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조동화. 1982년 - 대한민국의 여자 가수 데이라이트. 1983년 - 브라질의 축구 선수 안데르송 히카르두 두스 산투스. 1984년 - 대한민국의 군인 이근. 1985년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가수 유주. (~2010년) 대한민국의 가수 김기범. 대한민국의 기상 캐스터 김자민. 1986년 대한민국의 가수 나비. 대한민국의 전 가수, 배우 보람 (티아라). 대한민국의 배우 유하나. 1987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경호. 1988년 대한민국의 배우 박민우. 대한민국의 배우 반소영. 대한민국의 가수 로티플 스카이. (~2013년) 1989년 - 스웨덴의 축구 선수 지미 두르마즈. 1990년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병규.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강선. 1991년 - 대한민국의 오르간연주가 이예원. 1992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정준. 1993년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김진희. 1994년 대한민국의 가수 하성운 (핫샷, 워너원).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민준. 1995년 - 대한민국의 광고인 유진석. 1996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강채영. 1997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송선 (TRI.BE). 199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정준. 2001년 대한민국의 가수 원진.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블러프. 2002년 - 대한민국의 헤어디자이너 수린. 2005년 대한민국의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 김우준. 대한민국의 배우 박서현. 2006년 대한민국의 배우 강주은.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이슬주. 2010년 - 대한민국의 배우 주아라. 미상 대한민국의 가수 오강혁. 가상인물 Fate/Zero - 마토우 카리야 |
사망 | 1687년 - 이탈리아 출신의 프랑스 작곡가 장바티스트 륄리. (1632년~) 1832년 - 독일의 작가, 철학자, 정치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년~) 1917년 - 대한제국의 황족 이준용. (1870년~) 1841년 - 일본 에도 막부의 1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 (1773년~) 1913년 - 중화민국의 정치인 쑹자오런. (1882년~) 198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성호. (1913년~) 2007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동희. (1968년~) 2018년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레네 오우세만. (1953년~) 2021년 - 미국의 농구 선수 엘진 베일러. (1934년~) |
기념일 | 세계 물의 날 알바니아 술탄 누루즈 기념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전국급매부동산: http://cafe.naver.com/tozisarang
토지사랑모임: http://cafe.daum.net/tozisarang
부자 부동산정보 단체 카톡방
부자되는 부동산 정보 실시간 공유, 커뮤니티 단톡방
전국 부동산, 대출, 홍보, 매물, 임대, 법률, 세무정보
참여코드: 2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