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신>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 임보 (시인)
로메다 님, 어제는 친구들과 함께 산엘 올랐다고요? 신록이 우거진 싱그러운 자연 속에서 즐거운 한때를 지냈다니 잘 하셨습니다.
지난번에 시를 일러 영롱한 언어로 빚은 사리라고 했더니 그 사리를 어떻게 빚어내는가 알고 싶다고 조급히 물어왔군요. 네 좀 기다리세요. 차차 말씀드릴 겁니다. 오늘은 그 '사리'를 찾아 헤맸던 내 유년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데 궁금하지 않으세요? 내가 처음 시를 만났던 어린 시절의 얘기 말입니다.
나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산간벽지에서 자랐습니다. 지금은 내 고향 마을 앞으로도 고속도로가 뚫리어 많은 차들이 바삐 지나다니게 되었습니다만 내가 중학을 다니던 당시만 해도 세상과의 내왕이 쉽지 않은 깊은 두메산골이었답니다. 나는 우리집에서 한 시오리(6km)쯤 떨어진 곳에 새로 설립된 중학교의 두 번째 학년에 입학하게 됩니다. 한 학년이 한 클라스, 전교생이라고 해봐야 200명이 채 안 된 보잘 것 없는 아주 작은 가난한 학교였습니다. 내가 2학년으로 올라가던 이른 봄에 한 젊은 멋쟁이 선생님이 그 학교에 부임해 오셨습니다. 이마가 시원스럽게 열린, 검은 베레모에 짙은 갈색 선글라스를 즐겨 쓰신 키가 훤칠한 체육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선생님의 체육 수업은 운동장이 아닌 교실에서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칠판의 상단에 체육 이론에 관한 제목은 커다랗게 써놓았지만 진행되는 수업의 내용은 체육과는 상관없는 세계 명작 소설들을 들려주는 '이야기 시간'입니다. 혹 교장 선생님의 복도 순시가 있을지 모르니까 교실 출입구 곁에 한 학생을 보초로 세워놓고 우리들은 숨을 죽여가며 선생님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빠져들곤 했지요.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아쉬워했던지 지금도 그때의 정경이 눈앞에 선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선생님의 전공은 체육이 아니라 국어였습니다. 우리 학교의 빈 체육교사 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분이 오셨다고 하니 6·25전란을 겪고 난 뒤, 당시의 행정이 얼마나 엉성했던가를 단적으로 엿보게 하는 일화이기도 합니다. 국어교사가 체육 수업을 하려니 얼마나 곤혹스러웠겠습니까?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세익스피어의 『햄릿』 토마스 하디의 『테스』 토스터에프스키의 『죄와 벌』 톨스토이의 『부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세계명작들의 아름다운 문학 세계를 간접적으로 접하게 됩니다.
그 선생님께 홀딱 빠진 나는 방과 후 선생님의 하숙방엘 자주 찾아갔습니다. 그러면 어떤 때는 누군가가 보낸 아름다운 편지를 읽게도 하고 어떤 때는 당신이 쓰신 시를 낭독하게도 했습니다. 내가 낭랑한 목소리로 읽으면 선생님께서는 목침을 베고 아랫목에 누워서 눈을 지그시 감고 들으시곤 했습니다.
당시의 어린 나는 그때 읽었던 편지와 시의 내용들을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편지는 선생님을 사모하는 어떤 여인이 보낸 것 같았고 시는 선생님의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것 같았습니다.
저도 그처럼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을까요? 묻는 어린 제자에게 스승은 매일 일기를 열심히 쓰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소장하고 있던 문학서적들을 빌려주셨습니다. 김동인과 김유정의 소설들 소월과 영랑 그리고 청록파의 시들을 처음 만나게 됩니다.
그 뒤부터 나는 날마다 일기를 열심히 썼습니다. 아니, 일기뿐 아니라 일기의 끝에 매일 시를 썼습니다. 시도 아닌 유치한 글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썼습니다. 전기도 없었던 시절 어두운 등잔불 밑에서 펜촉에 푸른 잉크를 무쳐가며 검은 딱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질이 낮은 마분지 노트에 매일 밤이 깊도록 열심히 썼습니다. 그 시절의 기록들을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데 가끔 꺼내보면 참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도 아마 그보다는 더 잘 쓸 것 같은 그런 아주 형편없는 유치한 것들이었으니까요. 아마 나도 선천적인 글재주는 별로 타고난 것 같지 않습니다.
로메다 님, 일기를 쓰십니까? 일기를 쓰느냐고 학생들에게 물으면, 비밀스런 내용들이 혹 탄로날까 두려워 쓰다가 중단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감추고 싶은 것은 쓰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행위와 친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에 익숙해 있듯이 글도 자주 쓰면 말하는 것처럼 능숙해질 수 있습니다. 글과 친숙해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매일 일기를 쓰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좋은 방법은 편지를 자주 쓰는 것입니다.
나에게 시의 바람을 불어넣었던 그 스승은 1년 뒤에 다른 학교의 국어 교사가 되어 떠나셨습니다. 그 뒤로 스승과 어린 제자 사이에 사흘이 멀다하고 수많은 편지들이 오고갔습니다. 나는 선생님의 아름다운 문장과 멋스러운 필체를 따라가려고 밤을 새워가며 편지를 고쳐 쓰곤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버린 편지지가 머리맡에 수북했습니다. 지금의 내 필체 속에는 그 선생님의 것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내가 오늘날 이만큼의 문장력이라도 지니게 된 것은 아마도 유년시절의 일기와 그 편지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은 시 쓰기에 앞서 산문 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바른 산문을 쓸 수 있는 문장력을 갖춘 다음 시에 들어가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바른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도 없으면서 처음부터 시의 욕심을 부리는 것은 마치 데생(dessin)의 실력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처음부터 추상화에 달려드는 경우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로메다 님, 귀찮더라도 매일 일기를 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글의 친구가 되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그리고 좋은 글벗을 만나 그분과 자주 글을 주고받기 바랍니다. 남에게 보이는 글에는 더 정성이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일기는 당신을 글과 친숙하게 만들 것이고 편지는 당신의 문장을 정련(精鍊)시킬 것입니다.
오늘은 내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아름다운 동산에서 처음 만났던 시 얘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시의 꿈 소중히 간직하시기를 바라며
- 임보 교수의 시창작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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