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고질(煙霞痼疾)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몹시 사랑하고 즐기는 성벽(性癖)이라는 뜻으로, 산수의 좋은 경치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히 강해 마치 고치지 못할 병이 든 것 같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煙 : 연기 연(火/9)
霞 : 노을 하(雨/9)
痼 : 고질 고(疒/8)
疾 : 병 질(疒/5)
연기 연(煙)은 안개의 뜻도 있어 연하(煙霞)는 안개와 노을을 아울러 이르는 말임과 동시에 고요한 산수의 경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안개와 노을이 오랫동안 앓고 있어 고치기 어려운 고질(痼疾)일 리는 없고 산수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되돌릴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에 항상 따라붙는 천석고황(泉石膏肓)과 함께 중국 당(唐)나라 때의 은사 전유암(田游巖)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강호묵객들이 즐겨 쓰게 됐다.
고황은 심장과 횡격막 부위로 여기까지 병이 미치면 고치지 못한다고 생각한 곳인데 맑은 샘과 수석을 사랑한 것이 불치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표현이다.
은사 전유암은 후진(後晉)때의 유구(劉呴)가 편찬한 '구당서(舊唐書)'나 송(宋)나라 정치가 구양수(歐陽脩)의 '신당서(新唐書)'에 모두 전한다.
당나라 3대 고종(高宗) 초기에 전유암은 걸출한 인재들이 모여드는 태학생(太學生)의 일원이었다가 얼마 안 있어 태백산(太白山)으로 들어갔다. 뒷날 모친과 부인도 세속을 싫어하여 함께 기산(箕山)에서 살게 됐다.
기산은 전설의 은자 허유(許由)가 요(堯) 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영천(潁川)에서 귀를 씻은 뒤 은거한 곳이라 한다. 전유암은 허유의 무덤 옆에 살면서 허유동린(許由東隣)이라 칭하고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어느 때 고종이 숭산(嵩山) 행차 길에 친히 찾았을 때 야인의 복장으로도 전유암은 행동이 근엄했다.
고종이 맞으며 산속의 생활이 편안한지 물으니 답한다. "신은 샘과 바위에 대한 병이 이미 고황에 들고, 안개와 노을에 대한 병은 고질병 수준입니다(臣泉石膏肓 煙霞痼疾)."
산수에 중독되어 결코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가 됐음을 강조하면서 좋은 시대를 만나 유유히 지내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임금이 불러도 나가지 않고 산수에 묻혀 지내는 것이 후한(後漢)의 엄광(嚴光)을 노래한 '삼공 벼슬의 영화로도 이 강산과 바꿀 수 없도다(三公不換此江山)'란 구절을 연상시킨다. 남송(南宋)의 시인 대복고(戴復古)의 작품이다.
초야에 묻힌 생활을 찬미하는 연하지벽(煙霞之癖)도 같은 말이고 더 강조한 것으로 달을 잡고 바람을 어깨에 멘다는 악월담풍(握月擔風)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옛 시가에도 등장한다. "이 몸이 한가하여/ 산수 간에 소요하니/ 부귀공명 뜻 없기는/ 연하고질 병이로다"란 작자미상의 창랑곡(滄浪曲)이다.
비슷한 표현으로 정철(鄭澈)의 관동별곡(關東別曲) 첫 부분 "강호애 병이 깁퍼 죽림의 누엇더니"에서의 강호(江湖) 사랑의 병도 연하고질이다. 자연훼손이 날로 심해지는 요즘 더욱 음미해야 할 좋은 말들이다.
▶️ 煙(연기 연, 제사 지낼 인)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불화(火=灬; 불꽃)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막힌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垔(인, 연)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불이 타서 자욱이 퍼진다는 뜻으로, 연기를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煙자는 '연기'나 '안개', '그을음'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煙자는 火(불 화)자와 垔(막을 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垔자는 아궁이에 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煙자는 이렇게 아궁이를 그린 垔자에 火자를 더한 것으로 굴뚝에서 나는 '연기'를 뜻하고 있다. 본래 금문에서는 손까지 그려져 있었으나 소전을 거치면서 생략되었다. 그래서 煙(연기 연)은 ①연기(煙氣) ②안개 ③담배 ④그을음 ⑤아편(阿片) ⑥연기(煙氣)가 끼다 ⑦아리땁다 그리고 煙(제사 지낼 인)은 ⓐ제사 지내다 ⓑ메우다 ⓒ틀어막다 ⓓ제사(祭祀)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그을음 매(煤)이다. 용례로는 물건이 불에 탈 때에 일어나는 흐릿한 기체나 그 기운을 연기(煙氣), 연기처럼 사라짐을 연멸(煙滅), 연기같은 안개 속에 보이는 은은한 달을 연월(煙月), 사람의 집에서 불 때는 연기를 연화(煙火), 양철 따위로 둥글게 만든 굴뚝을 연통(煙筒), 연기와 안개를 연무(煙霧), 안개를 마시며 사는 사람이란 뜻으로 신선을 일컫는 말을 연객(煙客), 담배를 끊음 또는 담배를 못 피우게 함을 금연(禁煙), 담배를 피우는 것을 흡연(吸煙), 연료를 태웠을 때 생기는 그을음과 연기를 매연(煤煙), 담배를 피우는 것을 끽연(喫煙), 적이 볼 수 없도록 연막을 치는 전술로 교묘하고 능청스러운 수단으로 상대방에게 문제의 핵심을 숨기어 갈피를 못 잡게 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연막작전(煙幕作戰), 연기나 안개가 부옇게 낀 아득히 먼 수면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만나기 어려움의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연파만리(煙波萬里), 안개와 놀과 빛나는 햇살을 이르는 말을 연하일휘(煙霞日輝), 산과 물을 매우 사랑하는 것이 마치 고치지 못할 병이 든 것과 같음을 이르는 말을 연하지벽(煙霞之癖),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집이라는 연호(煙戶), 화식火食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속세의 인간을 이르는 말을 연화중인(煙火中人) 등에 쓰인다.
▶️ 霞(노을 하)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비우(雨; 비, 비가 오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叚(가→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霞(하)는 ①노을 ②새우(절지동물문 십각목 장미아목을 통틀어 이르는 말)(≒鰕) ③(맛있는)술 ④안개 ⑤뺨의 홍조(紅潮) ⑥무지개 ⑦멀다, 아득하다(≒遐) ⑧붉다, 가볍고 아름답다 따위의 뜻이 있다. 통자로는 瑕(허물 하), 遐(멀 하), 鰕(새우 하) 등이다. 용례로는 안개와 노을 또는 고요한 산수의 경치를 연하(煙霞), 저녁 노을로 해가 질 때의 노을 또는 해가 질 무렵에 끼는 안개를 만하(晩霞), 낮게 드리운 저녁 노을을 낙하(落霞), 해질 무렵의 안개 또는 저녁 노을로 해가 질 때의 노을을 석하(夕霞), 엷은 저녁놀 또는 아침 노을을 경하(輕霞), 햇빛에 비치는 붉은빛의 운기를 단하(丹霞), 아침 노을로 아침 하늘이 햇살로 벌겋게 보이는 현상을 조하(朝霞), 푸른빛의 아지랑이를 취하(翠霞), 향기로운 안개로 어슴프레하게 둘러 있는 봄 안개를 향하(香霞), 봄철의 아지랑이를 춘하(春霞), 노을의 아름다운 색채를 하채(霞彩), 아름다운 노을을 채하(彩霞), 구름과 안개를 운하(雲霞), 해 근처에 보이는 붉은 노을을 홍하(紅霞), 산수의 좋은 경치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히 강해 마치 고치지 못할 병이 든 것 같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연하고질(煙霞痼疾), 안개와 놀과 빛나는 햇살을 이르는 말을 연하일휘(煙霞日輝), 산과 물을 매우 사랑하는 것이 마치 고치지 못할 병이 든 것과 같음을 이르는 말을 연하지벽(煙霞之癖) 등에 쓰인다.
▶️ 痼(고질 고)는 형성문자로 㽽(고)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병질엄(疒; 병, 병상에 드러누운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固(고)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痼(고)는 ①고질(痼疾) ②입병 따위의 뜻이 있다. 통자로는 錮(막을 고) 등이다. 용례로는 오래도록 낫지 않아 고치기 어려운 병 또는 오래된 나쁜 습관을 고질(痼疾), 바로잡기 어려운 폐단을 고막(痼瘼), 뿌리가 깊어 고치기 어려운 폐단을 고폐(痼弊), 깊이 뿌리박혀 좀처럼 낫지 않는 고질을 근고(根痼), 아주 인이 박히다시피 굳어져서 고치기 어려운 버릇을 고벽(痼癖), 고질로 됨을 성고(成痼), 오래도록 낫지 않는 병을 침고(沈痼), 고질병을 치료함을 치고(治痼), 고질병을 달리 이르는 말을 정고(貞痼), 깊고 중한 병이라는 뜻으로 마음의 병을 이르는 말을 심고(深痼), 오래도록 낳지 아니하여 고치기 어려운 병 또는 오래되어 바로잡기 어렵게 된 나쁜 버릇을 고질병(痼疾病), 고질이 되다시피 한 모양을 고질적(痼疾的), 산수의 좋은 경치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히 강해 마치 고치지 못할 병이 든 것 같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연하고질(煙霞痼疾) 등에 쓰인다.
▶️ 疾(병 질)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병질엄(疒; 병, 병상에 드러누운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矢(시; 화살)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본래 화살 상처를 뜻하였지만, 전(轉)하여 넓은 뜻의 앓다, 미워하다의 뜻으로 쓰이고, 또 음(音)을 빌어, 제빠르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疾자는 ‘병’이나 ‘질병’, ‘괴로움’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疾자는 疒(병들 녁)자와 矢(화살 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大(클 대)자 옆으로 矢자가 그려진 모습이었다. 이것은 사람이 화살에 맞았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大자 대신 疒자가 쓰이면서 지금의 疾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고대에는 일반적인 질병을 疾이라 하고 심각한 질병은 病(병 병)이라고 했다. 화살에 맞는 것은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빨리 치료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질주(疾走)라는 말도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疾(질)은 ①병(病), 질병(疾病) ②괴로움, 아픔 ③흠, 결점(缺點) ④불구자(不具者) ⑤높은 소리 ⑥해독(害毒)을 끼치는 것 ⑦빨리, 급(急)히, 신속하게 ⑧병을 앓다, 걸리다 ⑨괴롭다, 괴로워하다 ⑩해치다, 해롭게 하다 ⑪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우려하다 ⑫나쁘다, 불길하다 ⑬미워하다, 증오하다 ⑭꺼리다 ⑮시기하다, 시샘하다 ⑯빠르다, 신속하다 ⑰진력하다(있는 힘을 다하다) ⑱민첩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고칠 료/요(療), 병 나을 유(癒)이다. 용례로는 몸의 온갖 병을 질환(疾患), 신체의 온갖 기능의 장애로 말미암은 병을 질병(疾病), 빨리 달림을 질주(疾走), 밉게 봄을 질시(疾視), 강하고 빠르게 부는 바람을 질풍(疾風), 병세가 매우 위중함을 질극(疾革), 다급한 소리를 질성(疾聲), 병으로 인한 고통을 질고(疾苦), 오래도록 낫지 않아 고치기 어려운 병을 고질(痼疾),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상한 돌림병을 괴질(怪疾), 추위를 느끼는 병을 한질(寒疾), 매우 중한 병을 가질(苛疾), 질병에 걸림을 감질(感疾), 눈병을 안질(眼疾), 다리가 아픈 병을 각질(脚疾), 고치기 어려운 나쁜 병을 악질(惡疾), 질병을 숨기고 드러내지 아니함을 휘질(諱疾), 앓은 지 오래되어 고치기 어려운 병을 구질(久疾), 고치기 어려운 나쁜 병증을 말질(末疾), 그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면서 있는 어떤 좋지 않은 버릇이나 병을 문질(門疾), 빠른 말소리와 급히 서두르는 얼굴빛이라는 뜻으로 당황하는 말투나 태도를 이르는 말을 질언거색(疾言遽色), 사납게 부는 바람과 빠른 번개라는 뜻으로 행동이 날쌔고 과격함이나 사태가 급변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질풍신뢰(疾風迅雷), 모진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강한 풀이라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서도 뜻을 꺾거나 굽히지 않는 절개 있는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질풍경초(疾風勁草), 빠르게 부는 바람과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일컫는 말을 질풍심우(疾風甚雨), 원수처럼 미워함을 일컫는 말을 질지여수(疾之如讐), 배나 가슴이 아픈 고치기 어려운 병이라는 뜻으로 털어 버릴 수 없는 근심과 걱정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복심지질(腹心之疾), 없애기 어려운 우환을 일컫는 말을 심복지질(心腹之疾), 근심과 걱정과 질병과 고생을 일컫는 말을 우환질고(憂患疾苦), 물고기는 배부터 상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배앓이나 설사를 비유하는 말을 하어복질(河魚腹疾), 병을 숨기고 의원에게 보이기를 꺼린다는 뜻으로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남의 충고를 듣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을 호질기의(護疾忌醫)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