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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세상의 눈
초도로 영상장치는 이차원의 파장과 파동을 감지하여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들리지 않는 세상을 듣게 하는 귀를 제공하는 장치였다.
샤르비네가 재학중인 전문학교의 은사인 쇼시우시가 초도로영상 전공을 지도하는 교수였고, 쇼시우시는 미지의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을 탐구하고 연구하여 그 내용을 샤르별의 신선들에게 전달하면서 영성을 증폭시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었다.
나는 쇼시우시가 연구하는 초도로 영상장치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었고 들리지 않는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열 수 있었다.
초도로 영상장치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은 멀고 가까움이 없었다. 초도로머신을 통해서 우주 끝의 아무리 멀리 떨어진 세상이라도 염속)의 개념으로 이동이 가능했고,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현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초도로머신을 이용하면 샤르별에서 지구의 하늘과 땅이 존재하는 공간에도 염속으로 다가갈 수 있고, 지구에 펼쳐진 보이지 않는 현상들과 교류가 가능했다. 지구를 감싸고 있는 이차원의 파장과 영혼의 세계와 신명의 세계까지도 접속이 가능하고 교류가 가능했다.
쇼시우시의 도움으로 초도로머신을 타고 지구의 공간으로 이동하니 지구에 펼쳐진 물질세상은 나타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숨겨진 세상의 모습들만 환상처럼 나타났다. 지구에서 머물고 있는 영혼과 지구를 지키는 수호신과 식물과 동물을 지키는 혼과 정령들의 활동하는 모습이 초도로의 눈에 정확하게 포착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지구의 하늘을 검은 먹구름처럼 뒤덮고 있는 어두운 영혼의 세력이 눈에 들어왔다. 지구의 하늘을 뒤덮고 물결처럼 몰려다니는 어두운 영혼의 세력들은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영혼들을 조롱하거나 조소하기도 하고 린치를 가하는 모습도 보였다.
땅에서 살고 있는 영혼들은 힘이 없고 허약해 보이며 어두운 영혼들이 조종하는 대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면서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상실하고 있었다.
샤르별의 하늘과 땅에서 살고 있는 영혼의 현상들과 너무 색다른 현상이 지구의 하늘과 땅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지구의 영혼들이 살아가는 어두운 현실을 목격하니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이럴 수가...."
내 입에서 터져 나오는 한탄을 듣고 쇼시우시가 차분하게 설명을 들려주었다.
“지구의 하늘을 뒤덮고 있는 어두운 영혼의 물결은 원혼들의 세력이다. 그리고 원혼들을 조종하여 땅에서 살고 있는 영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세력이 멸주의 혼들이다. 멸주의 혼은 원혼의 세력을 손에 넣고 공중권세를 잡고 있다. 멸주가 지구에서 공중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에 지구의 땅에서 살고 있는 영혼들이 혼탁한 물결에 휩쓸려 방향을 상실하고 방황한다."
쇼시우시의 설명을 듣고 내가 질문했다.
"멸주가 공중권세를 손에 쥐고 있다고 큰소리치는 것은 스스로의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원혼들의 분한 심리를 이용해서 살아 있는 영혼들을 힘겹게 만들고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군요?"
"그래, 샤르앙의 말대로 멸주는 본래 가진 힘은 약하단다. 스스로의 힘으로 공중권세를 손에 쥘만한 파워는 부족하지. 다만 잔꾀가 능숙하여 영혼들의 약점을 잘 이용하는 지혜가 있단다. 그래서 약점이 많은 지구의 영혼들을 마음대로 손에 쥐고 흔든단다."
"쇼시우시 러우님, 지구의 영혼들은 어떤 약점이 많은가요?"
"자기를 내세우려는 집착이 강하고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서 멸주의 얄팍한 잔꾀에 잘 넘어간단다."
“멸주의 정체는 지구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주동자가 아닌가요?"
“지구에서 모든 의로운 세력을 몰아내고 어두운 세력으로 천하를 통일하여 하늘에 대항할 수 있는 큰 힘을 기르려는 야심을 품은 반란자가 멸주이지."
“결국 땅에서 온갖 욕심과 자기 파멸의 집착에 빠져서 지구를 혼란케 하는 영혼들은 세상을 망하게 하려는 멸주를 돕고 있는 셈이군요?"
"공중권세를 손에 쥐고 있는 멸주는 땅에서 살고 있는 허약한 영혼들에게 자중지란을 일으켜 지구 영혼들 스스로가 혼란케 하여 힘들지 않게 멸주의 세력이 커지도록 하고 있단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사나워지고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있군요?"
“멸주가 바라고 꿈꾸는 대로 지구의 환경이 변해가고 있단다."“멸주가 공중권세를 잡도록 힘을 보태주는 세력이 지구의 원혼들일줄은 상상을 못했어요."
“세상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안식에 이르지 못하여 살기와 광분이 충천해 있는 원혼들을 부추겨서 공중권세를 장악하고 있는 멸주의 잔꾀는 하늘이 놀라고 당황할 정도란다.”
“그러면 공중권세를 장악하고 있는 멸주가 아직 땅의 권세를 손에 넣지 못하는 이유는 무얼까요?"
"땅에서 살고 있는 영혼들은 짐승의 피와 혼혈을 이루고 그러한 영혼의 허점으로 인하여 멸주의 입맛대로 좌충우돌하며 살고 있으나 아직 하늘의 순수혈통을 간직한 의로운 영혼들이 명맥을 잇고 있기 때문이란다."
"하늘의 순수혈통을 간직한 의로운 영혼의 적은 숫자 때문에 멸주가 원하는 대로 지구를 점령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멸주의 약점은 의로움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함이란다. 의로운 영혼의 숫자가 아무리 적어도 멸주는 스스로의 힘으로 의로운 영혼의 힘을 꺾을 수 없단다.”
"그렇지만 지구에서 의로운 영혼의 힘은 점점 꺾이고 있지 않나요?"“멸주 스스로 의로운 영혼을 대적하지는 못하지만 원혼들을 이용해
서 의로운 영혼의 약점을 공략하며 야금야금 무너뜨리고 있단다.” “멸주의 잔꾀가 얄미울 정도로 능숙하군요?"
"그래서 하늘도 멸주에게 허를 찔려 통한의 아픔을 겪고 있단다.""그러면 언제까지 하늘은 멸주의 잔꾀에 당하면서 지구의 공중권세를 내어주고 땅의 권세까지 모두 내어 놓게 될까요?"
“멸주는 어둠의 존재라서 잔꾀 말고 온전한 지혜는 부족하단다. 끝내 세상을 건지기 위해 찾아온 큰 빛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하여 멀리 어두운 곳으로 쫓겨 갈 것이다."
“멸주의 힘이 강하나 큰 빛의 권위 앞에서는 스스로 대항할 힘이 부족하다는 말씀이군요?"
"멸주 스스로는 큰 빛을 대항하지 못하나 큰 빛의 주변세력을 이용하여 큰 빛을 꺾으려고 온갖 공격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
"장차 세상을 구원하러 찾아온 큰 빛은 멸주로 인하여 많은 고난을 겪을 것이란 말씀이군요?"
"사람의 영혼을 입고 세상에 나타난 큰 빛은 장차 세상의 기득권을 손에 쥔 멸주의 농락으로 인하여 온갖 고초와 환란을 면치 못할 것이다."
“큰 빛은 세상을 구하러 사람의 몸을 입고 오지만 영광보다는 치욕을 더 겪는다는 말씀이군요?"
“큰 빛의 운명은 우주의 각본대로 짜여진 계획일 뿐이다.”
"장차 지구에 큰 빛으로 오리라 한 이름이 천주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큰 빛의 이름은 천주이다."
"천주가 세상을 찾아와 이루는 일 중에 가장 큰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십시오."
"천주는 세상에 찾아와 고운 영혼들을 모아서 빛 담금질로 신천지지상낙원을 건설하는 일이지만, 그 전에 이룰 거사가 있다."
"거사의 내용을 알려주십시오."
“천주는 지구의 판을 지키러 오지 않고 깨러 온다.”
“멸주도 지구를 깨기 위해 어두운 영혼들을 이용하여 온갖 잔꾀를 다 발휘하는데 천주마저 지구의 판을 깨러 오다니 이해난감입니다."
"천주는 지구를 찾아와 헌 판을 깨고 새 판을 짤 것이다. 헌 판을 깨고 새 판을 짜기 전에 지구의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천주가 깰 헌 판의 내용과 천주가 이룰 새 판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시오."
“장차 천주가 세상에 이룰 새 판은 신선놀음이 펼쳐지는 신천지이며, 헌 판이란 신선놀음에 방해가 되는 모든 구습들이다. 천주가 장차새 판을 짤 때는 제사도 없어지고 밥 짓는 일도 없어지고 땀 흘리고 애쓰는 일들이 없어질 것이다. 천주는 모든 영혼들이 즐겁게 사는 세상을 세우려고 나타나며 제사지내고 밥하고 땀 흘리고 애쓰는 세상을 세우려고 오지 않는다. 하늘도 이제 제사를 원하지 않고 사람들의 즐거운 마음을 원하며, 사람들이 신명나게 노는 곳에 하늘의 신명들이 찾아가 함께 즐길 것이다."
“천주는 장차 하늘과 땅의 진정한 소통을 위해 찾아온다는 말씀이기도 하군요?"
“천주가 장차 세상에 찾아와 이룰 일 중에 가장 큰 거사가 하늘과 땅의 소통이다. 곧 천명소통(天命疏通)이니, 천명으로 하늘과 땅을 소통시키고 사람과 신명을 소통시키면 비로소 막혔던 문제가 다 풀리리라. 세상이 어지럽고 풀리지 않는 건 소통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천명소통으로 사람과 죽은 영혼들 사이에서도 막힌 문제들이 풀리고원과 한이 풀려 어두운 영혼들의 모습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천명소통의 시대에 원혼들을 해원시켜 신선으로 봉안하면 그 영혼
들이 극락왕생하여 장차 하늘과 땅의 태평성대를 맞이할 것이다.""천명소통의 힘으로 원혼들이 모두 해원되고 사람과 영혼들이 힘을 모아 밝은 세상을 함께 펼쳐가기를 소망합니다."
"원혼들이 해원되고 해원된 영혼들이 평안한 안식을 취할 때 비로소 신인조화시대가 개막되어 하늘과 땅이 평화로운 지상낙원이 펼쳐질 것이다."
"원혼들이 해원되면 지구의 하늘을 뒤덮고 있는 어두운 영혼들의 세력이 물러가고, 멸주의 세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겠군요?"
"원혼들의 세력으로 공중권세를 잡고 있던 멸주들은 끝내 그 세력이 약화되어 천주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할 것이다. 멸주의 항복이 이뤄지면 비로소 지구의 하늘과 땅에는 신선들의 무릉도원이 시작된다."
"큰 빛 천주가 세상에 나타난 목적은 하늘과 땅을 선경세상 무릉도원으로 만들기 위해서겠군요?"
"천주가 세상을 찾은 마지막 목적이 어두운 세상을 밝은 세상으로 만들고 힘들고 지친 인간의 삶을 신선놀음으로 바꿔주기 위함이요 영원히 망하지 않는 지상낙원 신천지를 펼치기 위함이다.”
"쇼시우시 러우님의 말씀만 들어도 가슴 속에서 희열이 느껴집니다."“모든 영혼들이 세상을 찾아온 목적은 신선이 되어 신선놀음을 즐기기 위함이며 온갖 고초와 고난을 겪기 위함이 아니다. 그러므로 샤르앙은 앞으로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낙천적인 생활을 즐기도록 노력하여라.”
“큰 빛 천주가 속히 지구에 나타나 어두운 세상을 밝은 세상으로 만들어서 모든 인류들의 고초와 고난이 다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천주의 몸은 이미 지구에 와 있으나 큰 빛의 거사는 시작되지 않고 있다.”
“천주의 몸은 사람들의 눈에 띌 만큼 특별한 모습인가요?"
“큰 빛의 영혼을 담고 있는 천주의 몸은 평범한 사람의 몸이어서 특별하게 눈에 띄거나 다른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천주 스스로도 스스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세상의 시달림을 겪게 된다."
“천주 스스로가 스스로를 알아보지 못하면 누가 천주를 알아보고 장차 천주의 거사에 참여하게 될까요?"
"천주는 천주로서 증표가 있고 천부적 권한으로서 천주가 행할 일들이 정해져 있다. 그 증표와 하는 일을 보면 그가 그 임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고 천주 스스로도 스스로를 깨닫게 되리라.”
“천주의 몸이 이미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와 있다면 그 영혼도 함께 와서 그 육신과 함께 지내고 있을까요?"
“천주의 영혼은 천주의 몸 속에 담겨 있고 몸은 몸대로 영혼은 영혼대로 따로 산다.”
“천주의 몸은 사람으로 살고 천주의 영혼은 신명으로 살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천주의 몸이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천주의 영혼은 천지간에 움직이며 장차 이룰 거사를 준비한다."
"하늘의 이치는 사람의 생각으로 판단하는 일이 불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의 일은 하늘의 영혼을 담고 있는 그 주인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며 하늘도 숨길 때가 많다. 때가 되어야 그가 그 임을 알게 되고 세상이 스스로 깨닫게 된다.”
“천주의 영혼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천주의 영혼은 큰 빛이니 그가 머무는 장소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으리라.”
"그러면 천주의 큰 빛을 찾아 그쪽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이런 대화를 멈추고 쇼시우시는 초도로머신을 움직여서 큰 빛이 머무는 장소를 찾아냈다. 큰 빛이 머무는 장소로 이동한 나는 천주의 큰빛을 향해 대화를 시작했다. 천주의 영혼은 큰 빛으로 가려 있어서 실제의 모습을 확인하는 일은 불가했다.
“지구의 영혼, 백마선입니다. 천주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천주의 큰 빛 앞에 도착한 나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빛 속에서 한참 동안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이 멈춘 후 이런 음성이 들려왔다.
"천하의 백마선을 여기서 다시 만나는구나.”
빛 속에서 들리는 천주의 음성은 이미 낯이 익어 있었다.
“많이 듣던 음성입니다.”
천주의 음성을 듣고 내가 말했다.
이어서 천주와 나의 대화는 계속 이어져 나갔다.
“천주의 음성을 듣고 알아보는 자가 복이 있다."
“천주와 나누던 이야기들을 생각하면 항상 기분이 좋습니다.” “나도 천방지축으로 살고 있는 백마선의 영혼을 떠올리면 항상 기분이 좋다. 백마선의 이름은 하늘을 즐겁게 하는 이름이니 그 이름이 항상 복될 것이다.”
“천주께서 제 이름을 왜 즐거워하십니까?"
“숨긴 것이 없고 막히는 것이 없으니 답답하지 않고 즐겁다.”"하늘도 막히고 답답한 일은 싫어하시는군요?"
"하늘은 항상 소통을 원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맘이 닫혀 있어 소통을 나누고자 하나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늘이 답답하고 고통스럽다.”
“천주는 장차 하늘과 땅을 소통시키기 위해 세상을 찾아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장차 천주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이룰 거사가 천지소통이요신인소통이요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다. 막힌 물이 썩듯 세상이 소통하지 못해서 곪고 있다. 천명소통으로 모든 막힌 것이 뚫리면 비로소 하늘과 땅의 기운이 순조롭게 교류하여 새 판의 새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천주는 장차 지구의 헌 판을 깨고 새 판을 짜기 위해 오신다고 들었는데 맞는 내용입니까?"
“그렇다. 나는 지구의 헌 판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찾아오지 않으며, 헌 판을 깨서 신천지의 새 판을 짜기 위해 세상을 찾아온다."
“지구의 헌 판을 깨면 사람들의 모습과 맘들이 모두 바뀌게 되겠군요?"
"천주는 사람의 모습을 바꿔서 신선으로 만들기 위해 천부적 사명을 안고 세상을 찾아온다."
“그러면 세상의 영혼들이 천주의 오실 날을 손꼽아 기다릴 것 같습니다."
"천주는 왔지만 세상은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핍박한다. 심지어는 천주의 영혼을 담고 있는 그 몸조차도 스스로를 몰라보고 구습에 빠지려 한다."
"천주의 영혼을 담고 있는 그 몸조차도 스스로를 깨닫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몸에 밴 구습대로 행동한다는 말씀이군요?"
"그 일을 천주의 영혼이 슬퍼한다."
"천주의 몸이 천주의 영혼을 스스로 인지하는 때가 언제입니까?"
"천주에게는 천주로서 증표가 있으니 그 증표를 받고 스스로 인정할 것이요 세상이 인정할 것이다.”
“천주의 몸이 천주의 영혼을 스스로 인정할 때 세상이 모두 천주를 반기고 천주를 영접하게 될까요?"
“세상은 주인이 왔으나 주인을 반기지 않고 오히려 내치며 핍박하고 험담을 쏟을 것이다."
“그러면 무슨 힘으로 천주의 새 판을 짤 수 있습니까?"
“원혼들의 힘을 빌리면 신인조화가 이뤄지고 그 신인조화의 힘으로 천주의 새 판을 짤 것이다."
“천주님은 고운 영혼들을 불러 모아 빛 담금질을 시켜서 신천지를 건설한다고 하셨는데 뜬금없이 원혼들의 힘을 빌려 천주의 새 판을 짜신다니 금시초문일 뿐입니다. 오히려 멸주가 원혼들의 힘으로 공중권세를 장악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원혼들을 해원시켜 신선으로 봉안하면 그 영들이 극락왕생하여 천주의 일을 도와 신인조화로서 세상을 바꾸고 천주의 새 판을 짤 것이다. 그러면 멸주의 공중권세도 무너지고 사상누각의 힘을 가진 멸주는 스스로 힘이 꺽여 물러설 것이다.”
“이름 없고 천대받은 원혼들이 지구를 죽이는 역할도 하고 살리는 역할도 할 줄은 상상을 못했습니다.”
"길거리에서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잘 쓰면 명기가 되고 잘못 쓰면 홍기가 된다."
"천주님, 참으로 하늘의 일은 오묘하고 숨겨진 비결이 깊기만 합니다.”
“멸주의 잔꾀가 아무리 능숙하나 하늘의 숨겨진 비결을 넘지는 못할 것이다. 멸주의 잔꾀로 하늘과 땅이 막히고 인명과 신명의 사이가 막히고 인명과 인명이 서로 막히어 세상에는 제대로 되는 일이라곤 없어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천명소통의 날이 다가오면 막힌 것이 다풀리어 이루고자 하는 뜻을 이루지 못할 일이 없으리니 하늘과 땅이 손꼽아 기다리는 그날이다."
"천명소통의 날은 듣기만 해도 막힌 가슴이 뚫리는 듯합니다. 그날이 가까운지 멀리 오는지 궁금합니다."
“천주의 시대가 열리면 비로소 그날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때는 아니다.”
“천주님, 그러면 천명소통의 시대에 어떤 일들을 겪게 됩니까?”
"원혼의 이름이 극락선경의 신선으로 기록되고 인명의 이름이 신선의 이름으로 바뀌리라. 멸주가 가장 두려워 하는 바가 원혼들의 신선봉안이요 극락왕생이다. 원혼들이 해원되어야 비로소 천명소통의 신바람이 천하에서 일어난다."
“그러면 멸주들이 원혼들의 신선봉안을 막으려고 혈안이 되겠군요?"
“아무리 공중권세를 잡은 멸주라도 원혼들의 신선봉안 극락왕생의 길은 막지 못한다."
“인명이 신선으로 바뀌면 세상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사람의 몸이 비로소 신선의 몸으로 바뀌어 육신이 아닌 선체를 입으리니 그 후로 사람의 식성과 사는 모습이 달라지리라. 선체(仙體)를 입고도 다시 짐승의 육신처럼 살아가면 선화(仙化)의 문은 닫히리라."
"선체를 입은 후 다시 짐승의 몸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합니까?"
항상 신선놀음을 생활화하고 신선의 식품으로 선화식이요법을 실천하며 선체 단련을 위해 공동체 수련이 필요하리라.”
“천주께서 세상에 오시는 목적은 결국 짐승의 몸을 입은 인체를 선체로 변화시키고 온 세상에 인명의 그림자 대신 신선의 그림자가 가득 채워지는 하늘의 뜻이 숨겨져 있군요?"
"그렇다. 천주가 세상에 찾아오는 목적은 온 세상을 선화시켜 지상낙원 선경세상을 펼치기 위함이다.”
천주와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나는 계속 초도로 눈으로 지구의 영혼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초도로 눈은 특별한 파장을 일으켜서 보이지 않는 현상들을 관찰하는 영상장치였다.
초도로 눈으로 지구의 하늘과 땅에서 움직이는 영혼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멸주의 세력에 동조하는 어두운 영혼들이 있고, 멸주의 세력에 반하는 밝은 영혼의 활동도 보였다. 밝은 영혼의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별빛도 되고 횃불도 되고 또는 침울한 분위기를 밝게 해주는 꽃도 되어 주고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의 별빛과 같은 고운 영혼들의 곁에는 멸주의 농간이 가까이하지 못했다.
초도로 눈으로 고운 영혼들이 지구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젖어 있는 나에게 쇼시우시가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지구의 운명이 절망에 가까워졌을 때 한 사람의 고운 영혼이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큰 힘을 발휘한다. 지금은 마땅히 지구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으나 고운 영혼들의 힘으로 꺼져가는 지구의 위태로움이 회생의 기회를 맞고 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고운 영혼을 하늘에서는 천금보다 소중히 여긴다."
쇼시우시의 설명을 듣고 내가 궁금한 답을 구했다.
“지구가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이치를 설명해 주십시오."
“지구가 하나의 집이라면 집을 받히고 있는 기둥이 모두 무너진 형국이다. 기둥 없는 집이 제대로 서 있는 모습을 네 눈으로 바라본 적이 있느냐?"
“저는 아직 아무리 낡은 집이라도 기둥 없이 서 있는 집은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기둥 없는 집이 무너지지 않고 서 있다면 샤르앙은 어떤 이치라고 판단하겠느냐?"
“기둥 없이 서 있는 집을 바라보면 다른 이치는 떠오르지 않고 기적이란 생각밖에는 모를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기둥 없는 집이 제대로 서 있다면 그 현상을 기적이라는 말 외의 다른 말로는 형용하지 못하겠구나. 지금 지구의 운명이 그러하다. 지구는 기둥 없는 큰 집이다. 기둥이 무너진 집이 제대로 지탱하고 서 있는 것은 하늘의 수호신들이 대신 기둥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구의 사방에서 지구를 지키는 수호신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고 있기 때문에 풍전등화 같은 지구의 운명은 기적처럼 회생이 가능하다.”
"하늘의 수호신들이 풍전등화 같은 지구의 위기를 지켜주고 있는 이치를 알고 싶습니다."
“지구의 의로운 영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곧 지구에서 살고 있는 고운 영혼들이니, 장차 천주의 빛 담금질로 후천 지상낙원을 일으킬 재목들을 지켜주기 위해서 하늘의 수호신들이 내려와 지구의 무너진 기둥을 대신한다."
"지구에서 살고 있는 고운 영혼들은 결국 천주의 시대에 천주를 도와 후천 지상낙원을 건설하는 재목으로 쓰임 받는다는 말씀이군요?"
“샤르앙아, 그렇단다. 지구의 고운 영혼들은 장차 천주의 일을 도와 위기에 처한 지구의 운명을 되살리는 중책을 맡기 위해 하늘이 준비한 보석들이란다.”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출현한 천주의 외로움과 고달픔을 함께할 일꾼들이 지구의 처처에서 이미 준비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사람의 작은 일들도 철저한 준비 속에서 이뤄지거늘 하늘의 대사를 이룸에는 더욱 큰 준비가 필요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천주의 곁에는 진실한 충신이 없으나 숨겨진 일꾼들이 그 충신을 대신하리라."
쇼시우시와 이런 대화를 나눈 후 나는 다시 천주의 영을 찾아 대화를 청했다. 천주의 영혼은 이미 사람의 몸으로 태어난 육신 속에서 거하며 천지대사를 위해 만전의 준비를 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천주의 영을 담은 몸은 아직 그 스스로가 천주의 천부적 사명을 깨닫지 못한 채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행동으로 그 영혼을 답답하게 괴롭히고 있었다.
사람의 몸 속에 갇힌 채 답답해 하는 천주의 영혼을 향해 내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천주의 큰 빛이 어찌해서 답답한 사람의 몸을 빌려 세상에 오셨습니까?"
사람의 몸 속에 갇혀 있는 천주의 영혼은 여전히 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빛의 모습으로 운행하며 음성으로만 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묻는 질문에 천주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람의 세상에서 하늘의 일을 이루고자 하니 사람의 모습으로 오지 않고 빛으로 내려오면 사람들과 더불어 사람의 일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 사람의 몸을 입어 세상을 찾아왔다."
천주의 말을 들으니 마음속에서 저절로 동정심이 우러났다. 그래서 천주를 향해 위로의 맘을 전했다.
"천주님의 신세가 마치 왕의 신분으로 거지 대접을 받고 있는 처지와 다르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 처지도 불우하고 한심스러운 형편은 이루 말할 처지가 아니지만, 하늘의 큰 빛이 초라한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내려와 어려움을 겪는 처지에 대해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대접을 받으려고 오지 않았고 모든 영혼들을 귀하게 섬겨 인간의 낮은 형상을 벗겨 신선의 귀한 신분을 되찾아 주기 위함이니 동정하거나 위로의 맘을 전하려고 애쓰지 마라. 다만 천주는 백마선의 동정이 필요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하다. 천주의 신분으로 천주의 앞날을 미리 내다보니 천주의 곁에는 충신도 없고 쓸 만한 사람도 없다.”
“제가 천주의 충신은 될 수 없으나 진실한 조력자로서 역할은 다하겠습니다. 천주의 날에 천주를 위해 쓰일 일꾼들이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 장차 천주의 곁에서 쓸만한 일군들을 찾지 마시고 숨겨 놓은 일군들을 찾아 천주님의 거사를 이루십시오."
"백마선은 천주에 대한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천주를 증언하고 천명소통의 앞길을 예비함이 제 역할의 모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역할이 끝나면 자유로운 신분이 되어 세상을 주유할 것입니다. 제게는 어떤 명예나 직분이나 상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천상계에서도 자유분방한 성격 탓으로 한 자리를 진득하게 지키지 못하고 천방지축 역마살이 붙어 있는 제 영혼의 기질을 천주께서 이미 파악하고 계실 줄 믿습니다."
“결국 백마선의 영혼은 우주천하에서 영원한 자유자의 이름을 얻기를 소망하는구나?”
“제 영혼이 갈망하는 바는 그 이상의 희망이 없습니다."
"나는 이미 백마선의 기질을 알고 있다. 천하가 변해도 백마선의 자유분방한 기질은 바뀌지 못하지. 결국 백마선은 백마선의 길이 있으니 세상과 어울려 노는 풍류가인의 길이 아니더냐? 천주는 천주의 길이 있으니 백마선은 백마선답게 살아야지. 천주는 백마선의 의중을 온전히 인정하리라. 대신 백마선은 장차 천주의 날이 다가올 때 천주의 증인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천명소통의 앞길을 충실히 예비하여야 할 것이다. 그 역할을 마친 후 백마선이 세상과 어울려 어떤 신선놀음을 즐기던 상관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장차 백마선이 세상과 더불어 펼쳐갈 신선놀음이 무언지 말해보아라."
“제가 전생에 신선의 업으로 살았으니 세상에서도 신선의 업보를 벗어나 살고자 하는 길이 따로 있겠습니까? 저는 장차 세상의 만민들과 어울려 신선풍류 선화가무를 즐기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제 기질이 본래 누구의 간섭을 받거나 누구에게 구속됨을 참지 못해 만사에 자유분방하니 무모한 악동으로 천상계에 자자한 소문을 천주께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일 줄 믿습니다. 그러한 업보를 세상서도 버릴 수 없어 앞으로도 세상의 선인들과 어울리며 온 세상에 선화가무 신선풍류의 열풍이나 일으키려 합니다. 그 중에서 준비된 선인들이 천주의 천명소통에 참여할 줄 믿습니다."
“백마선의 신선풍류 업보를 누가 막으랴. 백마선이 장차 세상에 신선풍류 열풍을 불게하면 결국은 인자(人子)의 천명소통 신바람을 돕는 격이니 모두 하늘과 땅이 바라는 경사스런 일일 것이다."
• "천주께서는 장차 큰 빛으로 세상에 임하는 하늘의 존재로서 어찌 스스로를 인자(人子)라 칭하십니까?"
"나의 영은 하늘의 존재이나 나의 몸은 사람의 몸을 빌려 출세하므로 또한 사람의 아들이요 인자가 맞지 않겠느냐?"
"하늘의 영을 담은 육신의 이름을 인자라고 호칭하신다는 말씀이군요?"
"하늘의 대천이라도 땅에 강세할 때는 반드시 하늘의 모습으로 오지 않고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인자의 길을 걷는다.”
"하늘의 삼천자(三天子) 세 분도 모두 인자의 몸으로 강세하여 인자의 길을 걷고 회천(回天)하셨습니까?"
"천자들의 거취는 하늘과 땅이 때마다 바뀐다. 하늘에서는 천자요땅에서는 인자의 모습이니 사람들은 인자의 모습을 보고 천자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다. 인자의 때에도 천자들은 또 다른 인자의 모습으로 출세하다 돌아가리라. 인자의 길은 천자가 걸어간 후인의 길이다. 마지막 천자의 때에 인자가 출세하였으니 지금이 그때이다. 그러나 아직 인자는 천주의 이름을 얻지 못하고 육신의 삶을 궁리한다. 천명소통의 거사가 천하에 펼쳐지는 때라야 천주는 천주의 이름으로 살게 될 것이다. 그때를 비로소 천주의 시대라 한다.”
"아무튼 천주의 시대가 속히 도래하여 천명소통 천명지인의 거사가 잘 마무리 되고 원혼들의 해원과 인간세상의 선화(化)가 하늘의 뜻대로 잘 펼쳐져서 천명지인의 인침을 받은 고운 영혼들이 구름떼처럼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네 말대로 인자는 천명지인으로 고운 영혼들에게 인치는 사명을 안고 출세하였다. 천명지인의 인침을 받은 고운 영혼들의 숫자가 구름떼같을 때 비로소 온전한 천주의 때가 이르러 지상낙원 선경세상이 펼쳐지리라. 장차 천명소통 천명지인을 예비하는 몫은 백마선에게 있으니 백마선의 역할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천명소통의 제 역할은 저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하늘이 돕지 않고 땅이 돕지 않는다면 혼자의 힘만으론 부족할 것입니다."
"백마선의 곁에는 항상 보호신명들이 구름떼 같으니 무엇이 두렵고 무슨 힘이 부족하겠느냐? 천하의 멸주라도 백마선의 대세를 대항하지 못하리니 백마선은 백마선의 길을 걷도록 하여라.”
이때 하늘에서 번갯불이 나타나 몇 번 번쩍거리기 시작하더니 우레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하늘이 바라는 나의 후인이요 천지대사를 마무리할 신천지의 주인이니 그 이름을 천주라 하리라. 장차 천주가 천주의 이름을 얻고 세상 사람들이 천주의 이름을 부를 때 하늘과 땅이 소통하여 막힘이 없으리라.>
우레 같은 음성이 멎은 후 천주의 빛과 음성도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천주의 빛이 사라진 후 나는 다시 지구에서 활동하는 다른 영혼들을 더 만나보았다. 만나 본 영혼 중에는 선한 영혼과 악한 영혼이 섞여 있었다. 선한 영혼과 악한 영혼은 본래 다르지 않았으며 욕심이 넘치면 악한 영혼으로 성장하고 욕심을 자제하면 선한 영혼으로 성장한다는 사실도 그 영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파악할 수 있었다.
천주와 멸주도 본래는 친구의 사이였으며 우주의 신천지 창조라는 이념이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멸주의 넘치는 야망으로 인하여, 결국은 창조와 파괴 축복과 저주라고 하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동기라고 했다.
결국 천사와 악마 선과 악이 본래부터 하늘에서 정해진 이름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초도로 영상장치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들리지 않는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초도로 장치의 뜻에는 <저너머 세상>이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즉 파장이 다른 이차원 세상의 현상들을 관찰하고 이차원의 현상들과 교류를 가지는 장치란 뜻이었다.
쇼시우시의 도움으로 초도로머신으로 지구공간에 이동한 후 지구에서 활동하는 보이지 않는 현상들을 만나보면서, 그 보이지 않는 현상들이 현실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구의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현상들은 크게 생명의 기운과 사망의 기운으로 나뉘어 있었다. 생명의 기운은 지구와 지구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를 살리는 기운이며, 또한 그러한 생명체가 살아서 움직이는 기운이었다. 사망의 기운은 지구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를 죽게 하거나 멸망시키며 또는 죽어 있는 현상의 기운이었다.
이 두 가지의 기운이 지구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었고, 생명의 기운이 증폭되면 지구의 운명은 희망적으로 바뀌고 사망의 기운이 증폭되면 지구의 운명은 비관적으로 바뀐다고 설명할 수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초도로 장치를 통해 관찰한 지구의 기운은 사망의 기운이 더 강하고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사망의 기운 속에는 모든 질병을 일으키는 기운, 인간의 욕심을 증폭시키는 기운, 인간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기운, 그 외 각양각색의 재난을 야기시키는 기운들이 숨겨져 있었다.
사망의 기운을 장악하고 있는 주체가 멸주였다.
지구에서 생명의 기운을 장악하는 주체가 큰 빛 천주라면 사망의 기운을 장악하는 주체는 흑암의 세력인 멸주라고 구분할 수 있었다. 천주의 빛은 크고 영롱하며 생명의 기운이 증폭된 모습이라면, 멸주의 빛은 어둡고 음침하며 사망의 붉은 기운이 증폭된 모습이었다.
초도로 장치의 천리안으로 바라볼 때도 역시 붉은 기운이 감도는 사망의 빛 속에 멸주의 모습이 감추어져 있고, 그 실체는 확인할 수 없었다.
천주의 빛은 영롱하고 아름답지만 영향을 미치는 공간이 제한적이었고, 멸주의 빛은 음침하고 어두웠지만 영향을 미치는 공간이 광범위했다. 지구는 아직 천주의 밝은 빛으로 영향력을 좌우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공중권세를 잡았고 지구의 허약한 영혼들은 이제 모두 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며 천하는 주의 손에 쥐어져 있다."
내가 멸주의 음침한 기운 앞에 머물렀을 때 음침한 빛 속에서 거만하게 들려오는 음성이었다.
그 거만한 음성이 들리는 곳을 향해 내가 질문했다.
"공중권세를 장악한 멸주님의 장차 꿈은 무엇입니까?"
멸주는 여전히 거만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연약한 천주의 졸개들을 지상에서 모두 쓰러뜨리고 천하를 어둠의 손 안에 장악하는 일이다."
"천주의 졸개들이라면 고운 영혼들을 두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까?"“그래, 눈에 가시 같은 존재들이 고운 영혼들이야. 고운 영혼들이 천주를 돕고 있어서 멸주의 숙원사업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멸주의 숙원사업이 인간의 세상과 지구를 파멸시키는 일입니까?"
“현재 존재하는 인간세상을 다 쓸어버려야 그 후에 나의 영광스런 세상을 다시 세울 수 있어. 그땐 천하의 천주라도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내 이름을 향해 경배를 하고 말거야.”
“멸주님은 흑암의 힘으로 천지대광명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흑암의 힘으로는 천지대광명을 이기지 못해. 하지만 빛으로 존재했던 천하를 쓰러뜨리고 그 자리에 흑암의 현상들로 이뤄진 흑암의 세상을 다시 세우면 천지대광명이라도 설 자리가 없어져. 흑암의 현상들은 아무리 큰 빛 앞에서도 동화될 수 없거든. 그땐 완전히 이 멸주의 세상"이야."
“천주님과 멸주님은 본래 우주 절친의 친구사이가 아니었나요?"
"본래는 친구였지만 지금은 최고의 원수지간이 되고 말았어?"
"멸주님의 야망이 천주님과의 우정을 파기시키고 말았으니 우정이 깨지게 된 동기를 멸주님이 만드셨군요?"
"천주는 빛의 기운으로 천하를 얻으려 하고 나는 흑암의 기운으로 천하를 얻으려 할 뿐 서로의 야망은 다르지 않아. 그래서 서로 가는 길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지. 지금 천하는 모두 이 멸주의 세상이야.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이 멸주에게 천주의 힘으로는 대항이 불가해. 지금이라도 천주가 내 말을 들으면 천하의 절반을 내어줄 수 있어. 옛 우정을 생각해서 말이야."
"주님의 그러한 제안을 천주님께서 허락할 것 같으세요?"
“천주는 어리석게 하늘에 충성할 줄 밖에 몰라. 그래서 가시밭길과 험난한 길을 사서 걸으면서 나처럼 호화스럽고 천하의 권세를 다 쥐고 사는 재미를 즐길 줄 몰라. 바보 같은 고운 영혼들이나 감싸고 그것들을 단련시켜 장차 흑암의 세력을 물리치고 빛의 세상을 건설하겠다고 하는데 말처럼 쉬울까?"
“멸주님은 추운 겨울 꽁꽁 얼어붙은 얼음장 밑으로 새봄을 기다리며 흐르는 물소리를 듣지 못하시나요?"
“그게 무슨 소리야?"
"고운 영혼들의 질긴 생명력의 새싹들이 크게 자라 세상을 덮을 줄 모르시나요?"
“그래서 고운 영혼들이 눈에 가시야. 고운 영혼들은 천주의 기운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짓이겨 밟으려 해도 쓰러지지 않거든. 고운 영혼들의 꿈틀거리는 생명력으로 이 멸주의 일들이 항상 마지막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곤 하지. 그래서 고운 영혼들만 생각하면 분통이 터져서 견딜 수 없어."
“공중권세를 잡은 천하의 멸주님도 고운 영혼 하나를 당하지 못하시는군요?"
"천주의 기운과 멸주의 기운은 짓이겨 밟으면 밟을수록 강해지는 원력이 있어. 더구나 고운 영혼들은 마치 우리 주들에게 뜨거운 불덩어리와 같아서 함부로 만질 수 없어. 그것들은 작지만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거든. 그래서 혼을 내고 싶어도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니 분하고 억울해 미치겠어. 더구나 앞으로 천주가 인간세상에 나타나면 고운 영혼들을 모아서 빛 담금질을 시작할 거야. 그러면 더욱 고운 영혼들의 에너지는 증폭되어 곁에도 다가가기 힘든 번갯불로 변하고 멸주를 위협하는 골칫거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어. 그러기 전에 고운 영혼들의 싹을 모두 잘라버려야 하는데 큰 고심이 되지 않을 수 없어.”
"멸주님이 직접 고운 영혼을 손봐줄 수 없다면 어떤 방법으로 고운영혼의 세력을 꺾으려 하시나요?"
"멸주가 공중권세를 잡도록 도와주는 충신들이 있지. 그들이 누군지 백마선은 알아?"
“멸주님께서 한 번 말씀해 보세요."
“바로 인간들과 아주 사이가 좋지 않은 원혼들이야. 원혼들의 세력은 자그마치 지구의 하늘을 뒤덮을 만큼 강력하고 그 강력한 세력이멸주의 손에 쥐어져 있어. 원혼들은 인간세상에 한이 많아서 순간도 참지 못하고 복수의 이를 갈고 있으며 그러한 복수심을 이용해서 고운 영혼들의 싹을 잘라낼 수 있지.”
“그 원혼들의 이름을 말씀해 보세요."
“세상에 태어났다 죽으면 다 원혼이지 다른 이름이 필요하겠어? 태어나면 병들어 죽든지, 굶어 죽든지, 맞아 죽든지, 전쟁으로 죽든지, 재난으로 죽든지 심지어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죽기도 하니까 모든 죽은 자의 이름이 원혼이지. 그 중에서 어미 뱃속에서 죽임을 당한 태아의 복살령은 그 원한이 구천에 사무쳐서 인간들에 대한 복수심이 강열하지. 어미 뱃속에서 죽임당한 태아 복살령들의 숫자만 자그마치 천억이야. 복살원혼들의 군대만 움직여도 인간세상의 질서는 쑥대밭이 될 수 있어. 앞으로 날이 갈수록 복살령들의 한풀이는 거세질 것이고 그땐 고운 영혼들의 질긴 생명력도 무디어질 거야."
"원혼들은 불쌍한 영혼들인데 멸주님이 그 불쌍한 영혼들을 악용하여 세상의 권세를 잡는 도구로 사용하시다니 좋은 이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백마선은 감히 공중권세를 잡은 멸주 앞에서 건방진 소리를 하지마라. 천하를 얻으려는데 무슨 옳고 그른 이치가 필요해? 인간세상에서 천하를 얻은 영웅들이 생명에 대한 자비심이니 불쌍한 민초들의 아픔이니 따위의 허울좋은 이상을 저울질하면서 목표를 달성한 것 봤어? 앞으로 땅의 권세만 손에 쥐면 이 멸주가 우주의 권세까지도 손에 넣을 수 있으니 어떤 수단으로도 말리지 못할 것이다. 원혼들이 아니라 천상계의 천사라도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할 것이다. 앞으로 어떤 허튼 소리라도 내 앞에서 집어 치워라. 그리고 백마선도 이 멸주의 말만 잘 들으면 얼마든지 호강을 누리고 살 수 있다. 천주 곁에 서 봐야 결국은 쪽박 밖에 더 찰 것이 없으니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려라."
"천주님의 편에 서건 멸주님의 편에 서건 그건 제 자유의사입니다. 누구의 편에 서건 판단은 제 몫입니다. 다만 우주의 질서는 정도가 있으며 그 정도에서 벗어나면 하느님이라도 결국은 멸망의 길 밖에 더 기다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건방진 백마선,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무모하고 당찬 기질은 여전하구나. 감히 천하의 멸주에게 훈계까지 하다니."
"멸주님을 훈계하지 않고 잘못된 이치를 말씀드릴 뿐입니다.”
“이 멸주의 귀에는 어떤 훈계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공중권세를 잡았다. 원혼들의 힘을 빌리는 천사들을 꼬드겨서 일을 꾸미든 그 수단이야 어떻든 목표를 성취하면 그 뿐이 아니냐? 이 건방진 백마선아, 너를 지키는 수호신들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어 분할 뿐이다."
“멸주님은 불어오는 바람을 손으로 잡을 수 있나요? 멸주님께서 공중권세를 잡았다면 그 정도는 가능해야지 않을까요?"
“공중권세를 잡은 천하의 멸주라도 무엇이나 내 앞에서 굴복시키지는 못한다. 그 중에 백마선도 하나다. 그러면 네가 바람이냐?"
“저 백마선은 누가 붙들고 싶어도 붙들 수 없는 바람입니다. 그 바람은 어디로 불어와서 어디로 불어 가는지 방향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멸주님은 공중권세를 손에 쥐었다고 하지만 그 권세도 결국은 한 순간 불어왔다 사라지는 바람일 수 있습니다.”
"바람이라는 말이 무섭구나. 이 멸주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바람이다. 그렇다. 백마선, 네 말처럼 천하의 권세로도 바람은 잡지 못한다. 그래서 이 멸주는 앞으로 세상에 불어닥칠 천주의 천명소통신바람을 온갖 수단을 다하여 막아야 한다."
“멸주님은 천주의 천명소통 신바람을 결코 막을 수 없습니다.”
"흑암의 철옹성으로 나는 나의 세상을 굳건하게 지킬 것이다.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을 방패막이 삼아서 흑암의 철옹성은 굳건할 것이다.” “흑암이 깊어도 한 줄기 빛 앞에서 쫓겨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백마선은 끝까지 이 멸주의 불편한 심기를 자극할 테냐?"
“더 이상 불쌍한 원혼들을 이용하지 말고 지구파멸의 계획을 포기하십시오."
"나는 밝은 세상의 기운이 성정에 맞지 않아. 이젠 빛보다 어둠이 나의 성정을 편안하게 만들어 줘. 과거에 내가 천주와 절친일 땐 빛의 예찬론자였지. 하지만 이젠 빛보다 어둠이 좋고 편하다. 이젠 이 멸주는 어둠의 예찬론자이다. 태아가 산모의 어두운 자궁 속에서 편안함을 누리듯 말이다."
"아무리 주님이 어둠의 예찬론자다 할지라도, 멸주님은 왜 항상 밝은 기운 앞에 떳떳하게 형상을 드러내지 못하고 음침하고 살기가 가득한 기운의 어둠 속에 머물러 계시나요?"
"음침하고 어두운 공간이 얼마나 편안한 줄 알아? 어둠 속에서는 아무리 잘못된 행동을 해도 누가 알아차리지 못하며 못나고 흉측한 몰골이라도 남의 눈에 띄지 않으니 얼마나 편한 줄 백마선이 아직 모르나보지?"
“어두운 공간은 못난 모습이든 흉측한 몰골이든 또는 어떤 악행을 저지르고도 들통 나지 않아서 편안하다는 말씀이군요?"
“그렇고말고, 어두운 공간에서는 우리 멸주들처럼 흉측하고 못난 존재들도 얼마든지 잘난 체하며 활보하고 아무리 바보스럽거나 악행을 해도 들통 나지 않으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지.”
“멸주님은 스스로의 흉측한 형상과 악한 성정을 제게 고백 하시는 군요?"
"그건 나의 실수야. 나는 사실 인간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좋은 옷 으로 치장하고 권위 있는 행동으로 미혹하는데 백마선 앞에서 말실수를 하고 말았구나. 백마선은 앞으로 다른 데 가서 멸주를 험담해선 안 된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좋은 말을 들으면 고개를 흔들고 안 좋은소문을 들으면 눈이 번쩍 뜨여 사방팔방 악소문을 퍼뜨리거든. 그러므로 백마선이 멸주의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면 멸주의 입장이 곤란해진단 사실을 알아주렴."
“멸주님은 강한 성품과는 달리 소심하고 단순하기까지 하시군요?"
“우린 복잡하고 까다로운 건 질색이야. 세상은 단순하게 살아야 편해, 복잡하게 따지고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
“그래서 멸주님은 실수도 많이 하시겠군요?"
"어둠 속에서는 잘못이 드러나지 않아 편하기도 하지만 함정들이 많아서 넘어지고 실수하는 일도 잦단다. 그래서 고운 영혼의 빛과 대결하면 멸주의 강한 힘으로도 꺾일 때가 많단다."
"그런데 고운 영혼보다 더욱 강렬한 천주의 큰 빛이 세상에 출현하면 멸주의 힘으로 감당하리라 생각하시나요?'
“그래서 천주의 큰 빛이 세상에 출현하기 전에 완전하게 세상을 장악하려 고심하고 있단다. 천주가 세상에 출현하여 고운 영혼들을 빛담금질하면 주의 강한 세력으로라도 대항하는데 역부족이란다. 그래서 장차 이 멸주는 백마선의 도움이 꼭 필요하단다."
"저는 몇 번이나 주님의 편에는 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요? 그래서 멸주님은 저를 위협하고 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억지로 약속을 받아내려고 흉계까지 꾸미지 않으셨던가요?"
• "그땐 내가 좀 맘이 급했던 것이고…. 백마선을 아무리 해하려 해도 백마선을 지키는 수호신들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야. 그러므로 백마선을 어찌 해보려던 계획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다. 아무튼 백마선, 그런 나쁜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는 게 좋아. 세상은 단순하게 살아야지 너무 미주알고주알 따지고 기분 나쁜 기억을 오래 간직하면 즐겁게 사는데 지장이 있어. 앞으로는 아무리 맘이 급해도 백마선에게 무리한 요구는 않을 테니 앞으로는 잘해 보자구...."
"멸주님이 천하의 권세를 얻기까지 그렇게 제 힘이 필요하시나요?"
“앞으로 천하를 얻으려면 의통의 힘이 필요하지. 그 힘은 천주에게도 필요한 힘이고 멸주에게도 필요한 힘이야. 의통의 힘을 천주에게 실어주면 멸주의 입장이 너무 난처해질 것 같아. 그러므로 다 된 밥에 재 뿌리지 말고 백마선이 이 멸주를 도와줘…. 그러면 큰 권세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약속할게. 제발 부탁이다."
"이 백마선은 바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멸주님이 이래라저래라 하라고 해서 그대로 따를 대상이 아닙니다. 하늘이라도 제 고집은 꺾지 못합니다. 제 맘이 아닌 것은 아무리 보상이 따라와도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 본성은 본래부터 누구에게 속함을 받고 충성을 한다거나 끝까지 운명을 함께 하는 따위의 진득함도 없습니다. 앞으로 천주가 세상에 출현할 때 저는 조력자로서 역할을 마치고 제 갈 길을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멸주님은 저에 대한 미련을 다시 품지 마십시오. 저는 바람처럼 누구의 소속도 원하지 않습니다."
"백마선은 아직도 너무 생각이 꽉 막혀 있어. 그래서 출세를 못하고 부귀공명을 누리지 못하며 세상을 얻지 못하고 있어. 이 멸주의 말만 잘 들으면 백마선은 세상을 얻고 부귀공명을 누리며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그런 어려운 삶을 일부러 자청하는지 모르겠구나. 앞으로 천주가 세상에 나타나도 그 졸개들이 살아가는 삶이란 불 보듯 뻔하지. 지지리 궁상으로 어려운 삶을 자청할 것이 뻔해. 빛 담금질을 한답시고 천주는 그 졸개들을 궁핍하게 만들고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들고 왜 그런 어리석은 길을 자청하는지 모르겠다. 백마선이라도 마음을 돌려 의통을 멸주에게 빌려 주고 평생 호강하며 잘 사는 것이 어떻겠나? 이 주는 이미 공중권세를 쥐고 있고 머지않아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있단 말야. 그때는 백마선이 원하는 무슨 부탁이라도 다 들어줄 수 있다."
“주님, 제 생각은 변함이 없으니 어떤 감언이설로도 현혹하지 마십시오. 구천을 떠돌며 지구의 하늘을 뒤덮고 있는 원혼들의 힘을 빌려 공중권세를 장악한 멸주님의 권세가 결코 오래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어두운 영혼들을 선동하여 천하를 얻으려는 주님의 음흉한 흉계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멸주님의 계획은 하늘의 이치에 부합되지 않으니까요. 저는 결코 멸주님의 감언이설에 속지 않을 것이니 무슨 미련이라도 다 버려 주십시오."
"백마선은 끝까지 이 멸주의 심사를 상하게 만드는구나.”
“제가 멸주님의 맘을 상하게 하지 않고 멸주님이 잘못된 계획으로 천하를 얻으려 합니다. 악독한 계획으로 지구를 멸하고 멸주가 원하는 암흑천국을 다시 세우려는 의도를 저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뭐라? 백마선, 이 건방진 놈. 어리석게도 이 멸주를 또 훈계하다니…. 이 멸주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훈계라고 했지? 멸주가 천하를 얻는 날 반드시 네 놈의 지금 경거망동한 행동을 후회하게 만들 것이다."
“멸주님 마음을 진정하십시오. 순리가 아니면 결코 그 결과는 승리하지 못합니다.”
"입 닥쳐! 건방진 놈. 더 이상 어리석은 네 놈과 말 섞고 싶지 않다.” 멸주는 이런 말을 마치고 엄청나게 큰 검은 먹구름을 만들어 하늘을 뒤덮더니 음침한 기운으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하늘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멸주가 분을 참지 못하고 광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멸주의 기운이 사라진 뒤를 따라 검은 까마귀 떼처럼 보이는 원혼들이 엄청난 무리를 이루어 선동되고 있었다. 멸주가 공중권세를 잡았다고 큰소리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세상에 대한 억울함과 한을 풀지 못해 날뛰는 원혼의 먹구름을 선동하여 세상을 뒤엎고, 그 힘으로 지상에서 고운 영혼들의 힘을 약화시켜 천하를 얻으려는 멸주의 흉계가 한 눈에 보이는 듯 했다.
멸주가 사라진 먼 하늘을 바라보며 근심에 젖어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샤르비네가 위로했다.
“샤르앙, 걱정하지 말아요. 공중권세를 잡은 멸주의 세력이 아무리 크게 느껴져도, 결국 그 힘은 사상누각처럼 쉽게 허물어질 날이 반드시 다가오리라 믿어요. 지구는 지금도 강한 힘을 지닌 수호신들이 사방을 지키고 있고 샤르별에서 보낸 든든한 파수꾼들이 무너지는 지구의 운명을 붙들어 주고 있어요. 멸주는 어두운 영혼들을 선동하여 공중권세를 손에 쥐고 있지만, 어두운 영혼들이라고 하여 끝까지 지구의 적군이 되지 않고 우군으로 바뀔 수도 있어요. 그러므로 지구의 운명을 비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믿어 주세요."
지구의 비관적인 운명을 걱정하던 나는 샤르비네의 설명을 듣고 눈이 번쩍 떠지며 반문했다.
“지구의 적군이 되는 어두운 영혼들이 지구의 우군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설명해 보오."
“지구의 원혼들이 멸주의 편에서 움직이는 건 멸주를 받들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지구를 향해 분풀이 할 명분을 찾고 있을 뿐이에요. 어쩌면 한풀이에 빠져 있는 원혼들이 멸주의 흉계를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어요. 그러므로 멸주의 편에서 선동하는 원혼들이 분풀이 하는 명분을 없애 주면 저절로 지구의 아군으로 돌아와 신인조화로 지구의 지상낙원을 건설하는 역동력을 제공하리라 믿어요."
“그러면 샤르비네, 지구의 원혼들에게 분풀이하는 명분을 없애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보시오."
“샤르앙이 지구로 돌아가 장차 꿈꾸는 일이 그 방법이지요. 원혼들을 해원시켜 신선으로 봉안하고 극락왕생하여 안식을 누리게 하면 끝이지요. 신선으로 극락왕생한 원혼들은 더 이상 원혼의 이름이 아니라 극락신선의 이름이니 곧 신인조화로서 지상낙원을 함께 건설하는 든든한 보조세력으로 둔갑하고 말 거에요."
샤르비네의 말이 끝나자 쇼시우시가 다시 거들고 나섰다.
"샤르비네의 말이 맞다. 지구의 공중권세를 쥐고 있는 멸주의 세력이 아무리 독불천하처럼 크게 보여도 원혼들의 힘만 와해시키면 모래알 세력에 불과해진다. 원혼들의 세력을 와해시키는 방법이 곧 원혼들의 해원과 신선봉안이니 그때부터 멸주와 천주의 세력균형은 판도가 바꿔지리라. 곧 지구에서 천주의 큰 빛이 나타나고 원혼들의 해원잔치가 시작될 때 비로소 천명소통의 날이 밝아오고 광명이세의 새날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므로 멸주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원혼들의 해원과 사람들의 의통이다.”
"쇼시우시 러우님의 말씀처럼 멸주는 의통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의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뭘까요?"
“의통이란 천주의 편에서도 멸주의 편에서도 매우 중요한 관건이지.”
"그 관건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땅에서 식물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옥토가 필요하겠느냐? 박토가 필요하겠느냐?"
"당연히 옥토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의통이란 바로 사람의 몸을 옥토로 만드는 일이다. 하늘의 신명들이 땅으로 내려와 신인조화의 대사를 벌이기 위해서는 옥토처럼 머물 사람의 몸이 필요하다. 병들고 허약한 사람의 몸에는 신명의 기운이 응하지 못하고 신인조화를 펼치는 일도 불과하다. 곧 사람의 몸은 신명이 거하는 집과 같아 옥토처럼 잘 가꾸어진 터전을 고르려 한다. 사람의 몸이 의통 되면 신명이 머무는 옥토가 되고 신명의 기운과 함께 신인조화로서 지상낙원을 건설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천주가 원하는 바도 의통으로 이뤄진 튼튼한 사람의 몸이요. 멸주가 원하는 바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때 천주의 음성이 빛 속에서 들렸다. 언제 천주의 아름다운 빛이 곁에 다가와 머물고 있는 줄을 우리 셋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쇼시우시 말이 맞다. 의통은 사람의 몸을 옥토로 가꾸는 일이다. 그래서 천주는 장차 세상에 출현하여 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설 것이요, 그 땅은 흙이 있는 땅이 아니라 마음이 살고 있는 사람 몸을 의미한다. 결국 땅을 살리는 일이란 흙을 살리는 일이 아니라 의통으로 사람 몸을 살리는 일이요, 사람의 몸이 살아나야 정신이 살고 영혼이 살고 신명들이 발붙일 터전이 살아난다. 신명들은 결코 언제 난파선이 될지 모를 병든 사람의 몸에 터전을 만들지는 않는다. 병든 사람의 몸에는 쓸모없는 허령과 귀신들이 즐겨 찾으니 그렇게 망한 집에서 거할 신령한 힘은 없다. 백마선의 손에는 의통의 여의주가 들려 있으니 의통의 여의주로 병든 사람의 몸을 살려서 옥토로 만들리라.”
천주의 말을 듣고 쇼시우시가 대답했다.
“천주님의 말씀이 지당합니다. 우리 샤르별의 인류들은 병들지 않는 몸으로 항상 신명들을 영접하고 신명들과 함께 신인조화를 이루며 무한이론의 4차원 문명세계를 펼쳐가고 있습니다. 신인조화가 아니라면 우리 샤르별에서 무한이론의 초월적 문명이 빛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샤르비네도 한 마디 거들었다.
"천주님의 말씀처럼 우리 샤르별의 사람들은 항상 청결하고 아름다우며 고상한 맘이 우러나는 몸 속에서 신령한 기운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몸이 병들지 않고 맘이 병들지 않고 청정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항상 즐거운 맘으로 신선놀음을 즐기고 이웃들과 함께 화목하며 우주정신세계의 높은 이상을 품을 때 저절로 우리 몸에는 의통이 이뤄지고 건강함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도 믿고 있습니다."
쇼시우시와 샤르비네의 말을 듣고 빛 속에서 천주의 음성이 들려왔다.
“샤르별에는 어두운 영혼이 살지 않고 빛 몸의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안다. 그래서 샤르별의 사람들을 따로 가르칠 말이 내겐 없다. 다만 지구의 어두운 환경을 바꾸려고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샤르별의 공로를 인정한다. 특히 샤르비네는 샤르앙의 일심동체로서 앞으로도 큰 조력을 기대하며 그 은혜는 하늘이 대신 갚아 줄 것이다."
천주의 말을 듣고 쇼시우시와 샤르비네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천주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천주께서 세상에 출현하는 목적은 고운 영혼들을 불러 모아서 빛담금질을 시키고 1만 2천의 영통군자를 세우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14만 4천의 왕을 천 년 동안 훈련시켜 후천세상을 다스리는 제후로 삼을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막중한 사업 중에서 의통이란 문제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천주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의통을 이루어야 불로장생하며 불로장생하는 고운 영혼들이 드디어 영통을 이루고 1만 2천의 군자와 14만 4천의 왕으로 태어날 수 있다. 의통을 이루지 못한 몸은 누구라도 불로장생이 불가하며 불로장생이 불가한 몸은 1만 2천의 군자와 14만 4천의 왕으로 등극함이 불가하다. 또한 하늘의 신명들도 의통을 이룬 몸과 신인조화를 이루어야 영생불멸이 기능하다. 의통이란 문제는 천주의 시대와 신인조화의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다. 백마선의 손에 의통의 여의주가 들려 있으니 지구의 운명을 결판 짓는 마지막 천주와 멸주의 싸움에서 승패의 요인이 될 것이다.”
그 외 천주는 나에게 다른 대답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의통의 여의주를 어떻게 써야할지 그 결단은 이미 정해져 있을 것이라고 천주가 판단하고 있었을 것이다.
잠시 침묵 속에 빠져 있는 천주를 향해 내가 다시 질문했다.
“천주와 멸주의 마지막 싸움에서 의통이란 문제가 승패의 요인이라면, 그렇게 중요한 의통의 마지막 관문이 천주님께서는 뭐라고 판단하십니까?"
천주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의통의 마지막 관문은 신선놀음이다."
기대했던 대답보다 짧았다.
"신선놀음이 어째서 의통의 마지막 관문이 됩니까?"
“의통으로 아무리 옥토 같은 몸을 만들었다 할지라도, 그 몸이 다시 병드는 건 순간이다. 즉 아무리 깨끗이 세탁한 빨랫감도 흙탕물에 한번 튀기면 헌 옷이 되고 말듯, 아무리 옥토처럼 건강한 몸이라도 잠깐의 실수로 큰 병이 들 수 있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는 일도 중요하지만 즐거운 마음을 가지는 일도 중요하다. 즐거운 마음에는 웬만해서 병이 찾아오지 못한다. 그 증거로 날마다 신선놀음을 즐기고 사는 샤르별의 사람들은 병들어서 일찍 죽는 일이 없다. 지구 사람들도 신선놀음을 즐기고 근심과 번뇌에서 벗어나면 샤르별 사람들처럼 얼마든지 불로장생하며 신선으로 살 수 있다. 그 이상의 의통이 어딨겠느냐? 그래서 장차 밝아오는 천주의 시대에는 천명소통의 신선잔치가 벌어지고 신선놀음의 신바람이 요원의 불처럼 지구를 삼키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백마선은 의통의 마지막 열쇠까지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
“의통의 마지막 열쇠를 제 손에 쥐고 있다니 금시초문입니다.”
"백마선이 샤르별에서 체험한 신선놀음을 그대로 지구 인류들에게 전승하여라. 그러면 비로소 땅에서 천명소통의 시대가 열리고 지구 인류들은 신선놀음을 즐기며 불로장생 신선으로 살아가게 되리라."
“제가 샤르별에서 체험한 신선놀음은 제가 평소에 즐길 수 있는 삶이니 지구 인류에게 전승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장차 백마선의 일들이 많이 바빠지겠구나. 의통사업을 펼치랴 신선놀음을 전승하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하리라.”
"제가 지구로 돌아가면 샤르비네, 저처, 추부스 세 선녀들이 지구에서 분신으로 찾아와 제 일을 함께 펼치기로 약속했습니다. 곁에 있는 제 일심동체 샤르비네에게 직접 그 약속을 확인해 보십시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샤르비네가 천주의 질문을 기다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천주님, 샤르앙의 말이 맞습니다. 저희 세 선녀가 지구에서 꼭 분신으로 환생하여 샤르앙의 일들을 돕기로 했습니다. 그러므로 샤르앙은 장차 하늘의 일을 땅에서 펼침에 외롭거나 힘들지 않고 무사히 거사를 마칠 것입니다. 저희 세 선녀의 약속을 믿어 주십시오."
천주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기특한 인연이로다!" 라고 한 마디만 했다. 그리고 천주의 밝은 빛은 시야에서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 셋은 다시 초도로머신을 지구의 특별한 공간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힘이 있고 키가 크며 천리안을 가진 수호신들이 살고 있는 큰 관청과 같은 집이었다. 그 관청은 으리으리한 궁궐처럼 지어져 있고 오색찬연한 구름이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내면서 마당과 지붕과 주변을 뒤덮고 있는 집이었다.
그 궁궐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수호신들은 지구를 지키는 신명들이었다.
수호신 관청에 들어가니 문지기 수호신이 겸양의 덕을 갖춘 태도로 우리를 맞이했다.
“사람의 영들이 무슨 일로 수호천명궁을 찾았는가?"
수호천명궁이란 수호신들이 살고 있는 큰 집의 이름이었다.
“지구 수호신장을 뵈러 왔습니다.”
쇼시우시가 예를 갖추며 대답했다.
"수호신장을 뵙고자 하는 그대 신분을 말하라."
“지구의 파수꾼들이 살고 있는 샤르별의 쇼시우시 선녀입니다.”
"함께 온 남자의 영과 여자의 영은 누구인가?"
“남자의 영은 지구의 백마선이고 여자의 영은 샤르별의 샤르비네입니다. 두 영은 일심동체로서 장차 지구에서 천주의 거사를 도와 지구의 선화사업에 앞장 설 선남선녀(仙男仙女)입니다."
쇼시우시의 설명을 듣고 문지기 수호신이 다시 말했다.
"고운 영혼들이 수호천명궁을 찾아왔도다."
문지기 수호신은 여전히 겸양지덕을 잃지 않으며 우리 셋을 수호신장 앞으로 안내했다. 수호신장은 지구를 지키는 수호신들의 대장이었다.
“지구의 운명은 백척간두에 서 있는 위태로움과 다르지 않다. 지구는 이미 스스로 연명할 수 있는 자생력을 잃었고 수호신들이 붙들어 위기를 보전하는 중이다."
수호신장이 우리를 만나자마자 들려준 첫 마디였다.
수호신장의 말을 듣고 주변을 살펴보니 쉴 새 없이 천명궁을 들락거리며 바쁘게 움직이는 수호신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수호신들은 용을 타고 날아가기도 하고 구름을 타고 날아가기도 하고학이나 봉황을 타고 어디론가 각각의 방향을 향해 흩어지며 날아갔다. 또 한편으로는 무언가의 임무를 마치고 급히 천명궁으로 돌아와서 보고하는 수호신들의 모습도 보였다.
바쁘게 움직이는 수호신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수호신장은 또 입을 열어 묻지도 않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우리 수호신들은 천명을 받들어 잠시도 소홀함이 없이 불꽃같은 눈으로 지구를 지킨다.”
수호신장의 말을 듣고 내가 질문했다.
"지구의 운명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수호신들이 급하고 숨가쁘게 움직이면서 지구를 수호해야 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수호신장은 내 말을 듣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지구의 수호신들이 물샐틈없는 경계로 지구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해 주었다.
“지구도 사람의 몸처럼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다. 사람의 몸도 골격과 근육이 온전해야 정상적인 체력을 유지하고 살아가듯, 지구도 사람의 몸과 생긴 형태만 다를 뿐 똑같은 생리구조로 움직인다. 만약에 사람의 몸에서 뼈의 골수가 다 빠져나가고 근육이 망가진 상태라면 그 생명은 머지않아 수명을 다할 것이다. 지구의 몸체는 지금 근육과 골격이 모두 망가져서 정상적인 수명을 누릴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해 있다. 집으로 말하자면 기둥이 다 부러지고 벽이 무너진 꼴과 다르지 않다. 지구는 그야말로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고 바야흐로 스스로 힘으로 스스로의 생명력을 유지할만한 자생력을 잃고 말았다. 지구가 무너지면 지구 하나가 우주에서 사라지는 비운에 그치지 않고 지구를 집삼아 살아가는 사람의 목숨과 짐승과 식물의 목숨들이 모두 똑같은 운명에 처해질 수밖에 없다. 하늘은 이러한 비극적 종말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고 천명에 의해 수호신들을 보내서 지구를 보호하는 중이다. 그래서 지구를 집 삼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잘나서 세상을 사는 것 같아도 순간이라도 수호신들의 역할이 멈추면 순식간에 지구는 박살나고 사람들의 운명도 끝장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나도 수호신장의 지구 위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 큰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한숨 끝에 내가 수호신장을 향해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지구의 자생력 상실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들었지만 지구를 수호하는 수호신장님께 직접 들으니 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입니다. 지구 인류들은 스스로 잘나서 각자의 삶을 가꾸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걸로 착각하지만 이렇게 보이지 않게 숨어서 지구의 위기를 지켜주고 있는 수호신들의 존재는 까마득히 모른 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수호신들께서는 지구가 위기에 처한 줄도 모르고 자멸의 길을 걷고 있는 지구 인류들을 바라볼 때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수호신장은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를 했다.
"사나운 폭풍이 휘몰아치는 성난 파도의 바다에서 침몰 직전의 난파선을 타고 가면서도 서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화합하지 못하면서 이기적 욕망에 불타 있는 선원들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지구의 위기 사항이 침몰 직전의 난파선과 같다는 의미시군요?"
“지구의 운명은 침몰직전의 난파선이다. 지구 인류들은 그 난파선을 타고 가는 선원들이다. 선원들이 합심해서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난파선을 운행해도 희망이 보일까말까 하는 위기상태에서 이기적 욕망은 자멸을 자초하는 어리석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구 인류들은 이제 모두 이기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화합의 대단원을 마련해야 한다. 지구는 지구 인류들에게 있어서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생존의 보금자리다. 그 생존의 보금자리를 잃었을 때 지구 인류들이 우주에서 환영받을 또 다른 보금자리를 구하는 건 불가하다. 지구 인류들이 끝까지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지구의 자생력을 위협할 때 지구를 지키는 수호
신들은 지구의 지구력을 포기할 것이다. 수호신들이 지구의 자구력을 포기할 때 지구의 운명은 끝이 난다. 지구의 수호신들이 지구를 포기하고 천명궁에서 철수하면 그날이 바로 지구의 마지막 운명의 날이다. 다만 수호신들은 천명이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수호신들이 하늘의 명으로 움직인다는 말씀이군요?"
“지구의 위기는 땅의 위기로 끝나지 않고 하늘의 위기와도 맞물려 있다. 지구는 하늘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디딤돌과 다르지 않다. 지구의 디딤돌이 무너지면 하늘이 발 딛을 자리가 없어진다. 그래서 하늘은 끝까지 지구를 포기하지 못한다. 하늘은 지금 우주를 지키던 다른 수호신까지 지구로 불러들여 비상시국을 보전한다. 수호신들의 지구에 대한 사수는 천명(天命)이다. 우주의 아무리 큰 수호신이라도 천명을 거역하지는 못한다. 지구는 지금 바야흐로 천명의 시대를 맞이했다."
"수호 신장님, 천명 시대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지구의 운명은 지구 스스로의 자생력에 의존하지 않고 하늘의 명에 의존하여 그 운명을 보존한다는 의미다."
"자생력을 상실한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류들의 운명도 이제는 하늘의 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시군요?"
“천명의 시대에는 어떤 목숨이라도 하늘의 순리를 따르면 살고 하늘의 순리에 역행하면 죽는다. 이는 곧 천명시대 생존의 유일법칙이다."
"천명시대에 사람들이 실천할 으뜸 목표를 가르쳐 주십시오."
“소통이다. 곧 통해야 살 수 있다. 하늘과 땅이 소통하고 사람과 신명들이 소통하고 인명과 인명들이 소통해야 천명시대에 살 수 있다. 하늘과 땅이 죽고 사람과 신명들이 죽는 이유가 불통에서 비롯된다.
인간들의 극에 달한 욕심으로 지구가 난도질되어 자생력을 상실한 이유도 불통에서 비롯되었다. 불통의 막힌 것이 뚫어지지 않으면 하늘도 땅도 신명도 사람도 살아남지 못한다. 이제 천명소통이 하늘과 땅을 살리는 유일한 수단이다."
"수호신장님, 천명소통은 지금까지 지구에서 사람의 입으로 전해진 역사가 없습니다. 그동안 하늘과 땅의 불통으로 하늘과 땅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지구의 천명시대를 맞이하여 그 천명소통의 주관자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천명소통의 주관자는 지구의 미래에 나타날 큰 빛 천주이니, 곧 공중권세를 잡은 멸주에 대항하여 승전보를 준비하는 마지막 전쟁의 대장이다."
"하늘과 땅의 불통으로 하늘이 죽어가고 땅이 죽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장차 천주의 큰 빛이 나타나 불통을 소통시켜 천명소통을 이룬다니 듣기만 해도 답답한 가슴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입니다. 천명소통으로 하늘과 땅이 완전하게 소생하는 그날까지 지구를 지키는 수호신들의 역할이 막대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제가 지구 인류를 대신하여 수호신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수호신들은 백마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천명소통의 종결자가 해원이다. 원혼들의 해원이 아니면 하늘과 땅의 소통은 불가하다. 원혼들의 해원이 아니면 신명과 인명의 소통이 불가하고 인명과 인명의 소통이 불가하다. 원혼의 해악으로 인하여 우주와 세상이 모두 불통이다. 장차 백마선은 천명의 이름으로 해원맞이 풍속도를 새로 그릴 것이다. 원혼들을 해원시켜 신선으로 봉안되면 비로소 불통의 악순환이 천지간에 사라지리라."
"원혼들의 원과 한이 구천에 쌓여 지구 인류들의 혼란한 삶이 지속되고 있다고 제가 믿고 있습니다.”
"구천에 쌓인 원혼들의 원과 한이 다 풀리면 비로소 하늘과 땅의 불통이 뚫리고 불통이 뚫리면 풀리지 않던 일들이 모두 풀릴 것이다. 지구의 불운도 풀리고 사람들의 재앙도 풀리고 천지간의 고단한 난제들이 다 풀릴 것이다."
이런 대화를 마치고 수호신장과 작별을 고한 후 우리 셋은 초도로머신을 타고 이동하며 지구의 곳곳에서 지구수호에 여념이 없는 땅 지킴이 수호신들을 만나보았다.
산마다 물마다 그리고 지구의 중요한 장소마다 수호신들이 지키면서 지구의 허약한 생명력을 붙들고 있는 모습들이 처연하게 느껴졌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지구의 4방위에서 흔들리는 땅 자락을 붙들고 서 있는 수호신들의 애쓰는 모습이었다. 땅을 지키는 수호신들 중에서 가장 큰 사명을 맡고 있는 대수호신(大守護神)이었다
대수호신은 지구의 서쪽. 동쪽. 남쪽. 북쪽을 각각 지키고 있었고, 그 중에서 서쪽 땅을 지키는 대수호신의 역할이 가장 컸다. 다음이 동쪽 땅을 지키는 대수호신, 남쪽 땅을 지키는 대수호신, 북쪽 땅을 지키는 대수호신의 순서로 역할이 컸다.
서쪽 땅을 지키는 대수호신을 찾아가니 수호신들이 분주하게 떠들고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수호신 밑에는 많은 숫자의 소수호신들이 딸려 있었다. 서쪽 땅의 산마다 물마다 도시마다 큰 건물마다 소수호신들이 지키고 있었고, 소수호신들은 모두 대수호신의 지시를 받으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 잠시도 소홀함이 없이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땅이 무너진다! 산이 무너진다! 도시가 내려앉는다! 정신들 바짝 차려라."
대수호신은 소수호신들을 향해 쉬지 않고 이렇게 외치며 독려했다. 땅이 이쪽으로 기울면 수호신들이 이쪽으로 움직이며 붙들고 땅이 저쪽으로 기울면 수호신들이 저쪽으로 움직이며 붙들었다. 땅이 움직일 때 수호신들이 조금만 소홀히 해도 땅이 출렁거렸다.
"수호신들이 조금만 방심해도 땅이 출렁거리고, 땅이 조금만 출렁거려도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하거나 해일이 생긴다. 수호신들의 역할이 아니라면 땅이 종이조각처럼 갈라지고 쪼개져서 도시도 내려앉고 산도 주저앉을 것이다."
수호신들이 무너지는 땅을 붙들고 지키느라 여념이 없는 분주한 모습을 바라보며 쇼시우시가 설명해 준 말이었다.
쇼시우시의 설명을 듣고 내가 물었다.
“지구는 생각보다 중증의 노환에 시달리고 있군요?"
쇼시우시는 애련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지구는 샤르별보다 젊은 별이다. 그런데 벌써 늙고 병들어 마지막 운명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으니 바라보는 마음이 애처롭구나.”
“지구가 앓고 있는 중증의 노환은 생각보다 심한가 보군요?"
“골격도 망가지고 근육도 모두 찢겨나간 지구의 처지로 말하자면 늙고 병든 중환자의 신세와 다르지 않단다. 사람의 몸이 기생충에 감염되면 건강을 잃고 중병에 걸리듯 지구도 악질 기생충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건강을 잃어가고 있단다. 지구에서 기생하고 있는 악질 기생충이 다름 아닌 사람이란 이름의 기생충들이란다."
쇼시우시의 설명을 들어보니 사람 기생충들의 욕심으로 찢기고 망가져 간 지구의 가련한 모습이 그려지는 듯 했다.
쇼시우시의 설명을 들으면서 초도로 영상으로 지구의 실체를 살펴보았다. 초도로 영상장치는 보이지 않는 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천리안이었다. 초도로 천리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현실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현상들이 눈에 띄고, 이차원의 파장으로 형성된 보이지 않는 세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초도로 천리안으로 지구에 펼쳐진 세상을 바라보니 중증 노환에 시달리는 지구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사람의 몸으로 따지면 지구는 지금 심각한 골다공증에 걸려 있고 자율신경 실조증에 걸려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구는 많이 쇠약해지고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의 땅 속은 많이 비어 있고 지구의 땅거죽은 사방으로 거북이 등처럼 균열이 생겨 있었다. 비어 있고 균열 생긴 땅거죽 위에는 큰 도시가 얹혀 있고 하늘을 찌르는 빌딩들이 세워져 있었다.
위태롭게 느껴지는 서쪽 땅의 모습이었다.
땅 속이 빈 이유는 땅 속에 저장되어 있는 기름과 지하수와 지하자원들을 사람들이 고갈시킨 결과였다. 초도로 천리안으로 지구 땅 속을 들여다보니 텅텅 빈 동공현상들이 수 없이 발견되고, 동공 위에 덮여있는 땅거죽은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다.
지구의 땅거죽은 마치 뜨거운 용암이 출렁거리는 마그마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과 같았고, 마그마가 출렁거릴 때마다 마그마 위에 떠 있는 암반이 출렁거리고 그 출렁거리는 암반의 충격을 완충시켜주는 기능을 땅속에 고여 있는 유전이나 지하수가 해내고 있었다. 마그마의 작용으로 출렁거리는 지표암반의 충격에 의해서 땅이 흔들리고 해일이 일어나며 그러한 현상을 사람들은 지진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땅 속의 유전이나 지하수를 고갈시킨 바람에 땅속의 큰 동공들이 발생하고, 땅 흔들림의 완충작용이 사라져 자칫 큰 지진이나 땅 꺼짐의 재난이 일어날 지구의 재앙이 예고되고 있었다.
서쪽 큰 도시의 땅 속에서 크고 작은 동공들이 초도로 천리안의 눈에 목격되었다. 그러한 지하동공 현상들을 초도로 천리안으로 관찰하며 쇼시우시가 말했다.
“사람들은 멋도 모르고 땅 속이 빈 지상에다 큰 건물들을 세우고 많은 집들을 짓는다. 큰 건물이 세워진 땅 속은 비어 있고 주변의 땅거죽은 균열이 발생하고 있으며 언제 갈라진 땅 속으로 큰 건물이 묻힐지 모른다."
또 의미 있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도시의 지반은 모두 단단한 콘크리트 돌로 덮이고 콘크리트 돌로 덮인 땅속으로는 더 이상 빗물이 스며들지 못해서 부족한 지하수가 채워지지 않는다. 도시 사람들은 땅 속의 지하수를 모두 뽑아서 고갈시키고 지하수가 고갈되어 생긴 동공 위에 얹힌 지반들이 균열되면서 붕괴의 조짐들이 쉬지 않고 발생한다. 그래서 도시는 항상 붕괴될 위기를 맞고 있다. 만약에 땅을 지키는 수호신들의 노력이 아니라면 도시와 집들은 이미 갈라지고 붕괴된 지하 땅 속에 묻혀 유령의 신세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쇼시우시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무너지는 지구를 붙들기 위해 사방에서 지구수호의 대활약을 멈추지 않고 있는 수호신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수호신들은 지하로 무너지려는 지반을 붙들고 있고 어떤 수호신들은 위태로운 건물을 붙들고 있으며 어떤 수호신들은 균열 생긴 지반을 수리하느라 분주하기도 했다.
수호신들이 집중적으로 지키는 땅이 있었고 소홀히 하는 땅도 있었다. 소홀히 하는 땅에서는 크고 작은 재난들이 일어나고, 집중적으로 지키는 땅에서는 세상이 난리법석을 떨 만큼 큰 재앙이 다가와도 꿈쩍하지 않았다. 꼭 지켜내야 할 땅은 수호신들이 모든 노력을 다 해서 붙들고 있었다.
<수호신들의 대활약이 아니라면 지구의 위기는 불을 보듯 뻔하구나!>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대수호신을 찾아가 노고를 위로했다.
“지구의 위기를 지키느라 여념이 없는 수호신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감개무량한 심정을 감출 수 없습니다. 수호신들이 천명을 받들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하지만, 종잇장처럼 갈라지고 찢겨진 땅거죽을 수호신들이 붙들고 꿰매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풍전등화 같은 지구의 위기를 누가 막아주겠습니까? 잠시도 소홀함이 없이 지구를 붙들고 지켜주는 수호신들께 삼가 무한 감사를 올리는 바입니다.”
서쪽 땅 대수호신은 내 말을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대 이름은 누구라 하는가?"
"저는 백마선이라 합니다."
“백마선의 이름을 우리 수호신들이 알고 있다.”
“제 이름을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차 지구에서 천주의 활약이 시작되고 천명소통의 시대가 열리면 백마선의 역할이 크리라."
“제 역할이 아무리 크다 해도 수호신들의 활약보다 크다 하겠습니까?"
“어차피 우리 수호신들의 활약이란 천명의 지시에 따를 뿐이다. 우주에서 부르면 우주를 찾아가고, 별에서 부르면 별을 찾아가고, 산천 대천 어떤 세상에서라도 위기가 닥치면 찾아가 수호의 활약을 펼치는 일이 우리들의 사명이다."
"지구를 지키는 수호신들은 이미 다른 우주에서도 그러한 활약을 펼친 경험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천상계와 우주를 지키던 수호신들이 지금은 모두 지구를 찾아와 천명의 지시대로 움직인다."
"초도로 천리안으로 지구를 바라보니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찢겨진 상처가 온천지에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지구의 상처는 다른 누구의 공격이 아닌 지구의 피와 살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 기생충들의 욕심 때문에 벌어진 재난들이라고 생각할 때 더욱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입니다."
"백마선의 말이 옳다. 지구는 다른 누구의 공격을 받아 지구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 있지 않고 사람 기생충들의 공격으로 큰 상처를 입고 노화의 중증에 시달린다. 우주에서 아무리 무서운 기생충이 있어도 사람의 기생충보다 무서운 적은 없을 것이다.”
“사람을 칭하기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데, 어째서 그런 만물의 영장이 지구를 살리는 일에 앞장서지 않고 지구를 죽이는 기생충으로
변질되어 있을까요?"
“끝없는 욕심 때문이지. 욕심 때문에 아름다운 영혼들이 변질되고 사람의 거룩한 모습을 변장하여 짐승의 거죽을 쓰고 사는 것이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 기생충들의 모습이지."
"다른 우주의 별에서도 지구처럼 욕심꾸러기 사람 기생충들이 서식하는 세상이 존재합니까?"
“물론 존재하고말고... 우주에 떠 있는 별들 중에는 사람의 욕심으로 무너지고 망해서 지금은 유령의 별로 변한 세상도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단다."
"저도 사실은 우주를 여행하면서 과거에 존재했던 생명이 모두 사라진 비운의 세상을 방문한 경험이 있어요."
"그만큼 사람 기생충의 힘은 아무리 아름다운 지상낙원이라도 사망의 그림자가 우글거리는 절망의 땅으로 초토화 시키는 일이 가능하단다. 그건 마치 누에가 뽕잎을 갉먹는 뽕밭의 현상과 다르지 않단다. 누에 입에 갉아 먹히는 뽕잎의 양은 작게 느껴지지만 많은 누에들이 한꺼번에 뽕잎을 먹기 시작하면 금세 넓은 뽕밭이라도 푸른 잎이 다사라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는 이치란다. 누에는 뽕잎을 먹고 비단실이라도 남겨 두지만 사람의 기생충들은 지구를 갉아먹고 절망만 남겨 두고 떠난단다."
“사람 기생충들의 욕심이 지구의 운명을 거덜낼 것이란 말씀이군요?"
“그렇다. 지구는 우주의 다른 적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망하지 않고, 사람 기생충들의 무자비한 욕심 때문에 난도질되어 끝내 공중분해의 위기를 자초할 것이다."
“초도로 천리안으로 땅 속을 들여다보니 여기저기 사방 곳곳에 기름과 지하수를 빼 낸 동공들이 뻥뻥 뚫려 있고, 그 위에서 사람들이 집을 짓고 도시를 만들어 살고 있는 장면들도 수없이 목격되었어요. 도시로 덮여 있는 지구의 땅거죽은 사방으로 균열이 지어 있고, 언제 허약해진 지반이 무너져 도시와 집들이 땅 속에 묻혀 버릴지 걱정이 큽니다. 다행히도 천명을 받은 수호신들의 활약으로 무너져야 할 지구의 허술한 지반들이 아직은 큰 재난을 겪고 있지는 않지만 언제 천명이 거두어져 수호신들의 활약이 멈추게 될지 염려스럽기만 합니다."
"지구에서 하늘의 뜻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지구를 지키는 천명은 거두어지지 않을 것이다. 천명이 거두어지지 않는 한 수호신들의 땅지킴이 활약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백마선은 다른 염려 말고 앞으로 지구에서 펼쳐질 천명소통의 시대를 잘 준비하여라."
"수호신들이 큰 활약으로 지구를 지키고 있지만 지구의 여기저기서 간헐적으로 지진이 생기기도 하고 해일이 일어나 큰 재난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려주십시오."
"천명을 받은 수호신들의 활약이 아무리 크더라도 지구의 온천지를 다 붙들고 지켜내지는 못한다. 수호신들이 돌아보지 못한 자리에는 어쩔 수 없이 지진도 생기고 해일도 일어난다. 그러므로 수호신이 지켜주는 땅이 안전하고 축복되다. 장차 처처에서 땅이 흔들리고 화산이 터지며 지진이 나서 땅이 무너지더라도 수호신이 머물고 지켜주는 자리는 안전할 것이다."
"수호신들이 땅을 지키는 자리는 천명에 의해서 정해져 있다는 말씀이군요?"
"천명에 의해서 수호신들이 지켜야 할 땅이 있고 물이 있고 산이 있으며 사람이 있다. 수호신이 지켜주면 어떤 재앙으로도 털끝 하나 상하지 않게 보호를 받는다.”
"사람들도 사람마다 지켜주는 수호신이 정해져 있다는 말씀이군요?"
"아무 사람이나 수호신이 지키지 않으며 천명으로 정해져 있는 사람을 수호신이 지킨다. 그래서 수호신이 떠난 사람은 언제 불상사를 만나 위기에 처할지 장담하지 못한다.”
"수호신의 지킴을 받은 사람들은 그 대상이 누구인가요?"
"장차 쓰임 받을 재목들이 수호신의 지킴을 받는다. 특히 천명소통 시대에 쓰임 받을 인명들은 더욱 큰 수호신을 붙여 지킴을 받을 것이다."
“천명소통시대의 주인을 대수호신께서 알고 계시나요?"
"천명소통시대의 주인은 큰 빛으로 출현하는 천주가 아니겠느냐?"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천명소통의 시대를 우리 수호신들도 손꼽아 기다린다."“천명소통의 시대에 수호신들의 활약은 어찌 됩니까?"
“천명소통의 날에는 온 세상 사람들이 신선놀음을 즐기며 수호신들은 사람들과 더불어 신인조화를 이루고 신선놀음 잔치를 함께 즐길 것이다. 신선놀음을 즐기는 천명소통의 날에는 만신창이 상처를 입고 있는 지구도 점점 회복되고 무거운 몸이 가벼워져 기사회생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지구가 기사회생하고 모든 상처가 아물어져 위기가 사라지면 수호신들의 역할은 다른 역할로 바뀔 것이다.”
서쪽 땅 대수호신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한 사자가 급하게 달려와서 보고했다.
"수호신님, 균지징입니다!"
균열 징이란 땅이 내려앉으며 갈라지려는 징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대수호신은 사자가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수호신이 머물고 있는 장소는 서쪽 땅의 모든 방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장소였다. 대수호신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과연 땅이 갈라지는 파열징후들이 나타나고 여기저기서 '쩍! 쩍!' 하는 파동이 감지되어 왔다.
균열지징이 나타나고 있는 장소의 지하를 초도로 천리안으로 바라보니 커다란 유전이 고여 있던 장소로 지금은 거대한 동공이 형성되어 있는 지반이었다.
대 수호신은 급하게 힘이 센 장수 수호신들을 호출하고 균열 지징의 장소로 급파했다. 장수 수호신들이 거대한 몸집을 비호처럼 움직이며 달려가더니 균열지징의 땅 자락을 단단히 붙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세 균열지징이 멈추고 '쩍! 쩍!' 거리던 파열음의 파동도 들리지 않았다.
•균열 지징이 멈추자 대 수호신은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수호신들의 활약이 얼마나 중요하고 크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한숨을 돌리고 겨우 평정심을 되찾은 대수호신을 향해 내가 질문했다.
“조금 전 균열 지징을 멈추지 못했다면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습니까?"
"균열 지징이란 지진재앙의 징후이다. 곧 지하에서 꿇고 있는 마그마 위에서 출렁거리는 암반의 충동이 지반에 전해져서 나타나는 징후로써, 그러한 징후를 멈추지 않으면 대지진의 재앙이 발생하여 도시와 가옥들이 내려앉고 산이 무너지며 땅이 갈라진다. 균열 지징은 빈번하게 발생하며 그때마다 장수 수호신들을 급파하여 지진의 재앙을 차단한다.”
"수호신들의 활약이 멈추지 않고 있지만 지구상에서는 여전히 크고 작은 지진과 해일은 발생하고 화산은 터지며 때때로 큰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이유가 뭘까요?"
“지구의 자연적인 현상을 모두 수호신들이 관여하지는 않는다. 지진이나 해일이나 화산폭발은 지구의 자연적인 현상이다. 다만 천명으로 자연의 재앙을 막아내야 할 장소는 정해져 있다. 천명으로 수호신들이 지켜야 할 땅은 지키고 멸주의 영역까지 천명이 미치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지구에는 지진과 해일과 화산 폭발을 비롯해서 천재지변의 재앙은 끝없이 밀려오게 될까요?"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넘치며 도시와 가옥들이 땅 속에 묻히거나 부서지는 재앙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때 천명으로 수호신의 지킴 받은 땅은 안전하고 천명이 미치지 못하는 땅은 재앙을 피할 방법이 없으리라."
“천명으로 보호를 받는 땅의 이름을 알려주십시오."
“천명소통의 날을 대비하여 의로운 싹을 보호한다. 의로운 싹이 자라는 단 한 명의 고운 영혼이 사는 땅이라도 천명의 눈길은 방심하지 않는다. 고운 영혼이 머무는 땅에는 항상 수호신이 활약하며 감시의 눈길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수호신의 활약이 멈추었다면 지구에서 안전한 땅은 없으리라. 이미 초토화되어 목숨을 부지할 고운 영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리라."
“의로운 싹인 고운 영혼들을 지키기 위해 수호신들이 천명을 받들어 파죽지열의 지구를 보호하고 균열지징의 땅들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말씀이군요?"
“의로운 싹이 소멸되면 지구의 희망은 사라진다. 장차 천주의 큰 빛이 세상에 임할 명분도 사라진다. 큰 빛 천주가 세상에 출현하는 목적은 지구에서 의의 나라 지상낙원을 건설하기 위함이며, 그때 의로운 싹들이 빛 담금질을 받아서 지상낙원의 기둥으로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지상낙원이 세워지는 그날까지 수호신들의 활약은 멈추지 않고 천재지변과 자연의 대재앙을 온 몸으로 막아낼 것이다. 지구수호는 천명이다. 장차 천명지인(天命之印)의 낙인(烙印)을 받은 자가 천재지변의 날에 보호를 받으리라."
"특히 서쪽 땅에서 수호신들의 활약이 큽니다. 그 이유를 알려주십시오."
“서쪽 땅은 일찍부터 문물이 발달해 온 덕택으로 물자의 소비가 창궐하여 사람들의 욕심은 목구멍에 찰 정도에 이르렀다. 그래서 땅 속의 유전과 지하수가 바닥나고 지하자원이 고갈된 상태로 땅 속은 텅텅빈 동공으로 변해가며 그 위에 거대한 도시와 집들이 뒤덮고 있다. 서쪽 땅은 지구에서 가장 빈약한 공간이며 수호신들의 활약이 멈추면 균열지징의 재앙으로 땅도 내려앉고 도시도 내려앉으며 문물이 소실된다. 서쪽이 무너지면 지구의 동쪽도 남쪽도 모두 무너진다. 서쪽이 망하면 동쪽이 망하고 지구가 망한다. 지구의 지상낙원은 장차 동쪽에서 이뤄지지만 서쪽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서쪽 땅에서 수호신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는 지구수호의 천명이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서쪽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서쪽을 지켜서 동쪽을 보호한다. 장차 천명소통의 대역사는 동쪽에서 이뤄진다. 서쪽이 무너지면 동쪽의 천명소통은 빛을 보지 못한다. 이러한 이치가 곧 서이동립(西以東立)의 천명비결이다.”
“서쪽의 힘으로 동쪽을 세움이 천명의 마지막 비결이란 말씀이군요?"
"동쪽에서 이룬 거사가 서쪽의 힘을 빌리지 않고 세상으로 퍼져가지 못한다."
"장차 지구에서 천주의 큰 빛이 출현하는 땅은 동쪽입니까? 서쪽입니까?"
"동쪽에서 출현하여 서쪽으로 퍼지리라. 해가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기울듯, 천주의 큰 빛도 동쪽에서 출현하여 서쪽으로 퍼지며 끝내 천명소통의 거사를 천지에 세우리라."
서쪽 땅의 수호신과 이런 대화를 마치고 우리 셋은 다시 동쪽 땅으로 이동해서 수호신들의 활약을 지켜보았다.
동쪽 땅의 수호신들도 서쪽과 마찬가지로 지구 지킴의 대활약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동쪽에서도 수호신의 활약이 두드러진 장소가 있고 그렇지 못한 장소가 있었다.
수호신들의 활약이 아주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땅도 있었다.
수호신들의 대활약이 집중된 장소에 동쪽 땅 대 수호신이 진을 치고 머무르며 소 수호신들의 활약을 독려하고 있었다. 소 수호신들은 동쪽 땅의 천명을 받은 산과 물과 도시와 마을들을 혼신의 힘을 다해 지키며 잠시의 소홀함도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천명이다! 천명이다! 물샐틈없는 수호로 균열지징을 막아라. 이곳은 천주 광명이 출현할 문이요 의로운 싹들이 뿌리내릴 옥토이니 안전에 만전을 기하라!"
대 수호신이 진을 치고 있는 주변에는 곤륜산 동쪽 지맥이 뻗어 온 끝자락이었다. 곤륜산 지맥은 선경의 천강을 건너 지구 동토의 속경에 이르고 있었다. 곤륜산의 지맥들은 여러 갈래로 나뉘고 있었고 지맥들은 다리처럼 천강에 걸쳐진 모습으로 속경(俗境)에 다다르고 있었다.
<천주의 큰 빛이 장차 세상에 출현할 때 곤륜산 동쪽 지맥을 통과한다.>
동쪽 대 수호신이 들려준 말이었다.
동쪽 대 수호신이 진지를 틀고 수호신들의 활약을 독려하는 장소가 바로 그 곤륜산 동쪽 지맥 끝자락이었다. 동쪽 대 수호신의 역할은 지구 속경의 동토 수호에도 있지만 장차 천주의 길을 예비하는 중책도 맡고 있었다. 곤륜산의 선경은 현실의 세상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초도로 천리안으로 바라보는 보이지 않는 파장의 세상에서는 확연히 드러났다.
곤륜산의 정상은 하늘에 닿아있고 하늘의 천신들은 쉴 새 없이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며 무언가의 역할을 맡아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 수호신의 진지가 마련되어 있는 곤륜산 동쪽 끝자락을 찾아가니 서쪽 땅에서 볼 수 없던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었다. 곤륜산 정상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들이 대 수호신과 무언가를 열심히 의논하고 있었고, 무언가의 큰일을 예비하는 부산한 움직임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수호신들을 독려하여 땅을 지키고 한편으로는 곤륜산에서 내려온 천신들과 거사를 의논하느라 여념이 없는 동쪽 대 수호신을 찾아가 내가 말을 걸었다.
"곤륜산은 현실의 세계에서는 눈에 띄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보이지 않는 파장으로 감춰진 채로 천신들이 오르내리는 통로가 되고 있을 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하늘에서 곤륜산을 타고 내려온 천신들이 대수호신님과 무언가를 의논하는 모습들이 눈에 띄는데 그 내용이 무언지 궁금합니다.”
"장차 천주 대 광명의 기운이 곤륜산을 타고 동쪽에 출현한다. 하늘의 천신들과 그 길을 예비하는 중이다."
동쪽 대수호신은 분주한 상황에서도 겸손하고 친절한 말투로 내게 대답했다.
"천주 대광명을 예비하는 천신들의 움직임이 부산한 모습을 보자니그 날자가 임박해 온다는 증거군요?"
“천주 대광명의 기운을 담을 육신은 이미 땅에 내려와 운행하나, 그 몸 속에 담길 천신의 기운은 아직 곤륜산 정상에 머물며 천지사를 숙의하는 중이다. 머지않은 날에 천주 대광명의 기운이 곤륜산 자락을 타고 내려와 그 성체 속에 임하여 인천주(天主)의 삶을 시작할 것이다."
“곤륜산은 현실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지만 천신이 오르내리는 성산이요 장차 천주 대광명의 기운이 임할 영산이란 사실을 처음 깨닫게 되었습니다."
"곤륜산 산맥을 따라 이미 하늘의 큰 천신들이 동서의 땅에 강림했으니, 그 중에는 천지지존의 삼왕신도 포함되어 있다.”
"천지지존 삼왕신들께서도 곤륜산으로 임했다니 그 성산의 위엄을 다시 한 번 크게 깨닫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장차 곤륜산 자락에서 의로운 싹이 많이 출현하여 천명소통의 거사를 주동하는 기운으로 작용할 것이다."
"곤륜산 자락에서 의로운 싹이 많이 출현하는 까닭이 무얼까요?"
"곤륜산에는 천기가 태동하는 원천이 있고 천기의 원천에서 의로운 씨앗이 발아된다. 의로운 싹의 열매가 고운 영혼이며 고운 영혼의 영접으로 천주 대광명의 실세가 세상에 빛을 발한다. 그래서 동쪽 땅에 하늘의 거사를 이루는 천명소통의 발상지가 감춰져 있다."
동쪽 대수호신과 이런 대화를 나누고 우리 셋은 곤륜산을 시찰하기 위해서 초도로머신에 올랐다.
곤륜산은 보이지 않는 기운 속에 솟아 있는 천지명산이었다. 곤류산에는 천신과 신선들이 어울려서 세월의 흐름을 잊고 있었고, 온갖 불로초가 녹음방초처럼 지천에 널려서 자라고 있었다.
따 먹는 열매가 모두 불로초의 열매요. 마시는 술이 모두 불로주며, 파릇파릇 돋아난 잎들이 모두 불로초의 잎이었다.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곤륜산에서 살고 있는 신선들은 불로초의 열매나 잎을 따 먹으며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들과 어울려 불로불사의 신으로 곤륜산의 터줏대감노릇을 하고 있었다.
초도로머신으로 곤륜산에 도착하자 곤륜산의 산주(山)인 곤륜산신이 마중을 나왔다. 곤륜산신은 이미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백마선, 어서 오라! 곤륜산의 넋이 그 어미의 품을 찾아왔으니 산주인 내가 반기지 않을 수 없구나!"
나를 반긴 곤륜산신이 내게 전해주는 말이었다.
곤륜산신이 전해주는 뜻밖의 말을 듣고 내가 반문했다.
"제 넋의 기운이 곤륜산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씀인가요?"
"천족의 영들은 하늘의 기운으로 태동하여 곤륜산을 따라 땅으로 내려와 곤륜산의 넋과 합신(合身)을 이룬다. 곧 백마선의 혈통은 천족의 조상이니 그 조상의 이름을 단이요 환웅이라 한다."
“제 몸 속에 천손의 혈통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혈통을 따라 유구하게 내려오는 넋의 흔적이 곤륜산에 머무르고 있을 줄은 상상을 못했습니다."
“곤륜산은 우주의 성지요 창조의 천모가 다스리는 천역(天域)이다. 땅에 사는 사람들은 창조의 아버지는 입에 올리면서 어머니는 입에 올리지 않는다. 천하의 이치란 아비만으로 어미 없이 태어나는 자식이 없고, 어미만으로 아비 없이 태어나는 자식도 없다. 천하의 어떤 종자라도 음양의 조화와 부모의 도움으로 태어나지 않는 씨앗은 없다. 곧 우주만물을 창조한 아버지가 있으면 어머니가 있으니, 그 천모(母)의 기운이 곤륜산에 머문다."
"우주만물 어머니의 이름이 천모인가요?"
"우주에서 이르기를 창조의 어머니를 천모라 하고 우주의 어미들이 부르기를 모중모라 한다. 어느 이름으로 부르든 우주만물 어머니의 이름은 맞다."
“제가 근원천계를 방문했을 때 천황후 모중모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이름과 동일한 성존(聖尊)인가요?"
"근원천계에서 부르는 모중모와 곤륜산에서 부르는 모왕모는 같은 이름이다. 그 성존이 바로 창조의 어머니 천모이다. 천부는 창조의 아버지로서 씨앗을 뿌리고 천모는 창조의 어머니로서 씨앗을 기르니, 이를 우주에서 이르기를 태극음양이치라 한다."
"우주 어머니의 기운이 곤륜산에서 흐르고 있다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곤륜산 우주 어머니의 기운으로 지상의 만물이 성장하고 번식한다. 우주 어머니의 기운이 곧 자애와 사랑의 기운이다."
“어쩐지 곤륜산에 흐르는 기운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안식과 어머니의 품속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무튼 어머니의 산 곤륜산을 찾아 준 백마선을 환영한다. 백마선과 함께 방문한 일행에게도 곤륜산의 산주로서 환영의 인사를 보낸다."
"곤륜산신께서 저 같은 속인을 친히 마중 나오셔서 반겨주시니 뭐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곤륜산에서는 신인 구분 없이 귀한 신분이다. 곤륜산에는 터줏대감신선들과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들이 함께 머무르며 신인친분(神人親分)을 과시하니 뉘 앞이라 하여 속인으로 기죽을 일은 아니다. 마음 편히 어머니의 산에서 휴식을 취하며 선경의 구경을 잘하여라.”
곤륜산신과 내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쇼시우시와 샤르비네는 다른 구경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늘까지 맞닿은 곤륜산맥은 위세 좋게 서쪽으로 서쪽으로 뻗어가서 서쪽 극경에 이르고, 서쪽의 문물신들은 곤륜산맥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며 동서교류의 장으로 삼고 있었다. 우주의 성역인 곤륜산은 곧 하늘과 땅, 동과 서의 신명들이 교류를 나누면서 천지사를 논하는 통로의 장으로 삼고 있었다.
하늘의 천명은 반드시 곤륜산 통천각(通天閣)을 통해서 내려지고 있었다. 지구를 지키는 수호신들은 천명을 받기 위해 항상 곤륜산 통천각을 찾아왔다. 통천각을 찾아오는 수호신들은 땅을 지키는 수호신과 물을 지키는 수호신과 산을 지키는 수호신과 사람의 목숨과 짐승의 목숨을 지키는 수호신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통천각은 곤륜산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였고 곤륜산신이 머물면서 천명을 받아 수호신들에게 전달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곧 곤륜산신은 천명을 받아 수호신들에게 전달하는 대리자였다. 때로는 수호신들이 통천각에 모여서 천명을 받드는 천지사를 의논할 때도 있었다.
통천각에 모인 수호신들이 천지사를 논하는 이야기를 엿들었더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천주 대광명의 길을 잘 예비하시오. 특히 천주의 빛 담금질에 쓰일 고운 영혼들의 수호에 만전을 기하시오. 장차 다가올 천명소통의 날에는 고운 영혼 하나가 우주 천억 개의 별보다 소중하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고운 영혼들의 숫자는 우리 수호신들이 모두 세고 있으며 아무리 큰 재앙이 다가와도 털끝 하나 상하지 않도록 고운 영혼들을 보호하며 지키고 있습니다."
“꼭 그래야 하오. 고운 영혼들이 천주로부터 빛 담금질을 받을 때까지 털끝 하나 상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천주 출현의 그날에 기쁜 선물이 되도록 다 함께 충성을 다해야 하오."
"저희 수호신들은 고운 영혼이 머무는 땅과 고운 영혼이 머무는 집과 고운 영혼이 왕래하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고운 영혼의 땅이 갈라지지 않도록 지키며, 고운 영혼의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며, 고운 영혼의 길이 막히지 않도록 지키고 있습니다."
"고운 영혼의 상실은 천주의 아픔이요. 천주는 고운 영혼 하나와 우주를 바꾸지 않소. 천주가 장차 가시밭길을 자청해서 걷는 것은 고운 영혼들의 희망 때문이오. 고운 영혼의 상실은 천주가 품고 있는 희망의 상실이오. 천주의 꿈과 희망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고운 영혼들을 잘 보살피고 눈동자처럼 지켜주기를 소홀히 마시오."
“저희 수호신들은 천주의 길을 잘 예비하며 천주의 뜻을 잘 헤아리며 저희 수호신들의 활약은 땅끝과 땅 속 깊은 곳과 물 속 깊은 곳까지 이르러 천명소통의 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날에 천주의 기쁨은 고운 영혼들이니 꽃처럼 보석처럼 온전히 간직하여 하늘에 선물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처럼 곤륜산 통천각에서 들려오는 수호신들의 천지사 토론을 들어보니 오로지 천명소통의 날을 맞이하는 예비에 대한 관건이 중요쟁점이었다. 그 중에서도 천주의 빛 담금질에 쓰일 고운 영혼들의 보호와 보살핌에 수호신들의 활약이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었다.
곤륜산의 또 다른 명소 중에 천자각(天閣)이 있었다. 천자각(天子閣)은 곤륜산의 경치가 가장 뛰어난 장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앞으로 깊고 길게 뚫려 있는 계곡은 천 길 낭떠러지요, 계곡 사이로는 천연(天淵)을 원천으로 하는 천강이 유유히 흐르고, 천강은 곤륜산의 천기상생을 양육하는 젖줄이 되고 있었다.
우주의 성소이며 천상계에서도 빼어난 경치로 소문난 천자각에서는 천상계의 천자들이 자주 만나 천지대사를 숙의했다. 천자각에서 회동을 하는 천자들의 이름은 천황천자, 옥황천자, 자황천자, 천주의 사신(四神)이었다. 이외에도 천상계의 여러 덕천자(天) 성천자(聖子)를 비롯해서 일월광명의 이름을 가진 천자들이 천자각을 찾아서 회동을 하거나 신선주로 주연을 펼치기도 했다.
천자각에는 항상 천상계에서 소문난 미모의 선녀들이 대기하며 회동한 천자들을 시중들고 춤과 노래로 가연을 베풀기도 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곤륜산신으로부터 전해 듣고 천자각에서 회동하는 천자들에 대한 궁금증이 떠나지 않았다.
곤륜산신의 전언에 의하면 특히 천상계에 머물고 있는 천황천자, 옥황천자와 땅에 머물고 있는 자황천자, 천주의 사신(四神)이 합세하여 천자각에서 천지거사를 숙의하는 일들이 잦다고 했다.
곤륜산신이 알려 준 시각에 맞춰 천자각을 찾아갔을 때 마침 자황천자와 천주가 회동하여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숙의를 하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자황천자의 다른 이름은 미륵이었고 천주는 장차 큰 빛으로 나타나 천명소통의 시대를 펼쳐갈 천황천자의 후인이었다.
“지금은 불통시대라서 땅에서는 하늘에 막히고 하늘에서는 땅에 막히어 하늘의 이치는 땅에서 먹히지 않고 땅의 소원은 하늘에 상달되지 못하는 막막형국이오. 앞으로 후인께서 선인천자의 유훈을 펼치려면 막막형국지세의 갑갑증을 잘 견디어야 할 것이오."
자황천자가 천주에게 신선주를 권하며 근심스럽게 입을 연 말이었다. 천주는 말없이 자황천자의 신선주를 받아 마시며 긴 한숨만 내쉬었다.
시중드는 선녀들도 두 천자의 무거운 분위기를 읽은 탓으로 술 시중만 들고 춤과 노래의 가연은 멈추고 있었다.
"결국 자황천자마저 선인 천자들처럼 지상거사를 마친 후 회천(回天)의 길을 떠나시겠지요?"
천주가 무겁게 입을 열고 질문한 말이었다.
“하늘이 정한 길이라 거역할 방법이 없소. 내가 회천한 후 천주의 가시밭길이 시작될 것이오. 그래도 천주가 마셔야 할 독배이니 그 잔을 누가 대신 비워주겠소? 독배는 입에 쓰고 배에서는 뒤틀리겠으나 천명소통의 날이 있으니 그 즐거움은 천만배가 넘을 것이오."
자황천자의 대답도 무겁게 느껴졌다.
무거운 분위기를 깨려는 듯 두 천자는 선녀가 따라주는 신선주를 연거푸 비우며 무희들에게 가연을 부탁했다.
무희들의 흥겨운 가연으로 두 천자의 무거운 분위기가 가라앉는듯 보였다. 분위기가 밝아진 두 천자는 다시 이러저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천주는 워낙 배포가 큰 신명이라서 사나운 개들이 짖어대도 끄떡없을 것이오."
"까짓거 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다른 방도가 있겠습니까?""하기야 천주의 뚝심은 천상계에 소문이 자자하니까... 그래서 선천마무리를 후인에게 부탁하지 않았겠소?"
“막중한 사명이지만 유업을 남겨 주신 선인 천자들께 큰 믿음에 대한 답례를 실천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그렇소. 하늘이 믿으니 마지막 큰 유업을 천주에게 물려주지 않았겠소?"
“영광으로 생각하며 묵묵히 제 길을 가겠습니다.”
"나는 불통의 시대를 살다가 외로운 생을 마감할 것이오. 나는 외롭게 떠나고 후인에게는 물려 줄 선물이 없소. 그래서 지금 마음으로나마 미리 감사한 마음을 전하오. 겉으로는 냉정하고 후인의 깊은 뜻을 몰라준다고 서운해 하지 마시오. 내가 먼저 떠나더라도 후인을 도울 것이오."
"이심전심일 것입니다. 자황천자께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깊은 뜻을 잘 헤아려 유업을 잇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유산은 아무에게도 물려주지 못하고 떠날 것이오. 그 유산의 주인은 후인이요. 때가 되면 주인 없이 방치된 유산들이 모두 주인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오. 나는 나의 길을 내 시대에 마무리할 것이오. 후인은 후인의 시대에 후인의 길을 여시오. 곧 천명소통의 시대이니 불통의 시대를 마감하고 소통의 시대를 펼치시오. 곧 천명소통의 시대이니. 소통이면 하늘과 땅 사방의 길이 통하여 막혔던 일들이 다 풀리고 닫혔던 문들이 모두 열릴 것이오. 소통의 시대가 열리면 나는 천상계에서 춤을 출 것이오. 먼저 회천하신 천자들께서도 그 날을 기다릴 것이오."
"소천(小)도 그날을 위해 지구에서 가시밭길을 걷게 될 줄 알면서 곤륜산을 타고 땅에 내려왔습니다. 미륵 대천자께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세상일들이 모두 막히고 풀리지 않음은 불통에서 비롯되고, 그리하여 하늘과 땅, 신명과 인명, 인명과 인명들이 서로 불통하고 불신하여 도무지 속 시원하게 풀리는 일이 없습니다. 장차 소천이 천명소통의 시대를 펼칠 때 막혔던 세상의 일들이 다 풀리어 하늘이 춤추고 땅이 노래할 것입니다. 부디 소천의 뜻을 잘 펼치도록 미륵 대천자께서 회천하신 후에도 부축해 주시고 염원해 주시길 바라마지 않겠습니다.”
“천주의 일은 하늘의 일이오. 하늘의 천자들과 천자를 받드는 천천만 사자들이 천주의 일을 돕고 그 날을 예비하여 준비할 것이오. 세상 곳곳에서 천주의 일군들이 준비하며 천주의 길을 예비할 것이오."
"미륵 대천자께서 땅에서 머물다 회천하신 후 소천이 실천할 주요덕목을 가르쳐 주십시오."
"천주의 시대에는 천주가 가야 할 길이 있소. 천주의 시대에는 제사가 필요하지 않소. 천명소통은 제사보다 중하오. 제사는 불통의 시대에 천자가 하늘을 모시는 의식이며 소통의 시대에는 하늘과 땅이 열리고 교류하여 따로 모실 제사가 필요하지 않소. 그러므로 내가 모시던 제사를 후인이 따를 필요 없소."
“천자들이 모시던 제사를 소천이 소홀히 하여 하늘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까 걱정 됩니다."
"천자들은 선천의 이치를 따르고 후인은 후천의 이치를 따르면 그만이오. 우주에서 선천은 인명의 시대라 부르고 후천은 신선의 시대라 부르오. 인명의 시대에는 먹고 마시는 일이 즐거움이라면 신선의 시대에는 춤추고 노래하는 신선놀음이 즐거움이요. 천명소통의 시대는 천지가 다 뚫리니 비로소 신선 극락선경을 맞이할 것이오. 극락선경에서 신선의 몸으로 소 잡고 돼지 잡아 살생의 제사를 지내는 건 온당한 일이 아니오. 새 시대에는 새 시대에 맞는 의식이 필요하오. 천명소통의 시대에는 하늘도 기꺼이 천주가 베푸는 신선놀음을 즐길 것이오. 천주의 시대에는 천주의 길을 가시오.”
"미륵 대천자께서 일러 주시는 대로 소천이 잘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천주는 천주의 신명으로 하늘의 길을 따르나 천주의 신명을 담고 있는 육신은 인두껍을 쓰고 소통하지 못해 갑갑증이 심할 것이오. 그때 술이 유일한 벗이나 성체를 상하지 않도록 몸을 잘 다스리시오. 천주의 육신이 불로장생을 누려야 비로소 의통이요 영통이며 천지대통이요. 부디 천주의 가시밭길이 힘들더라도 독한 음식과 술로써 성체를 해하지 마시오."
"소천은 덕이 부족하여 육신의 갑갑증을 술로써 풀지 않으면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들려주신 미륵 대천자님의 훈계를 거울삼아 천지대통을 이룰 때까지 몸과 맘을 잘 간수하도록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면 천주의 천지대통을 위해 우리 함께 힘찬 건배를 외칩시다!"
이때 자황천자와 천주의 잔에는 신선주가 넘치도록 부어졌고 <천명소통 천지대통을 위하여!>라는 힘찬 구호소리가 곤륜산 계곡을 크게 울리며 멀리까지 퍼져갔다. 시중 들던 선녀들은 건배의 구호 소리에 맞춰 흥겹게 음악을 울리고 춤을 추면서 구성진 노랫가락으로 신명을 돋우었다.
자황과 천주의 권배는 긴 시간 이어졌고 그때 어느 틈에 가까이 온 줄 모르는 천황과 옥황의 천자들이 곁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삼왕천자들과 천주가 어울리며 곤륜산 계곡이 시끌벅적하도록 천자각 잔치는 무르익어 갔다.
나는 곤륜산신과 함께 천자각의 잔치를 지켜보면서 저절로 흐뭇해지는 감정을 지워버리지 못했고, 몸 속에 감추어진 신명이 발동하며 즐겁게 놀고 있는 천자들 틈 속에 끼어 춤을 추고 싶어졌다.
천자각 주변에는 곤륜산신과 나 외에도 다른 구경꾼들이 많이 몰려와 천자들의 신명난 춤판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빠져 있었다. 구경꾼들은 천신과 신선들이 섞여 있고, 신선과 천신들은 구경을 하면서도 어깨를 들썩거리며 잔칫집 분위기를 북돋았다.
그때 천자를 모시는 사자들이 천자각 주변에 자리를 펴고 구경꾼들을 위해서 푸짐한 술상을 내왔고, 천신과 신선들이 섞인 구경꾼들은 사자들이 주는 술상을 받고 신선놀음을 즐기기 시작했다. 곤륜산신과 나도 그들 구경꾼들 틈에 끼어 술잔을 비우면서 신선놀음을 함께 즐겼다. 곤륜산 절경들을 구경을 하기 위해 어디론가 떠났던 쇼시우시와 샤르비네도 돌아와서 나와 함께 천자각 신선놀음에 참여했다.
천자각에서는 연거푸 흥겨운 풍악이 울리고 무희들의 하늘거리는 춤과 노랫가락이 곤륜산 깊은 계곡을 따라 멀리 퍼지고 있었다.
•천자각의 무희와 악대들만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천자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며 흥겨운 잔치분위기를 더욱 북돋았다.
그때 천자각의 신선잔치를 구경하기 위해서 학과 구름을 타고 놀던 곤륜산 신선들이 계속 구경꾼으로 몰려들었다. 하늘의 천신들도 큰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으로 소문이 났는지 곤륜산 정상을 따라 부리나케 하강하며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크게 벌어지는 천자각의 큰 잔치가 무슨 영문인지 몰라 곤륜산신에게 질문했다.
“오늘 무슨 좋은 일이라도 곤륜산에서 벌어지고 있습니까
곤륜산신은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대답했다.
?"
"오늘 천황천자의 용안이 유난히 밝고 화창하구나!”
“그 이유를 아시나요?"
"자황천자와 천주가 회동하여 천지거사를 선포했기 때문이다.""천지거사를 선포한 내용이 무엇인지 알려주십시오.""천명소통이다."
"자황천자와 천주가 선포한 천명소통의 의미가 그렇게 천상계의 천자들을 기쁘게 할 만큼 크고 대단합니까?"
“천명소통은 곧 우주불통의 어두운 시대를 마감하고 천지대통을 이룸이니 하늘과 땅이 손꼽아 기다리던 순간이다. 머지않아 천주의 큰빛이 곤륜산 동쪽 지맥으로 임하여 해 돋는 곳 동방 땅끝 모퉁이에서 경천지동의 천지거사를 펼치리니 기쁘고 좋은 소식이 아니겠느냐?"
“모처럼 저희 속경의 속인들이 곤륜산을 찾아와 의미 깊은 순간을 참관하게 되었군요?"
"너희 속인들은 오고 싶어 오늘 천자각 잔치에 찾아오지 않았고 하늘의 부름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붙들었고 들리지 않는 신명의 목소리가 너희 영혼을 불렀다."
“그렇게 의미 깊은 하늘잔치에 저희 속인들이 참관하고 있다니 꿈만 같고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두 하늘의 뜻이니 겸손하게 주신 사명을 실천하고 천명소통의 날에 천주의 길을 예비하라."
"산신님의 훈계를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곤륜산 천자각의 잔치는 긴 시간 이어졌다.
구경꾼 천신과 신선들도 흥겨운 잔치에 신명나고 천자의 사자들은 구경꾼들의 빈 술잔을 채워 주느라 분주했다.
쇼시우시와 샤르비네와 나도 사자들이 채워 주는 신선주 잔을 열심히 비웠고 그 바람에 셋이 모두 얼큰한 취기가 올라 천신과 신선들이 어울리는 춤판에 함께 끼어들었다.
샤르비네의 춤 솜씨는 천자각 잔치에서도 두드러졌고, 천자각 무희들의 춤 솜씨와 겨뤄 뒤지지 않았다. 한참을 정신 나가도록 흥겹게 놀다보니 어느새 조용한 분위기를 느꼈다. 조용히 주변을 살펴보니 천자각은 텅 비어있고 구경꾼이나 술판을 벌여 주던 사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까지 곁에서 지켜주던 곤륜산신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남은 것은 쇼시우시와 샤르비네와 나 셋뿐이었다.
멋쩍어진 우리 셋은 다시 초도로머신을 타고 절망의 땅을 지키느라 여념이 없는 수호신들이 활약하는 장소로 돌아왔다.
곤륜산의 천연(天淵)에서 솟아난 원천은 천강을 이루고 천강의 이쪽은 절망의 땅 속경이요 저쪽은 곤륜산 선경이었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는 강물 하나 사이를 두고 선경과 속경俗이 구분되고 있었다.
현실의 공간에서 바라볼 때 지구는 둥글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바라볼 때 지구의 속경은 우주공간에 광활하게 펼쳐진 평원이었다. 우주의 대평원에 곤륜산의 선경과 지구의 속경과 이런저런 경계의 천경이나 성역들이 구분되어 있었다.
지구의 속경은 우주 대평원에서 작은 공간이지만 중심부였다. 그러므로 지구가 무너지면 우주 대평원의 형세가 무너지는 요새와 같은 자리를 지구 속경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지구 속경에는 우주의 수호신들이 총집결하여 절망의 땅을 지키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 중에서 지구 동토를 지키는 대수호신의 활약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동쪽 대수호신이 수호신들의 활약을 독려하고 있는 진지는 곤륜산 동쪽 지맥의 끝자락이었다.
동쪽 대수호신은 단순하게 동토의 땅들을 무너지지 않도록 수호하는 임무만 중요하지 않고 장차 천주의 큰 빛이 출현하는 통로를 지키며 예비하는 임무도 중요했다.
동토 대수호신은 천주의 길을 예비하는 대수령(大首領)이기도 했다.
속경의 동토수호 진지에서 우리 셋을 면담한 대수호신은 우리에게 천주가 출현하는 곤륜산 동쪽지맥의 형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현실의 세상 형세로는 동방 땅끝 모퉁이 해 돋는 곳이요, 감춰진 세상의 형세로는 우주 대평원 천봉포란(天凰抱卵) 형세로서 우주 대명승지가 이곳에 해당된다. 천봉(天鳳)의 봉란(鳳)은 곤륜산 기운으로 1만 2천 년 만에 부화되고, 그 봉추(鳳雛)가 바로 천주의 성체(聖體)이다. 봉추로 태어난 천주의 성체는 지금 고달픈 육신의 길을 가며 자기 수양을 위해 고난을 자초하는 중이다. 천주의 성체에 큰 빛의 대광명신이 임하면 비로소 천명소통의 새 날이 밝을 것이다. 천명소통의 새날이 밝으면 비로소 우주 새 역사가 시작되고 천지의 기운이 새롭게 용솟음칠 것이다. 우주 새 역사의 그날을 위해 우리 수호신들의 활약이 막중하며, 특히 천주의 길을 예비하는 속경의 동토수호 사명이 더욱 막중한 천상계 특명이다."
동토 대수호신의 설명을 듣고 내가 질문했다.
“천봉의 봉추가 성장하여 하늘로 비상하면 속경의 형세는 어떻게 변합니까?"
“비로소 천명소통의 새 날이 밝으며 우주 대평원의 새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천명소통의 새 날이 언제 밝을 수 있습니까?"
"곤륜산 정상에 머물고 있는 대광명신이 천주의 성체에 임하는 날이다.”
"곤륜산의 대광명신이 천주의 성체에 임할 때 천주는 큰 빛으로서 세상에 활주하며 고운 영혼의 빛 담금질을 시작한다는 의미시군요?"
"그렇다. 천봉의 봉추로 태어난 천주의 성체는 자기 성장기를 통해서 가시밭길과 같은 수련을 받으며, 수련기를 마치면 비로소 대광명신이 임하여 큰 빛으로 비상하여 고운 영혼들의 빛 담금질을 시작한다. 고운 영혼들의 빛 담금질을 마치면 비로소 천주의 신천지가 열리고 천명소통의 새 날이 밝아 우주의 새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천명소통의 날이 밝아오면 비로소 불통의 시대가 끝나고 하늘과 땅이 소통하고 인명과 신명이 소통하며 인명과 인명이 소통하여 막힘이 없을 것이다. 곧 불통의 시대는 멸주가 활보하는 암흑의 시대이요 소통의 시대는 멸주의 기운이 꺾이는 광명의 시대이다. 지금은 지구 속경의 암흑시대로서 불통의 막힘으로 인하여 사람의 욕심이 하늘에 사무쳐 지구파멸의 위기를 자초하는 중이다."
"천명소통의 새 날이 밝아져야 지구파멸의 위기도 종결짓는다는 말씀이군요?"
“지구파멸의 위기는 아직도 많은 고비를 넘겨야 하나 천명소통의 새날이 밝아지는 때를 기준으로 지구파멸의 위기를 넘기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수호신들의 대활약은 추호의 방심도 금물이겠군요?"
"우주 대평원의 영원한 번영과 평화를 위해서 우리 수호신들의 사명은 물샐틈없는 경계로 추호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곤륜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천족(天族)의 고운 영혼들이 천주의 길을 예비하는 동토수호는 더욱 막중한 사명이 아닐 수 없고, 우주 대명승지천봉포란鳳抱卵)지세의 동토안전(東)은 하늘이 감춰 둔 비결이다."
"지구파멸의 위기에도 우주 대명승지 동토는 하늘이 감춰 둔 비결에 의해서 안전하다는 말씀이군요?"
“지구의 동토는 천족의 유산이 뿌리내린 역사의 산실이요, 곤륜산의 천기로 태어난 천족의 후예들이 생존번영하는 우주명소로서 주의난동강세에도 지축의 손상은 안전하리라."
"어둠의 세력인 멸주들의 난동강세 때문에 지구파멸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멸주들의 난동으로 사람의 욕심이 극에 달해지고 그 욕심으로 인하여 사람의 기생충들이 지구를 난도질하여 파멸의 위기를 맞게 한다."
“멸주의 난동이 멈추고 지구파멸의 위기가 종결되는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천주가 천주의 이름을 얻을 때 지구파멸의 위기는 종결될 것이다. 곧 사람들의 입에서 천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할 때 멸주의 공세는 멈춰지고 지구파멸을 자초하던 사람의 욕심들이 사그라져 지구평온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천주가 천주의 이름을 얻을 때가 언제입니까?"
“그날은 하늘도 모르고 땅도 모르며 천명소통을 받은 이름들의 숫자로 결정된다."
“천명소통의 이름을 얻은 숫자가 몇이어야 천주가 천주의 이름을 얻습니까?"
"천명소통의 이름이 100만에 이를 때 천주는 천주의 이름을 얻으리라. 그리하여 사람의 후세들이 장차 천주의 이름을 기록할 때 천봉대군자(鳳君子)라 칭할 것이요, 이는 백만대군의 지세를 얻은 하늘 봉황의 명예로운 이름이라.”
“천명소통의 날에 과히 구름떼 같은 인파가 천주를 따르리라는 예언이시군요?"
"불통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소통의 이름을 들으면 저절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리니 그때 천명소통의 구호는 하늘을 찌를 기세이리라.”
“천명소통의 구호가 하늘을 찌르는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사람과 신명들이 함께 노력하여 그날이 속히 임하기를 기원하자!"
“여러모로 좋은 말씀 많이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파멸위기를 맞고 있는 지구수호를 위해 앞으로도 많은 수고 부탁드립니다.”
"천족의 후손이여! 그럼, 잘 가거라.”
동쪽 대수호신과 작별을 고하고 우리는 다시 초도로머신에 몸을 싣고 지구의 남쪽 땅과 북쪽 땅으로 이동하며 수호신들이 파멸위기의 지구를 수호하기 위해 활약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지구를 수호하기 위해 잠시의 방심함도 없이 대활약을 멈추지 않는 수호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지구는 지구에서 살고 있는 인류들의 노력으로 그 운명이 보존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 기생충들은 자신들 생존의 터전인 지구를 파멸시키기에 여념이 없고 수호신들은 파멸위기의 지구를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지구의 슬픈 현실을 지켜보면서 마음속에서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우주에는 억억조조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이 떠 있고 그 중에는 높고 낮은 차원의 다양한 문명세계가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 지구인으로 태어난 현실이 자랑스럽지 않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에서 하나뿐인 지구, 지구가 사라지면 지구인은 어디로 갈 것인가? 지구가 사라진 후 지구인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지구의 운명이 다하는 순간 지구인의 운명도 지구에 존재하던 자연과 생태계의 현상도 아스라한 망각의 현상으로 우주에서 종적을 감추고 말 것이다. 지구가 사라진 후에도 우주는 여전히 존재하며 억억조조 찬란하게 빛나는 별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밤하늘을 수놓을 것이다.
지구의 운명이 끝난 후 지구에서 살던 넋들은 의지하고 발붙일 공간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유령으로 떠돌다가 의미 없이 산화되어 구름 한조각의 여운도 남겨두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지구인들이여! 왜 이런 어리석음을 자초하는가?>
전 세계 인류들이 듣는다면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큰 소리로 지구가 흔들릴 만큼〈지구인들이여!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자. 지구는 지금 난파선의 운명을 맞고 있다. 지구인들이 지구를 지키지 않고 우주의 어떤 외계인이 대신 지켜주겠는가?>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외침은 맘속에서 공허한 메아리로만 맴돌 뿐이었다.
4차원 문명세계의 메시지12 – 인류, 그 다음세계에 펼쳐지는 일들
첫댓글 ❤️ 사랑 💕 가시밭 길 💕 책임감 💕
지구는 지금 난파선의 운명을 맞고 있다.
지구인들이여!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자.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
막중한 임무를 홀로 버티며 항해하는 천주여!!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
천주님과 4위성존의 사랑과 희생으로 지구와 우주와 모든 생명 영혼이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릿님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 암노깡님
감사합니다.
넵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