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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8.14시「시민사회와 언론의 미래」, 국회의원 회관 제6간담회실, 자유언론국민연합 창립 5주년 기념 식 및 토론회. 주최 자유언론국민연합·김기현·김장겸
의원실.
조맹기(서강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명예교수)
언론시민단체의 성격.
6·3 선거 전 국민의힘은 방송정책의 기본방향을 정했다. ‘여러 개 공영방송은 ‘하나의 공영방송’으로 묶고, 다민영을 운영코자 한다.’물론 국민의힘은 언론 환경의 절박함을 표출한 것이다. 현재까지 민주노총의 산하 노영방송은 국민의 ‘세뇌’ 기능을 마다하지 않았다. 1987년 체제 하에서 선전·선동·진지전 구축는 그 강도를 높여왔다. 프레임을 만들고, 부수고 또 재생산한다. 헌법적 진실은 현실에 직면하면서 목소리를 낮추어왔다. 갈수록 허위의식의 이데올로기만 가득하다.
공영방송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민중민주주의로의 이행에 골몰했다. 드디어 그 노력은 결실을 맺고, 자유주의·시장경제의 헌법 정신을 파괴시키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본 과제는 하나의 공영을 운영한다는 명분 하에서 논리를 전개시킨다. 지금까지 언론자유를 논했지만, 체제 내에서 큰 그림을 생략하면서, 각론에 충실한 성찰을 도외시할 수 없다.
언론방송의 질적 저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본 논의는 언론자유를 가능케 한 시스템을, 즉 ‘계약’ 문화의 초심으로 돌아가 ‘과학적 절대주의’로 그 실마리를 찾아본다. 그 범위를 홉스에 국한 시켜 언론을 논의 전개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원래 악한 존재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보고, 질서를 형성키 위해 사회계약(social contracts)을 시도한다. 계약에는 A와 B의 쌍방의 계약으로부터 헌법을 구성하는 요소인 ‘제3 수혜자 계약’(third party beneficiary contracts)이 존재한다. 후자는 헌법적 가치의 계약이다. 그 사회에서 언론의 기능을 다루는 것이다.
‘제3 수혜자 계약’ 자체가 논리적으로 따지는 추상적 개념이다. 이성과 합리성의 영역이다. A와 B 두 사람의 계약이 아니라, 제 3자를 가정하면서 사회를 분석한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를 규명한다. 그렇다면 언론이 현상을 분석하고, 인과관계를 뽑아내는 프로그램 제작, 취재행위가 필수적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이성과 합리성의 추상적 도구가 필요하게 된다.
그 결과 ‘국민’, ‘민주주의’, ‘민주공화주의’, 균등 등은 헌법적 가치이긴 하지만 개념을 정리하기 여간 힘들지 않다. 그 이유로 국민은 '정치적 픽션(political fiction)'이다(E. Morgan). 각각의 국민은 존재하지만, 전체로서의 국민은 '가상의 실체'란 뜻이다. 그러니 '국민의 뜻'이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의 국민주권주의(plebiscitarianism)는 팩트 확인이 불가능한, 하나의 신앙 같은 것이다(함재학).”라고 한다.(김영수, 2025.06.02.)
차원을 이념적으로 논하지 않고, 시스템 차원에서 논하면 익히 알고 있는 언론의 기능이 쉽게 노출이 된다. 자유주의 분업의 시스템이론에서 경제(adaptation), 정치(goal attainment), 법(integration), 문화(latent function) 등 요소로 정부 밖에서 감시하는 언론이 존재하고, 이를 도와주는 NGO가 함께 공존한다. 물론 그 구체적으로 언론은 원래 ‘환경의 감시’, ‘사회제도의 연계’ 그리고 ‘문화의 전승’의 질서기능을 갖고 있다.
유기체의 생존이 그렇듯 분업의 사회는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를 통해 시스템의 안정적 발전을 도모한다. 그 때 국민은 서로의 먹거리를 찾을 수 있고,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만약 복잡한 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면, 몸의 피가 멈추듯 사회는 다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폭력과 테러의 사회로 다시 돌아간다.
복잡한 사회의 분화는 원심력이 필요로 하고, 체제의 수렴은 구심력이 필요하다. 그 조절 장치가 커뮤니케이션이고, 그 수단이 커뮤니케이션의 도구, 즉 신문·방송·영화 그리고 SNS이다. 그 중 공영방송은 구심력을 바탕으로 원심력의 기능을 첨가한다. 그 단서가 ‘제3 수혜자 계약’에서 나온다. 이는 국민, 민주주의 등 ‘가상의 실체’를 다루기 때문이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처음으로 사회계약의 원리를 언급했다. 그의 수중 괴물 리바이어던(Leviathan, 1651) 그리고 육지 괴물 비히머스(Behemoth, 1679)는 계약에 관한 관점이 노출되어있다. 더욱이 후자는 언론의 기능, 즉 의견(opinion)을 중심과제로 뒀다. 홉스는 국가를 견제하기 수단으로 다른 사회기구의 구성이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그는 경제의 교환, 즉, 계약의 시민사회(civil society)를 언급하면서, 국가(common wealth)를 언급한다. 물론 홉스는 가상의 실체를 분석(analyzing)하는 도구로 국가를 언급했다.
그의 분석은 퍽 과학적이었다. 그래서 그의 분석을 ‘과학적 절대주의’라고 한다. 이는 국가 자체가 폭력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홉스가 욥기에서 나오는 수중·육지괴물을 국가로 다룬 것도 가상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 혹은 시장사회가 존재하지 않은 북한의 경우는 분석 틀이 다를 수 있다. 북한은 폭력집단 그 자체가 국가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헌법의 국가는 시민사회를 돕기 위한 수단으로 국가이다. common wealth는 계약을 관리하는 것쯤으로 생각한 것이다.
북한 집단에서 시민단체는 명목상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시민사회가 활성화된 대한민국과 같은 시민단체가 아니라는 소리이다. 국내 시민단체는 자유로운 네트워크로 구성되어있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좌익은 우익과 전혀 다른, 시민단체와 그 ‘시민단체의 운동’을 주도한다. 1999년 8월 27일 1주년을 맞으면서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 1998.8.27. 창립)는 지난 세월 언론 운동을 주도하던 기자협회, 언로련, PD연합회 등 현업 단체들은 언개련에 묶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1984.12.19. 창립), 바른언론을위한시민연합 등도 좌익 언론시민단체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언개련은 특수한 ‘언론개혁’이라는 과제를 안고 출발했다. 이를 위해 참여연대, 경실련 등 대표적 시민운동단체와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노동운동단체 등도 합세하였다.(우리의 주장, 1999.8.23.)
언개련은 토론회에서 시위에 이르기까지의 공개 활동과 시민단체 홍보전, 그리고 정부 및 정치권과의 접촉 등을 벌여 언론개혁을 사회적 화두로 제기하는 데 성공하였다. 물론 언론개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지만 못하였다 하더라고 언개련은 언론운동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우리의 주장, 1999..08.23)
구체적으로 언론관련 활동을 하고 있는 21개 단체에 물었다(언론개혁시민연대 조사 결과 모니터활동을 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는 20개 . 그외 언개련 포함해, 21개 단체를 대상으로 전화로 물었다).(오수정, 1999.11: 11) 즉, "직• 간접적으로 활동에 도움을 주는 교수나 변호사 등 전문가가 있느냐?"고(교수의 경우 언론관련 학과 교수만).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33명까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또 활동 참며 범위는 지속적으로 자문 역할을 하는 정도에서, 단체 대표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어떻게 언론시민단체와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교수의 경우 "각 단체 위촉에 의해 정식 직책을 갖거나 관여하게 된다.”는 것이 주동황(광운대) 교수의 말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정식으로 단체에서 위촉하기 이전부터 자발적으로 활동한 사람이 많다. 주로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언론에 비판적 시각을 갖게 돼 활동의 필요 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국내 우익 시민단체의 제도권과 독립된 상태와는 달리, 좌익 시민단체는 정치권력과 그 제도권 안에서 밀착되어 움직였다. 이들은 북한과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 또한 우익 언론시민단체는 우후죽순처럼 난립한다. 재정 상태는 외부지원을 결한 채, 거의 회비로 운영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직능단체와 연계가 거의 없는 상황이고, 몇 유튜브 외에는 제도권 언론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다.
시민·시장사회가 발전할수록 언론시민단체가 큰 그림을 그려줘야 하지만, 기업체마저도 각자 도생한다. 오히려 기업은 좌익과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더욱이 1987년 이후 좌익 정권은 우익 언론시민단체를 감시·감독하면서, 직·간접 통제를 늦추지 않았다.
좌익 공영언론과 그 시민단체의 연대는 광우병·세월호·코비드19 등 사건(사망자수 1백 50만 이상) 같은 사회변혁과 혁명의 동력을 만들어낼 수도, 국회에서 탄핵된 대통령를 바로 세울 수도, 직접 대통령을 탄핵을 시킬 수도 그리고 여론조사 공작에 동조하여 새로운 대통령을 옹립할 힘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홍보를 위한 주간「미디어오늘」은 단합된 이데올로기를 창출까지 한다.
좌익이 한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영화까지 합세하면 그 ‘지적 허영심’(intellectual vainglory), 혹은 선동력은 대단하다. 2023년 11월에 개봉된 ‘서울의 봄’은 1980년 신군부에 대한 다큐멘터리형 영화를 제작하여, 1,312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콘텐츠는 드라마 영화이다. 사실을 왜곡하고, 세뇌의 방법을 택하면 그 왜곡된 영향력은 기대 이상이다.
그 영향력은 국제적 이슈가 되곤 한다. 최근에는 열악한 제작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속속 등장한다. 미국에서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단순히 정보만을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이슈와 문제애 대해 적극적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더 나아가 시민들의 참여를 확산시키는 등 사회감시기능을 수행하고 있다.(최진봉, 2010.10.13.)
방송·영화 등 좌익 단체는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와 밀착되어 발전한다. 방송법 개정, 정간법 개정뿐만 아니라, 언론단체 출신이 방통위원장 및 MBC 등 공영방송의 사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더욱이 좌익 언론시민단체는 정부와 언론사로부터 종속적 경향을 보인다.
특이한 경향은 흔하게 북한과 공유할 수 있는 이념적 성향을 지닌 점이다. ‘태어나지 말아야할 나라’, ‘우리민족끼리’뿐만 아니라, 특정 정파에 따라 진실을 왜곡하고, 왜곡된 정보로 국민을 세뇌시킨다. 포퓰리즘, 민중민주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성향과 유사성을 지닌다.
당파성의 경향은 노골적이다. 인맥을 중요시하는 데 있어선 우리가 중국보다 더하면 대했지 덜하진 않을 게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그런 운동이 전개되기는 커녕 오히려 언론 매체가 압장서서 인맥을 키우라고 충돌질을 하고 있으니 그것 참 희한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강준만, 1996. 01. 31)
북한과 유사성이 존재한다. 정부·여당·언론사·시민단체·영화제작사 등이 하나의 사적 카르텔을 형성한다. 북한 시민단체는 당의 보조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미국 등 서구와 비교하지 않고, 좌익들은 북한 프레임 정책에 심취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청년, 여성, 산업노동자, 농민, 지식인 등 다섯 분야에 중점을 두었다.(Robert A.Scalapino·이정식 공저, 1972/1987: 614) 청년 당원은 10만 내지 20만 명이 동원된 대규모 군중집회가 주기적으로 개최한다. 수 많은 깃발과 화보가 난무하는 가운데 젊은 청년들은 애국심, 지도자와 당에 대한충성, 새로운 사회주의적 도덕에 관해 훈계를 받았다. 더욱이 조선민주청년동맹의 주요 지도자들은 조선노동당의 요직에 진출했다.(Robert A.Scalapino·이정식 공저, 1972/1987: 614)
한편 조선노동당의 요인들은 직업총동맹의 주요 간부직을 장악했을 뿐아니라 전국단위의 산업별 직업동맹에서 최말단 조직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와 같이 당은 노동자들에게 침투해 가는 데에서 직업 총동맹과 당이라는 두 가지 통로를 사용하고 있었다.(Robert A.Scalapino·이정식 공저, 1972/1987: 615) 즉,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항상 이들 사회단체들을 당의 대리인으로 당의 연장선상에서 취급했다.
이렇게 각 사회단체의 지도부를 장악한 당 자신이 ‘전위’로서의 기능을 수행했고, 당의 정책이 대중의 의식과 행동에 파고들도록 노력해 왔음을 망각해서는 안된다.(Robert A.Scalapino·이정식 공저, 1972/1987: 616)
시민단체와 연대한 당은 유능한 일꾼을 찾아내어 당에 가입시키고, 모든 사회구성원들은 국가에 긴요한 각종 사회적 경제적 과제에 역량을 집중시킬 수있도록 신분과 직능에 따라 제도권 안에 편제시킨다. 만약 이들 단체 중 적어도 일부가 우리가 압력단체라고 부를 수 있는 집단과 유사하다 하더라도, 북한의 사회단체들은 전혀 자율성을 갖지 못했고 따라서 자기 집단이 이익을 뚜렷이 주장하지도 못했다.
북한은 국가의 폭력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국내 우익은 서구 선진국과 같이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자율성·독립의 속성을 지닌다. 그렇다면 시민사회(civil society)에서 시민단체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다. 국가(common wealth)를 돕는 시민단체가 된다.
현대 언론의 원형을 찾아 1640∼60년의 영국 ‘장기의회’에 일어난 현상을 살펴보자. 그들의 여론 형성, 계약 그리고 사회변동 및 변혁을 언급한다. 그 순서로 ①언론시민단체의 실천, ②홉스의 과학적 절대주의, ③계약사회의 언론 역할, ④시민단체와 언론의 질적 혁신 등의 순서로 본 과제를 진행한다.
홉스의 이론을 중심으로 본 연구의 질적 혁신을 논한다. 홉스 생존 당시 장기의회는 찰스 1세와 의회 간의 갈등이 일어나고, 그가 실각되고, 찰스 2세가 즉위하는 혁명의 과정이다. 본 과제는 그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변동, 즉 혁명을 다룬다. 그 시기의 common wealth로 국가를 분석하는 작업이다. 대통령 줄 탄핵이 일어나고, 국회가 독점하는 시대를 맞이할 때, 홉스의 분석은 언론제도의 초심을 분석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2. 언론시민단체의 실천.
정권의 강압에 의해 언론개혁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신문윤리강령은 “우리 언론인은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을 실현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이 민주 발전, 민족통일, 문화창달에 크게 기여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신념에 따라 스스로 윤리규범을 준수하고 품위를 지키고자 1957년 4월 7일 신문윤리강령을 처음 제정한 바이고, 이제 그 숭고한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는 정보화 사회의 출현 등 시대변화에 맞춰 새로운 신문윤리강령을 다시 채택한다.(1996.4.7.)
그 원에 따라 ‘보도와 평론의 원칙’(신문윤리강령, 제4조)을 설정했다. 우리 언론인들은 사실의 전모를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보도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또한 진실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바르게 평론할 것을 다짐하며,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폭 널게 수용함으로써 건전한 여론 형성에 기여할 것을 결의한다.”
그 논리라면 언개련의 언론개혁은 언론의 자유·책임·독립에 기초해야 마땅하나, 2001년 1월 11일 김대중 대통령의 언론개혁은 달랐다. 정부의 외부 압력에 의해 언론개혁을 시도했다. 그 여파로 언론은 갈라지기 시작했다. 정부와 보수 언론 간에 정쟁이 시작되었다. 조중동, 한경대가 둘로 딱갈라진 것이다.
언론사 세무조사가 시작되었다. 물론 ‘국민의 정부’에서 언론사 세무조사는 1999년 7월 5일 보광그룹 4개 사, 세계일보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되었고, 홍석현 중앙일보사 사장은 1999년 10월 1일 조세포탈 협의로 구속되었다.(조맹기, 2024: 425)
2001년 1월 11일 김대중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의 언론 개혁에 대한 언급에서 가시화되었다. 대통령이 앞서 언론개혁을 주장하고, 그 소유 지분 30% , 재벌족벌에 의한 신문의 사적 지배, 편집과 경영의 문리, 편집권 독립, 편집위원회 설치, ABC 공사제도의 확립 등을 문제를 삼고 2001년 내내 최대 쟁점으로 부각시켰다.(조맹기, 2024:424)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김대중 대통령은 ‘강한 정부·강한 정치 실현’을 주제로 연두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기자회견 중 김 대통령은 “언론 개혁문제와 관련, 언론 자유는 사상 최대로 보장돼 있는 만큼, 국민과 일반 언론인 사이에 언론 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언론계·학계·시민 단체·국회가 합심,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개혁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으로 언론개혁의 강한 뜻을 비췄다.(조선일보, 2001. 01. 11.)
언론개혁으로 2001년 8월 16일「조선일보」, 「동아일보」, 「국민일보」 등 언론사주 등 5명의 사전 영장이 청구되고, 이어 「조선일보」 방상훈(方相勳) 사장, 「동아일보」 김병관(金炳琯) 전 명예회장, 「국민일보」 조희준(趙希埈) 전 「국민일보」 회장 등 언론사주 3명이 구속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7월 2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언론사 세무조사는 공정성이 완벽하게 보장됐고 외부 간섭이 없었다.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할 것이며, 이번 조사와 처리 결과는 투명하고 건전한 언론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조맹기, 2024: 425)
언론사는 윤강령과 달리, 정부의 강압에 의해 인적 쇄신을 서둘렀다. 그리고 공영방송은 민주노총 언로련 구성원으로 주요 인사를 충원토록 바랐다. 특히 문재인 정권 때는 그 경향이 노골적이었다. 그러나 2001년 2월 22일 『시사저널』은 3건의 “조중동 비판 카르텔을 깨라”는 「여권 내부 언론 관련 보고서」 전문을 공개하였다. 그 과정에서 한나라당 언론자유수호 비상대책특위〔위원장 박관용(朴寬用)〕는 “김대통령이 국세청·검찰을 지휘했고, 향후 지휘하겠다고 확연히 천명한 것이다”고 반박하였으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회장 고학용(高學用)〕는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의 검찰 고발 조치와 관련한 성명을 내고 “이번 조치는 언론사 모두를 권력의 규제 속에 묶어두겠다는 의도로 언론사가 막대한 추징금을 내기 위해 정부에 매달리거나 아니면 문을 닫거나 양자 간 택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조맹기, 2024: 427)
언론은 정부여당에 순응하는 길을 걸어왔다. 문재인 정권 때 그 경향이 노꼴화되었다. 2018년 1월 노사공동으로 ‘이명박·박근혜정부 10년에서 쌓은 ’적폐청산‘을 위한 MBC ’정상화위원회‘를 설치하고, 이어 KBS는 ’진실과 미래위원회’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인사를 전행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기자를 노골적으로 압박을 했다. 우익 언론시민단체가 나섰다. 자유언론국민연합·공정언론국민연대·자유언론대안포럼·한국NGO연합·새미래포럼·미디어연대 등 보수단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제도권 좌익의 판을 엎고 있다. 문재인 청와대의 무리수는 그들 좌익 성향의 국회·언론·시민단체를 동침하면서 계속 무리수를 두었다.
민주노총 KBS본부노조에 대항한, KBS노동조합은 1인 시위로 불을 붙였다. 노조 지도부가 일인시위 현장에서 ‘대선용 언론 재갈 물리기? NO!’ ‘민주당은 징벌손배법 즉각 철회하라!’라는 피켓을 들었다. KBS노동조합은 2021년 8월 3일 ‘징벌적 손배법 규탄’에 나섰다. KBS노동조합은 악법인 「징벌적 손배법」이 이번 8월 국회에서 철폐될 때까지 무기한 릴레이 시위를 이어갈 것임을 밝힙니다.(성명, 2021. 08. 03.) “지난달 상임위를 통과한 「징벌적 손배법」을 집권 민주당이 이번 달 안에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처리하고자 한다. 이 법은 언론 관련 단체들이 빠지지 않고 규탄하는 대로 우리나라 언론자유를 말살하고 파괴하고자 하는 악법으로 규정됐다. 그동안 선거철마다 빠지지 않고 민주당과 각종 정책 협약식을 맺어온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까지 반대하고 나선 악법이다. 언론보도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 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라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정신적 고통’이 있을 경우엔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언론자유를 크게 훼손하는 길을 열어줬다는 비판이 거세다. ‘허위·조작 보도’라는 애매한 기준은 자칫 권력자들의 잣대로 예단될 수도 있다. 또 언론사들이 고의, 악의, 중과실이 없다는 입증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건 무분별한 소송으로 이어져 언론의 제기능을 막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여러 언론보도의 지적대로 매출액에 비례해 손배액을 정하겠다는 법안이 이번 달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KBS의 경우 수십억 원의 손배액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도 있는 우려가 크다.”
‘언론자유 파괴하는 징벌적 손배법 규탄, KBS인 국회 앞 릴레이 시위 돌입’(2021. 08. 01.)이라는 2탄 성명이었다. “오늘(8월 2일/월)부터 집권 민주당이 국회 처리를 강행하고 있는 「징벌적 손배법」 철폐투쟁에 돌입합니다. 8월 2일 낮 12시 허성권 위원장과 손성호 부위원장을 시작으로 국회 앞 1인 릴레이 시위를 시작하고, KBS 기자·피디·아나운서·경영·기술직종을 포괄한 KBS인 백여 명이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①징벌적 손해배상: 허위·조작 보도의 손해액의 5배까지 산정, ②언론사의 고의·중과실 추정: 취재 중 법률 위반, 정정보도 등의 경우에 언론사가 고의·중과실이 없음을 입증해야 함, ③기사 열람차단 청구권: 보도가 진실하지 않거나 사생활 침해 등의 경우 기사 열람 삭제 청구 가능’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국회와 민주당사 앞에서 KBS노동조합은 ‘언론독재법 철폐 범국민 공동투쟁위원회’(위원장: 이영풍, KBS 기자)는 ‘대선용 언론 NO! 언론자유 다 죽인다 YES.’라는 구호로 시위를 확산시켰다.
KBS 노동조합은 9월 9일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언론중재법,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로 외신기자를 위한 토론회를 가졌다. 발제는 최진녕 변호사와 장세정 중앙일보 논설위원 및 5명의 변호사, 기자, 시민단체 대표, 교수 등이 참여했다. KBS 노동조합이 밝힌 언론중재법 처리 주요일지는 ①언론중재법 개정안, 야당 반대 속 국회 문체위 소위통과(2021. 7. 27.), ②KBS노동조합 언론사 최초로 (국회 앞) 반대 피켓팅 시작(08. 02.), ③언론중재법, 여당 단독으로 국회 문체위 전체회의 통과(08. 19.), ④국회 앞 범국민 반대 필리버스터 투쟁(08. 24〜25), ⑤국회 법제사법위, 국민의힘 퇴장 속 여당 단독 처리(09. 25.), ⑥범국민 반대 필리버스트 15시간 생방송, 언론중재법 본회의 상정 무산(09. 30.), ⑦여야, 언론중재법 내달 27일 처리 및 8인 논의 기구 설치 합의(08. 31.), ⑧언론중재법 본회의 상정(09. 27)(KBS 노동조합 2021. 09. 03.), ⑨국회 앞 범국민 반대 필리버스터 투쟁(09. 27), 여기서 ‘언론중재법 논의 8인 기구’는 더불어 민주당 의원 2명, 민주당 추천 언론계 인사 2명, 국민의힘 의원 2명, 국민의힘 추천 언론계인사 2명이었다.
한편 관훈클럽·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신문협회·한국여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대한언론인회 등 7개 단체가 「언론중재법」 개정에 반기를 들고, 서명에 돌입했다. 그들은 결의문에서 “전·현직 기자, 보도 및 편집국장, 해설 및 논설위원, 편집인, 발행인 등 언론인들은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에 대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입법 독재로 규정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저지할 것을 다짐한다.”라고 했다.(이상현, 2021. 08. 10.) 한편 정부 측 인사는 가짜뉴스에 우려를 표명했다. 정연주 방심위 위원장은 2021년 8월 9일 취임사에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아무런 책
임도 지지 않는 채 거짓과 편파·왜곡을 일삼는 행위에 주어진 책무를 다하겠다.”라고 했다.
말하자면 언론사 세무조사는 언개련이 앞장섰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언론중재법 개정은 자유언론국민연합이 앞장섰다. 물론 그렇다고 ‘언론중재법’이 야성의 언론자유를 ‘과학적 절대주의’(scientific absolutism)로 변신시키지는 못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국회는 아예 ‘공영방송영구장약법’을 시도한다. 새롭게 발의된 방송3법 쟁점이 뭐길래? 2025년 6월 10일 ‘국무회의 주재 후 3대 특검법’을 공포했다. 그 내용은 2024년 6월 25일 논의된 내용이다. 당시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 및 사장의 추천방식을 바꿔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것이 골자다. 방송3법은 현재 9명(MBC·EBS)과 11명(KBS)인 공영방송의 이사 수를 방송사 별로 21명으로 늘리고, 이사 추천권을 국회(5명), 방송사 시청자위원회(4명), 방송현업단체(6명), 미디어학회(6명)에 부여하는 법 개정안이다. 현행 법에는 국회에만 추천 권한이 있다. 방송3법에는 공영방송(KBS·MBC·EBS) 사장 후보를 시민 100인으로 구성된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가 추천하는 내용도 담았다. 추천위원회가 3인 이하의 사장 후보자를 추천하면 이사회가 특별다수제(3분의 2동의시 의결)로 선출한다. 또 직무수행이 매우 곤란하거나 불가능하게 된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3년)를 보장한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측은 이사 추천 권한 단체를 편향적으로 구성해 공영방송을 영구적으로 장악하려는 노림수라고 반발하고 있다.(이명진, 2024.06.27)
3. 홉스의 과학적 절대주의.
시민단체가 앞장선 홍위병식 ‘언론개혁’은 결국 ‘공영방송 영구장악’이라는 명제를 실현코자 한다. 그렇다면 시민사회의 계약 정신을 처음 언급한 영국의 상황을 서술하자. 당시 장기의회(1640∼60)는 정치는 왕이나 귀족이 폭력과 테러를 저지르고, 공정과 정의를 무시한 상황이었다. 정치는 왕과 정치인의 고유권한인 것이다.
권력자는 권력을 주고, 충성을 강요했다. 당시 시민사회는 기득권의 신분적 속성을 갖고 있는 정치 상황과는 전혀 달랐다. 시민이 시장의 주인이고, 소비자는 물건을 사고 싶으면 사고, 말고 싶으면 만 자유의지의 상황이었다.
‘아이디어의 공개시장’은 자유롭게 형성된다. 또한 계약이 가장 손쉽게 일어난 곳이다. 손 쉽기 때문에 가짜가 많이 등장하고, 신뢰가 바닥일 수 있었다. 시민사회의 유연성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에도 많은 문제를 양산한다. 엉뚱한 뉴스가 가까뉴스임이 틀림 없는데 침소봉대하면서, 문제를 크게 일으킨다. ‘사고 공화국’, ‘냄비언론’이란 오명이 우리 언론에 붙어다닌다.
쉽게 달아오르고, 또 쉽게 식는다 ‘언론의 건망증’은 괄목하다. 민중민주주의, 포퓰리즘과 만나면 상상을 초월한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1651년 리바이어던(Leviathan, 1651)의 욥기에 나오는 수중괴물로 유명세를 타고, 유고작으로 비히머스(Behemoth, 1679)를 남겼다. 후자는 의견(opinion)의 교환, 즉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논의가 주요 의제이다.
의견은 상식을 만들고, 상식은 선·악의 판단을 가능케 하고, 공정과 정의의 여론을 형성시킨다. 과거·현재가 균형감 있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한다. 개인의 권리와 책임이 명료하게 노출시킨다. 홉스는 개인에서 시작하여, 헌법적 제도, 즉 헌법 장치까지 설명을 했다. 제도 안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초심으로 돌아가 계약을 설명할 수 있다. 그 단위는 개인으로 출발함으로써, 시민의 대중, 혹은 민중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개인의 통치권과 의무에 관한 이념과 가설적 명제를 명료하게 한 것이다.
홉스는 ‘악’한 존재로서 인간을 봤다. 그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명제를 두고 경험적증거를 중심으로 글을 썼다. 홉스는 사회의 현상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홉스는 냉정하게 글을 쓰는 스타일이었다. ‘냄비 언론’과는 전혀 다른 글쓰기를 한 것이다. 그의 글은 분석(analysis, logic)을 주로하고, 통합(synthesis)으로 결론을 맺었다.
경험론자이지만, 이성과 합리성을 강조한 것이다. 더욱이 통합으로 인과관계를 규명하는데 익숙했다. ‘지적 허영심’(intellectual vainglory)로 잘 풀리지 않는 영역이다. 같은 맥락에서 방송심의규정 제14조(객관성) ‘방송은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하며,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으로 방송하여 시청자를 혼동케 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한다.
전술했듯 홉스가 활동한 시기는 장기의회 기간이었다. 밀턴이 Areopagitica(1644)를 쓰던 시기였다. 지금까지 홉스는 권위주의 전통을 가져, 절대권을 옹호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그는 언어의 과장성에 관심을 가졌다. 사고든, 사건이든 진실에 관한 글쓰기를 시도한 것이다. 왜곡되고, 세뇌시키는 당시 뉴스북을 냉소적으로 글을 작성했다. 당시 진실은 빈번히 시민혁명의 상황에서 ‘지적 허영심’으로 왜곡이 되었다.(R.P. Kraynak, 1982/1993; 811) 홉스는 시민사회의 경험적·과학적 진실을 밝힘으로써, 혼란상에 질서를 주고 싶었다.
왕과 귀족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의 자존심, 정서, 지적 허영심 등 ‘의견’은 시민혁명(civil war)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지혜, 학습, 영감은 통치행위에서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자칫 지적 허영심으로 나라가 혁명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영국의 시민혁명은 성공회, 로마 가톨릭, 장로교, 독립파, 퓨리턴 등 종교적 갈등까지 겹치면서 내전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 바탕에게 ‘지적 허영심’으로 권위를 갖고자 하면, 그 권위는 사회적 지탄을 받기게 되어있었다. 홉스는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등에 더욱 심취한다. 과학적 절대주의(scientific absolutism)을 주장한 것이다. 그에게 과학은 진실의 명증성으로 규정했다.(R. Kraynak, 1982/1993: 824)
홉스는 세금, 병력문제, 군사전략 등 정책적 이슈에 대해 부정확한 분석과 그 원인에 대해 냉소적이었다. 열정적 ‘지적 허영심’의 지식인에게는 거리를 둔 것이다. 이성과 합리성이 요구되는 시점이었다. 그렇다면 신선한 통찰력보다 관계성으로 인과관계를 엮을 명증성 확보를 주로 했다. 그게 시민사회의 ‘구성적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불완전한 구성요소의 정부는 질서를 망각하게 하고, 시민혁명의 요인이 됨이 틀림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지적 허영심’은 의견에서 시작되었으나, common wealth에는 장애가 되곤했다. ‘지적 허영심’,의 의견은 숨긴 동기가 있기 때문이다.(Thomas Hobbes, 1990: xxviii) 숨은 동기로 선악 판단이 유보되거나, 구별이 되지 않을 때, 시민의 마음은 혼란스럽게 할 수 있었다. 포퓰리즘으로 일어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은 ‘지적 허영심’에 휘둘린다. 광우병, 메르스, 세월호, 코비드19 그리고 JTBC 최순실 테블릿 PC 등 같은 습관적·비과학적 요소의 보도가 주류를 이뤘다.「미디어오늘」은 ‘한국언론의 건망증 1, 괌 KAL기 참사’(장현철, 1998. 01.07)를 기획했다. 즉, “1997년 8월 6일 새벽 괌에서 발생한 대한항공(KAL) 801편 보잉 747기 추락 참사는 현재 유가족들과 대한항공측과 보상금 지급 문제를 놓고 긴장을 유발했다. 대한항공측은 1인당 2억 5천만원의 보상금을 제시하고 있으나 유가족들은 최소한 6억 5천만원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들은 그간 모두 6차례의 협의를 거쳤으나 타결을 짓지 못하고 있다...문제는 단순히 유가족들과 대한항공의 갈등만이 아니다. 사고원인, 유전자 검색, 재발방지를 위한 사후조치 등 언론이 눈을 돌릴만한 ‘거리’는 도처에 널려 있다. 사고원인의 경우 아직도 ‘미제’로 남아 있다. 미국측의 1차 조사는 끝났고 현재는 한국 정부가 심층적인 원인 조사를 벌이고 있는 단계이다.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건설교통부측은 “기상, 기체, 공항시설, 인적 요인등 가능한 모든 요인을 검토중이나 아직 직접적인 사고 원인이 드러난 것은 없다”는 설명이다. 최소한 9개월, 많게는 1년 정도가 소요된다.”라고 했다.(장현철, 1998, 01.07)
그러나 결국 분석을 피상적이었고, 그 분석을 통해 인과관계 규명하는 것 자체가 난망이었다. 홉스에게 과학적 절대주의는 “계몽에 기초했는데, 시민에게 회의주의(skepticism)와 자기 의존(self reliance)를 가르치면서, 권위의 신뢰에 도전케 한다.”라고 했다(Leviathan, ch. 46, 1651:684; R.F. Kraynak, 1982/1993: 827) 그러나 당시 뉴스북은 피상적 보도로, 뉴스의 과학화를 실패케 했다. 홉스는 자유주의 국가의 기초가 된 계몽된 시민의 심리적 태도를 명료화했다.(R.F. Kraynak, 1982/1993: 827)
대한민국 분위기는 가짜 뉴스에 휘둘린다. 그 동안 괌 참사 이후 언론이 침묵만으로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간헐적으로 관련 보도가 이어졌다. “언론연구원에서 제공하는 언론기사 정보 데이타인 KINDS를 검색한 결과 KAL참사를 다룬 기사는 10개 종합일간지 기준으로 8월 9일부터 8월 30일까지 모두 6백여건에 달했다. 그러나 9월이후 보도량이 급속히 줄어들더니 9월중에는 30여건, 10월중에는 10여건의 보도에 그쳤다. 11월이후에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시간이 흐를 수록 관련 보도 역시 ‘가십‘수준이다. 신기하 전 의원의 노모상, 인천지역 한 갑부의 재산 상속 다툼, 한 유가족의 음주운전 등 말초적인 관심을 끄는 소재만이 등장했다. ‘괌 참사 이후’를 제목으로 종합적인 접근을 시도한 곳은 조선일보와 서울신문 뿐이었다.”라고 했다.(장현철, 1998, 01.07)
조사가 끝나기 전에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난다. 일본 보도와는 전혀 달랐다.과거의 것은 덮어버린다. 그 나쁜 관행으로 같은 사건이 반복되어 일어난다. 보도의 진실성과 과학성에 문제가 된다. 기본 언어가 확실하지 않은데, 그 언어를 절대주의(absolutism)로 추상화시키면 문제가 따른다. 이런 피상적 보도로는 각 언어의 질서를 형성할 수 없으며, 과학적 절대성도 찾을 수가 없다.
‘국민’, ‘민주공화주의’, 시민 등 단어는 단어로서 만족하고, 시민단체 등을 통해 세뇌로 얼마든 교육시킬 수 있다. 감각적 현실에 집착하는 포퓰리즘이나 민중민주주의에서 늘 있는 일이다. ‘가짜 뉴스도 계속 들으면 진짜가 됩니다.’(최훈, 2025.5.28.) 그 원인들을 열거하면 “한국은 ‘사고 공화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쓸 정도로 유난히 대형사고가 많다. 해마다 대형재난을 겪으면서 막상 일이 닥치면 허둥대는 우리사회의 원시적 대응을 언론은 매번 강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이같은 비판의 칼날이 언론을 향한다해도 별로 할말이 없다. 유례 없는 대형참사로 기록되고 있는 괌 참사 과정에서도 이같은 관행은 유감 없이 되풀이된 듯 하다. ‘안전불감증’ 앞에서 언론은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지 자문하게 된다.”(장현철, 1998, 01.07)
4. 계약사회의 언론역할.
이승만 대통령은 군국주의 일본과 모택동의 선전 기법을 소개했다. 그는 1941년 작성한 ‘일본의 가면을 벗긴다’(Japan Inside Out)에서 일본 군국주의 실태를 고발했다. “모든 것은 비밀로 합니다. 밖의 세상은 아무 것도 모름니다...지난 30년 동안 일본 정부는 미국에서 매년 선전을 위해 수백만 달러를 쓰고 있다. 나쁜 것은 감추고, 색칠한 얼굴에 초점을 둔다.”라고 했다.(Syngman Rhee, 1941: 65)
이승만이 이야기한 1941년 일이 아니다. 언론사는 이념이 중요하고, 상징체계가 중요하지 현장성을 따지지 않았다. 그들의 선전·선동으로 허위를 진실로 둔갑시켰다. 2016년 10월부터 언론 오보가 난발하고, 촛불이 붙여지고, 국회탄핵이 결정되었다. 헌재는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결국 ‘인민재판’이 시작되고, 태극기 애국국민은 서울역, 대한문, 동아면세점, 보신각 등에서 목소리를 높여갔다.
JTBC가 그렇게 열을 올렸던 테블릿PC는 최순실 씨가 법정에서 본 적도 없다고 했다. ‘국정농단’은 실체 없는 언론의 패거리 오보였다. 또한 특검·검찰 등은 엉터리 조사를 계속했다. 검찰 자체조사와 국과수 보고서(2016년 12월)에서는 ‘여러 사람이 사용한 흔적이 있다.’라고 결론을 맺었지만, 특검·검찰·방송통신심의위·국회·헌재·법원은 그 진실을 외면한 채, 한쪽으로만 몰아갔고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국정농단’ 보도에 무게를 실어줬다.
한편 당시 언론은 진실을 외면한 채, 선전·선동의 사회주의 문화를 계속 전파했다. 박근혜 정부와 달리, ‘시장, 미래, 세계’의 정책은 뒤로하고 문재인 정부는 시민사회를 밀어내고, 정부의 역할을 강화했다. 규제를 강화하고, 정부가 매사에 앞장섰다. 국가사회주의, 민중민주주의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 언론은 ‘진지전’ 구축에 열심이었으나, 그것도 따지고 보면 중국·러시아·북한에서 쓰는 세뇌 전술이었다.
설령 ‘연방제 통일’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그 문화가 쉽게 없어질 이유가 없다. 아니,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남조선 해방’이라는 구호가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진지전’ 구축은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진실을 거짓으로 둔갑시키고, 거짓을 진실로 선동한다. 물론 여기서 진지전(War of Positioning)은 그람시(Antonio Gramsci)의 전략론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 10월 혁명과 같은 기동전의 폭력적 정면 대결이 아니라, 성숙한 선진사회에서는 기동전보다 점진적이고 전면적인 진지전이 적합하다.”라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남정욱, 2019: 45)
계약사회의 초심을 그렇지 않다. 자연상태에서 첫 계약은 ①권력의 양도이다. ②지배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③권리를 상호 간에 부여한다.(L. May, 1980: 195∼207) 참여자는 누구나 권력을 양도지만, 개인은 자연상태에서 시민사회로 들어간다. 계약 당사자는 누구에게나 상호호혜의 관계이며, 같은 신분의 특혜를 누릴 수 있다.
계약은 당사자와 맺을 때가 아닐 때, ‘가설적 혹은, 가능성’으로 설명을 한다.(L. May, 1980/1993: 558) 그 논리라면 시민사회, 즉 시장의 원리를 정부의 계약사회의 설명이 가능하다. 홉스는 시민사회의 논리로 정부의 계약으로 설명한 것이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함께 엮어 설명하는 것도, 동일한 법칙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법을 만들어 그 법을 통해 주권을 행사한다. 직접 거래가 가능하기도 하지만, 먼 훗날의 거래도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이다. 즉, 시민사회는 주로 직접 거래가 이뤄지지만, 더 큰 사회, 그리고 장기적 거래는 국가라는 단위 안에서 이뤄진다. 이로써 헌법상의 계약(the constitutional contract)이 성립되는 것이다.(L. May, 1980: 195∼202)
국가·국제적 헌법상의 계약은 실제 시민사회의 상호거래와는 차원이 다른 형태로 전개된다. 직접 거래는 눈에 보이지만, 이들은 가상의 세계와 상호거래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사회를 분석을 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 사회에 관습적으로 내려오는 성약(聖約, covenant)이 존재하고, 현대사회는 국제법상의 거래가 이뤄진다. 수 없이 많은 ‘제3자 수혜자 계약’(third party beneficiary contracts)이 이뤄진다.
그 상황의 초심은 Aposltes(사도)의 지혜(wisdom), 겸손(humility), 성실성(sincerity), 덕(virtus) 등 기독교인의 자유 자체에 대한 논의였다.(M. Hartman, 1986/1993: 835) 더욱이 성약의 계약은 자연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강한 도덕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 원리로 현재 계약을 수행하고, 다른 사람은 후에 계약을 이행하리라고 믿는다.(L. May, 1980: 195∼207) 그러나 ‘원시공산사회’는 후에 보상을 할 인센티브가 없다. 그러나 시민사회에서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계몽의 교육은 전형적인 예이다. 자유주의 사회, 시민사회에서는 행위자를 규제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절차적 정당성를 따지게 된다. 물론 권리를 상호 간에 부여함으로써 양자는 동시에 강한 의무감을 부여한다. 공동체 유지라는 차원에서 정당성(legitimation)을 따지는 것이다. 홉스에게 이를 헌법적 계약(constitutional contracts)라고 했다.((L. May, 1980: 195∼207)
계약 당사자는 권력을 내려놓음으로써 ’제3 수혜자 계약‘으로 신분를 부여받는다. 헌법 하에 개인이 놓이게 되고, 신분 창출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서로가 나눔의 위치에 참여하게 되는 자연의 상태에서 계약의 상태로, 이전하게 된다. 만약 서로 나누지 않으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자연상태로 돌아가고, 이기적 개인이 행동을 계속하게 되면, 계약상태가 아니라, 한 사람은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강압을 행사한다.
홉스의 육지 괴물 Behemoth는 1679년 유고작으로 출간했다. 과거, 현재 시민사회의 정치적 권위 이해를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책이다. 신선한 내적 충동보다 관련성의 명증성을 찾기에 좋은 책이다. 경험적 인과관계를 풀고자 했다.
한편 우리의 상황은 출입기자단 ‘패거리’로 움직이는 언론취재 상황은 분석적, 관련성의 명증성 확보가 쉽지 않다. 받아쓰기 언론은 더욱 그렇다. 의미의 중요성 부각은 연대기적 기술보다 더욱 값진 것이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정부부처의 기자실 개방과 통합브리핑제도 운영, 기자의 사무실방문 취재금지, 공무원의 기자면담내용 보고의무화, 기사내용의 취재원 실명제등이다. ‘취재권제약’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공무원의 기자면담내용 보고의무화와 기사내용의 취재원 실명제는 포기를 선언했다.”(정경희, 2003.3.26.) 더욱이 “사무실방문취재는 여전히 금지하겠다는 것이다...더욱이 홍보업무운영방안의 핵심은 기자실 개방과 통합브리핑제도다. 기자실의 개방은 그동안 폐쇄적이었던 출입기자단제도의 폐기를 뜻한다...다만 사무실방문취재금지와 통합브리핑제도가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할 것이라는 우려는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예약방문의 길을 폭넓게 개방하고, 기자의 정보청구에 대해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자세의 전환이 요구된다.”
법과 정치에서 분석의 중요한 이론은 de jure와 de facto이다. 전자는 법이나, 형식적 규범에 의해 공적으로 인정되는 실천인 반면, 후자의 de facto (from fact) 실천은 현실에서 존재하는 상황을 묘사한다.(https://en.wikipedia.org/wiki/De_jure) 그것은 형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현상으로 존재한다. 현실에서 존재하는 상황이다. 전자는 권리와 의무가 명료하다. ‘제3 수혜자 계약’의 지위가 존재하지만, 후자는 계약에서 진실된 상태가 존재한다. 후자가 경시된 채 전자를 기대할 수는 없다. 전자가 체제의 영역이라면, 후자는 생활세계의 영역이다. ‘제3 수혜자 계약’ 지위를 통하여 헌법적 계약으로 향하게 된다. 그 효과에는 언론의 자유도 포함한다. 1791년 미국 연방수정헌법 1조, 즉 ‘의회는 종교와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을 만들지 말라.’라고 했다. 수정헌법 1조를 통해 미국은 자유선물(free gift)로서 언론의 마음껏 즐긴다. de facto가 언론을 통하여 생활영역에 충실하고, 종합적 분석이 뒤따른다면 de jure 영역은 그 강도를 높여갈 수 있다.
5. 시민단체와 언론의 질적 혁신.
과학적 절대주의(scientific absolutism)의 관점에서 혁명을 실현할 수 있었다. 기하학이나, 자연철학의 원리로 풀이한다.(M. Hartman, 1986/1993: 831) 과학자 Copernicus, Kepler, Galileo 등 과학혁명의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분석(analysis, logic)과 종합(synthesis, 인과관계)로 다룬다. 기존의 것을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홉스는 혁명의 변동을 수용했다. 그 원리에 따른 계몽이 가능하게 된다.
홉스가 직면한 시기는 1640∼60년까지 변동 과정에서 아버지와 아들 간의 찬탈, 즉, 찰스 1세와 2세 사이에서 일어난 혁명이었다. 정치적 요동이 홉스가 이야기하는 혁명적 상황이었다. 그가 말하는 혁명은 결론적으로 급진적 혁명이 아니라, 보수적 관점에서 혁명이었다. 물론 그가 전제한 사회는 인간을 사악한 존재로 보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피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지극히 개인적 관점에서 현실을 풀이한 것이다.
언개련에서 말하는 ‘언론개혁’이 개인적 윤리, 개인적 자유에서 시작하는지 의심스럽다. 우리의 현 윤리강령(1996년 개정) 제4조는 전술했듯, ‘보도와 평론’에서 “우리 언론인은 사실의 전모를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보도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또한 진실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바르게 평론할 것을 다짐하며,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용함으로써 건전한 여론 형성에 기여할 것을 결의한다.”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개인이 단위가 개인인 것이다.
당시 장기의획의 영국시민혁명은 근대 문명을 처리할 수 없는 왕조의 지도력에 문제가 생겼다. 찰스 1세(King Charles I)는 권력을 유지하고, 시민 평화를 유지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조세문제, 병역문제, 군사전략 등은 조정할 수 있는 능력 자체를 결하고 있었다.(R.P.Kraynak 1982/1993: 813) 내전은 예상된 일이었다. 홉스는 변증법의 논리로 모든 의견에 숨기고 있는 지식인의 숨겨진 야망·동기를 폭로했다.
종교적 갈등이 혁명으로 번지는 상황이었는데, Aposltes 사도의 지혜(wisdom), 겸손(humility), 성실성(sincerity), 덕(virtus) 등 기독교인의 자유 자체에 대한 논의였다. 물론 여기서 논하는 자유는 자발적 믿음이지, 강제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지켜지기 위해서 축출의 과정도 존재한다. 강한 의무감으로 지켜지지 않았으면 혁명의 과정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언론의 자유뿐만 아니라, 시민의 평화, 국민 행복 그리고 common wealth는 멀어지게 된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이단의 축출 같은 과정이 없다면 실체가 없는 말의 성찬 일뿐이다. 하나의 규약을 정하고, 그리고 그것을 어기고, 다른 것을 만들고, 그리고 정반합으로 세 번째 규율을 만든다. A와 B 사이에 계약 관계가 윤리에 바탕으로 하지 않고, 추상적이며, 이성과 합리성의 요구되는 C라는 ‘제3 수혜자 계약’을 가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기서 제3 수혜자 계약은 de jure의 논리성, 추상성, 이성 등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3·1, 4·19, 4·3, 5·18 등 사건을 방송법, 헌법전문 등에 게재될 수 없다. 이는 특수 이익의 카르텔, 혹은 ‘지적 허영심’이 개입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방송법의 논리는 퍽 이상적이다. 방송법 제4조(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 “①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 ②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 ③방송사업자는 방송편성책임자를 선임하고, 그 성명을 방송시간 내에 매일 1회 이상 공표하여야 하며, 방송편성책임자의 자율적인 방송편성을 보장하여야 한다. ④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자는 방송프로그램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공표하여야 한다.”
그러나 MBC 정상화 위원회는 2018년 1월 노사공동으로 ‘이명박·박근혜정부 10년에서 쌓은 ’적폐청산‘을 시도했다. 그리고 진실과 미래위원회(진미위)가 점령군이 되어 설쳤다. 그러나 그 잣대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의 제7조(방송의 공적책임) ① 방송은 국민이 필요로 하고 관심을 갖는 내용을 다룸으로써 공적매체로서의 본분을 다하여야 한다. ② 방송은 국민의 윤리의식과 건전한 정서를 해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③ 방송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유지하는데 이바지하여야 한다. <개정 2014.1.9.>”라는 규정이 합당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패거리’ 방송에서는 절대로 실현될 수 없는 방송법 정신이다. 또한 김대중 정부 때 언론개혁은 정부가 앞서 언론인 숙청을 단행하고, 자신의 코드를 심었다. 언개련의 언론개혁은 ‘홍위병’ 수준의 역할을 했다. 방송법 어디에도 ‘민중민주주의’, 포퓰리즘의 논리를 적용시킬 수 없게 되어있다. de facto 없는 de jure는 목적이 없고, de jure 없는 de facto는 방향감각을 상실하기 일쑤이다.
더욱이 언개련의 신문개혁·방송개혁이 중국 공산당 그리고 북한 노동당의 방송원리를 갖고 오지 않았는지 의심을 하고 할 수 있다. 그게 시민단체 언개련의 ‘언론개혁’ 문제이다.
보도를 하는 방송인의 관점에서 볼 때 방송법 제6조(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①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②방송은 성별ㆍ연령ㆍ직업ㆍ종교ㆍ신념ㆍ계층ㆍ지역ㆍ인종등을 이유로 방송편성에 차별을 두어서는 아니 된다. 다만, 종교의 선교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자가 그 방송분야의 범위 안에서 방송을 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③방송은 국민의 윤리적ㆍ정서적 감정을 존중하여야 하며, 국민의 기본권 옹호 및 국제친선의 증진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④방송은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보호ㆍ신장하여야 한다. ⑤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⑥방송은 지역사회의 균형 있는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문재인 당시 방송운용 논리는 간단하다. 코드에 맞으면, 공정성 방송이고, 코드가 틀리면 왜곡방송의 논리이다. 당파성의 논리에 따라 ‘적폐청산’의 도구를 사용했다면 문제가 있다. MBC는 정파성 간의 싸움이 지나치고, 방송의 정치화는 일상화되었다. 공영방송은 안에서 정권의 입맛에 따라 부역자·나팔수 역할을 하고, 그 청구서에 따라 사장 임명을 하고, 정파 방송을 계속했다. ‘관여’와 보험이 작동되었고, 청구서를 청와대에 제출한다. 그 사이 공영방송의 자유와 독립정신은 공염불이 되었다. 국민의힘에서 ‘1공영, 다민영’이라는 6·3 대선의 공약도 문재인 때 방송 현실을 감안하여 나온 선거공약임이 틀림이 없다.
한편 시민혁명의 영국의 장기의회는 종교적 갈등에서 시민혁명으로 불이 번졌다. 그 과정의 모순으로 모든 신의 말씀이 얽히게 된다. 그러나 성공회는 비교적 장로교와 독립파와는 달리 엄격성을 유지했다. 포퓰리즘으로 이런 기독교의 자유를 지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홉스는 일탈의 과정을 혁명으로 간주하면서, 장기의획의 문제를 풀어갔다. 홉스는 계약을 신약(神約)으로 간주하고 풀이를 했다.
비히머스는 찰스 2세 왕정 복고의 현실화를 위해 작성했다. 찰스 1세의 같은 언어의 분석을 계속했다.(M. Hartman, 1986/1993: 83) 그의 혁명은 제도화해서 질서의 commonwealth를 만드는 것이고, 시민의 평화(civil peace)를 가져오는 방법이었다. 즉, 홉스의 혁명관은 질서를 혁명으로 간주한 것이다.
처음은 Leivathan으로 1651년에 관심을 둔 것이어서, 분석과 종합을 중심으로 다뤘지만,
비히머스의 1679년 작품은 허영심(vainglory)의 선동 현실을 직시하고, 질서의 관심을 더욱 보강했다. 그는 기존의 것을 품은 상태에서 혁명론을 폈다. 그의 혁명은 ①정부의 불안정, 정부의 형태의 변화, ② 신의 운명이 사건을 일으킨다. 신이 역사에서 개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③정치적 혁명의 개념이다. 왕조가 바뀌는 것이다. 17세기의 정치적 혁명, 천문학적 혁명으로 설명한다.
자연과학으로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찰스 2세 왕조의 복권이다. 그리고 정부의 난맥상이다. 정치적 책무가 다르게 나타난다. 왕이 신중하지 못하니, 왕의 귄위가 무너졌고, 귀족들은 특수 카르텔 사회를 형성코자 했다. 시민은 20년간의 시민혁명으로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돌고 돌아 결국 Copernicus, Kepler, Galileo 등 과학혁명의 방법이 적용되는 신세가 되었다. 프랑스의 죽이고, 살리고 하는 혁명이 아니라, 영국 ‘장기의회’는 문명을 수용하지만 전통을 고수하는 기독교적 초심의 혁명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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