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가 무릎 관절 사이로 밀고 들어 옵니다.
창밖에는 봄비가 소리 없이 거리를 적시고 피로에 지친 몸은 조용하게 창문을 스치는 봄비를 바라봅니다.
몸은 몹시 지쳤지만 마음은 개운합니다.
뭔가 큰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처럼 그렇게 편안하게 좌석버스에 몸을 깊게 묻고 기분 좋게 밀려오는 피로감을 온 몸으로 느끼며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궁궐 지킴이를 하겠노라고 시작한 실습기간동안 가슴의 열망에 비해 몸이 따라주지 않아 덕수궁에 가는 날은 아침마다 에구구를 연발하면서 어떻하면 좀 편하게 넘어갈까 하며 눈치를 살피는 나날이였습니다.
토요일 하루 집에서 푹쉬고 싶은 유혹에 빠질때마다
'내가 욕심이 과했지'
하며 자신의 욕심을 탓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욕심만 앞서는 내가 또 다른 욕심을 냈습니다.
'어린이 궁궐학교'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해 눈 앞에 닥친 많은 문제를 생각도 안하고 덜컥하겠다고 나선것입니다.
시작부터 무리였음이 드러나는 많은 사건들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맡은 일이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이번 한번만 욕심을 낸 일이니 마무리 짓자 하는 맘으로 하루하루 모임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하루하루 힘이 들어 질수록 묘한 유혹의 손길이 나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궐지킴이의 얼굴이 하나씩 그려 질때마다 놀랍게도 다른 지킴이들은 나보다도 더 바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저들을 미치게 만드는 것일까?
왜, 저 사람들은 그 바쁜 시간 쪼개어 쓰면서도 이 궁궐지킴이가 되기를 그토록 열망하는 것일까?
나이를 잊은 듯이 웃고, 배우는 눈길에 열기가 올라오고, 무거운 몸을 하고도 두 다리 씩씩하게 걷고 가르치고......묻고, 정말로 정성껏 대답해 주고.....
저는 그 모습을 통해,
누군가의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망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는 에너지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살아있는 에너지임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킴이를 지켜주는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는 것도......
저는 인간이 가장 아름다울때는 열정을 가지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갈때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어린이 궁궐학교 선생님들의 모습은 그 모습이였습니다.
그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열정적으로 나는 잘 살고 있노라고 자부하던 가슴에 부끄러움의 자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몸이 힘들다고 슬며시 넘어가고 싶어 했던 자신이 우습게 보였습니다.
아-----,
얼마만에 가져보는 신선한 충격인가......
늘 자극을 주고 나를 일깨워 주던 주체는 책이 대부분이였는데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그것도 나보다 나이가 더 드신 분들의 열정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껴 본 것이........,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만나는 가는 너무 중요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으로 너머가는 문이 되기도 하고,
절망의 언덕이 되기도 하고,
가슴에 소망의 불씨를 당기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 선생님들과의 만남은 나를 되돌아 보고,
나를 자극하며 게을려 지려는 자신을 추스릴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의 만남도 좋았습니다.
고분고분 초롱한 눈망울로 지켜보던 여자 아이들,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한 남자아이들,
거만하고, 자기 중심적 사고의 틀을 가져 나의 마음을 걱정스럽게 만들던 아이.....
4일 짧은 시간이였지만 그 아이들 하나하나의 눈망울은 남아 있습니다.
엄마의 성화에 못이겨 많은 학원을 다녀야 하는 도심의 퍽퍽한 아이들에게 나는 이 자리에서 무엇을 줄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곳조차도 엄마가 가라고 해서 왔노라고 나는 정말 오기 싫었는데 엄마 때문에 왔다며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제일 좋다는 한 아이는 끝내 설명 듣기를 즐겨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교육이라 할지라도 아이의 가슴에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는 소망이 없다면 그것은 그 아이를 구속하는 또 다른 족쇄일뿐입니다.
그 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가슴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고민하며 보려고 노력해 본적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습니다.
학원에 보내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엄마들.....
그 엄마들은 결국 아이들을 학원을 통해 학대하는 수준까지 오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위한다는 일방적인 생각으로 과연 아이의 시간을 무조건 빼앗는 것은 타당한 것일까 .......
저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가끔씩 그 문제를 놓고 고민합니다.
아이들도 놀 시간이 필요하고, 혼자 있을 시간도 필요하고, 친구를 만나 자신들의 세계에 빠질 시간도 필요합니다.
아니,
아이들은 놀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어른이 될 수 있는 힘이 나오기에 더욷더 놀아야 합니다.
저는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궁궐학교도 재미있는 학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간사님께서 추진하신 새로운 방법속에 그 해결의 실마리를 보았습니다.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닌,
아이가 손과, 눈, 가슴, 촉감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게임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
그래서 아이들의 가슴에 각인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
이 다음에 어른이 되었을 때 궁궐학교를 생각하면 가슴에 무지개가 뜨듯 소리없는 미소를 짓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나오길 소망해 봅니다.
고정관념에 젖어 있는 사고가 아닌,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우리들만의 독특한 방법을 찾아 갈 수 있는 길은 이번 선생님들의 열정을 통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고생하신 선생님들, 간사님들 모두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것 물어 볼때마다 정말 정성껏 대답해준 조명옥 선생님 정말 무거운 몸 이끌고 너무 수고 하셨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옥화 선생님, 아이와 같은 웃음 그 웃음이 제 가슴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궁궐지킴이가 힘들다고 느껴질때마다 꺼내서 보겠습니다. 아마도 힘이 될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짝지 박경숙 선생님 차분하고 조용조용 설명하시는 모습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부족해 불편했다면 너그럽게 봐 주세요.
모두 모두 만나서 반가웠고, 행복했습니다.
내일은 덕수궁 담당이라 나갑니다.
몸은 한달동안 해 온 기침 때문에 많이 지쳐 있는데 나가겠고 하는거 보면 저도 조금씩 궁궐에 미쳐가고 있나 봅니다.
포경수술을 한 아들을 한번도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하고 친구 엄마와 다니게 한 죄로 한주일 내내
'미안해, 미안해'
를 연발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괜찮다며 넉넉하게 받아 주어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엄마 기침약이라고 콩나물 대가리 따고 꿀에 절인 그릇을 내밀며 먹으라는 9살난 딸아이에게 해 줄 말은
"고마워! 예진아"
밖에 없었습니다.
저녁마다 저녁 설거지, 청소를 맡아 해 주면서도 끝까지 잘하라고 말해주는 남편도 감사합니다.
오늘 일기라면서 써 가지고 온 딸아이의 일기는 저의 마음을 무겁게 해줍니다.
제목 : 엄마 없는 날
오늘은 엄마가 없다. 궁궐학교에 갔다.
오늘만은 엄마랑 다정히 손잡고 있는 애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엄마가 없어서 이런 생각도 해 봤다.
점심을 안 먹고 쓰러져서 엄마가 내 곁에 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도 이루지 못한다. 언젠가는 엄라가 못가게 꼭 막을 거다.-이예진-
예진이의 일기장을 한참 바라 보고 있었습니다.
유난히 엄마를 탐하는 아이, 그래서 때때로 학교도 가기 싫은 아이, 잠을 잘 때도 엄마의 가슴에 코를 박아야 잘 수 있는 아이 그래서 저녁마다 아빠랑 치열하게 다투는 나의 딸이 이번 한 주에 엄마가 4번씩이나 집에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거기에다 내일 또 나간다고 하니 항의 하려고 써온 일기였습니다.
슬며시 웃으며 생각합니다.
예진이가 조금 더 자라면 엄마가 내일 궁궐에 나간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겠지..........
조금 자란 재호는 엄마를 넉넉하게 보내 줍니다.
그리고 제가 돌아올 시간에는 집도 치워 놓고 동생 꼬셔서 춤고 추고, 좋은 음악도 틀어 놓고 저를 기다립니다.
내일도 재호가 예진이를 꼬실것입니다.
그러면 예진이는 슬며시 너머가고 제가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엄마를 맞이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한다고 분주해 질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그렇게 궁궐에 나가게 될 것입니다.
*아참 빼먹은 이야기가 있네요.
아슬아슬 너머가는 저에게 끝까지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신 안미애 선생님 너무 고마웠어요.
힘들어할 때마다 힘이 되었습니다.
같은 동기라는 것에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