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6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5-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5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고통 중에 기도합니다.
사람에게 견딜 수 없는 것이 참 많기도 합니다. 배고픈 것도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때에 굶어 죽은 사람들이 300만 명이나 된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힘든 것이 굶어 죽는 일인지 굶어 본 사람만이 아는 고통입니다. 병들어 아픈 고통은 정말 참기 힘든 고통입니다. 협심증으로 고생할 때 가슴에 오는 통증은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그리고 암으로 투병할 때 한 여름에도 겨울처럼 춥고 한전이 나고 온몸이 쑤시고 아픈데 정말 미칠 지경이었고, 수술하고 나서 수술 부위가 아픈 것은 또한 죽을 만큼 아파서 차라리 죽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아픈 걸 무엇 때문에 수술했는지 원망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걸 참아내는 것도 보속이라고 생각하고 참아 내면서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오기가 솟아오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 육체적인 고통은 오기로 참을만합니다. 그러나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은 마음의 고통입니다. 경제적으로 받는 고통이나 정신적으로 받는 고통은 정말 참기 힘듭니다. 그래서 찾아오는 불면증은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을 줍니다. 여러 가지로 괴로워 어떤 때는 문을 걸어 잠그고 극단적인 생각과 싸우느라고 몸부림도 쳐보고, 대성통곡도 해보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쳐다보고 원망도 하고, 하소연도 하면서 울기도 하고, 가슴을 두드리며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어 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매달리며 기도합니다. “주님, 제발 이 고통에서 저를 살려 주십시오. 이 고통을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정말 너무 견디기 힘이 듭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십자가보다 가볍다고 말씀하시고 당신은 온유하고 겸손하시니 당신께 배우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당신이 아닙니다. 당신을 닮을 수 없는 아주 미천하고 평범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 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침묵하시는 때가 더 많습니다. 침묵 속에서 은총을 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고, 성령을 주시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것을 기다릴 줄 모르고, 어린아이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보챌 줄밖에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죄를 많이 지어 그 죄 갚음을 하는 것이라면 아무런 할 말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비의 주님께서는 그 모든 죄를 덮어주시고 그 위에 은총을 주신다는 것을 약삭빠르게 미리 알고 있는 우리는 얄밉게도 무턱대고 살려주실 것만 조르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낫게 하시고, 성령으로 우리를 치유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인내의 은사를 내려 주시고 용기를 주십니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미처 주의를 기울이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성령의 은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은사에는 우리의 타고난 재능이나 달란트도 속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혜의 말씀”을 은사로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 머리가 총명하고 지식이 많으며, 말씀과 진리를 논리적으로 잘 이해하고 가르친다면, 그리고 그 지식으로 인류를 위해 봉사한다면, 그 사람은 성령의 은사인 “지식의 말씀”을 받기도 한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것도 성령의 은사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천성적으로 의심이 많고 부정적이라서, 잘 믿어지지 않거나 믿음이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마음이 단순하고 긍정적이고 믿음이 좋고 강해서 하느님의 약속과 말씀과 진리를 금방 어려움 없이 잘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성령의 은사인 “믿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 외에 섬기는 일, 남을 돌보는 일, 자비와 불쌍히 여겨 사랑을 베푸는 일도 훌륭한 성령의 은사입니다. 대접을 잘하거나, 남을 섬기는 일, 또 다른 사람들을 잘 위로하거나, 친절과 사랑을 베푸는 은사도 하늘로부터 받아야 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나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고통에서 참고 견디며 하느님의 사랑을 잃지 않는 것도 성령의 은사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굳건하게 가지며 고통 중에도 하느님의 자녀로 사랑 속에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비록 고통과 어려움 속에 있지만 그 속에서도 성령께서 은총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넋두리는 맘껏 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버릇이 돼서는 안 되겠지만 하느님의 자녀니까 그런 넋두리나 푸념은 가끔 털어놓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속이 좀 편안해 집니다. 그것도 몰라주시는 하느님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3,1-5
1 아, 어리석은 갈라티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모습으로
여러분 눈앞에 생생히 새겨져 있는데, 누가 여러분을 호렸단 말입니까?
2 나는 여러분에게서 이 한 가지만은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으로 마칠 셈입니까?
4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이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참으로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5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에서 기적을 이루시는 분께서,
율법에 따른 여러분의 행위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기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축일10월 6일 성녀 마리아 프란치스카 (Mary Francisca)
신분 : 동정녀, 3회원
활동 지역 : 나폴리(Napoli)
활동 연도 : 1715-1791년
같은 이름 : 메리, 미르얌, 미리암, 방지가, 프란체스카, 프란치스카, 프랜시스
성녀 마리아 프란치스카(Maria Francisca)는 안나 마리아 로사 니콜레타 갈로(Anna Maria Rosa Nicoletta Gallo)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16세 때에 부친이 어느 집안의 자제와 혼인하도록 강요하였으나 자신은 이미 하느님만 사랑하기로 결심한 후라며 거절하였다. 그러자 그녀의 부친은 그녀를 방안에 가두고 빵과 물만 주는 등 갖은 학대를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도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한 단계로 받아들이며 인내하였고, 어머니가 그녀를 설득하려 하자 자신은 작은 형제회 3회 회원이 되겠다는 뜻만 밝혔다. 결국 그녀는 1731년 9월 8일 작은 형제회의 3회원이 되었다.
성녀 마리아 프란치스카의 주요 신심은 주님의 수난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녀는 그 후 38년 동안이나 교구사제인 요한 페시리의 사제관에서 일하였다. 이때 그녀는 신비스런 현상들이 몸에서 일어남을 감지하기 시작했는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거나 사순절의 금요일이 되면 예수님의 수난에 버금가는 고통을 앓기 시작하였다. 즉 게세마니(Gethsemane) 동산의 번뇌, 매 맞음, 가시관을 쓰심, 모욕, 침 뱉음, 죽음에 이르는 고통 등이었다. 사실 그녀는 오상 성흔을 이미 받았던 것이다.
이외에도 그녀에게는 더 많은 신체적인 고통이 따랐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자발적인 고행까지 행하였다. 한 번은 연옥 영혼들의 고통을 체험하였다고 한다. 성녀 마리아 프란치스카는 프랑스 혁명 초기까지 살았다. 그녀는 이 혁명의 무서움을 미리 예언하였다. 성녀의 유해는 나폴리의 산타 루치아 델 몬테(Santa Lucia del Monte) 성당에 모셔졌다. 그녀는 1843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67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시성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마리아 프란치스카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