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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중지락(橘中之樂)
감귤 열매 속에서 나누는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바둑을 두는 즐거움을 이르는 말이다.
橘 : 귤 귤(木/12)
中 : 가운데 중(丨/3)
之 : 갈 지(丿/3)
樂 : 즐길 락(木/12)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은 바둑판 위 361개의 교차점에 흑백의 돌로 기력을 겨루면서 그 안에 우주의 무한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스케일이 크고 수가 무궁무진하다는 이야기다. 머리를 쓰는 최고의 스포츠라고 애호가들이 자부하기도 한다.
고대 중국의 요순(堯舜) 성왕이 각기 아들 단주(丹朱)와 상균(商均)을 바로잡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바둑은 그 역사만큼 다양한 이름에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한자로 棋(기), 碁(기)로 나타내고 奕(혁), 奕棋(혁기), 圍棋(위기)란 별칭이 있다. 흑돌, 백돌을 까마귀와 백로에 비유하여 오로(烏鷺), 손으로 의사를 통한다고 수담(手談), 마주 앉아 은둔의 경지에 들 수 있다고 좌은(坐隱)이라고도 한다.
바둑 두는 재미를 감귤나무 열매와 관련지은 말도 다수다. 감귤 열매 속(橘中)에서 나누는 즐거움(之樂)이 대표인데 당(唐)나라의 우승유(牛僧孺)가 지은 전기소설 '현괴록(玄怪錄)'에 실려 전한다.
옛날 파공(巴邛) 지방에 감귤농사를 짓는 농부가 있었다. 어느 해 유난히 큰 귤 두 개가 매달려 있는 것을 쪼개 보니 각각 두 쌍의 노인이 바둑판을 놓고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한 노인이 농부에 질책한다. "귤 속의 재미는 상산사호에 뒤지지 않는 즐거움인데(橘中之樂 不減商山), 뿌리가 튼튼하지 못해 뽑히고 말았구나(但不得深根固蒂 爲摘下耳)."
눈썹도 수염도 새하얀 네 노인은 한(漢)나라 상산(商山)에 살던 4명의 은자를 말한다.
여기서 나온 귤과 관련된 바둑의 즐거움은 귤중옹(橘中翁), 귤중이로(橘中二老), 귤중진락(橘中眞樂) 등으로도 불리는데 판이 깨진 노인들은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는 이야기다.
신선처럼 아무 걱정이나 근심 없이 평안하게 즐긴다고 바둑을 신선놀음이라고 해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도 있다.
또 다른 전설이 양(梁)나라 임방(任昉)의 '술이기(述異記)'에 실려 있다.
진(晉)나라 때 왕질(王質)이란 나무꾼이 평소 가보지 못한 산으로 들어갔다가 두 동자가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게 되었다.
한 동자가 준 환약을 먹고 배고픈 줄 모르고 빠져 있는데 도끼자루가 썩었다고 알려줘 정신 차리고 집으로 오니 증조부의 제삿날이라 했다. 신선인 동자의 바둑 구경에 많은 세월이 흘렀던 것이다. 썩은 도끼자루 난가(爛柯)의 전설이다.
바둑을 모두 찬미한 것은 아니다. 맹자(孟子)는 박혁호음주(博奕好飮酒)라 하여 장기나 바둑 같은 노름에 빠지고 음주를 즐기는 것은 불효라 했다.
바둑으로 망친 사람의 대표로는 백제(百濟)의 개로왕(蓋鹵王)을 든다. 바둑 도사 도림(道琳)이란 고구려(高句麗) 첩자와 바둑을 즐기다 적의 침입도 몰랐다는 이야기다.
신선놀음이란 말대로 바둑을 두는 사람이나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이나 시간 가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경계하라는 말이겠다. 어디에서나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이다.
바둑의 아칭(雅稱)
귤중지락(橘中之樂)과 신선놀음 난가(爛柯)
바둑을 일컫는 여러 별칭(別稱) 중에, 귤중지락(橘中之樂)과 난가(爛柯)라는 아칭(雅稱)이 있다. 이솝우화 같은, 어쩌면 신화 같은 전설에서 유래된 말이다.
귤중지락과 상산사호(商山四皓)
중국 내륙 쪽 깊숙이 들어앉은 파촉(巴蜀)지방의 어느 농가 울타리에 수 백 년 묵은 커다란 감귤나무가 있었는데, 어느 해 유난히 큰 귤 한 개가 매달려 있어 그 집주인이 한여름 동안 조심스럽게 잘 가꾸었더니 세말 들이 단지만큼이나 크게 자랐다.
대대로 착하게 살아왔던 이 집 식구들은 필시 무슨 길조일 것으로 짐작하고 다 익었을 때 조심스럽게 큰 귤을 반으로 쪼개니 이게 웬일인가. 귤 속에는 좌우 두 쌍의 노인 네 사람이 두 틀의 바둑판을 놓고 오로(烏鷺) 삼매경에 흠뻑 빠져 있다.
오히려 큰 귤을 갈라놓아 신선놀음의 무르익은 경지를 깨뜨려 버린 것을 심히 질책하면서 땅으로 껑충 뛰어내리더니 별안간 분출하는 샘물의 안개 속에 하안 용(龍)으로 돌변하여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일은 과연 이들 네 노인들이 누구였느냐는 의문이었는데, 후세 사람들이 그 유명한 상산사호(商山四皓)라고 주석을 붙였다는 것이다.
상산(商山)은 중국 섬서성 상현(陝西省商縣) 동쪽에 위치한 명산의 이름이다. 어지러운 난세를 피하여 숨어 살기에 알맞은 험준한 산이다.
진(秦)나라 말기 정치가 혼란하고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에 상산 깊숙이 은둔하여 바둑 두는 일로 낙을 삼던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록리선생(록里先生) 등이다.
네 사람이 모두 머리카락, 수염, 눈썹이 하얗게 신 백발노인이었으므로 이들을 가리켜 '상산사호'라 불렀는데, 진나라가 멸망하고 한고조(漢高祖)가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리게 되어 이들 원로를 중용하려고 했으나 끝내 고사한 채 여전히 깊은 산 중에서 바둑으로 소일 하며 난세를 피하여 숨어 살았다.
간혹 나무꾼이 나무하러 입산했다가 풍신 좋은 백발노인 네 사람이 나무 그늘 아래 넓은 바위에 둘러앉아 바둑 두는 광경을 보고 돌아와서 그들의 고상한 이야기를 전했을 뿐이었다.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설따라 삼천리'류의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로, 또는 귤처럼 작은 공간에서도 서로 마주 앉아 바둑만 둘 수 있다면 모든 세상사를 잊고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듯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귤 속인가? 왜 귤 속에서 만의 즐거움인가? 어쩌면, 제비가 물어다 준 흥부의 박 이야기와 혹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왜 두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도 아닌 네 사람의 백발 노인인가? 왜 한 틀도 아닌 두 틀의 바둑판인가?
난가(爛柯)의 전설(傳說)
중국의 '술이기(述異記)'에 따르면, 중국 진(晋)나라 때 석강(淅江) 상류인 구주의 석실산(石室山) 아랫마을에 왕질(王質)이라는 나무꾼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평소에 가보지 못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두 동자(童子)가 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왕질이 재미가 나서 옆에 앉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구경을 하고 있으려니, 한 동자가 주머니에서 귤 비슷한 것을 꺼내주면서 먹으라고 하였다.
왕질은 그것을 받아먹고 나니 배고픈 줄 모르고 바둑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맛있는 열매였다. 바둑이 한판 끝나자 한 동자가 도끼자루를 가리키며 자루가 썩었다고 하였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왕질은 그제서야 자루 없는 도끼를 들고 황급히 마을로 내려와 보니 전에 살던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그의 집을 들락거리고 있었으며 집 안에서는 제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였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물어 보았더니 이 집 주인의 증조부인 왕질이라는 사람이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아 이 날을 제삿날로 삼았다고 하였다.
두 동자는 신선이어서 바둑 한판 두는 데 수 백 년의 세월이 흘렀던 것이다. 이렇듯 왕질의 전설에서 유래한 난가는 그 후 바둑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흔히 어떤 재미있는 일에 몰두하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 는 것을 일컬어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한다. 이때 신선놀음이란 바둑을 뜻한다.
그 신선들이 바둑을 둔 산을 난가산(爛柯山)이라 하였고, 왕질이 본 신선들이 둔 바둑을 기록한 '난가도(爛柯圖)'가 송(宋)나라 기사인 이일민(李逸民)이 지은 '망우청락당집(忘憂淸樂堂集)'에 수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한다.
이 이야기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유래된 설화로, 많은 사람들이 속담처럼 바둑은 도끼자루가 썩는 줄도 모르고 구경할 만큼 재미있다는 점을 과장한 이야기 정도로 알고 있다.
정말 단순히 재미만을 강조하기 위한 전설일까? 그렇다면, 평범한 나무꾼이 바둑 한판 두는 데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는 신선들의 바둑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를 만큼 재미를 느낄 정도로, 그 바둑 수들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신선들의 바둑 한 판은 왜 수 백 년의 시간이 걸리는 걸까? 혹 파라다이스를 상징하는 무릉도원(武陵挑園)의 이야기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바둑은 우주의 보편적 운행 법칙을 밝히는 놀이 도구다'는 가설에서 위의 두 전설을 재조명 해보자.
먼저 귤중지락을 살펴보자. 왜 귤인가? 바둑판이 바로 귤 모양이다. 귤 속은 수많은 알갱이를 감싼 조각 덩어리가 8개에서 10개로 평균 9개가 있는데 간혹 7개와 11개짜리도 보이지만 평균 9개엔 변함이 없다.
또한 9개가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인다. 이것은 바로 바둑판의 9궁을 나타낸다. 따라서 바둑판은 귤 속 같은 무한한 우주 공간을 나타낸다.
태양계와 그 밖에 무수한 은하계가 있는 우주 공간을, 그 무엇이 귤 속만큼 흡사하게 비유할 수 있겠는가. 두 틀의 바둑판은 귤을 반으로 자르면 두 틀의 바둑판이 되는 이치이다.
또한 네 명의 노인은 당연히 두 틀의 바둑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귤 하나가 이미 우주 공간을 나타내는 하나의 바둑판일 수도 있다. 그러나 天元과 변 그리고 귀의 특수성이 있는 바둑판의 특성상 귤을 반으로 자른 두 틀의 바둑판이 이치에 맞는 것 같다. 원을 방으로 나타낸 이치이다.
이야기 전개상, 바둑판 한 틀이나 두 틀이나 아무 상관이 없는데 왜 굳이 두 틀이겠는가. 또한 두 틀의 바둑판을 강조하기 위해 4명의 노인을 등장시켜야만 했을 것이다. 구경하는 사람이 없으니 조금은 어색하지 않는가. '상산사호' 이야기는 후에 네 명의 노인 어쩌면 신선을 상산사호로 각색한 듯하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유구한 동양 철학의 핵심인 '물아일여(物我一如)' 사상, 더 나아가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천부경'의 중심사상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 바로 그 것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사람 중에 천지가 하나이다' 라는 뜻이다. 따라서 바둑은 '물아일여'을 이루기 위한 정신 수양 도구임을 은연중에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귤 속의 즐거움, 바둑 삼매경이 바로 이런것이 아니겠는가!
좀 억지스럽긴 해도, '흥부와 놀부' 작가가 여기서 모티브를 받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흥부처럼 착하게 살며 정신 수양을 쌓으면, 이미 박 속(자신의 마음 속)에 금은보화가 가득 쌓이는 복을 받는 게 아닐까.
다음은 난가의 전설을 살펴보자.
귤중지락이 우주의 공간적 개념을 설명했다면, 난가는 우주의 시간적 개념을 강조한 전설이다. 지구의 하루와 태양계의 하루 그리고 은하계의 하루는 각각 다르다. 각각의 바둑 한 판은 담는 시간이 다르다.
어느 바둑 한 판은 무한한 우주를 담은 한 판이고, 어느 한 판은 하루살이의 한 판을 담은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 사람의 수양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아울러 평범한 나무꾼과 동자가 등장하는 것은 바둑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그 수양 정도에 따라 수백 년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이 요즘은 속세를 잊을 만큼 경치 좋은 곳으로 많이 퇴색되었다. 무릉도원은 이쪽 바깥세상과 다른 시간을 사는 곳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그리고 유토피아 같은 이상향을 뜻하는 말이다.
난가의 전설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 바둑의 수양 정도에 따라 시간을 초월한 '물아일여'의 인간 이상향을 도연명이 무릉도원으로 각색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의 두 전설을 '바둑은 천부경 풀이를 돕기 위한 놀이 도구다'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그렇게 황당한 이야기만은 아니며 보다 실질적인 가르침이 있는 이야기다.
'우주'라는 말에 시간과 공간을 나타내 듯, 불가에서 가르치는 "가장 큰 것은 가장 작은 것과 같고, 영원은 찰나와 같다'는 시공관이 바둑 한 판에 있음을 가르치고 있는 전설이다.
▶️ 橘(귤 귤)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木(목;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矞(율, 귤)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橘(귤)은 귤나무의 열매. 동글납작한 액과(液果)로 물이 많고, 맛은 시면서도 달콤 쌉쌀함. 껍질은 등황색(橙黃色). 껍질을 벗겨 살을 먹거나 쥬스나 향료(香料) 따위에 쓰고, 껍질은 말려서 약에 씀. 감귤(柑橘). 귤포. 밀감. 오렌지 등의 뜻으로 ①귤 ②귤나무 ③달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귤 감(柑)이다. 용례로는 귤나무의 잎을 귤엽(橘葉), 귤과 유자를 귤유(橘柚), 귤 속을 까서 넣거나 또는 귤껍질을 썰어 넣고 빚은 술을 귤주(橘酒), 귤의 껍질을 귤피(橘皮), 귤피의 안쪽에 있는 흰 부분을 벗겨낸 껍질을 귤홍(橘紅), 귤나무의 꽃을 귤화(橘花), 의사나 의원을 달리 이르는 말을 귤정(橘井), 귤이나 밀감의 총칭을 감귤(柑橘), 아직 익지 아니한 푸른 귤을 청귤(靑橘), 탱자나무를 구귤(枸橘), 귤을 품속에 품는다는 뜻으로 지극한 효성을 이르는 말을 회귤(懷橘), 바둑을 두는 즐거움을 이르는 말을 귤중지락(橘中之樂),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사람도 환경에 따라 기질이 변한다는 말을 귤화위지(橘化爲枳) 남쪽 땅의 귤나무를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 나무로 변한다는 뜻으로 사람도 그 처해 있는 곳에 따라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됨을 이르는 말을 남귤북지(南橘北枳) 등에 쓰인다.
▶️ 中(가운데 중)은 ❶지사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물의 한가운데를 상하로 통하는 세로 금으로 중심, 중앙을 뜻함과 형제를 위로부터 차례로 伯(백), 仲(중), 叔(숙), 季(계)라고 일컬을 때의 仲(중)으로서 쓰인 것이다. 또는 깃대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❷상형문자로 中자는 '가운데'나 '속', '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이전에는 中자가 무언가를 꿰뚫는 모습을 그렸던 것으로 해석했었다. 그러나 갑골문이 발견된 이후에는 이것이 군 진영에 깃발을 꽂아놓은 모습을 그려졌던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中자는 진지 중앙에 펄럭이는 깃발을 그린 것으로 '가운데'나 '중앙'을 뜻하고 있다. 中자가 '중앙'이라는 뜻으로 쓰이다 보니 때로는 '속'이나 '안', '마음'과 같은 사물의 중심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中(중)은 (1)일부 한자로 된 명사(名詞) 다음에 붙이어 그 명사의 뜻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과정임을 나타냄 (2)등급 같은 것을 上中下(大中小)로 구분할 경우 그 가운데 등급 중등(中等) (3)중국 (4)장기판에서 끝으로부터 둘째의 가로줄을 이르는 말 (5)마음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가운데 ②안, 속 ③사이 ④진행(進行) ⑤마음, 심중(心中) ⑥몸, 신체(身體) ⑦내장(內臟) ⑧중도(中途) ⑨절반(折半) ⑩장정(壯丁) ⑪관아의 장부, 안건(案件) ⑫가운데 등급 ⑬중매(仲媒), 중개(仲介) ⑭중국(中國) ⑮버금(으뜸의 바로 아래), 둘째, 다음 ⑯가운데에 있다 ⑰부합하다, 일치하다 ⑱맞다, 맞히다, 적중시키다 ⑲급제하다, 합격하다 ⑳해당하다, 응하다 ㉑뚫다 ㉒바르다, 곧다 ㉓가득 차다 ㉔이루다, 이루어지다 ㉕고르다, 고르게 하다 ㉖간격을 두다 ㉗해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바깥 외(外)이다. 용례로는 중도에서 끊어짐을 중단(中斷), 한가운데를 중심(中心), 사방의 중심이 되는 곳을 중앙(中央),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나 자리 중추(中樞), 일이 되어 가는 동안 중도(中途), 치우침이나 과부족이 없이 떳떳하며 알맞은 상태나 정도를 중용(中庸),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나 자리를 중추(中樞), 두 사물의 사이를 중간(中間), 일을 중도에서 그만 둠을 중지(中止), 중간에서 이어줌을 중계(中繼),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함을 중립(中立), 길을 가고 있는 동안 도중(途中), 하늘이나 하늘 가운데를 공중(空中), 마음 속을 심중(心中), 도시의 안을 시중(市中), 정신을 집중시킴을 열중(熱中), 눈의 안이나 마음속을 안중(眼中), 코의 밑과 윗입술 사이의 우묵한 곳을 인중(人中), 돌에 박힌 화살촉」이라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한 큰 힘이 나올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중석몰촉(中石沒鏃), 쏜 화살이 돌에 박힌다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한 큰 힘이 나올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중석몰시(中石沒矢), 터무니없는 말로 헐뜯거나 남을 해치려고 속임수를 써서 일을 꾸밈을 일컫는 말을 중상모략(中傷謀略), 일을 하다가 끝을 맺지 않고 중간에서 그만 둠을 일컫는 말을 중도이폐(中途而廢), 마음속의 욕망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외부의 사악을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중경외폐(中扃外閉), 중원의 사슴이라는 뜻으로 천자의 자리 또는 천자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중원지록(中原之鹿), 중립을 취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중립불의(中立不倚), 보통 사람은 감당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중인불승(中人弗勝), 마음속에 일정한 줏대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중무소주(中無所主), 덕성이 발라서 과불급이 없는 화평한 기상을 일컫는 말을 중화지기(中和之氣), 시작한 일을 완전히 끝내지 아니하고 중간에 흐지부지함을 일컫는 말을 중도반단(中途半斷)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
▶️ 樂(노래 악, 즐길 락/낙, 좋아할 요)은 ❶상형문자로 楽(락)의 본자(本字), 乐(락)은 간자(簡字)이다. 현악기를 본뜬 글자, 신을 모시는 춤을 출 때 손에 가지는 방울을 본뜬 글자, 북 따위의 타악기를 본뜬 글자 등의 유래가 존재한다.기본 음가는 악이고, 전주된 음가로 락과 요가 있다. 락은 주로 형용사로 사용될 때, 요는 좋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락이 두음법칙이 적용되면 낙으로 표기된다. ❷상형문자로 樂자는 '음악'이나 '즐겁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樂자는 본래 악기의 일종을 뜻했던 글자였다. 갑골문에 처음 등장한 樂자를 보면 木(나무 목)자에 絲(실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거문고처럼 실을 튕겨 소리를 내는 악기와 줄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白(흰 백)자가 더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줄을 튕길 때 사용하는 피크를 뜻하기 위해서였다. 또 음악을 들으면 즐거우므로 '즐겁다'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그래서 樂(악)의 경우는 ①노래, 음악(音樂) ②악기(樂器) ③연주하다 ④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등의 뜻이 있고, 樂(락/낙)의 경우는 ⓐ즐기다(락) ⓑ즐거워하다(락) ⓒ편안하다(락) ⓓ풍년(豐年)(락) ⓔ즐거움(락) 등의 뜻이 있고, 樂(요)의 경우는 ⓕ좋아하다(요) ⓖ바라다(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노래 가(歌), 노래 요(謠), 노래 구(謳)이다. 용례로는 인생을 즐겁게 여기거나 세상을 밝고 좋게 생각함을 낙관(樂觀), 아무런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을 낙원(樂園), 늘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을 낙토(樂土), 재미 붙일 만한 일을 낙사(樂事), 경기 등에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이기는 것을 낙승(樂勝), 세상이나 인생을 즐겁게 생각함을 낙천(樂天), 노래의 곡조를 악곡(樂曲), 음악 기구를 악기(樂器), 작곡에 관한 착상이나 구상을 악상(樂想), 음악에서 연주되는 음의 배열을 악보(樂譜), 노랫소리 또는 가락스런 소리를 악음(樂音), 음악을 연주하는 단체를 악단(樂團), 물을 좋아함을 요수(樂水), 산을 좋아함을 요산(樂山), 즐기기는 하나 음탕하지는 않게 한다는 뜻으로 즐거움의 도를 지나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낙이불음(樂而不淫), 즐거움도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말을 낙극애생(樂極哀生), 타향의 생활이 즐거워 고향 생각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낙이사촉(樂而思蜀), 즐거움은 언제나 걱정하는데서 나온다는 말을 낙생어우(樂生於憂), 안락은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을 낙시고인(樂是苦因), 천명을 깨달아 즐기면서 이에 순응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낙천지명(樂天知命), 즐겨서 시름을 잊는다는 뜻으로 도를 행하기를 즐거워하여 가난 따위의 근심을 잊는다는 말을 낙이망우(樂而忘憂),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쾌락 또는 향락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을 낙불사촉(樂不思蜀), 즐거움 속에 삶이 있다는 뜻을 나타냄을 일컫는 말을 낙중지생(樂中之生),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요차불피(樂此不疲),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산수 경치를 좋아함을 이르는 말을 요산요수(樂山樂水)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