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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의원은 적고 특혜는 넘치고…정치와 국회 혁명은 필수다박명림 교수
2023.04.06 21:58 입력 2023.04.07 00:44 수정
(5) 민주적 국회로 가는 필요충분 조건
한국에서 국회에 대한 비판의 한 초점은 국회의원들이 많은 특권을 갖고 있다는 데로 모아진다. 그래서 특권이 많은 그들의 숫자를 더 줄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접근이다. 만약 그들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면 숫자를 줄일 게 아니라 특권을 폐지하면 된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구성원의 숫자가 소수일 경우 특권을 누리기에 유리하다. 숫자가 많아지면 특권은 당연히 사라진다. 요컨대 국회의 권한과 규모는 키우고 국회의원들의 특권은 줄이면 된다(목하 논쟁 중인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은 제왕적 대통령제, 정치의 사법화와 형사화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폐지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는 검찰개혁 부분에서 상세히 살펴본다).
우리가 국회의 규모를 키워야 할 이유는 민주주의와 복지의 향상을 위해서라는 점은 이미 강조한 바다. 국회가 클수록 민주국가와 복지국가로 근접한다. 다른 또 하나의 화급한 이유는, 참담한 한국적 특수성인 지방의 완전 소멸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 문제는 혁명적 접근이 아니고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지방을 살리기 위한 혁명은 의회 구성의 혁명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곧 대표의 증대와 다양화다. 지방을 살리는 길은 더 많은 대표가 지방의 목소리를 중앙정부에 반영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국회의원 정수 확대는 중앙정부에서 대통령과 의회, 집행부와 입법부의 권력을 민주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지방을 살리기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수다. 지금까지 우리는 의회 구성에서 오직 인구대표만을 고수해왔다. 물론 그조차도 불비례적·비등가적·비대의적 반쪽짜리였다. 결과는 지방의 대붕괴였다. 우리는 지방자치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를 하고 있다. 지방자치를 중앙과 지방의 권한과 자원 배분의 문제로만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국회의원 정수 확대와 양원제는
지방의 완전 소멸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지방을 살리는 혁명적 접근은
더 많은 대표가 지방의 목소리를
중앙정부에 반영하는 것이다
또 양원제를 도입해야 한다
인구대표 못지않게 영토대표도 필수다
중앙에서 권력 배분을 통한 견제와 균형이 없다면 지방자치는 불가능하다. 의회의 확대와 권한의 강화는 지방자치와 균형발전의 지름길인 것이다. 요컨대 제대로 된 민주국가가 아니라면 지방자치는 불가능하다. 중앙에서 수평적 권력분립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면 중앙과 지방의 수직적 권력분립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제대로 된 지방자치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방 활성화와 지방 살리기를 위해 늘 지방자치의 강화만을 외친다. 어느 나라에서 권력이 대통령 1인이나 행정부에 독점적으로 집중되어 있는데 지방자치가 제대로 운영되는 사례가 있는가?
따라서 정치혁명을 위해 양원제는 의원정수 확대, 권력분립, 비례성 제고 못지않게 지방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인구대표(국민원/하원)와 영토대표(국가원/상원)로의 분리와 병행을 말한다. 의원정수 확대 및 국가원의 설치는 의회 구성의 지역별 불균등성을 해소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현재 수도권과 비수도권은, 인구는 50.54% 대 49.46%, 의회대표는 122석 대 131석, 지역총생산은 52.8% 대 47.2%임에 반해 영토는 무려 12.6% 대 87.4%로 큰 차이가 난다. 국토의 12.6%에 불과한 수도권이 인구·대표·총생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 비례와 균형을 위한 정치혁명으로서 상원의 설치가 절실한 이유다.
선진국, 의원 많고 세비는 우리 절반 이하
총생산의 경우 민주화 직전인 1986년 수도권은 44.7%를 넘지 않았다. 1970년에는 37%에 불과해 45.2%를 차지한 영호남보다도 크게 작았다. 한국에서 민주화는 형평화와 균등화가 아니라 수도권 집중화였던 것이다(인구문제는 추후 출생률 문제에서 상세히 살펴볼 것이기 때문에 생략한다. 다만 인구 절반인 여성 의원 비율은 19%로 국제의회연맹 세계 121위로 너무 작다는 점만은 지적해준다).
환경·기후·식량·자원·자연, 그리고 지방소멸 문제의 시급성을 고려할 때 이제 영토 대표성을 반드시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구대표 못지않게 영토대표가 필수다. 이는 선진 민주공화국들의 대표 구성에서 핵심 원리의 하나였다. 따라서 상원 설치의 문제의식이라면 권역별 비례성과 대표성의 확보문제는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 즉 광역 지방자치단체별로 상원의원 정수를 균등하게 배분할 경우 국토의 87.4%를 차지하는 비수도권 지역들은 비례적으로, 그리고 정상적으로 대표될 수 있다.
그리하여 인구대표로 구성되는 국민원과 영토대표로 구성되는 국가원이, 최소한 전자는 350명, 후자는 150명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 대표들이 ‘함께’ 자기 주민과 자기 지역을 중앙에서 각각 대변할 때 비로소 죽어가는 지방을 살릴 수 있다. 그러나 500명조차도 앞의 국제비교통계에서 보았듯 대한민국 규모의 국가에서는 결코 많은 국민대표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의원정수의 확대 및 상원의 설치는 논리적으로는 수긍이 되더라도 정서적으로 국민의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은 문제다. 따라서 국민 설득을 위해 국회의원들의 특권은 대폭 내려놓아야 한다. 핵심은 의원 개인 세비와 개인 보좌관의 대폭 감축이다. 객관적인 통계를 통해 서로 이해와 동의를 구해보자.
먼저 세비다. 우리의 의원 세비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3.5배 내외다. 선진 민주국가 중에는 3.8배를 기록한 이탈리아와 함께 단연 최고 수준이다(한국은 세비 이외에 매월 추가로 지원되는 ‘의정활동 지원 경비’를 합하면 의원 1인당 지급 규모는 1인당 GDP 대비 무려 5~6배에 달한다). 그러나 대부분 민주국가들의 세비는 1인당 GDP 대비 평균 1.5배에서 2.5배 사이를 넘지 않는다. 특히 스웨덴·덴마크·아일랜드·노르웨이·벨기에·네덜란드·스위스·핀란드처럼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모두 성취한 나라들은 우선 ① 거의 모두가 대통령제가 아닌 의회제 국가들이라는 점과, ② 우리보다는 인구 대비 국회의원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에 더해, ③ 의원들의 세비 규모가 모두 우리보다는 매우 작은 1인당 GDP 대비 2배 이하라는 점이다. 그것도 대부분 1인당 GDP의 1.5배 이하로 의원들의 세비 규모가 일반 국민들 평균 소득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매우 중요한 점이다.
요컨대 국회 규모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반면, 세비 규모는 우리의 절반 이하다. 보좌진 숫자 역시 우리보다 훨씬 적다. 그것이 바로 선진의회이며 복지국가의 한 요체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 나라 국회가 우리보다 일을 더 못하고 더 무능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들이 복지국가를 이룩한 이유의 하나가, 국민의 대표들이 아주 많으며 그들이 일반 국민과 거의 같은 수준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점임에 눈을 떠야 한다. 거듭 강조하건대 우리의 국회는 너무 작고, 우리 국회의원들의 세비는 너무 많다. 이제 국민을 위한 국회혁명의 한 방향은 분명해졌다.
다음으로 보좌진 규모를 보자. 현재 한국의 의원 1인당 보좌진(8~10명)은 많아도 너무 많다. 너무 큰 특권이다. 인구 대비 국회의원은 적은 데 비해 보좌관 숫자는 과도하게 많음으로 인해, 인구 대비 국회의원 개인의 보좌관 숫자는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재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여도 입법과 의정 활동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역설적으로 이렇게 많은 보좌진의 규모가 국회의원들의 개인적 입법 능력과 정책 전문성을 하락시키는 주요 원인의 하나다.
여성과 청년대표는 크게 확대되어야
의원 1인당 보좌관 숫자를 3분의 1로 줄인 뒤, 입법과 정책 활동의 지원을 위해 필수적인 의원 보좌 기능은 상임위별로 상당히 규모 있는 전문 입법보좌관실과 정책보좌관실을 설치하여 개별 보좌진들을 흡수, 국정 분야별로 강력하고도 전문적인 입법·정책 보좌활동을 지원하게 하면 된다. 그럴 경우 과다한 보좌관들이 온갖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로 인해 국회의원 개개인의 전문성과 정책 능력이 크게 부족한 현상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 강화를 위해 국회의원의 수준과 능력 향상은 필수다.
의회의 규모가 크고, 비례성이 높으며, 세비와 보좌관이 적고, 여성 의원 비율이 높을수록 선진 민주복지국가에 근접한다는 수많은 객관적 지표와 연구결과를 반드시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진 민주복지국가를 위해 여성 의원 비율은 절대적으로 높아져야 한다. 나라의 미래와 세대균형을 위해 청년 대표들도 크게 확대되어야 한다.
의원정수 확대 및 상원 설치는
논리적으로는 수긍이 되더라도
정서적으로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다
국민 설득을 위해
의원들의 특권은 대폭 내려놓아야 한다
핵심은 세비·비서를 대폭 줄이는 것이다
이들 우리의 정치혁명에 필수적인 사항에 대해 국회의원들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한국의 주요 대기업 평균 연봉은 거의 전부 억대이지 않은가? 그러나 국민대표들은 재물보다는 명예를, 돈보다는 조국을 위한 공적 헌신을 추구해야 하는 직위라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불행하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인류는 결코 부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는 고려와 조선, 당나라와 영국의 부자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대의 정치인·장군·사상가·문학인·예술인들은 많이 알고 많이 가르치고 많이 기억한다. 필멸의 존재인 사적 개인들을 넘어 공동체가 유지되는 근본 이유는 바로 그들의 공공영역에서의 공적 역할과 공통의 가치 창출을 위한 헌신 때문이다.
그 중심은 바로 정치다. 고래로 공직을 맡는 사람들은 청빈이 자랑이자 영예였다. 앞선 문명국가일수록 특히 그러하였다. 그러나 대통령과 총리를 포함한 오늘날 우리 대표들의 선거와 공직자 청문회는 물질 욕망으로 너덜너덜해진 사람들로 가득하다. 역사를 돌아보건대 부자들과 부패한 기득권자들이 나랏일을 맡으면 그 나라는 쇠퇴하거나 멸망하였다.
반대로 공직을 맡은 사람들이 청빈할 때, 즉 나랏일로 과도한 돈을 추구하려 하지 않을 때는 번성하였다. 그럴 때 비로소 국민의 어려운 삶을 잘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들의 대표가 돼야 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의회로 보내야 한다. 공직 선거비용 지급과 후원회 모금으로 가능한 정치를 넘어 사적인 개인 치부의 수단으로 국가 공직을 활용하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의 고위 공직자들과 대표들은 재산공개 때마다 국민 일반이나 GDP 성장률을 훨씬 앞서 재산을 크게 증식시키고 있다. 공직이 재산증식 통로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혁명을 위해서는 공천제도 역시 가장 중요한 혁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위로부터의 공천제도를 그대로 둔 채 정당개혁과 의회개혁이 가능하리라는 기대는 연목구어다. 대통령 주도의 공천, 파벌공천, 위로부터의 공천, 밀실 공천이 살아있는 한 국민대표가 아닌 진영대표·권력대표·파벌대표들로 인한 정치 양극화와 진영대결의 심화는 불가피하다. 그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대표가 아니라 진영과 권력을 위한 싸움꾼이자 해바라기들이기 때문이다. 임기 후반 친XX, 반XX, 친○○, 반○○로 갈라지는 파벌투쟁과 권력공동화 역시 필연이다.
중앙당의 극소수가 주도하는 현재의 밀실 공천제도는 민주주의 원리의 위반이며 사실상 위헌이다. 권력 정점과 정당 지도부가 이미 지명한 대표를 당원과 국민들이 다만 추인하는 대대의(代代議)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후보들 역시 당연히 출마하여 당내 민주적 경쟁과 선출과정을 거쳐야 한다. 민주주의 원리에 더욱 가까운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에 대해 비판을 넘어 폐지 여론이 비등한 이유는 그들의 비전문성과 부문 대표성 결여에 더해 공천과정의 심각한 문제점 때문이다. 지역대표와 비례대표 모두 공천과정을 완전히 당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들이 아닌 우리를 대표할 사람이 필요
중요한 것은 사회 우선의 원칙이다. 공동체의 발전에서 정치는 가장 중요하지만 결코 사회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사회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수다. 사회와 정치의 부조화는 공동체의 발전에 치명적이다. 오늘의 대한민국호가 그러하다. 오늘날 한국 정치가 심각한 지체현상을 노정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사회의 다양성·다원성·자율성·창발성을 격려하고 북돋기는커녕 반대로 억압하고 갈라놓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두 진영만 대표하는 성공한 소수 기득세력들로 가득 차서는 안 된다. 의회와 시민 사이의 문턱은 낮을수록 좋다. 그를 위해 대표의 숫자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넘쳐흘러야 한다. 지금 우리는 정치개혁이 아니라 정치혁명이 필요하다. 국회개혁이 아니라 국회혁명이 필요하다. 아니다. 정치혁명과 국회혁명이 필요한 게 아니다. 나라와 국민을 살리기 위해 우리는 지금 그것이 절실하다. 절실하고도 절실하다.
아울러 정치혁명을 위해서는
공천제도가 가장 중요한 혁명 대상이다
위로부터의 공천제도를 그대로 둔 채
정당개혁과 의회개혁이
가능하리라는 기대는 연목구어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지금 거의 전원이 국민과 나라와 지방을 살리기 위해 필수적인 이 정치혁명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국회의원 증원을 반대하는 의원들, 그러면서도 개인 보좌관과 개인 세비는 줄이지 않으려는 의원들이야말로, 반정치·반의회 포퓰리즘에 편승하여 특권과 기득권 유지에 집착하는 반개혁 기득세력일 뿐이다. 특권을 유지하려 정치혁명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다시 강조한다. 국회의원 개인의 세비와 비서는 대폭 줄이고, 의원 숫자는 대폭 늘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나에겐 나를 대표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들이 아닌 우리를 대표할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를 위해 일할 우리들의 대표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소수 기득세력의 대표들이 아닌 일반 평민과 시민의 대표들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가고, 크게 증가된 대표들을 통해 국민 누구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하자. 그리하여 다양하고 활기차며 유능한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회를 가질 수 있다면 나라는 더욱 활력이 넘치고 더욱 민주적이며, 더욱 다양하고 더욱 조용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삶은 더욱 고르고 더욱 안온할 것이다.
필자 박명림 교수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제주 4·3(석사)에 이어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박사)로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래 평화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현상 연구에 천착해왔다. 정치학자로서, 역사학자로서 전쟁과 평화, 생명과 인간, 그리고 국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 <다음 국가를 말하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