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에 의한 철도 재정 긴축의 결과는? 지난 2월 28일 그리스에서 발생한 열차 충돌 사고로 뭇 그리스인들은 10년 전 자신들의 뜻이 유럽연합과 맞부딪혔던 때를 떠올렸다. 57명이라는 사망자는 공공서비스의 몰락과 민영화의 폐단을 의미했지만, 그리스와 EU 당국이 성실한 조사를 이행할 희망은 별로 없어 보인다.
새벽녘의 한 계곡 유역에서 금속 잔해가 나뒹구는 가운데 그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3월 초, 그리스 언론은 아테네-테살로니키 철로의 이 불에 탄 금속 더미 주위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구조대의 모습을 연이어 방송으로 내보냈다. 전날 밤 11시를 지난 시각 그리스 중부 라리사 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템페(테살리아 주) 중심부에서는 승객 352명을 실은 여객열차가 한 화물열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두 열차는 같은 선로에 있는 줄 모른 채 약 12분 동안 마주 보면서 달리다가 정면충돌했다. 이 사고로 57명이 사망하고 최소 85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피해자 중 상당수는 월요일까지 연장된 황금연휴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오던 대학생들이었다. 2023년 2월 28일의 이 열차 사고는 그리스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철도 참사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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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후 그리스인 수만 명은 “정부는 살인자”, “템페 사고는 예고된 범죄”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몇 주 이어갔다. 시위대는 국영 철도망을 운영하는 공기업인 그리스 철도청(OSE)과 정부 측에 해명을 요구하며, 그리스의 모든 여객열차 및 대다수 화물열차를 운영하는 철도회사로 2017년 이탈리아 공기업 페로비에 델로 스타토 이탈리아네에 매각된 헬레닉 트레인 측에도 책임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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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노선 관리 주체와 사업 운영 주체의 분리를 권장하는 유럽연합 지침에 따라 트레인 OSE는 2005년 철도청(OSE)과 분리됐다. 여객 및 화물열차의 운영을 담당하던 이 공기업은 2017년 ‘트로이카’의 요구로 민영화 수순을 밟았다. 그리스는 부채를 갚기 위해 항만, 공항은 물론 각종 인프라 부문 공기업을 최대한 매각해야 했는데, 트레인 OSE의 경우 사려는 사람이 없어 헐값에 팔려나갔다는 안타까운 후문이다. 유럽 시장을 장악하려는 이탈리아 국영기업 페로비에 델로 스타토 이탈리아네가 인수를 위해 지불한 돈은 4,500만 유로에 불과했다.
아테네 대학의 교수 겸 경제학자 니코스 테오카라키스는 “그리스 구제금융을 주도하던 트로이카가 그리스 국영기업일 당시의 철도공사는 비난했으면서도 정작 이 회사가 이탈리아 기업의 자산으로 들어가자 종전의 편견을 버렸다”고 강조했다. 본디 공공 서비스에 속해야 하는 철도의 ‘자연 독점적’ 성격을 언급하면서 테오카라키스 교수는 1990년대 민영화된 영국 철도의 쓰라린 교훈을 되짚어줬다. 민영화가 이뤄지면 기업의 수익이 증대되는 만큼 필연적으로 안전이 위협을 받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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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의 당초 예상에 따르면 민영화 수익이 500억 유로로 추산됐지만, 2011년과 2020년 사이 민영화로 인한 이득은 90억 유로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사회적 차원에서의 무수한 부수적 피해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