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17 금요일
(2100 회)
-생(生)과 사(死)-
몇개월 전 갑작스러운 불의의 사고(事故)를 당해 世上을 떠난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故주석중 교수의 悲報에 많은 분들이 조의(弔意)를 표해주셨습니다.
아래는 주석중 교수(敎授)의 장남이 유족(遺族)을 대표해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드리는 감사(感謝)의 글을 소개합니다.
글 중에서 무엇보다 얼마 전 뜬금없이 고인(故人)이 한 말씀 “나는 지금껏 원 없이 살았다. 수많은 환자(患者)들 수술(手術)해서 잘 됐고, 여러 가지 새로운 수술 방법도 좋았고, 하고 싶은 연구(硏究) 하고, 쓰고 싶었던 논문(論文) 많이 썼다.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소명을 다한 듯 하여 감사하고 행복(幸福)하다.”라고 한 부분이 가슴을 치네요.
긴 글이지만 읽어보면 좋을 듯 하여 옮깁니다.
저는 고 주석중 교수의 장남 주현영 입니다.
여러분께서 따뜻한 위로(慰勞)와 격려(激勵)로 저희와 함께해 주신 덕분에 아버지 장례(葬禮)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별(離別)이라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비통했지만, 정말 많은 분들께서 오셔서 아버지가 평소 어떤 분이셨는지 얘기해 주시고, 진심(眞心) 어린 애도(哀悼)를 해 주셔서 가족(家族)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장례(葬禮)를 마치고 며칠 후 유품(遺品)을 정리하러 연구실(硏究室)에 갔었습니다.
방금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나가신 것 같은 옷가지들과 책상 위 서류(書類)들과 몇 개의 메스와 걸려 있는 가운 등 금방이라도 돌아오실 것 같은데 다시 뵐 수 없음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거기 쓰시던 책상 서랍 여기 저기, 그리고 책상 아래 한편에 놓인 박스에 수도 없이 버려진 라면 스프가 널려 있었습니다.
제대로 식사할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서, 아니면 그 시간조차 아까워서 연구실 건너 의국에서 생라면을 가져와 면만 부숴 드시고 스프는 그렇게 버려둔 것이 아닌가! 여겨졌습니다.
오로지 환자(患者) 보는 일과 연구(硏究)에만 전심전력을 다하시고 당신 몸은 돌보지 않던 평소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져 너무나 가슴 아팠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뒤섞여 있는 서류들 속에는, 평소 사용하시던 만년필로 직접 쓴 몇 개의 기도문이 있었습니다.
벽에 있는 작은 게시판에도 기도문 한 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영문으로 쓴 그 기도문 한 구절은 이렇습니다.
“…but what can I do in the actual healing process? Absolutely nothing. It is all in God’s hands.”
정성을 다해 수술하고 환자(患者)를 돌보지만 내 힘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니, 하느님께서 도와주십사 간절히 기도(祈禱)하는 마음을 그렇게 적어두신 듯합니다.
아버지 빈소(殯所)가 마련된 첫날 펑펑 울면서 찾아온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대동맥 박리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였으나 어려운 수술이라며 모두들 기피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저희 아버지께서 집도(執刀)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었노라 며 너무나 안타까워하시고 슬퍼하셨습니다.
아무리 위험한 수술이라도 '내가 저 환자를 수술하지 않으면 저 환자는 죽는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감당해야지 어떻하겠냐'고, '확률이나 데이터 같은 것이 무슨 대수냐'고 그러셨던 아버지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너무나 힘들고 긴장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심장(心臟) 수술(手術)에 정성을 다해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늘 고마워하셨습니다.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데 능한 분이 아니셔서 아버지의 진심이 전해지지 못했다면 이렇게 나마 아버지의 뜻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 어머니께 뜬금없이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나는 지금껏 원 없이 살았다.
수많은 환자들 수술해서 잘 됐고, 여러 가지 새로운 수술 방법도 좋았고, 하고 싶은 연구(硏究) 하고, 쓰고 싶었던 논문(論文) 많이 썼다.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소명을 다한 듯 하여 감사하고 행복(幸福)하다.”
마치 당신의 운명(運命)을 예감 아닌 예감이라도 하셨던 것일까요.
저희는 아버지의 자취가 너무나 그리울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저희 아버지를 누구보다 따뜻하고 순수한 가슴을 지닌 사람으로 기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기억(記憶)해 주신 아버지의 모습과 삶의 방식(方式)을 가슴에 새기고, 부족(不足)하지만 절반만이라도 아버지처럼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귀한 걸음 하셔서 아버지 가시는 길 배웅해 주시고 위로(慰勞)해 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감사(感謝)합니다.
유족(遺族)을 대표하여 주현영 올림.
고귀한 생명(生命)을 한분이라도 살리기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하시다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영면(永眠)하신 주석중 교수님의 명복(冥福)을 빌며, 주현영 유가족 분들께 신의 은총(恩寵)이 함께하기를 기도(祈禱)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