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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한 삶4-6. 행복과 돈의 상관관계
인간의 착각과 관점의 지배를 받는 돈
어른들의 대화에는 돈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우리가 나누는 말 중에 대부분은 돈과 관련된 얘기일 것이다. 심지어는 사람들은 돈과 관련 없는 것들까지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기도 한다. 삶과 죽음, 행복처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마저 ‘얼마짜리’로 요약되는 것이다.
누구나 돈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도 있고 상대적으로 여유로울 때도 있다. 그러나 만족스러울 정도로 충분한 적은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없어도 아쉽고 있어도 아쉽다. 사실 돈은 그 자체의 물질적 효용보다는 인간의 착각과 관점에 철저한 지배를 받는 존재인데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10만 원을 준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생각이 드는가? ‘10만 원이면 뭐, 근사한 데서 밥 한 끼 먹을 수 있겠네. 갖고 싶던 것도 사고.’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좋은 일들이 떠오를 것이다. 반대로 10만 원을 잃어버렸다고 가정해 보자. ‘아니, 10만 원이면 양말이 몇 켤레고, 술이 몇 잔이야, 설렁탕을 먹어도 몇 그릇을 먹고 A4용지를 사도 몇 묶음을 샀겠네!’ 조금 전에 생각한 것보다 두 배 가량 많은 일들이 순간적으로 떠오른다. 똑같은 금액인데도 훨씬 더 큰 가치가 되어 버리는 셈이다.
프린스턴 대학의 인지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다니엘 카네만은 이와 같은 내용의 연구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사람은 이익보다는 손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똑같은 정도의 이익을 얻는 기쁨보다 손실을 두 배 정도 더 크게 느낀다’라는 ‘손실회피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돈은 그 액수보다 나의 상황과 관점에 가치가 쉽게 좌우된다.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 원 짜리 한 장은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지폐 중에서 가장 값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돈을 아마존 원시 부족에게 선물하면 어떻게 될까? 감사하기는커녕 황당해 할 것이다. 그들에게 이 돈은 먹을 수도 없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니 말이다. 이렇다 보니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기극은 돈’이라는 유발 하라리의 말에 강하게 끄덕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종잇조각에 불과한 물건에 전 세계 사람들이 인생을 걸고 달려가고 있는지 새삼 신기할 때도 있다.
사실 인류에게 돈이라는 물건이 절대적 가치로 스며드는 데엔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과거 지도자들이 풀어내기에 가장 어려웠던 숙제 중 하나가 화폐개혁이라고 하질 않는가. 어느 역사를 보더라도 새로운 화폐의 기준을 제시하고 통일시키는 데는 다수의 반발을 견뎌 내야 했다. 물물교환 시대에는 필요한 물건이 확실하게 내 눈에 보였으니 의심할 것도 고민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의 욕구는 가장 확실한 직거래를 용감하게 깨 버렸고, 지금과 같은 세상을 만들어 냈다.
더 멀리 있는 사람과 교환하고 싶다는 필요, 더 많은 것을 나누고 이득을 취하고 싶다는 욕망.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른 수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이 돈이라는 사기극을 체제로 안정화시켰다는 게 인류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여전히 돈의 가치는 변화무쌍하고 믿기 어려우며, 여기저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돈만큼 인간의 착각과 관점이 지배하는 존재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부자가 치러야 할 형벌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라는 질문을 하면 다들 뭘 그런 걸 굳이 묻느냐는 얼굴로 쳐다본다. 돈이란 당연히 없는 것보단 있는 게 좋다. 아니, 사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오죽하면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에 대한민국이 들썩거렸겠는가. 부자가 되고 싶은 간절한 소망 속엔 부자가 되면 행복해질 거라는 강한 믿음이 숨어 있다. 그러나 현대 심리학 연구로는 부자가 일반인에 비해 더 행복하다는 실질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오히려 학자들은 부자가 치를 수밖에 없는 형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많은 가치관을 가르친다. “착하게 살아라.” “부지런해라.” “감사하며 살아라.” 일부러 부정적인 생각을 주입시키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부자들은 자녀들에게 “남을 믿지 말라”고 가르친다. 다른 사람을 쉽게 믿은 탓에 무언가를 잃게 되면 그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잃을 것도 많다. 부자들의 교육을 탓하기만은 어렵다. 누구나 이 상황이 되면 마찬가지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큰 부를 얻는 방법 중 하나가 복권이다. 하루아침에 일확천금을 얻은 복권 당첨자들이 제일 먼저 바꾸는 것이 무엇일까? 절대 다수가 배우자부터 바꾼다고 한다. 가장 나와 가까이에 있는 사람부터 의심의 씨앗이 퍼지기 때문이다. 그 다음엔 형제, 자매, 부모등 다른 가족들과 결별한다. 이윽고 친했던 친구들과도 서서히 멀어진다.
영국의 마이클 캐롤이라는 백만장자의 삶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02년, 열아홉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복권에 당첨된 마이클 캐롤. 우리 돈으로 약 145억 원에 해당하는 970만 파운드를 한순간에 거머쥔 행운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가 가족, 친구 등 가깝게 지냈던 지인들과 모두 인연을 끊는 데는 채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혼자 남은 그의 옆자리를 차지한 것은 사기꾼들이었다. 마이클 캐롤은 새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마약, 음주, 도박, 매춘 등 갖가지 기행과 호화 생활을 일삼는다. 새로 산 고급 저택에 카레이싱 트랙을 설치하고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비싼 차들을 파괴하는 경기를 즐기는 등, 상식을 넘는 수준의 행각이 이어졌다. 결국 8년 만에 완전히 파산하였고 지금은 영국의 청소부로 전락했다고 한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단언컨대 결코 그렇지 않다. 큰 돈을 얻은 대신 사람을 잃었다. 마음을 주고받던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의심과 불신은 그 자체가 고통스럽다. 살아 있는 지옥이며 형벌인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발견하게 된다. 돈은 아예 없을 때보다 있는 것이 좋다. 그러나 돈의 양이 늘수록 행복의 증가율이 동일하게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득과 행복의 그래프
소득과 삶의 만족도를 표시한 아래 그래프를 보자. 미국 돈으로 7만 달러 정도에 이르러서는 그 기울기가 원만하게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연구를 기반으로 심리학자들은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의 양은 약 7천만 원 정도가 상한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8만 달러, 9만 달러를 벌어도 조금도 행복해 질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 이상을 가져도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 다만 돈이 아닌 다른 요인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같은 주제의 연구를 한국에서 진행한 결과다. 재밌는 건 그래프의 양상이 전혀 딴판이라는 것이다.
일단 행복의 양이 크게 오르지 않고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게 특이하다. 또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는 것도 신기하다. 돈이 많으나 적으나 행복엔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이 그래프를 증명이라도 하듯 한국인들은 본인이 가난해도 부자를 쉽게 존경하지 않는다. 누가 돈이 많다고 해도 “지가 뭔데? 별것도 아니면서!”라는 태도가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다.
우리 한국인들, 제아무리 뉴스에 나오는 최고의 재벌이라 해도 깔보는 여유가 있지 않은가. 굳이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청난 부를 축적한 이들을 기본적으로 우러러보는 다른 국가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쩌면 더더욱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를 돈이 아닌 다른 것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은 그의 ‘전망(조망)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재미있는 그래프를 하나 소개했다. 바로 손실과 획득의 곡선이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100만 원을 받으면 심리적 기쁨이 상승한다. 그 다음에 다시 100만 원을 받아 200만 원이 되었다고 치자. 역시 기쁨이 상승하나 처음과는 다르게 살짝 기울기가 완만해진다. 금액이 커질수록 곡선은 점차 완화된다. 손실도 마찬가지. 단, 손실의 심리적 슬픔은 획득에 비해 기울기가 급격하고 가파르다. 100만 원 획득의 기쁨보다 100만 원 손실의 슬픔이 훨씬 더 크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200만 원을 줄 때, 한 번에 주는 게 나을까? 두 번에 쪼개 주는 게 나을까? 이 그래프에 의하면 한꺼번에 주는 것보다 100만 원씩 두 번 나누어 주는 게 더 심리적으로 만족스럽다고 한다. 이는 심리적 착각을 일으키는 제목 효과의 일종이다. 인간은 큰 혜택을 한 번에 얻는 것보다 작은 혜택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을 더 좋아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200만 원을 1원씩 200번에 걸쳐 나눠 주겠다는 생각은 버리자. 너무 잘게 쪼개면 부작용이 생긴다. 심리학 용어로 ‘부킹 프라이스’라는 말이 있다. 내 마음의 장부에 기입할 수 있는 최소 가격이란 뜻이다. 즉, 내가 받았다고 인정하고 만족하는 최저 금액이다. 세배를 하자 삼촌이 500원을 주셨는데 그걸 세뱃돈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금액이 상대의 부킹 프라이스보다 적다면 받는 이가 짜증을 낼 수 있으니, 반드시 최소 금액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꽤 많은 유럽 국가들은 주급제를 선택한다. 우리로 치자면 월급을 일주일에 한 번씩 4분의 1로 나눠서 주는 것이다. 코딱지만 한 월급을 그냥 주는 것도 모자라 쪼개서 주다니, 생각만 해도 짜증이 치민다. 그러나 북유럽 사람들은 작은 걸로도 꽤 높은 만족감을 얻으며 사는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 주급을 받아서 필요한 것을 사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삶도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가 한 달에 단 하루, 월급날 기분이 좋아진다면, 이 사람들은 한 달에 최소 네 번은 웃을 일이 생긴단 얘기다. 북유럽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작은 행복의 만족도도 한몫하지 않을까? 낮은 부킹 프라이스는 행복에 제법 도움이 된다. 행복하고 싶다면 크든 작든, 내가 확실하게 좋아하는 행복의 리스트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것을 나만의 위시리스트라고 불러도 좋겠다. 위시리스트의 목록이 작고 소소하다면 그만큼 부킹 프라이스도 낮은 법이다. 길거리에서 파는 오천 원짜리 음식 중에 위시리스트에 속한 것이 있다면 단돈 오천 원을 벌어도 기뻐하며 마음 속 장부에 기입할 것이다. 그 음식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만족과 행복의 빈도가 높이지기 때문이다.
기억하자.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사실을.
나의 위시리스트는 무엇인가
전 세계에서 제일 아이큐가 높고 부지런한 한국인이다. 외국인 학자들은 나만 보면 한국인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하곤 한다. 그런데 이 질문 하나면 그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한국인들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뭐 좋아하세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이만큼 어려운 질문이 없다. 듣는 순간 내가 정말 뭘 좋아하지? 하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많은 경우에 웃으며 “아무거나요”라고 답하곤 한다. 아무거나 먹어도 되고, 아무 데나 가도 된단다.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어리석은 답변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것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른다. 친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부모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질문을 받으면 머리가 하얘진다. 오히려 무엇을 싫어하는지는 기가 막히게 한다.
“길동이? 걔는 맵지 않은 거 좋아해.”
“우리 부모님은 시끄럽지 않은 걸 좋아하셔.”
우리는 종종 싫지 않은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싫어하지 않는 것과 좋아하는 건 엄연히 다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건 단순히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다. 심각한 사회문제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갖고 있다. 노인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절망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그들의 죽음은 ‘절망’이 아닌 ‘무망’ 때문이다.
절망은 희망이 꺾였을 때 오는 좌절감이다. 무망은 어떤 희망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희망이 꺾이면 다른 희망으로 일어설 수 있지만 아무런 희망조차 없는 상태에서 상실감을 느끼면 결국 인생을 놓아 버리게 된다. 나는 강의에서 만나는 많은 분들에게 사람이 50이 넘으면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곤 한다. 그것이 인간 장수의 비결이고 행복의 비결이기 때문이다.
텍사스 유학 시절 나의 지도교수였던 아트 마크먼은 유대인답게 자녀에게 특별한 경제 교육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가 다섯 살일 때 아트는 이런 질문을 건넸다.
“루카스야, 오늘 1000달러가 생기면 뭘 할 거니?”
루카스는 1000달러가 얼마나 큰돈인지도 모르는 아이였는데 말이다. 1달러가 1000개나 있는 거라고 하나하나 설명을 해 주니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다섯 살 인생의 최고 금액이었던 것이다. 루카스는 아빠가 시키는 대로 이 1000달러를 어떻게 사용할지 이틀에 거쳐 글짓기를 해 왔다.
‘마이클에게 사탕을 나눠 주고, 엄마에게 쿠키 여섯 개를 사준다. 로봇 장난감을 아빠에게 선물하고 데이빗에게 젤리 한 통을 사 준다….’ 끝없는 위시리스트가 이어졌다. 다섯 살의 루카스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였다.
한 해가 지나고 여섯 살이 된 루카스에게 아빠는 같은 질문을 던졌다.
“루카스야, 오늘 5000달러가 생기면 무엇을 하고 싶니?”
“히익! 100달러가 50개나 있다는 거예요?”
루카스는 어김없이 계획을 적어 나갔다. 그리고 이 질문과 기록은 해마다 반복되었다. 루카스는 이제 스무 살이 넘은 청년이 되었다. 아트는 여전히 아들에게 매년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이제 아이의 위시리스트를 기록한 종이는 수십 페이지에 달할 것이다. 루카스는 내일 당장 복권에 당첨돼도 결코 파산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머릿속엔 얼마만큼의 돈을 어떻게 써야 내가 행복할 수 있을지 이미 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위시리스트란 돈에 제목을 붙이는 일이다. 제목 하나하나가 모두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일 때 인생의 계획도 같이 단단하게 만들어진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작은 리스트를 적어 보면 어떨까? 큰돈에 대한 맹목적인 욕망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에 지혜롭게 쓸 때 가장 중요한 인생의 방향이 잡힐 것이다.
*위 글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에 심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문제해결 그리고 창의성에 관해 연구하였고, 현재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면서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장을 지냈고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면서 대학교 각종 교육기관, 기업에서 왕성하게 강연하고 있고, ‘어쩌다 어른’, ‘세바시’, ‘책 읽어 드립니다’, ‘나의 첫 사회생활’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게 있는 “김경일”교수의 저서 ‘적정한 삶’ 제4장 ‘불안의 시대에서 행복을 말하다’ 중 일부를 옮겨본 것입니다. 그 외 저자의 저서로는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십 대를 위한 공부사전” 등이 있고, 역서로는 “혁신의 도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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